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정’은 그렇게 이용될 가치가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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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클리포커스] 언론 공정성 앞세워 노조·협회 의견 개진 차단 유감

KBS 사장 후보자에 대해 국회가 처음으로 인사청문회를 진행한 지난 16일 조해진 새누리당 의원은 “공정방송”에 대한 의지를 드러내는 고대영 후보자에게 이렇게 물었다. “나머지 구성원들이 그렇게 안 하면 결과를 내기 어려운 게 아닌가.” 고대영 후보자의 ‘뜻’에 따라 KBS의 구성원들이 움직여주지 않는다면 고 후보자가 생각하는 “공정방송”을 실현하는 일은 어렵지 않겠냐는 우려로, 조 의원은 이를 해소할 수 있는 방안에 대한 ‘힌트’처럼 이런 말을 했다. “노조와 각종 협회 등 KBS 구성원들이 정치적으로, 이념적으로 여론이 나뉘어 있는 현안에 대해 성명을 발표하고 집단행동을 하는 일이 다반사다. 이런 활동을 하는 사람들이 자신들의 업(보도‧제작)에 있어 주관을 100% 배제하고 할 수 있을지, 어려울 것으로 본다.”

언론인들에게 눈을 감고 귀를 막고 입을 닫으라는 식의 주문들이 곳곳에서 이어지고 있다. 이런 주문들을 하는 쪽에서 내세우는 명분의 단어는 언제나 그럴 듯하다. 바로 ‘공정성’이다. 언론이 지켜야 할 당위의 가치를 품고 있는 단어로, 첨예하게 여론이 대립하고 있는 사회의 현안들에 대해 보도하고 문제를 짚어야 하는 언론인들이 이와 관련해 어떤 의견을 얘기할 경우 그들이 제작하는 프로그램 속 공정의 가치가 무너지거나, 무너진 듯 인식될 가능성이 크다는 우려다.

▲ 고대영 한국방송공사(KBS) 사장 후보자가 16일 서울 여의도 국회 미래창조과학방송통신위원회 회의실에서 열린 인사청문회에서 생각에 잠겨 있다. ⓒ뉴스1

이런 우려는 어떤 이들에게 특히 효과적으로 전달된다. 이날 인사청문회에서도 조 의원의 우려와 지적에 고대영 KBS 사장 후보자는 이런 대답을 내놨다. “개인이 개인의 이름으로 의견을 표시하는 건 헌법에서 보장하는 표현의 자유인만큼 상관없다. 하지만 KBS 이름을 붙이고 개인이나 특정집단의 의견을 밝히는 건 반대다. 대외 활동에 있어 그런 부분에 대해 보다 엄격할 필요가 있다.”

노조나 사내의 각종 직능 협회에서 기자회견과 성명 등을 통해 어떤 사안에 대해 의견을 밝히는 일 자체를 문제 삼는 발언이다. 국회에서 인사청문회를 진행하지만 후보자를 사장으로 임명할지 여부를 결정하는 권한은 대통령에게 있는 상황이라는 점을 감안할 때, 큰 이변이 없는 한 고 후보자는 사장에 취임할 것이다. 그리고 인사청문회 답변만 놓고 보면 ‘공정성’을 명분 삼아 노조와 협회를 단속해 사내의 언로(言路)를 차단하는 작업에 나설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 

노조와 협회 등에서 어떤 사안에 대해 의견을 밝히는 데 반대한다는 사장 후보자의 발언의 적절성 여부를 짚지 않아도, 이런 인식의 위험성을 지적할 수 있다. 고 후보자는 “개인이 개인의 이름으로 의견을 표시하는 건 헌법에서 보장하는 표현의 자유인만큼 상관없다”고 말했지만, 작금의 언론사들의 현실은 언론인이 개인 의견을 표현하는 걸 이미 충분히 제약하고 있기 때문이다.

한 사례를 보자. 국가기간뉴스통신사인 <연합뉴스> 회사 측은 오는 20일 인사위원회를 열어 지난 2일 언론노조에서 주도한 역사 교과서 국정화 반대 언론인 시국선언에 ‘연합뉴스’라는 이름으로 참여한 언론노조 연합뉴스지부의 김성진 지부장(이하 노조위원장)에 대한 징계 여부를 결정할 예정이다. 회사 측은 윤리헌장 위반을 사유로 들고 있다. 노조가 ‘연합뉴스’라는 이름으로 언론인 시국선언에 참여하면서 ‘직무와 관련해 판단의 공정성을 저해할 수 있는 행위를 하지 않는다’는 조항을 어겼다는 주장이다.

그런데 앞서 <연합뉴스> 회사 측은 지난 10월 28일 노조에 공문을 보내 언론노조 주도의 시국선언에 참여하는 구성원들에 대한 징계 방침을 밝혔다. 국가기간뉴스통신사 소속 기자가 시국선언에 참여하는 행위는 대외적으로 <연합뉴스>의 보도 객관성에 심각한 우려를 줄 수 있는 만큼, 시국선언에 참여하는 기자들에 대해선 사규에 따라 엄정 조치를 하겠다는 방침이었다. 이에 노조는 ‘연합뉴스’라는 이름으로 시국선언에 참여하기로 했다. 개별 기자들의 이름을 걸고 참여할 경우 무더기 징계 사태가 발생할 수 있는 상황이기에 취한 조치인 셈이다.

