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부 장관이 이사장으로 오는데 사장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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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방송이 흔들린다 ②] 사장 선임 앞둔 EBS 내부, 국정교과서 문제와 맞물려 긴장

새 사장 선임을 앞두고 EBS 구성원들의 한숨은 깊어져 가고 있다. 정부가 여론의 거센 반대와 역사학계의 대대적인 집필 거부에도 11월 3일 고시확정 발표를 통해 한국사 교과서 국정화를 강행하고 있는 현재, 과연 EBS의 ‘교육 중립성’을 지켜내는 동시에 EBS의 미래 비전을 실현할 수 있는 적합한 인물이 사장으로 올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한 우려 때문이다.  [관련기사: 교육부 압력에 ‘무풍지대’ EBS… 사장도 방통위가 선임]

공모 과정부터 석연치 않아 의혹 더 커져

방송통신위원회(이하 방통위)는 오는 29일 임기가 끝나는 신용섭 EBS 사장 후임 사장 공모를 지난 9일에서야 들어갔다. 방통위는 지난 9일부터 18일까지 EBS 사장 후보를 공모하고 서류 심사와 면접을 거쳐 이달 말 최종 선임할 계획이다. 신용섭 사장의 임기를 한 달도 남겨두지 않은 채 공모를 진행하고 있으니 매우 이례적인 일이다. 애초 예정보다 보름이나 미뤄진 일정이다. 지난 6월 26일 이헌 행정법무담당관의 전체회의 보고에 따르면 방통위는 애초 EBS 사장에 대한 공모절차를 10월 중순 이후에 진행할 계획이었다. 또한 지난달 27일에는 방통위 홈페이지에 EBS 사장 공모 공고문이 게재됐다 삭제된 일도 있었다. 공모과정이 석연치 않다는 얘기가 심심치 않게 나오는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다. 때맞춰 공모 직후 ‘뉴라이트’ 계열의 이명희 공주대 교수와 류석춘 교수의 사장 내정설이 돌기 시작했고 내정 인사를 위한 포석 아니냐는 의혹이 눈덩이처럼 커지기 시작했다.

EBS 한 관계자는 사장 공모를 지켜보고 있는 내부의 분위기를 잘 전해주었다. 그는 “정작 하마평이 도는 두 인물(이명희, 류석춘 교수)은 사장에 나오지 않는다고 답변했지만, 그럼 다른 후보라도 이름이 돌아야 하는데 아직도 구체적 윤곽이 나타나지 않는다는 사실이 두렵다”고 솔직한 심정을 말했다.

▲ 6기 EBS 이사회 첫 회의가 열리는 지난 10월 13일 노조 조합원들이 이사들의 자질을 문제삼는 피켓 시위를 벌이고 있다. ⓒEBS노조

“KBS·MBC도 무너졌는데 EBS라고…”

EBS 구성원들의 걱정은 공영방송인 KBS와 MBC의 선례 때문이다. 정부가 불공정 편파보도를 심화시킬 인사를 공영방송 이사장과 사장으로 임명하는 일련의 움직임에서 EBS도 예외일 수 없기 때문이다. 고영주 MBC 방문진 이사장은 “문재인은 공산주의자”라는 논란 발언을 서슴지 않고 있다. 지난달 26일 KBS이사회는 여당 이사 7명의 몰표로 고대영 후보를 KBS 사장으로 선출했다. 고 후보는 KBS 내부에서 불공정, 편파 보도로 84%의 불신임을 받아 보도본부장직에서 해임된 인물이다. 그뿐만 아니라 EBS 이사회 구성만 보더라도 뉴라이트 계열의 조형곤 이사와 교학사 교과서를 추진했던 서남수 전 교육부장관이 이사장을 맡고 있다. 사실 사장 자리에 ‘뉴라이트’인사가 오더라도 이제는 크게 이상할 일이 아닐 정도다.

EBS의 한 관계자는 “방송사 사장은 모든 걸 할 순 없어도 모든 걸 망칠 수 있는 자리라고 생각한다. MBC가 교훈을 남겼다. (방통위에서 내정하는 식으로) 방송사 사장 자리에 아무나 와도 된다는 생각 자체가 문제” 라고 지적했다.

