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공하는 관찰형 예능이 되기 위한 조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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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교석의 티적티적]

KBS 2TV <인간의 조건-도시농부>가 “김장 끝!”이란 환호 속에 종영했다. 지난 5월부터 옥상 텃밭을 가꾸며 영근 구슬땀을 나눈 멤버들은 농사의 대미를 지인들을 초대해 직접 재배한 채소로 함께 김장김치를 담그며 자축했다. 그러나 김치를 나누는 훈훈함은 초겨울밤의 옥상 파티의 쌀쌀함을 녹이진 못했다. 단지 계절 탓만은 아니다. “또 만나요”라며 박수를 쳤지만 3번째 시리즈만에 <인간의 조건> 자체가 당분간 혹은 영원히 막을 내리게 됐음을 모두가 알고 있었다.

<인간의 조건> 시리즈는 3가지 측면에서 특별한 의미가 있었다. 첫 번째는 관찰형 예능 시대의 물꼬를 튼 프로토 타입이라는 점이다. 일상의 공감대와 라이프스타일에 초점을 맞춘 새로운 형태의 예능을 선보이며 예능 패러다임을 견인했다. 두 번째는 <개그콘서트> 멤버들이 예능 선수로 활약할 수 있도록 기회를 제공했다는 점이다. 예능 무대에서 점점 고립되고 있는 전문 희극인들에게 <개콘>내의 캐릭터와 관계도를 예능으로 그대로 가져와 편하게 도전할 수 있는 발판을 마련해줬다. 세 번째는 이러한 혁신적인 발상과 기획을 KBS 예능국이 했다는 점이다.

▲ KBS <인간의 조건 3-도시농부> ⓒKBS

그러나 프로토 타입이었던 만큼 관찰형 예능의 약점인 지속가능성이란 면에서 좋은 승부를 보지 못했다. 시즌2는 시즌1의 성공요인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채 오히려 예능적 요소를 강화하는 자충수를 두었다. 인지도가 떨어지는 멤버들로 꾸린 <1박2일> 마이너 버전에 가까웠다.

새롭게 단장한 <인간의 조건3>은 이러한 문제점들을 충분히 연구한 듯했다. 예능 선수 윤종신을 중심으로 삼고 시즌1의 <개콘> 멤버들을 다시 섭외해 정통성을 확보했다. 동시에 대세인 셰프들을 캐스팅해 시즌2의 어려움을 극복하고자 했다. 매번 특별한 미션을 내세우다보니 억지와 반복의 굴레에 빠졌던 시즌1의 어려움은 농사라는 장기 협업 미션으로 넘어서고자 했다. 그리고 무엇보다 관찰형 예능에 어울리는 콘셉트가 있다. 도시농부라는 라이프스타일의 제안은 삶의 새로운 방향과 가치를 추구하는 요즘 대중문화 트렌드에 맞으면서 <인간의 조건> 시리즈의 정체성에도 부합했다. 트렌드, 먹방과 쿡방, 그리고 일상에 필요한 정보까지 히트 예능의 조건들을 두루 갖춘 기획이었다.

하지만 <인간의 조건3>은 관찰형 예능의 바탕이라는 철학과 방향성을 간과했다. 도시농부와 옥상 텃밭을 시청자들에게 소개하면서 어떤 정서를 전달하고, 농사일의 즐거움을 시청자들과 어떻게 공유할지 아무것도 심어놓은 게 없었다. 도시농업의 당위를 떠나 출연자와 제작진 스스로 농사를 접하는 철학이 없다보니 진정성의 부재와 볼거리의 한계를 가져왔다. 방송 분량을 채우기 위해 도시농업이나 옥상텃밭과는 큰 관계가 없는 촬영분이 예능이란 이름으로 나날이 커져갔다. 농사로 해결하지 못한 예능의 빈 공간은 (급하게 불러낸 듯한) <개콘> 멤버들을 비롯한 지인들의 출연, 먹방, 이벤트가 차지했다. 정서와 가치, 취향으로 재미를 우려내야 하는 게 <인간의 조건>이 시작한 관찰형 예능인데 포장지만 그러했을 뿐 내용은 기존 예능의 뻔하고 손쉬운 방식으로 메우려 했다.

▲ KBS <인간의 조건 3-도시농부> ⓒKBS

그러다보니 ‘농사’와 관련된 모든 면에서 시청자들의 공감을 자아내지도 매료시키지 못했다. 시청자들도 보고 도전해볼 마음이 들도록 식물을 재배하는 즐거움을 나누고, 공부와 경험을 통해 정보를 시청자들에게 전달해야 한다. 옥상 텃밭이 실제 그들의 ‘삶’의 일부로 받아들여져야 하는데 방송 촬영 때만 ‘체험’하는 인상을 지울 수 없었다. 옥상 텃밭은 삶의 공간이 아닌 촬영장에 머물면서 멤버들이 실제 농장 식구가 된 듯한 가족적인 관계망 또한 형성되지 않았다. 정서적 유대와 밀착이란 관찰형 예능의 기본을 지키지 못한 것이다.

관찰형 예능 시대 이후, 쿡방이 잘 되는 건 요리를 살림이 아닌 문화 행위로 격상시킨 동시에 얻기 힘든 정보와 레시피를 시청자들에게 손쉽게 안겨주기 때문이다. 그런데 <인간의 조건3>에는 시청자가 얻어갈 것이 없었다. 함께 뭔가 해나가는 지켜볼만한 패밀리도 없었다. 그 결과 도시농부가 아니라 연예인이 옥상 텃밭을 체험하는 프로그램이 되어 버렸다. 콘셉트만 있고 철학이 없는 관찰형 예능의 대표적인 실패 사례로 남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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