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리텔’ 심의하는 방심위원을 위한 안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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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절한 네티즌의 MBC ‘마이 리틀 텔레비전’ 가이드]

▲ MBC 예능 프로그램 <마이 리틀 텔레비전> ⓒ화면캡처

[예시] “ㅋㅋㅋ~ 핵꿀잼 갓은결, 완전 쩐다!”
[해석] “크크크~ 매우 많이 재미있는 신과 같은(혹은 대단한) 이은결, 완전 잘한다!”
[단어]
-ㅋㅋㅋ: “큭큭” 웃는 소리를 자음인 ‘ㅋ’만으로 표현한 것
-핵꿀잼: ‘꿀잼’은 꿀 같은 재미로 ‘재미있다’는 뜻이고, ‘핵꿀잼’이라고 하면 매우 많이 재밌다는 뜻.  노잼: No(아니다)+재미, 재미없다는 뜻
-갓은결: 갓+사람이름, 갓(God)은 극찬의 의미
-쩐다: 잘한다, 능통하다 등을 뜻하는 신조어

#안내서에_대한_안내

방송통신심의위원회 위원님들. 각종 인터넷 조어와 해시태그(#, 사용자가 원하는 주제의 검색을 편리하게 돕는 기능), CG가 난무하는 하이브리드 예능 MBC <마이 리틀 텔레비전>(이하 <마리텔>) 심의하느라 힘드시죠? 그래서 친절한 네티즌의 <마리텔> 가이드 ‘<마리텔>을 심의하는 방심위원님들을 위한 안내서’를 준비해봤습니다.

▲ MBC 예능 프로그램 <마이 리틀 텔레비전> ⓒ화면캡처

#마리텔을_심의하는_방심위원님을_위한_안내서

지난 4일 <마리텔>은 방송심의에 관한 규정 중 방송언어 관련 조항 위반을 이유로 '제작진 의견진술' 절차에 들어갔습니다. 현행 방송심의규정 제 51조(방송언어)는 “방송은 바른말을 사용하여 국민의 바른 언어생활에 이바지하여야 한다”(제1항)와 “방송은 바른 언어생활을 해치는 억양, 어조, 비속어, 은어, 저속한 조어 및 욕설 등을 사용하여서는 아니된다. 다만, 프로그램의 특성이나 내용 전개 또는 구성상 불가피한 경우에는 예외로 한다”(제3항)고 명시하고 있습니다.

방심위원들은 이 조항에 대한 위반 여부를 따지기 위해 <마리텔> 제작진을 출석시켜 해명을 들었습니다. 통상 '제작진 의견진술'은 중징계를 앞두고 진행되는만큼 <마리텔> 역시 예외는 아닐 것으로 예상됩니다. 의견진술이 진행된 당시 방송심의소위원회에서 권고 2인, 주의 1인, 경고 2인 의견이 나온 점을 감안하면 <마리텔>에 ‘중징계’가 예고되는 상황입니다. 최종 판단은 오는 19일 전체회의에서 내려지겠지만요.

그러나 방송소위에서는 간과한 부분이 있다고 판단됩니다. 앞서 밝힌대로 심의규정 제51조 제3항 중 “다만, 프로그램의 특성이나 내용 전개 또는 구성상 불가피한 경우에는 예외로 한다”라는 예외 조항에 대해서는 염두에 두지 않고 심의가 진행되었습니다. 그래서 방심위원들께 낯설고도 난해한 <마리텔>이 과연 어떤 프로그램인지 안내드리고자 합니다.

#올드의_끝에_있는_지상파TV

#인터넷_CG_그리고_모든 것

<마리텔>은 “인터넷과 지상파의 콜라보레이션”이라는 기획의도 아래 인터넷 생방송과 지상파 TV라는 두 가지 플랫폼을 통해 방송되고 있는 ‘하이브리드 예능’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알아듣기 힘든 조어가 난무하고 이른바 ‘약빤 CG’(약을 먹고 만든 것만큼 무척 잘 만들었다는 의미의 인터넷 용어)로 불리는 아는 사람만 알고, 웃는 사람만 웃을 수 있는 <마리텔>은 어떻게 성공하게 된 걸까요?

기획의도대로 <마리텔>은 두 개의 다른 전략을 가지고 사실상 두 차례 방송을 합니다. 바로 출연자들이 PD 겸 작가 겸 MC가 되어 1인 인터넷 방송을 진행하는 ‘인터넷 생방송’과 이를 편집한 ‘지상파 TV 방송’입니다. 이것은 곧 <마리텔>이라는 방송 프로그램이 갖는 고유의 포맷이자, 플랫폼 전쟁 속 ‘TV’라는 올드 플랫폼을 탈출한 ‘네티즌’이라 불리는 시청자를 다시 TV로 끌어들일 수 있었던 이유입니다.

