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말리아 해적을 만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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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말리아 해적을 만나다
[강윤기의 시시콜콜 취재노트 ④] '추적60분-소말리아 해적'편 두번째 이야기
  • 강윤기 KBS PD
  • 승인 2015.12.14 15: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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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미니호 한국인 선원들을 납치한 소말리아 해적을 직접 취재해 방송한 KBS '추적60분-저희를 잊지 마세요' ⓒKBS

지난 글에서 소말리아 해적에게 500일 넘게 억류되었던 제미니호 한국인 선원들 이야기를 다루었다. 특히 정부의 ‘엠바고’에도 불구하고 불방 2주 만에 방송이 되기까지 어떤 우여곡절들이 있었는지 기억을 더듬어 보았다. 이번 글에서는 소말리아 해적, 그들을 만나 인터뷰까지 했던 과정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고자 한다. 해적들에 대해서 잘 알고 있고 국제분쟁 문제를 많이 다뤄본 PD 선후배들도 계시기에 글을 쓰기가 조심스럽지만, 이 글을 읽는 분들에게 내 경험이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면 좋겠다.

나는 2012년 7월, 제미니호 사건을 취재하기 위해서 케냐에서 열흘 정도 머물렀다. 그곳에서 해적 전문가와 현지 언론인, 그리고 소말리아 정치인들을 만나 취재했는데 취재가 끝날 무렵에는 우리 선원들을 억류하고 있는 해적의 조직원 2명을 만날 수 있었다. 케냐 출장의 하이라이트는 역시나 해적을 직접 만난 것이었다. 처음 출장을 준비할 때에만 해도 설마 해적을 만날 수 있으리라고는 상상하지 못했다. 그래도 사람 일은 모르지 않는가. ‘프로그램의 완성도를 높이기 위해서는 해적들을 만나서 이야기를 들어보면 좋을 텐데...’ 혹시나 하는 마음에 해적을 만나면 어떻게 행동할지 그리고 무슨 질문을 할지 꼼꼼하게 준비했다. 일어날 가능성이 있는 각각의 상황에 대한 행동 ‘가이드라인’도 만들어 보았다. 해적을 만날 때뿐만 아니라 분쟁지역이나 재난지역 취재 등 PD가 이전에 전혀 경험해 보지 못한 상황을 취재할 경우에는 스스로 ‘가이드라인’을 만들어 가는 것이 큰 도움이 되는 것 같다.

그런데 이런 가이드라인을 혼자 만들 수는 없다. 상상력으로 만들어지는 게 아니기 때문이다. 그래서 가장 중요한 것은 사전조사라고 생각한다. 최근의 해적 동향을 알아보기 위해서 함께 프로그램을 제작한 후배와 해외 자료와 외신 보도 등을 검색해 보았다. 그리고 아프리카 현지에서 일하고 있는 외국 언론사들의 특파원들에게도 꽤 많은 정보를 얻어냈다. 이렇게 며칠을 조사해보니 소말리아 해적들의 최근 동향이 어느 정도 파악되었다. 그중 가장 기억에 남는 건 후배 PD가 찾아준 자료였는데 소말리아 해적들에게 억류 중인 언론인들에 대한 자료였다. 해적을 취재하다가 해적에게 붙잡히다니…. 당시 서양 언론인 2~3명 정도가 해적에게 붙잡혀 있었다. 그런데 자세히 보니 그들은 모두 사전 협의 없이 소말리아 해적들의 본거지를 직접 찾아가 취재활동을 벌이다 억류된 케이스였다. 이 말은 곧 소말리아에 들어가지 않는다면 해적들에게 억류될 가능성은 거의 없다는 뜻이기도 했다. 제일 중요한 가이드라인이 생겼다. 해적을 만나게 되더라도 우리가 머무는 케냐에서 만나야 한다.

