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중한 농민’은 보지 않는 조선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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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평] ‘테러’ 등 자극적 표현, 추측으로 집회 반감 부채질

지난 14일 서울 도심에서 열린 민중총궐기 투쟁대회에서 경찰이 쏜 물대포에 얼굴과 상반신을 직격으로 맞아 쓰러진 농민 백모씨(68)가 위중한 상태다. 경찰은 백씨가 쓰러진 이후에도 약 15초간 물대포를 조준해 쐈다. 병원으로 이송된 백씨는 4시간에 걸쳐 뇌출혈 수술을 받았지만 여전히 중태다. 그리고 16일자 <조선일보>에서 이 소식은 스쳐가는 뉴스다.

이날 <조선일보>는 민중총궐기 대회 관련 내용을 1면과 2면 보도와 그리고 35면 사설에서 다뤘다. 내용은 일관됐다. 광화문 한복판에서 폭력시위가 벌어졌고 이 시위를 제대로 ‘진압’하지 못한 공권력은 무력했다는 것이다. 1면 관련 기사와 2면의 면(面)제목엔 모두 “무법천지 7시간”이란 표현이 들어갔다.

<조선일보>는 집회 참가자들의 ‘폭력’과 이에 대한 책임자를 ‘색출’하는 데 집중했다. 1면 ‘대한민국 심장부 무법천지 7시간’ 기사에선 수배 중인 한상균 민주노총 위원장이 연설을 통해 “나라 전체를 마비시킬 수 있다는 것을 똑똑히 보여주자”며 참가자들을 선동했다고 지목했다.

▲ 11월 16일 <조선일보> 2면

2면 ‘쇠파이프, 횃불, 경찰버스 폭파시도…공권력을 조롱하다’ 기사에서도 “이날 시위는 수배 중인 한상균 민노총 위원장이 진두지휘했다”며 “사복경찰 70여명이 한 위원장을 체포하기 위해 달려들었으나 조합원들이 몸으로 저지했다. 그 사이 한 위원장은 프레스센터 18층 언론노조 사무실로 피신했다. 조합원 수십명과 대치하던 경찰이 안전사고를 우려해 5분쯤 뒤 철수하면서 체포 작전은 실패로 끝났다. 그로부터 30분 뒤 한 위원장은 경찰을 비웃듯 서울광장에서 열린 전국노동자대회에 나타나 시위를 독려하는 연설을 했다”고 보도했다.

이어 ‘野는 이 와중에 “경찰이 과잉진압…책임 묻겠다”’ 기사에선 “이날 집회는 ‘한국진보연대’가 지난 1월부터 준비해온 것으로 알려졌다”, “9월엔 민노총과 전국농민회총연맹 등 534개 단체가 ‘민중 총궐기 투쟁본부’를 결성했다”, “한국진보연대는 2008년 광우병 시위, 제주 해군기지 반대 운동, 세월호 참사 등에서 반정부 운동을 주도해 왔다. 헌법재판소가 해산을 결정한 통합진보당 해산 반대에도 앞장섰다”, “‘투쟁본부’에 이름을 올린 ‘민족자주평화통일중앙회의’와 ‘범민련 남측본부’는 과거 법원에서 이적단체 판결을 받았다”고 전했다.

일련의 보도를 통해 <조선일보>는 한상균 위원장과 한국진보연대, 전국농민회총연맹 등이 구성한 민중 총궐기 투쟁본부 등을 폭력의 ‘배후’로 지목한 것이다. 지난 15일 법무부가 긴급 기자회견을 열어 과잉진압으로 다친 시민에 대한 언급은 없이 집회 참가자들의 폭력성만 부각시키고 “민주노총 등 주도 단체를 비롯해 핵심 주동자와 극렬 행위자에 대해 사법 처리하겠다”고 밝힌 것에 손발을 맞추는 듯한 보도 태도다.

<조선일보>는 경찰의 체포를 피해 피신했던 한 위원장이 30분 뒤 집회 현장에 나타나 연설을 한 상황에 대해 “경찰을 비웃듯”이라며 감정적인 표현을 사용했다. 경찰을 비롯해 이날 집회를 부정적으로 보는 이들의 감정을 자극하는 보도다. 또 35면 사설 ‘대입 논술 시험 날 도심 테러성 시위, 기획자부터 엄벌하라’에서도 “시위대는 하필 수험생과 학부모가 1년 중 가장 애를 태우는 날을 골라 과격 폭력 시위로 서울 도심을 아수라장으로 만들었다”, “올해 대입에서 가장 많은 수험생이 논술 시험을 보는 날을 집회 날짜로 정한 것은 주최 측이 시위 효과를 극대화하려 한 것으로 볼 수도 있다” 등 한국 사회에서 예민한 사안 중 하나인 ‘대입’에 “시위 효과 극대화”라는 ‘추측’을 엮었다. 또한 <조선일보>는 사설 제목에서 집회를 ‘테러’에 비유했는데, 이는 지난 13일(현지시간) 프랑스에서 발생한 IS의 테러를 연상하게 한다.

