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나’를 이야기하는가?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정현숙 PD의 나는?!]

직장 초년 시절 한참 영어를 배우던 때의 일이다. 영어 선생님으로부터 내가 받은 질문 중 하나! ‘우리는’ (we) 이라고 말할 때 마다 “우리가 누구니?” 라는 질문이었다. 그래서 생각해 본 적이 있다. 너무나 자연스럽게 ‘나’(I) 보다는 ‘우리’라는 주어가 나의 문장 속에 자리한 까닭은 무엇일까? 나를 내세우기 보다는 공동체 의식을 표현하려던 겸손함일 수도 있겠지만, 그냥 ‘우리’라는 말 속에 묻어가면 큰 탈 없이 무난할 것이라는 일종의 보호 기제가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 이후로 나는 외국 사람들과 대화할 때 ‘나’ 와 ‘우리’라는 주어 사이에서 가끔씩 망설이는 자신을 발견하곤 했다. 우리말로 대화할 때는 ‘우리’라는 표현을 대체로 사용하는 한편, 영어로 대화할 땐 ‘나’라는 주어를 쓰고자 의식적으로 노력했던 기억이 난다.

ⓒpixabay

어릴 적에 엄마가 가끔 걱정스레 말씀하신 적이 있다. “모난 돌이 정 맞는다”

아마도 딸내미가 괜스레 앞장서 ‘설치기보다는’ -그러면 구설수가 따르게 마련이라 생각하셨을 테니- 그저 적 없이 사랑받는 원만하고도 무난한 사람이 되기를 바라셨기 때문일 것이다. 그런데 나중에 알고 보니 외국 속담에도 “The nail that sticks out gets hammered down”이란 비슷한 표현이 있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사람 사는 세상에서는 그냥저냥 둥글둥글하게 살고자 하는 욕망이 있는 듯하다. 하지만 나의 고질병과도 같은 장난기가 나 스스로에게 되물었다. ‘과연 그것이 만고불변의 덕목인 것일까? 아니면 현대사회에서 그저 조용히 묻혀(?) 사는 것이 현명하다는 뜻일까?’ 한참을 고민하고, 또 한참을 살아온 지금에서야 배시시 웃으며 이 말에 “NO”라 말하고 싶다. 나는 어떤 모양이든 ‘나’일 수밖에 없으니까...

Think Big에서 Think Differently로의 진화?

보통의 성인들은 하루 평균 -크든 작든, 의식적이든 무의식적이든- 대략 3,500번 정도의 의사 결정 과정을 겪는다고 한다. 개인적으로 하루에 내려야 하는 결정의 숫자를 진지하게 계산해본 적은 없어서 “어머나 그렇게 많이?” 하며 읽어 내려간 한 심리학 연구보고서에서 다음과 같은 이야기를 접하게 되었다. 인간의 두뇌가 어떤 결정을 내릴 때는 두 가지의 네트워크가 상호작용한다고 한다. 어떤 선택을 했을 때 얻게 될 가치와 잃게 될 것을 - 리스크 대비 보상을 고려하는 - 바탕으로 기회비용을 계산하는 네트워크, 그리고 우리가 어떻게 행동할 지를 궁극적으로 가이드하는 네트워크가 서로 작용한다는 것이었다. 나는 이 부분이야말로 생활 철학의 문제가 대두되는 지점이라 생각한다.

아침에 일어나서, 나는 커피부터 마신다. 아마도 과거의 어느 시점에서 물, 차, 커피와 같은 선택지들 중 취사선택을 한 결과이겠지만, 이제는 중간의 생각하는 과정을 생략하고 습관처럼, 반 무의식적으로 커피 잔에 손이 간다. 이렇게 아무런 생각 없이 아침에 커피를 마시는 것처럼, EBS에서 일하는 것이 너무 익숙해져서 프로그램에 대한 새로운 생각 없이 습관적으로 작업을 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돌이켜보는 것이 지나친 자성인 것일까? 그런 생각에 이른 나는, 초심으로 돌아가 제작일기를 써볼 겸 PD라는 직종의 결정 과정을 세어 보게 되었다.

