국정교과서 반대 시국선언과 언론인 청와대 직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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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클리포커스] 언론인 ‘정치 참여’ 이중 잣대 논란

기어이 정부가 3일 역사교과서 국정화 고시를 확정했다. IT 강국으로 ‘창조경제’를 내세우는 정부이지만 역사교과서 국정화에 대한 국민 의견수렴은 ‘팩스’와 ‘우편’으로 한정하더니 당초 예정한 일정보다 이틀 앞당겨 고시를 확정한 것으로, 군사작전처럼 밀어붙여 진보와 보수를 망라한 반대 여론을 돌파하려는 듯한, 퇴행적 모습이란 비판이 높다. 그리고 역사교과서 국정화 문제를 놓고 언론계 내부에서도 다르지 않은 모습이 나오고 있다는 지적이다. <연합뉴스>에 이어 KBS에서도 언론노조(위원장 김환균)의 국정교과서 반대 시국선언을 정치 행위라고 규정하고 이에 참여하는 언론인들에게 불이익이 있을 수 있다고 압박하고 나선 까닭이다.

시국선언 참여가 정치 행위라면 공영방송 기자의 청와대 직행은?

상황은 이렇다. KBS는 지난 2일 언론노조 KBS본부(이하 KBS본부) 측에 ‘언론노조 시국선언 참여 관련 복무지침 시행’ 공문을 전달했다. 앞서 언론노조는 지난 10월 22일 긴급 대표자 회의에서 ‘한국사 교과서 국정원 반대 현업 시국선언’이 담긴 의견광고를 게재하기로 결정했다. KBS는 공문에서 언론노조의 시국선언에 참여하는 행위를 “집단적인 정치적 의사 표시”에 해당한다며 정치활동 금지를 규정하고 있는 취업규칙 제7조(직원은 정치활동에 참여하거나 정치단체의 구성원이 돼선 안 된다) 위반을 주장했다. <연합뉴스>도 지난 10월 28일 언론노조 연합뉴스지부(이하 연합뉴스지부)에 공문을 보내 언론노조의 시국선언에 참여하는 구성원에 대한 징계방침을 밝힌 바 있다.

▲ 황교안 국무총리가 3일 오전 서울 세종로 정부서울청사에서 역사교과서 국정화 확정 고시 담화문 발표를 마친뒤 브리핑룸을 나서고 있다. ⓒ뉴스1

역사교과서 국정화 반대 시국선언에 참여하는 일을 정치 행위로 규정한 두 언론사 사측의 주장에 구성원들은 물론, 언론계 안팎에서 이해하기 어렵다는 반응들이 나오고 있다.

일단 전례가 없다. 언론인들이 국가정보원의 대선 개입 의혹에 대한 진실 규명 촉구(2013년 8월 8일), 세월호 참사 보도에 대한 자성과 정권의 방송장악‧보도통제 규탄(2014년 5월 22일) 등의 내용을 담은 시국선언에 참여한 일은 있어도, 사측에서 일련의 행위를 정치 행위로 규정하며 불이익을 경고한 일은 없다. 이와 관련해 KBS본부의 한 관계자는 <PD저널>과의 통화에서 “(시국선언 참여는) 회사 쪽에서 말하는 정치 활동에 포함되지 않는다. 기존에 KBS에서 가지던 정치 활동의 범위는 정당 가입이나 국회의원 출마 등 구체적인 활동으로 한정돼 있었다”고 말했다.(11월 3일, <PD저널> ‘국정교과서 반대 시국선언 언론인에 징계?’)

김환균 언론노조 위원장도 “역사교과서 국정화 문제에 대해 정부에서 의견수렴을 하겠다고 밝혔고, 국민 누구라도 의견을 얘기할 수 있다”며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의견을 표현하는 일을 정치 행위라고 한다면 민주주의의 다양성은 어디서 찾을 수 있으며, 헌법에서 보장하는 표현의 자유는 어떻게 되는 것인가”라고 반문했다.

이중 잣대에 대한 문제제기도 있다. 지난해 2월 KBS의 메인뉴스인 <뉴스9> 앵커(2010~2013년)까지 지냈던 민경욱 당시 KBS 문화부장은 오전 보도본부 편집회의에 참석한 뒤 오후 KBS에서 지급한 휴대전화를 소유한 채로 청와대 출입기자들 앞에서 신임 대변인으로 소개됐다. 반나절 사이 언론인에서 청와대 대변인으로 옷을 갈아입은 그를 두고 KBS 구성원들은 잇달아 성명을 내고 “이 일(정치권으로의 직행)이 가능했던 우리 조직의 부조리도 잊지 않겠다. 당신의 선택이 참 부끄럽다”(2014년 2월 6일, KBS 40기 기자들 성명)고 비판했다.

