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토 다쓰야 무죄, 검찰 다음 주자는 방심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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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 언론의 자유 인정한 법원 판결, 시대를 역행하는 통신심의규정 개정

세월호 참사 당시 박근혜 대통령이 정윤회씨와 함께 있었다는 의혹이 시중에 나돈다는 내용을 기사에서 전한 가토 다쓰야 <산케이신문> 전 서울지국장에 대해 법원이 무죄를 선고했다. 사실 확인도 않고 박 대통령과 정윤회씨의 관계를 보도한 행위는 사인(私人)으로서 박 대통령의 명예를 훼손한 건 맞고 대한민국 국민으로서 보도에 동의하기 힘든 부분이 많지만, 가토 전 지국장 역시 언론 자유의 보호영역에 있음을 인정해야 한다는 이유다.

법원은 이날 판결을 통해 언론의 자유가 민주주의의 기본임을 강조하며 이렇게 밝혔다. “민주주의인 이상 언론의 자유는 헌법으로 보장돼야 하고, 특히 고위 공직자에 대한 비판은 가능한 한 보장해야 한다. 공적 존재에 대한 명예훼손의 경우, 언론 자유를 우위에 둔다는 점을 적용해 무죄를 선고한다.”

사실 이런 판결은 새삼스럽지 않다. 현 정부 들어 대통령과 관련한 민감한 사안들이 논란이 될 때마다 청와대 관계자 등은 언론을 상대로 소송전을 일삼았지만 대부분의 1‧2심 법원들은 물론 대법원은 국가기관과 공직자의 업무와 관련한 부분에 대한 의혹 제기는 명예훼손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판단해왔다.

▲ 박근혜 대통령의 세월호 사고 당시 행적에 대한 의혹을 보도한 혐의로 불구속기소된 가토 다쓰야(加藤達也·49) 일본 산케이(産經)신문 전 서울지국장이 1심 선고를 받기 위해 17일 오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방법원에 들어서고 있다. ⓒ뉴스1

민주주의의 기본 조건인 표현의 자유를 구성하는 언론 자유의 중요성을 확인하는 판결들이 이어지고 있지만 정부는 언론 자유를 제약하는 쪽으로의 법‧제도 개정을 뚝딱뚝딱 진행하고 있다. 방송통신위원회가 방송평가 공정성, 객관성 항목에 대한 벌점을 2배까지 높이는 방송평가 개정에 나서고, 언론중재위원회는 기사뿐 아니라 기사에 달린 댓글까지 삭제하는 내용의 언론중재법 개정을 추진하고 있다.

그리고 방송통신심의위원회(이하 방심위)는 아예 인터넷상 명예훼손 글에 대해 삭제‧차단을 요청할 수 있도록 하는 심의신청 자격을 당사자에서 제3자로 확대하는 내용으로 통신심의규정을 개정했다. 대통령을 비롯한 정치‧경제 권력자 등에 대한 비판 봉쇄라는 지적이 잇따르자 방심위는 통신심의규정 개정과 함께 고위공직자 등 공인에 대해서는 제3자의 명예훼손 심의 신청을 제한하는 내용의 내부 지침을 마련했다. 하지만 이는 말 그대로 내부 지침인 탓에 구속력이 없고, 심의의 주체가 바뀌면 언제든 휴지통으로 갈 수 있다.

더구나 방심위는 통신심의규정 개정으로 당사자 대신 직접 나서서 명예훼손이라고 판단되는 글을 모두 삭제할 권한까지 갖게 됐다. 법원에서 언론 자유를 이유로 가토 전 지국장에게 무죄 판결을 했다곤 하지만 보도 내용이 사실이 아니고 사인으로서의 박 대통령의 명예를 훼손했다고 지적한 상황인 만큼, 세월호 참사 당시 박 대통령의 행적을 둘러싼 모든 문제제기와 정당한 의문까지도 방심위가 모두 삭제하려 들 수도 있는 것이다.

법원 판결의 핵심은 고위 공직자에 대한 비판은 가능한 한 보장해야 하며 언론의 자유, 즉 표현의 자유는 민주주의를 구성하는 기본이라는 데 있는 만큼, 이런 가능성을 상정하는 건 오버가 아니냐는 반론도 가능하다. 하지만 방심위가 그동안 심의를 해왔던 모습을 떠올려보면 그렇지 않다.

그간 방심위는 돈을 받고 보도 프로그램에서 광고를 한 종합편성채널에 대해서도 돈을 받았는지 여부를 볼 필요는 없고 보도 내용만 보자고 주장하며 결국 솜방망이 징계로 끝내거나, 소수자의 인권 보호와 차별금지에 대한 방송법과 방송심의규정에도 불구하고 “인습이 인정하지 않는다”며 동성 간의 키스 장면을 포함한 방송에 중징계를 결정했다. 그리고 법원의 판단과 다른 심의 결과를 내놓으면서 “우리는 우리의 기준에 따라 심의를 하는 것”이라며 당당했다.

국제인권단체 프리덤하우스는 지난 10월 28일 발간한 연례보고서에서 한국의 언론자유 순위를 아프리카 국가인 나미비아와 함께 67위에 놓으며 3년 연속 언론자유지수가 하락(2013년 31점, 2014년 32점, 2015년 33점/*언론이 가장 자유로운 상태일 때 0점)하고 있음을 지적했다. 한국은 2011년 이미 언론 자유국 지위를 상실하고 ‘부분적 언론 자유국’으로 분류되고 있다.

이뿐만이 아니다. 한국에선 언론뿐 아니라 인터넷도 ‘부분적 자유’만을 누릴 수 있다고 프리덤하우스는 평가했다. 한국의 인터넷 자유지수 역시 3년 연속 하락(2013년 32점, 2014년 33점, 2015년 34점)하고 있는 상황으로, 프리덤하우스는 보고서에서 세월호 참사 이후 검찰이 대통령 등에 대한 명예훼손과 루머에 대한 수사를 강화한 점도 인터넷자유지수 하락의 원인 중 하나로 꼽았다.

하지만 “국격”을 강조하는 이 정부와 사실상 행정기구로 기능하다고 있다는 지적에도 독립적인 민간 기구의 지위를 내세우는 방심위는 이런 평가들에 아랑곳 않는다. 가토 다쓰야 판결에서 법원이 강조한 언론 자유는, 법과 그간의 판례에서 규정하고 확인한 표현의 자유는, 이렇게 무력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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