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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 2014년 5월과 2015년 12월의 공정성

“일련의 세월호 보도, 전임 보도국장의 부적절 발언 논란과 충격적 폭로 등이 지금 사태의 직접적 계기가 되었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하지만 그것은 뇌관이었을 뿐이다. 폭약은 이미 차곡차곡 쌓였고 터질 때를 기다려왔다. KBS의 정치적 독립성과 공정성이 훼손될 때마다 KBS는 폭발을 향해 한발씩 나아갔던 것이다. 누구 탓을 하랴. 일선 기자들과 동고동락하며 뉴스의 최전선을 지켜온 우리 부장들부터 먼저 책임지겠다.”(2014년 5월 16일 KBS 보도본부 부장단 일동)

“우리는 이번 시련을 계기로 국민이 우리에게 맡긴 소명을 다시 한 번 뼛속 깊이 새기고, 국민의 기대에 부응하는 독립적이고 공정한 뉴스를 만드는데 선후배들과 함께 혼신의 힘을 다할 것이다. 우리는 대통령만 바라보는 사장이 아니라 국민만 바라보는 사장과 함께 반드시 국민의 신뢰를 되찾을 것이다. KBS 주인은 길 사장이 아니라 바로 우리 국민이다.”(2014년 5월 16일 KBS 보도본부 팀장 일동)

▲ 2014년 5월 9일 KBS <뉴스광장> ⓒ화면캡처

지난해 5월 8일, 세월호 희생자 가족들이 영정 사진을 들고 공영방송 KBS의 세월호 보도 태도 등에 항의하며 KBS를 찾았다. 보도 책임자인 보도국장과 KBS 책임자인 사장의 사퇴를 요구했다. 김시곤 당시 보도국장은 다음날인 5월 9일 기자회견을 열고 보직에서 물러나겠다고 밝혔다. 이와 함께 청와대가 세월호 보도 등 KBS 뉴스에 개입했으며 길환영 당시 사장이 이를 충실히 이행했다고 폭로했다. 이후 보도본부장, 보도본부 부장 18명, 팀장 49명은 KBS의 정치 독립성과 공정성을 훼손한 길 사장의 사퇴를 촉구하며 보직에서 사퇴하거나 사퇴를 예고했다. 결국 KBS 안팎의 거센 요구 끝에 길 사장은 해임됐다.

맨 위 두 문단의 글은 당시 부장과 팀장들이 쓴 성명서의 일부다. 그때 그들이 다시 한 번 ‘언론 자유’를 요구하는 입장을 발표했다.

▲ 2015년 12월 14일 방송된 KBS <뉴스9> '[간추린 단신] 서해대교 19일 전면 개통 외'. ⓒ화면캡처

기자협회장은 지난 16일 보도국 아침 편집회의에 참석해 지난 14일부터 사흘간의 일정으로 세월호 참사 진상 규명을 위해 진행하고 있는 ‘4·16세월호참사 특별조사위원회 제1차 청문회’ 마지막 날인 만큼 마무리 보도를 하는 것은 어떻겠냐고 의견을 전달했다. KBS 메인뉴스인 <뉴스9>에서는 세월호 청문회 소식이 다뤄진 건 14일과 16일 ‘간추린 단신’으로 나간 것이 전부다.

이에 대해 정지환, 장한식, 박영환, 강석훈, 김주영, 안세득, 이흥철, 이웅수, 최재현, 정인석, 박상범, 이동채, 박장범, 박재용, 곽우신, 오헌주, 유석조, 임장원 등 보도국 국・부장 18명은 지난 17일 내부 게시판에 글을 올리고 “기자협회장의 특정기사 보도 요구는 명백한 ‘편집권 침해’”라며 “헌법이 보장하고 있고 방송법이 지향하는 언론자유, 방송제작의 자유는 제작진의 편집권을 존중하는 기본적인 일에서 출발해야 한다. 특정 아이템을 넣고 빼라는 식의 요구에는 앞으로도 결코 응하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국・부장들은 기자협회장이 편성권을 ‘침해’했다고 했지만 노사가 함께 체결한 ‘KBS 방송 편성규약’ 제6조(취재 및 제작 실무자의 자율성 보장)제2항에는 ‘취재 및 제작 실무자는 편성․보도・제작상의 의사결정에 대해 의견을 제시할 수 있고, 그 결정과정에 직・간접적으로 참여하는 권리를 갖는다’고 명시돼 있으며, 편성규약에 근거해 운영되는 보도본부 본부별 편성위원회인 ‘보도위원회 운영 세칙’ 역시 ‘보도본부 내 뉴스 기획/편집회의에 평기자 대표가 참여한다. 평기자 대표는 편집회의 이외에 뉴스 최종 편집과정에서 실무자들의 의견을 공식적으로 제기할 수 있다’고 명시하고 있다. 즉, 평기자 대표가 참석해 ‘의견’을 제기할 수 있다는 것이다.

특히 이번 세월호 청문회 마지막날 방송 보도는 종합편성채널 JTBC 단 1건 뿐으로, 이를 두고 언론・시민단체에서는 “철저한 세월호 청문회 외면, 당신들은 어느 나라 언론인가”(민주언론시민연합)이라고 비판하는 등 지적이 이어지기도 했다.

이들 18명의 국・부장 중 11명은 지난해 5월 KBS의 세월호 보도 태도와 KBS를 항의 방문한 세월호 가족에게 청와대의 지시가 있은 후에야 사과한 것에 대해 지적했던, 청와대에 의해 흔들리고, 세월호 희생자들에 대해 제대로 보도하지 못한 것을 사과했던 사람들이다. 선후배들과 함께 공정보도를 위해 혼신의 힘을 다하겠다고 말했던, 그때 그 사람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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