나에게 있어 PD라는 직업은 –어느 분야의 창작자나 마찬가지겠지만- 매 순간 결정의 기로에 서 있는, 고통과 희열의 냉탕과 온탕을 수없이 오가는, ‘반(半) 미치광이’와도 같다. 어떤 작품을 하면서 스스로 결정할 수 있는 권한이 있어 기쁜 만큼, 그 이면에는 끊임없는 결정들이 주는 버거움이 존재한다. 아이템을 찾아 구성을 하고, 그 작품을 만들기 위해 팀을 꾸리고, 최종 결과물이 나오기까지, PD는 참으로 많은 결정들의 과정을 거친다. “어떤 작가와 일해야 할까? 출연진은 어떻게? 왜 이런 그림을 만들어야 하지? 어떻게 편집하지? 음악은 어떤 느낌이 좋을까? 방송시간은 언제가 좋을까? 어머나, 만드는 걸로 끝이 아니구나- 홍보는 또 어떻게 하지?” 등, 결정하고 진행할 것들이 꼬리에 꼬리를 문다. 혼자서 끌고 가야 할 짐들이 개인 기업가 수준으로 머릿속 짐수레에 한가득 넘쳐흐른다. 이 정도 되면 하루 3,500번 아니라 1만번 정도 결정한다고 해도 될 것 같다.

ⓒpixabay

이런 과정은 내가 PD 이전에 한 인간으로서 어떠한 인생철학을 가지고 있는지와 절대 무관하지 않다. 어떤 PD는 원대한 꿈을 꾸며 한 방에 큰 임팩트를 남기는 -Think Big 스타일의?- 작업을 도모할 것이고, 또 어떤 PD는 남들과 다른 시각에서 자기만의 개성이 살아있는 -Think Differently- 작품 영역을 개척하고자 고군분투하고 있을 것이다. (물론 작품보다 직위가 더 중요한 분들도 있겠지만!) 각자에게 어울리는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고 있겠지만, 이왕이면 한 곳을 - 소위 핫한 트렌드든 직위든- 향해 달리는 것보다는 21세기의 창작자답게 ‘창의적’인 시각을 지향해보면 어떨까? 같은 현상이라도 새롭게 해석할 수 있도록 ‘Think Differently’ 해본다면 진정한 ‘나의 것’에 한 걸음 더 가까워질 수 있을 테니까!

여기에서 나는, 결정할 것이 많고 힘들기도 하지만 소위 ‘권력’을 가진 것으로 보이기도 하는 ‘미디어 창작자들’이 콘텐츠를 창작할 때, 어떤 가치를 바탕으로 결정을 내리고 ‘결과물’을 생산해내야 하는지에 대한 지극히 원초적인 질문을 던지고자 한다. 제작 일선을 떠난 지 한참 지나고서 다시 돌아와 ‘어린 친구들’을 위한 콘텐츠를 만들다 보니 다시 초심으로 돌아가 ‘나는 무엇 때문에 이 프로그램을 만들고 있는 걸까?’라는 원론적인 고민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우리 꿈나무에게 "나는 어떤 이야기를 들려줘야 하나?"와 같은 생각들이 마구 스쳐가지만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우리’가 튼튼해야 ‘네가’ 바르게 성장할 수 있다고 속삭여주고 싶다는 점이다. (묻혀갈 패거리로서의 ‘우리’가 아닌 튼튼하고 건강한 나눔의 커뮤니티!) "모두가, 심리학자 아들러가 말한 ‘미움 받을 용기를 가진 자’가 되고자 하면서 자신이 속한 사회의 다른 일원들에 대한 배려를 키워갈 수 있다면 무엇을 더 바랄까?"(꿈같은 일일까?) 등 이런 저런 생각에 머릿속이 아득하다. 나의 이런 몽상들을 물끄러미 스캔하면서, 오늘 밤 또 ‘내일의 편집은 어떻게 해야 재미있을지’를 고민하며 잠을 청한다.

많이 뛰어다니는 아줌마(?) PD. EBS 정현숙 PD는 1987년 10월 입사, 어린이 콘텐츠 개발과 제작에 집중했다. 2004년 ABU 어린이 분과 의장을 맡은 이래 어린이대상 국제 공동제작에 주력하고 있으며, 한국 교육미디어의 글로벌 진출이 주관심 대상이다. 3년 외도(?)로 EIDF 국장을 하기도 했다. 해외 활동으로는 ABU/AIBD에서 3년간 파견근무를 했고, 2002년 이래 재팬프라이즈 심사위원으로 많이(?) 불러다녔고, 프리쥬네스 아시아 홍보대사를 맡고 있다.     

[‘정현숙 PD의 나는?!’ 다른 글 보기]

저작권자 © PD저널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
모바일버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