소말리아 해적 취재를 직접 해본 한국의 PD들에게도 자문을 구했다. 한국에서는 2~3명 정도의 극소수 PD가 소말리아 해적을 직접 취재한 경험을 가지고 있었다. 이들에게는 전화 통화나 이메일 등을 통해서 조언을 받을 수 있었다. 해외 사례를 조사할 때보다 더 구체적이고 현실적인 충고를 들을 수 있었다. 특히 안전에 대한 많은 노하우들을 전수했다. 결론은 비슷했다. 조심만 한다면 케냐에서 소말리아 해적들을 만나는 것이 크게 위험한 것은 아니라는 것이었다.

케냐에 도착하고 3일쯤 지났을 때, 현지인 코디네이터가 급히 나를 찾았다. 해적들과 끈이 닿아있는 브로커로부터 연락이 왔는데 해적들이 나를 만나겠다는 것이었다. 소말리아와 국경이 맞닿아 있는 케냐에는 해적들의 행동대원들이 적지 않게 활동 중이었고 자금을 관리하는 조직원들은 소말리아인 정착촌을 근거지로 사업까지 벌이고 있었다. 그러다 보니 해적 사정을 잘 아는 소위 브로커도 많이 있었다. 한국에서 취재진이 왔다는 소식이 그 네트워크를 통해서 수백 킬로미터 밖 소말리아 해적들에게까지 전해진 것이었다. 그런데 그들의 첫 제안은 충격적이었다. 직접 소말리아로 오라는 것이었다. 한국 선원들도 직접 만나게 해주겠다는 제안이었다.

▲ 소말리아 해적에게 납치된 제미니호의 한국인 선원들의 모습 ⓒKBS

가이드라인을 떠올렸다. 설령 해적들을 못 만나더라도 그런 위험은 감수해서도 안 되고 할 필요가 없었다. 심지어 소말리아는 정부의 사전 여행 허가가 필요한 여행제한구역이기도 했다. 단호하게 거절했다. 그리고 수정 제안을 전달했다. 나는 “소말리아에 가고 싶은 생각이 없다. 그리고 우리 선원들을 직접 만날 의사도 없다. 만약 우리를 만나고 싶으면 케냐의 수도인 나이로비의 안전한 곳으로 오라”는 내용이었다. 다음날 소말리아에서 그들이 출발한다는 연락이 왔다.

내가 케냐에 가기 전, 마음속으로 만들어 둔 또 하나의 가이드라인이 있었다. 바로 ‘협상에 개입하지 말자’는 것이었다. 선원들의 건강상태를 확인하고 또 해적 무리가 한국 선원들을 재납치한 이유에 관해 확인하는 것을 취재의 우선 목표로 정했다. 그 선을 넘어서는 취재는 되도록 자제하자는 것이었다. 특히 협상에 직접 개입하지 말라는 충고를 여러 선배에게서 들었다. 해적질이 비즈니스로 발전하면서 미디어 선전전까지 벌이는 소말리아 해적들이 많아졌고 특히나 언론에 협상 내용을 흘려 본국의 여론을 부채질해 몸값을 올리려 한다는 것이었다. 협상 내용에 언론이 개입하는 순간, 인질들의 안전은 더 위험해질 수도 있었다. 그 말을 새기고 또 새겼다.

며칠 뒤 해적들이 나이로비에 도착했다는 연락이 왔다. 브로커를 통해서 두 가지 약속을 해줘야 인터뷰가 성사될 수 있다고 전했다. 첫째는 취재진의 안전을 확인해줘야 한다는 것이었고, 둘째는 협상과 관련해서는 어떠한 이야기도 하지 않을 것이라는 조건이었다. 다만 인터뷰 장소는 그들이 정하는 대로 따르겠다고 했다.

또 이틀이 흘렀다. 나의 제안에 대해 해적들이 이견을 조율하는 중이라고 했다. 그리고 늦은 밤, 해적들로부터 다음날 인터뷰를 하겠다는 연락이 왔다. 그런데 6명의 해적이 현지에 왔지만 인터뷰에는 2명만 응할 것이라고 했다. ‘협상’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지 않을 거라면 해적 조직의 고위급이 아닌 일반 조직원 2명이 우리를 만날 것이라고 했다. 문제없다고 했다.