그렇지만 <마리텔>은 5시간가량의 인터넷 생방송을 1시간 20분으로 단순히 ‘시간’을 압축하는 게 아닙니다. 인터넷의 형식을 지상파 방송에 맞게 편집하는 것은 물론, 그 안에 ‘인터넷’의 특성을 담아내는 ‘압축적 재미’를 추구하는 게 <마리텔> 지상파 방송입니다.

<마리텔>은 이 같은 포맷을 바탕으로 치열하게 전쟁 중인 두 개의 서로 다른 플랫폼, 그리고 두 개의 ‘전혀 다른’ 형식의 콜라보레이션으로 각각의 전략을 갖고 네티즌과 시청자에게 다가가고 있습니다.

생방송이 갖는 ‘리얼함’과 올드 미디어인 TV에서는 불가능한 ‘쌍방향 소통’이 갖는 재미를 뉴미디어인 인터넷 생방송을 통해 구현하고, 대신 TV에서는 TV만이 가진 장점인 ‘편집’의 묘미를 살린 겁니다. 지상파 본방송에서만 볼 수 있는 CG와 자막, 인터넷 생방송으로는 볼 수 없었던 현장의 뒷이야기, 생방송에서 오고간 ‘리얼’한 대화, 여기에 ‘덕후’(한 가지에 과도하게 열광하는 사람)로 알려진 PD의 센스까지 더해지며 10~30대 젊은 세대를 제대로 공략했습니다.

참고로 여기서 ‘리얼’한 대화라는 건 네티즌에게 친숙한 ‘1인 인터넷 방송’ 형식에 네티즌들이 가장 잘 이해하고 잘 사용하는 조어와 줄임말이 사용된 대화입니다. 인터넷이라는 공간에서 10~30세대가 향유하고 있는 뉴미디어 문화이고, 이 가운데 거르고 걸러 ‘자막’이라는 형태로 담아내는 겁니다. 방송 중간 상황에 맞춰 출연진과 특정 화면에 ‘드립’(애드리브) 넘치는 내용이 담긴 CG는 자막을 조합하는 방식으로 말입니다.

▲ MBC 예능 프로그램 <마이 리틀 텔레비전> ⓒ화면캡처

#실전_인터넷용어_살펴보기

그렇다면 <마리텔>에서는 물론이고 요즘 젊은 세대들이 인터넷이나 SNS(소셜네트워크서비스)에서 자주 사용하는 조어에는 어떤 것들이 있을까요? 다음 신어들은 국립국어원에서 발간한 '2014년 신어'를 참고했습니다.

[ㄱ]
고급지다: 高級지다. 고급스러운 멋이 있다.(2013년 11월 신어)
광삭: 光削. 빛의 속도와 같이 매우 빠르게 삭제함.(2014년 6월 신어)
극혐오하다: 極嫌惡하다. 아주 싫어하고 미워하다.(2013년 11월 신어) 줄여서 ‘극혐하다’로 표현할 수도 있다.

[ㄷ]
덕밍아웃: 오타쿠(덕후)+coming-out. 한 분야에 지나치게 심취하는 사람임을 공개적으로 밝히는 일.(2013년 12월 신어)
두둠칫: 춤추면서 박자에 맞추어 몸을 가볍게 움직이는 모양.(2013년 8월 신어)

[ㅂ]
베댓: best+댓글. 다른 사람의 추천을 많이 받은 댓글.(2013년 11월 신어)
비글미: beagle(척추동물 포유강 식육목 개과)+美. 산만하며 심한 장난을 잘 치는 사람이 풍기는 아름다움.(2014년 2월 신어)

▲ MBC 예능 프로그램 <마이 리틀 텔레비전> ⓒ화면캡처

[ㅅ]
소오름: 매우 춥거나 무섭거나 징그러울 때 살갗이 오그라들며 겉에 좁쌀 같은 것이 두툴두툴하게 돋는 것.(2013년 9월 신어)
심쿵: 心+쿵. 심장이 쿵할 정도로 놀라움.(2014년 4월 신어)
심쿵주의보: 心쿵注意報. 심장이 쿵할 정도로 놀라운 일이 있을 것에 대하여 미리 주의를 주는 일.(2014년 5월 신어)