“폭력 엄벌” 강조하며 중태에 빠진 농민에 무관심 

<조선일보>는 사설에서 “대법원은 지난해 직접 폭력 시위에 감당하지 않았어도 시위를 조직한 기획자를 처벌할 판결을 내렸다”며 “사법 당국은 이번 폭력 시위를 기획한 사람들부터 찾아내 엄벌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조선일보>는 경찰의 폭압적 진압의 문제는 전혀 짚지 않았다. 집회에 참가했던 한 농민이 중태에 빠졌음에도 불구하고, 경찰이 살수차 운용지침을 제대로 지켰는지에 대한 의문은 없다.

▲ 11월 16일 <조선일보> 35면

반면 16일자 <한겨레> 3면 기사에 따르면 경찰의 ‘살수차 운용지침’은 살수차를 분사‧곡사‧직사 세 단계로 구분해서 사용하도록 하고 있다. <한겨레>는 “그러나 이날 경찰은 분사 살수와 곡사 살수의 단계를 거치지 않거나, 거쳐도 형식적으로만 거치고 초반부터 직사 살수를 했다는 증언들이 나온다”며 “지침을 보면 ‘직사 살수를 할 때에는 안전을 고려해 가슴 이하 부위를 겨냥’하도록 규정하고 있으나, 당시 동영상을 보면 경찰을 백씨의 머리 쪽에 겨냥해 물대포를 쐈고, 쓰러진 뒤에도 상반신에 물대포를 쐈다”고 전했다. 또 “살수차 사용 중 부상자가 발생한 경우, 즉시 구호조치하고 지휘관에게 보고하도록 규정하고 있음에도 경찰은 오히려 쓰러진 사람을 구하러 오는 사람들을 향해서도 물대포를 쏴 결과적으로 구호조치를 방해하기도 했다”고 <한겨레>는 전했다.

집회가 과열된 데 대한 책임과 관련해서도 이날 <경향신문>은 31면 사설에서 이렇게 지적했다. “밧줄을 차량 바퀴에 묶어 차벽을 무너뜨리려는 시도 등이 있었던 건 사실이다. 그렇다면 왜 이런 일이 초래됐는지 따져봐야 한다. 헌법재판소는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뒤 경찰이 서울광장 주변에 차벽을 세운 데 대해 위헌 결정을 내린 바 있다. 헌재는 차벽 설치는 ‘급박하고 명백하며 중대한 위험’이 있는 경우에 한하며, 이런 위험이 있더라도 불법‧폭력 집회 참여 의사가 없는 일반시민 통행까지 제한할 수는 없다고 밝혔다. 이번에 경찰은 행진 시작 전부터 차벽을 설치했다. ‘급박성’의 요건에 부합하지 않는 이유다. 설사 이후에 명백‧중대한 위험이 발생했다 해도, 집회와 무관한 시민의 통행까지 막은 만큼 차벽 설치는 위헌이다. 헌법을 준수해야 할 공권력이 오히려 위헌적 행태를 자행하는 데 사태의 근본 원인이 있다.”

경찰의 문제는 짚지 않다 보니 폭압적 진압으로 중태에 빠진 농민은 <조선일보>의 안중에 없었다. 그저 경찰 피해를 강조하는 과정에서 “전국농민회총연맹 소속 백모씨가 시위 과정에서 경찰의 물대포에 맞아 넘어지면서 중상을 입어 서울대병원에서 수술을 받았다”, 경찰이 최루액과 물대포를 쏘며 시위대의 불법 행진을 저지하는 과정에서 경찰 113명과 시위대 29명이 부상을 입었고, 농민 한 명이 중상을 입었다“고 전한 게 전부다. 반면 파리 테러에 대해선 ”희생자의 명복을 빌며 부상자의 빠른 회복을 기원한다“(11월 16일 35면 사설 ‘무고한 시민들 희생된 파리 테러, 결코 남의 일 아니다’)고 밝혔다. 2015년 11월 16일 <조선일보>의 보도는 이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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