그런데 막상 해적을 만난다고 생각하니 잠이 오질 않았다. 아니 솔직히 무서웠다. 워낙 소심하고 겁이 많은 성격이라 가족들 얼굴이 계속 아른거려 결국 거의 뜬눈으로 밤을 새운 뒤, 아침을 맞았다. 해적들은 약속 시각과 장소를 수차례 바꾸었다. 브로커의 말로는 해적들이 은신 장소가 노출되지 않게 하려고 약속을 계속 바꾸는 것이라 했다. 그런데 나는 해적들의 그런 변덕스러움이 오히려 편안하게 느껴졌다. ‘해적들도 우리를 만나는 것이 꽤 조심스럽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몇 시간 만에 다시 시간과 장소가 정해지고 나서야 숙소를 떠났다. 나이로비 외곽에 있는 해적들의 안가(安家)에서 그들을 만나기로 했다. 한창 비포장 길을 달리고 마을이 보이자 코디네이터는 해적들과의 약속이라며 촬영을 중단해 달라고 했다. 구체적인 위치가 알려져서는 안 된다는 것이었다. 우리가 고개를 숙이고 카메라 전원을 끈 채로 30여 분을 더 달리고 나서야 약속 장소에 도착했다.

▲ 해적을 만나러 가기 전, 마음속으로 그어 둔 또 하나의 가이드라인이 있었다. 바로 ‘협상에 개입하지 말자’는 것이었다. 사진은 강윤기 PD가 케냐 나이로비에서 소말리아 해적을 만나 인터뷰 하는 장면 ⓒKBS

인터뷰는 1시간 정도 걸렸다. 복면으로 눈만 가린 채, 나를 쳐다보던 그 해적들의 눈빛을 아직도 잊을 수 없다. 등에서는 땀이 흘렀고 방안에는 긴장감이 꽉 차 있었다. 나의 짧은 영어와 그 영어를 통역한 소말리아어로 진행되는 인터뷰는 생각보다 오래 걸렸다. 가끔 해적들은 나에게 화를 내며 한국에 대한 공격적인 감정을 표현하기도 했다. 하지만 그 인터뷰를 통해서 내가 가졌던 많은 의문이 풀렸다. 미리 조율한 대로 질문과 답이 오갔다. 선원들은 모두 안전하게 생존해 있지만, 건강 상태는 계속해서 나빠지고 있다는 소문은 사실이었다. 또 ‘아덴만의 여명’작전에 대한 보복으로 한국 선원들만 다시 억류한 것이라는 새로운 사실도 알게 되었다. ‘가이드라인’대로 협상에 대한 질문은 꺼내지 않았다.

인터뷰를 마친 후 해적들과 헤어지고 소말리아인 정착촌을 서둘러 빠져나왔다. 얼마나 긴장을 했던지 다리에 힘이 쭉 빠지는 게 느껴졌다. 안도의 한숨부터 크게 나왔다. “살았구나!” 하지만 동시에 뿌듯함도 느껴졌다. 해적을 만나 인터뷰를 한 것이 돌발적인 상황처럼 보이지만 실은 잘 짜진 각본처럼 지금까지 굴러왔고 또 우리가 원하는 방향으로 진행되었다는 생각이 들어서였을 것이다. 무엇보다 위험한 상황에 부닥치지 않고 모두 안전하게 취재를 마쳤으니 그보다 더 다행한 일이 있겠는가.

방송 후 석 달이 지나 네 명의 선원들은 무사히 가족들의 품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 이분들의 무사 귀환은 내가 마음속으로 가지고 있었던 ‘가이드라인’의 마지막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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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강윤기 KBS PD

*글쓴이는 현재 KBS 시사교양 PD. 2003년 입사해 <추적60분>, <소비자고발>, <세계는 지금> 등을 연출했다. 원래 재미와 유머로 점철된 삶을 자랑했지만, 직업이 직업인지라 "심각해졌다"는 주위의 핀잔에 의기소침해진 상태. 하지만 취재 프로그램 제작하면서 배운 시시콜콜한 경험을 거름 삼아 자신의 색깔이 유쾌하게 드러나는 프로그램을 만들려는 꿈을 갖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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