[ㅇ]
여사친: 女사親. ‘여자 사람 친구’를 줄여 이르는 말. 연인 관계가 아닌 친구 사이로 지내는 여자를 이른다.(2014년 4월 신어)
예스잼: yes+재미. 재미가 있음.(2013년 8월 신어) ↔ 노잼(no+재미)
인생짤: 人生짤. 그 사람의 인생에 한 번 있을까 말까 할 정도로 잘 나온 사진.(2013년 11월 신어)
읽씹: 문자 메시지를 읽고 나서 답장을 하지 않는 행위.(2014년 1월 신어)

[ㅈ]
저퀄: 低quality. 질이나 수준이 낮음.(2013년 9월 신어) ↔ 고퀄(高quality)
찍먹파: 찍먹派. 탕수육을 먹을 때에 튀긴 소고기나 돼지고기를 소스에 찍어 먹는 사람의 집단.(2013년 11월 신어)

[ㅊ]
취향 저격: 趣向狙擊. 상대방의 취향을 잘 알아 그에 알맞게 행동함.(2013년 8월 신어)

[ㅋ]
케미갑: chemistry甲. 매우 잘 어울림.(2013년 7월 신어)

[ㅍ]
피꺼솟: ‘피가 거꾸로 솟는다’를 줄여 이르는 말. 매우 화가 났을 때 쓰는 말이다.(2014년 1월 신어)

[ㅎ]
핵꿀잼: 核꿀잼. 매우 많이 재미있음.(2014년 6월 신어)
허니잼: honey잼. 아주 즐거운 기분이나 느낌.(2013년 12월 신어)
현웃: 現웃. ‘현실 웃음’을 줄여 이르는 말. ‘ㅋㅋ’ 따위를 타자로 쳐서 웃음을 표현하는 것이 아니라 실제 웃음을 가리킬 때 쓰인다.(2014년 4월 신어)
후방주의: 後方注意. 컴퓨터로 무엇을 몰래 볼 때 뒤에 누가 있는지 조심함.(2014년 4월 신어)

▲ MBC 예능 프로그램 <마이 리틀 텔레비전> ⓒ화면캡처

#예능은_예능일뿐_오해하지_말자

네티즌과 시청자는 방심위의 중징계가 예고된 이후 밋밋해진 <마리텔>에 대한 안타까움을 감추지 못하고 있습니다. “방심위의 손길을 거친 후” “자막이 난도질당했다”는 이야기를 쏟아내고 있는데요. ‘핵꿀잼’은 ‘핵폭탄 같은 재미’로, ‘ㅋㅋㅋ’는 ‘크크크’로, ‘갓은결’은 ‘신과 같은 은결’로, ‘꿀잼각’은 ‘꿀 같은 재미가 예약된 각도’로, ‘약빤 방송’은 ‘약을 빻아서 드신 방송’ 등으로 쓰는 등 <마리텔>만이 보여줄 수 있는 재미가, 네티즌과의 ‘소통’이 사라졌기 때문입니다.

물론 방송, 그것도 지상파 방송이라면 바른 언어를 사용해야 합니다. 하지만 <마리텔>의 자막, CG 등은 모두 ‘인터넷’이라는 뉴미디어와 ‘TV’라는 올드미디어의 결합이라는, 다매체 시대에서 보여줄 수 있는 새로운 ‘포맷’ 그 자체이기 때문입니다.

일상 속에서 사소하게 벌어지는 일은 물론 사회의 부조리 등을 개그 프로그램답게 과장과 묘사, 풍자를 통해 웃음을 줬던 KBS <개그콘서트> 인기 코너 ‘청년백서’를 통해 “개그는 개그일 뿐 따라하지 말자!”라는 유행어가 인기를 끌었습니다. 해당 유행어는 “개그는 개그일 뿐 오해하지 말자!”라는 파생 유행어를 낳기도 했는데요.

방심위원님들, <마리텔>은 ‘예능’입니다. ‘핵꿀잼’ 등의 자막은 <마리텔>이 가진 ‘프로그램의 특성이나 내용 전개 또는 구성상 불가피한 경우’이고요. 또한 <마리텔>은 다매체 시대 지상파가 할 수 있는 일종의 실험이기도 합니다. 한국소비자브랜드위원회가 선정하는 2015 대한민국 올해의 브랜드 대상’ 특별상 부분에서 <마리텔>을 '올해의 TV 프로그램’을 시상한 것도, 아시아태평양방송연맹(ABU)이 2015 ABU상 TV예능 부문 최우수상으로 <마리텔>을 선정한 것도 모두 프로그램이 갖고 있는 창의성과 양방향 커뮤니케이션 등을 높이 평가한 결과입니다.

<마리텔>은 예능일 뿐이고, <마리텔>은 새로운 포맷의 예능 프로그램일 뿐입니다. 그리고…

#위원님들_저는_마리텔을_보고_웃었을_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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