EBS 사장 선임은 한국교육방송공사법 9조 2항에 따라 사장은 방송통신위원회 위원장이 방송통신위원회의 동의를 받아 임명한다. EBS 내부는 물론 이사회까지도 선임에 관여할 수 없는 구조다. 누가 봐도 상식적으로 EBS 사장 자리에 어울리지 않는 인물이 후보가 되더라도 방통위의 직권으로 임명될 수 있기 때문에 EBS 구성원은 노조를 통한 사장 선임에 반대 의사를 표명하고 출근 저지 투쟁을 할 수밖에 없다는 근원적 한계를 가지고 있다.

EBS에서 만난 한 구성원은 “(사장 선임은 구조의 문제이므로) EBS 내부에서는 선임 과정에는 손쓸 수 없고, 어떤 사람이 와도 크게 바뀌는 건 없을 거라는 무기력한 분위기가 있는 건 사실인데 이런 분위기가 확산할 수밖에 없는 구조의 한계가 느껴져 안타깝다”며 “앞으로 EBS가 교육적인 프로그램을 만드는 데에 외압과 제재를 받아 내부 동력을 잃을 것 같아 걱정이다”고 답답한 심정을 토로했다.

“EBS 사장 자리, 경영능력 실험대 되어선 안돼”

그동안 방통위의 직권으로 임명된 EBS 사장이 경영에 대한 비전이나 교육에 대한 철학보다는 관료 출신이나 교수 출신이라는 점도 문제라는 지적이다, 매번 사장이 바뀔 때마다 사업의 기조는 달라졌고 경영 전반에서 좋은 성과를 내지 못했기 때문이다. 한 PD는 “EBS 사장은 교육방송 공사가 안정적인 재원 확보를 통해 좋은 프로그램과 교재를 만들기 위해 일하는 자리”라며 “지금까지 그래 왔던 것처럼 경영에 무지한 (관료 출신이나 교수 출신) 사람들의 경영 능력의 교육장이나 실험대가 되어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EBS 구성원들은 대체로 정치적 이념 논쟁이 아닌 EBS의 비전과 도약을 위해 현실적이고 경영적인 해결책을 펼칠 만한 인물을 새 사장으로 원하고 있었다. 현재 EBS에는 수신료 배분율과 일산 신사옥 디지털통합사옥 건설‧이전 등 문제가 산적해 있기 때문이다. 신사옥 이전과 관련해 EBS 노조 측은 회사 측이 주장하는 신사옥 건설에 필요한 약 1700억 원의 재원확보에 대해 ‘비현실적’이라고 보고 있다. 회사는 제작비를 2017년까지 매년 10억 원을 증액하고 2018년부터 2021년까지는 동결한다는 방침을 내놓은 바 있다.

EBS 한 관계자는 “현재 우리에게는 일산 신사옥 이전과 관련해 부족한 재정 문제를 해결하고, 수신료 배분율 조정 등 현재 EBS가 해결하지 못한 문제들을 이끌 수 있는 사람이 필요하다. 앞으로의 EBS가 한 단계 더 도약하기 위해서는 새 사장의 역할이 매우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또 다른 EBS PD는 “제발 상식이 통하는 사람이 왔으면 좋겠다. 원하는 건 그뿐이다. 말이 통하고 융통성 있는 사람. 제작 일선에 있는 사람들의 말을 경청할 줄 알고 자신과 다른 의견에도 ‘알았다. 한번 생각해 보겠다’고 말할 수 있으면 좋겠다. 모든 걸 이념 논쟁으로 끌고 가는 게 아니라 경영을 제대로 할 수 있는 사장이 됐으면 진심으로 바란다”고 말했다.

또 누가 사장이 되느냐보다는 앞으로 EBS가 ‘교육 중립성’을 지키기 위해 더욱 근본적인 지배 구조의 변화가 필요하다는 의견도 나왔다. 공영방송인 EBS를 마치 국영방송처럼 여기고 마치 정권의 ‘전리품’쯤으로 생각하지 않도록 지배구조 개선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EBS의 한 관계자는 “내정설이 도는 두 명의 인물이 (사장이) 되고 안 되고의 문제보다 더 근본적인 문제가 있다”며 "앞으로 EBS가 지금과 같은 엄혹한 시대에서 과연 교육, 공영방송의 철학을 이어나갈 수 있는지 여부다. EBS 사람들은 지금부터 이를 지켜내는 힘겹고 지난한 싸움을 시작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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