▲ 지난 2014년 2월 5일 청와대 새 대변인에 임명된 민경욱 KBS 전 앵커가 청와대 춘추관에서 소감을 말하고 있다. ⓒ연합뉴스

당시 KBS본부는 민경욱 전 대변인의 청와대 직행을 두고 윤리강령 제1조 3항(TV와 라디오 시사프로그램 진행자는 해당 직무가 끝난 후 6개월 이내 정치 활동을 하지 않는다) 위반을 제기했지만, 당시 KBS는 청와대 대변인은 공직인 만큼 윤리강령에서 금지하는 ‘정치활동’ 대상에 포함하는 게 적절치 않다는 입장을 내놓기도 했다. 그러나 KBS는 지난 2012년 2월 25일 <미디어 인사이드>(1TV) ‘언론인 정치진출, 현실과 한계’에서 폴리널리스트의 의미를 ‘언론인으로 활동하다 정계에 나서거나 관계에 진출하는 사람들’로 규정한 바 있다. 더구나 민 전 대변인은 지난 10월 5일 사직한 후 현재 내년 총선에서 인천 지역 출마를 준비하고 있다.

언론인의 ‘정치 중립’ 의미에 대한 질문도

이런 가운데 “언론인에게 정치 중립의 의무가 있는가”라는 질문도 나온다. 미디어인 언론의 중립성과 언론인의 정치 표현에 대한 구분, 즉 범주에 대한 질문이다. 양문석 전 방송통신위원회 상임위원은 이날 <PD저널>과의 통화에서 “공무원은 법에서 규정된 정치 중립의 의무가 있지만 언론인은 그렇지 않다”며 “기자 등 언론인 역시 시민의 한 사람으로서 이미 상식과 비상식의 대립 구조라는 게 드러난 이 사안에 대해 자기 입장을 밝힐 수 있다”고 말했다.

실제로 언론인은 정당법 제22조에서 규정하고 있는 당원 가입을 제약하는 요건에 해당하지 않는다. 다만 언론의 공정성 등의 가치가 중요한 만큼 언론사의 취업규칙이나 윤리강령 등에서 언론인이 보도‧제작에 있어 특정 정파의 이해에 부합하는 일을 하지 않도록 하는 상황이다. 그리고 자신의 정파성을 앞세운 보도‧제작으로 공정성 등의 가치를 훼손하는 등 영향을 미칠 경우 공정방송위원회 등의 내부 장치를 통해 제어하도록 하고 있는 것이다.

공영방송의 한 관계자는 “정당에 소속되지 않고도, 결국 자신의 정치색에 따라, 혹은 권력을 따라 폴리널리스트가 된 이들에 대한 제어 장치를 마련하는 일과, 권력에 밀착해 공영방송의 의사결정권자가 돼 보도·제작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현재의 지배구조를 개선하는 일이 방송의, 언론의 공정성과 신뢰를 위해 더 중요한 문제”라고 말했다. 

언론인이 역사교과서 국정화 반대 시국선언에 참여하는 것만으로도 “보도 객관성에 심각한 우려를 줄 수 있다”(10월 30일, <미디어오늘> ‘연합뉴스 “기자들, 국정화 시국선언 참여하면 징계”’)고 하는 것은 예단에 따른 지나친 우려라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로, 김환균 위원장은 “설사 이 문제(역사교과서 국정화)를 프로그램에서 직접 다루는 언론인이라 하더라도 시국선언 참여 서명 여부는 본인 판단에 맡길 일”이라고 강조했다.

한편 언론노조는 3일 오후 성명을 내고 “헌법 제21조 1항에서는 ‘언론, 출판, 집회, 결사의 자유’를 보장하고 있는데, 이는 집단적·정치적 표현의 자유를 말한다. 대법원은 헌법 제33조 1항에 의해 단결권을 보장받고 있는 노동조합은 원래 ‘근로자가 주체가 되어 자주적으로 단결하여 근로조건의 유지·개선 기타 근로자의 경제적·사회적 지위의 향상을 도모함을 목적으로 조직하는 단체 또는 그 연합단체’이므로 그 목적달성에 필요한 정치활동이나 사회활동을 할 수 있다고 판결했다”며 “누구도 언론인들의 표현의 자유와 사회 참여를 제한할 수 없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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