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땐 좋았는데” 왜 추억을 호출할까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키워드로 살펴보는 방송가 ‘레트로 트렌드’

길을 걷다보면 통 넓은 와이드 팬츠에, 통굽 구두를 신은 여성이 스마트폰을 만지작거리는 모습을 쉽게 볼 수 있다. 1970년대 복고 패션과 2015년 현재가 융합된 모습이다. 복고 열풍은 옷차림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가요계는 2000년대 ‘조상 아이돌’ 클릭비, 버즈, 플라이 투 더 스카이 등 재결합 열풍이, 방송계는 추억의 노래, 추억의 사람들이 출연하는 프로그램이 인기를 끌고 있다. 하긴 ‘트렌드’에 가장 민감한 시장에선 이미 과거의 것을 가져와 현재에 맞게 재창출하는 ‘레트로 마케팅’이 유행이라니 말 다했다. 이처럼 대중문화를 비롯해 사회 전반에 걸쳐 ‘좋았던 시절’을 소환하는 현상들을 짚어본다.

▲ tvN '응답하라1988' ⓒCJ E&M

추억의 풍경 >> 이번에는 1980년대다. ‘응답하라’ 시리즈 tvN <응답하라 1988>이 지난 6일 첫 방송됐다. 쌍팔년도 쌍문동의 한 골목에서 벌어지는 코믹 가족극이다. 방송 2회 만에 7.4%(닐슨코리아 기준)를 기록해 전작을 뛰어넘는 반향을 일으키고 있다. 호돌이, 다이얼 전화기, 전화번호부, 비디오테이프 등 디테일하게 고증된 소품과 패션 아이템은 당시 청년기였던 40대 시청자에게 ‘그 때’를 떠올리게 한다. 덕선(혜리 분)이가 둘째라는 이유로 매번 계란 프라이를 언니와 동생에게 양보해야 하는 장면이나 이웃사촌이 누군지도 모르는 요즘 같은 시대, ‘응팔’의 주부들은 노상 평상에 모여 앉아 수다를 떨고 음식을 나누는 모습이 정겹다.

추억의 음악 >> 소찬휘, 이은미, 고 신해철, ‘버즈’의 민경훈 등. 지난달부터 새 시즌을 시작한 JTBC <히든싱어 시즌4>에 출연한 가수들이다. 진짜 가수와 가수의 목소리와 창법을 그대로 소화하는 ‘모창 도전자’의 노래 대결 콘셉트만큼이나 1990년대부터 2000년대 한창 인기 절정을 달렸던 이들이 주인공이 된다는 점도 흥밋거리다. 이미 지난해 MBC <무한도전> ‘토토가’ 특집으로 가요계에 ‘복고 열풍’이 거세졌다. 뒤이어 MBC <어게인 인기가요 베스트 50 95~96>, SBS <심폐소생송>을 통해 과거 유행했던, 혹은 숨어있던 음악들이 재조명 받았다. 최근 JTBC <투유 프로젝트-슈가맨>에서 강현수, 90년대 발라드 가수로 유명했던 최용준이 등장하는 등 ‘복고 열풍’을 이어가고 있다.

추억의 사람들 >> 한 때 화려한 시절을 보냈던, 혹은 반짝했던 연예인이 오랜만에 출연하는 프로그램도 예능의 한 흐름이 됐다. 중년들의 친구 만들기를 내세운 SBS <불타는 청춘>이 대표적이다. ‘썸 타기’보다 ‘우정’에 방점을 찍은 <불타는 청춘>에서는 언제부턴가 TV에서 자취를 감춘 스타들을 만날 수 있다. 박선영, 박형준의 출연으로 시청자의 반가움을 샀고, ‘스잔’으로 유명한 80년대 하이틴 스타 김승진도 나올 예정이다. <불타는 청춘>의 출연자들은 마냥 화려해 보이던 과거와 달리 인간적인 모습을 보여주면서 공감대를 만들어낸다. 예를 들면 1980-90년대 ‘최고의 댄스 스타’로 기억되는 김완선은 “경험치가 신생아급”이라는 놀림을 받을 정도로 일상생활에 서투른 모습을 보여 눈길을 끌었다.

▲ SBS '불타는 청춘' ⓒSBS

추억 소환 이유, 그리운 아날로그 >> 이처럼 방송가에서 ‘추억’을 매개로 한 프로그램의 공통점은 아날로그 시대를 향한 시청자의 향수를 자극한다는 것이다. 사람과의 만남에서 비롯된 아날로그 시대에서 SNS 위주의 디지털 시대에 들어서면서 대중은 ‘소통’에 대한 욕구를 채우기 어려워졌다. SNS를 통해 회자되고 댓글을 달면서 서로 소통하는 듯 보이지만 실제로는 머무는 소통이 아닌 휘발하는 소통으로 이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방송가에서는 ‘아날로그적’ 시대를 향유했던 사람들을 소환함으로써 대중의 정서적 소통에 대한 갈망을 해소시키고자 하는 것이다.

추억 소환 이유, 척박한 현실 위로 >> 나아가 과거로의 회귀, 즉 복고의 흥행은 늘 경제 불황과 맞물려 있기도 하다. 예컨대 매일 저녁 뉴스만 봐도 ‘경제 불황’ 소식은 더 이상 뉴스거리가 되지 않을 정도로 일상적이다. 그렇다고 해서 각박한 현실을 떨쳐내기 위해서 지갑을 마음껏 여는 것도 쉽지 않다. 박문기 브랜드38 연구소장은 칼럼에서 “경기가 회복된다면 90년대의 복고풍은 일시적 유행에 해당하는 패드(fad)에 해당하지만, 경기가 회복될 기미가 없다면, 이는 유행이 아니라 트렌드(trend)로 발전된다”고 꼬집기도 했다. 결국 잠시나마 팍팍한 현실을 잊을 수 있는 건 ‘부대끼며 버텨냈던 호시절’을 담은 ‘추억의 스토리텔링’을 보며 지나간 날들을 곱씹는 일뿐이다.

저작권자 © PD저널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
모바일버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