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식만 습득하는 시대는 끝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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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D의 세상읽기] KBS '명견만리-교육의 위기'

어떻게 생각의 힘을 키울 것인가?

또다시 시험의 계절이 돌아왔다. 58만여 명의 수험생들이 올해도 어김없이 2016학년도 수학능력시험(이하 수능)을 치렀다. 한국의 학생들은 초등학교에 입학해 고등학교에 이르기까지 이 수능이라는 종착지를 향해 달린다. 고등학교까지 1인당 양육비가 2억 3000여 만 원에 이르고, 아이들의 일과는 학교, 학원 수업 외에 다른 것이 거의 없으며 많은 시간을 공부에 투자하고 있다. 이렇게 많은 돈과 시간을 들여서 학생들이 얻는 것은 무엇일까. 여기서 <명견만리> ‘교육의 미래 2부작’의 기획은 시작되었다. 1부 ‘대학은 사라질 것인가’는 최진영 PD가 맡았고, 2부 ‘어떻게 생각의 힘을 키울 것인가’을 맡아 취재했다.

▲ '명견만리. 제작진이 한국과 핀란드 청소년의 일과를 추적했더니 주당 학습 시간을 비교했더니 2.5배 가량 차이가 났다. ⓒKBS

학생들이 많은 시간과 돈을 들여 의미 있는 것을 얻어낼 수 있다면 어느 정도는 감내할만한 것이라고 말할 수 있을 텐데 현실은 그렇지 못했다. 12년 교육의 종착지인 수능은 학생들에게 단순 문제풀이 기술만을 요구하고 있었다. 짧은 시간 안에 많은 문제를 풀어야 해서 자기 생각을 지우고, 정해진 답을 찾는 것이 유리할 수밖에 없었다. 취재과정에서 만난 2015학년도 수능만점자 학생 한 명도 "오로지 교육과정이나 교육과정평가원이 정해주는 길만 따라가야 하고, 그들이 요구하는 정답만 찾아가야 한다고 느꼈다"고 토로하기도 했다. 이런 상황에서 우리 아이들에게 정말로 필요한 교육은 무엇인지, 지금 그러한 교육을 받고 있는지 함께 생각해보는 장을 마련하고 싶었다. EBS 영어교재 해석본을 암기해 원어민도 잘 풀지 못하는 영어 문제를 풀고, 원작자도 맞히지 못하는 시 문제를 척척 풀어내는 것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다양한 생각을 풀어내고 발전시킬 수 있는 생각하는 힘을 기르는 교육에 대해 같이 고민하고 싶었다.

교육은 얽혀있는 이해관계자가 많은 영역이다. 또 입시제도와 연결되어 있어 한 부분만을 논하기에는 한계가 명확하다. 그래서 대안을 제시하는 것이 조심스러웠다. 교육 강국의 사례를 우리와 단순 비교함으로써 그들의 제도가 갖는 장점이 한국 교육의 문제 전체를 해결할 수 있다는 식으로 보여줄 수는 없었다. 그것은 또 다른 정답을 찾겠다는 환상이기 때문이다. 교육 문제도 하나의 답이 아니라 여러 답이 있을 수 있으며, 우리에게 맞는 방식을 찾아 나갈 수 있도록 여러 참조 점을 제시하고 싶었다. 그런 면에서 방송에서 제시한 핀란드와 프랑스의 사례는 서로 다른 부분에서 우리에게 생각할 거리를 던져주었다고 본다.