사회의 민감한 현안 등에 대해 고 후보자의 말처럼 “헌법에서 보장하고 있는 표현의 자유가 있는 ‘개인’의 이름으로” 의견을 표시하거나 하려 할 경우 회사의 명예, 즉 공정하다는 이미지를 훼손할 우려가 있다는 이유로 ‘제재’ 대상에 오를 수 있는 게 작금의 언론 현실인 것이다.

▲ 언론노조가 지난 14일 민중총궐기 대회에 앞서 서울 태평로 프레스센터 앞에서 진행한 사전결의대회에 등장한 ‘공영방송 국정화 반대’ 풍선들. ⓒ언론노조

사장의, 사장 후보자의, 여당에서 말하는 ‘공정성‘이 절대 가치는 아니다

노조와 협회에서 성명 등을 통해 의견을 밝히는 행위가 언론의 공정성을 훼손하거나 시청자‧독자로 하여금 공정하지 않다고 느끼게 할 수 있다는 우려 역시 과장됐다는 지적이다.

언론사는 내부의 취업규칙이나 윤리강령 등을 통해 공정성의 가치를 훼손하지 않도록 하는 내용과 함께 이를 위반할 경우 징계를 할 수 있도록 관련 규정을 마련하고 있다. 하지만 이는 보도‧제작 업무 수행과 관련한 부분으로 “기사 작성 등의 직무를 직접 수행하지 않는 노조와는 무관하다는 게 법적 자문 결과”(11월 12일, 언론노조 연합뉴스지부 성명)라는 설명이다.

더구나 언론사들은 기자와 PD가 자신의 정파성을 앞세운 프로그램으로 공정성의 가치를 훼손할 경우 공정방송위원회 등의 내부 장치를 통해 제어하도록 하고 있다. 이에 앞서 노조와 협회 소속의 언론인들이 노조와 협회에서 낸 의견에 따라 보도‧제작에 나선다는 명제를 완성하기 위해선 ‘관심법’ 수준의 주장을 내세우는 게 아니라 인과 관계를 증명하는 게 우선이다.

▲ 지난 4일 전국 10개 신문과 주간지 등에 게재된 역사교과서 국정화 반대 언론인 시국선언

노조와 협회의 의견 제시를 막아 공정방송을 구축하겠다는 주장 또한 문제다. 조해진 의원은 지난 16일 인사청문회에서 공정방송에 대한 의지를 드러내는 고대영 KBS 사장 후보자에게 “나머지 구성원들이 그렇게 안 하면 결과를 내기 어려운 게 아닌가”라고 말했다. 하지만 사장 후보자가 생각하는 ‘공정방송’의 상이 언론사 구성원들 간에, 그리고 사회적으로 최소한 합의된 것이라고 단정할 수 없다.   

사실 ‘공정성’이라는 개념은 하나로 정립된 상태가 아니다. “공정성을 구성하는 요소를 비롯해 공정성과 유사한 개념인 객관성, 불편부당성 등의 관계가 학자마다 다르기 때문”(이진로 영산대 교수, 11월 2일 한국정치평론학회 ‘방송공정성과 방송규제’ 토론회)이다.

이와 관련해 윤성옥 경기대 교수는 지난 2일 한국정치평론학회 토론회에서 “한국의 제도에 맞는 공정성을 논의할 필요가 있다”며 “방송‧언론이라는 공론장에서 누구나 얘기를 할 수 있고 의견을 들어 무엇이 사실이고 진실인지를 검증해 의견 차이를 좁혀 합의할 수 있도록 하는 게 중요하다”고 말했다. 누구나 자신의 생각을 얘기할 수 있도록 기회를 보장함으로써 방송법 제5조(방송의 공적책임) 2항에서 적고 있는 것처럼 갈등을 지양하고 화합에 이를 수 있도록 하는 역할을 수행해야 공정성을 담보할 수 있지 않겠냐는 의견이다.

물론 윤 교수의 이런 의견을 정답이라 단정할 순 없다. 하지만 저마다 다른 개념으로 생각하고 판단하는 공정성이 무엇인가에 대한 합의를 찾아가는 논의를 위해서라도 사장 후보자와 같은 특정인, 여당이라는 하나의 정치 집단이 생각하는 ‘공정’의 개념을 강요하며 노조와 협회의 입을 닫게 해선 안 될 일이다. 

오히려 스스로 더 많은 경계와 주의를 해야 하는 주체는 철저하게 정파의 이해에 따라 추천 혹은 선임되고, 그리하여 추천·임명권자의 이해에 복무한다는 의혹과 낳고 있는 언론사 지배구조의 윗선에 자리한 이들이다. 2007년 37위였던 한국의 언론자유지수가 2015년 현재 60위까지 떨어진 현실에 노조와 협회가 있는 건 아니지 않나. 공정은 그렇게 이용될 가치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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