▲ 프랑스의 대입시험 바칼로레아의 시험 문제를 '명견만리' 프레젠테이터 박형주 아주대 석좌교수가 보고 있다. ⓒKBS

방송시간 관계상 모두 담지 못했지만 프랑스와 핀란드, 두 나라의 교육은 전통 대 개혁이란 단어로 정리해볼 수 있다. 한국의 대입시험에 해당하는 프랑스의 바칼로레아는 그동안 몇 차례 수능의 대안으로 언급됐다. 하지만 서술형이라는 형태 자체에만 초점을 맞춰왔던 것 같다. 하지만 그 바탕에는 생각하는 힘을 기르는 프랑스 교육의 정신이 흐르고 있다. 그 정점에 바칼로레아 철학시험이 있다. 철학시험은 대입시험 공통과목으로 프랑스 특유의 것이다. '인간은 욕망의 지배를 받는가', '정치에 관심을 두지 않고도 도덕적으로 행동할 수 있는가'와 같이 정답이 없는 문제를 학생들은 풀어야 한다. 정해진 답이 없기 때문에 학생들은 스스로 생각을 여러 단계를 밟아 설득력 있게 펼쳐 나가야 한다. 비단 이런 과정은 철학뿐 아니라 수학을 포함한 과목 전반을 통해 훈련하게 된다. 스스로 생각하는 힘을 기르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200년이 넘는 시간 이어온 바칼로레아를 통해 생각하는 힘을 펼쳐 보이게 된다. 그야말로 전통과 역사성에서 기인한 교육의 힘이라 하겠다.

반면, 핀란드는 시대의 변화에 따라 과목 간의 벽을 허무는 융합교육을 도입함으로써 개혁을 서슴지 않는다. 이미 교육 강국으로 손꼽히는 핀란드지만 새로운 시대에 아이들에게 필요한 능력을 길러주기 위해 강력한 개혁을 하고 있다. '바다에 유조선이 좌초돼 기름이 유출된 상황을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와 같이 실생활과 관련된 주제를 주고, 생물, 수학, 역사 등 여러 과목을 연계해 학생들의 흥미를 높일 뿐 아니라 모르는 것이 있으면 학생 스스로 더 찾아 공부하게끔 한다. 학생들이 스스로 학습해야 하는 이유가 생기는 것이다.

전통과 개혁으로 대변되는 프랑스와 핀란드. 이 두 나라의 교육에는 공통점이 있다. 오랜 시간을 거친 사회적 합의가 밑바탕에 자리하고 있다는 것이다. 프랑스에서는 바칼로레아를 치르기 위해 한 해 1조원이 넘을 정도로 많은 돈을 투입한다. 하지만 국민의 79%는 바칼로레아를 없애서는 안 된다고 답한다. 이렇듯 생각의 힘을 기르는 교육에 대한 사회적 합의가 있었기에 200년이 넘는 시간 동안 바칼로레아를 유지해올 수 있었다. 핀란드도 마찬가지다. 1960년대 교육개혁에 대한 요구로 큰 틀을 마련한 핀란드는 40여 년 동안 사회적 합의를 통해 그 틀을 수정·보완해왔다. 그 결과 세계 최정상의 교육시스템을 갖출 수 있었다. 그리고 내년부터 전국에 의무화될 융합교육도 그 큰 틀 안에서 새 시대에 필요한 교육이 무엇인지 합의한 결과로 볼 수 있다.

▲ 수십년 동안 변하지 않는 교실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KBS

단순히 지식을 습득하는 시대는 끝났다. 지식의 양보다는 창의적인 능력과 생각의 발전이 더욱 중요해지는 시대가 이미 우리 눈앞에 와 있다. 지금과 같이 문제풀이 기술, 줄 세우기식 순위 경쟁에 매몰된 우리 교육은 시대의 흐름과 맞지 않는다. 교육은 해당 국가의 국민이 할 수 있는 최고 수준의 사회적 합의다. 당연히 오랜 시간이 걸릴 것이다. 하지만 지금부터라도 새 시대에 맞는 새로운 교육 프레임이 무엇인지 함께 고민하고 결과물을 만들어가야 할 것이다. 그것이 후세대를 위한 어른 세대의 당연한 책무이기 때문이다. <명견만리> ‘교육의 미래 2편-어떻게 생각의 힘을 기를 것인가'의 취재물들이 새로운 교육이라는 최고 수준의 사회적 합의를 만들기 위한 참조 점이 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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