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장이 없는 시험, 결국 나를 잃어버리는 과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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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장이 없는 시험, 결국 나를 잃어버리는 과정”
[인터뷰] EBS ‘다큐프라임-시험 6부작’ 장후영·이미솔 PD
  • 이선민 기자
  • 승인 2015.12.21 14:4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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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BS '다큐프라임-시험' ⓒEBS

“아침에는 네 다리로, 낮에는 두 다리로, 밤에는 세 다리로 걷는 짐승이 무엇이냐”

유명한 스핑크스의 수수께끼다. 한국 사회에서 시험은 스핑크스의 수수께끼처럼 죽고 사는 문제가 되었다. 수능, 토익시험, 입사시험 그리고 공무원 시험. 또 하나의 관문을 통과하면 다른 또 하나의 관문이 기다린다. 사람들은 이 관문을 통과하기 위해 노량진 육교와 학교의 계단을 수도 없이 오르내린다. 하지만 시험이라는 수수께끼를 풀지 못하면 우리 사회는 죽음만큼 무서운 ‘공부 못하는 아이’, ‘실패한 사람’이라는 낙인을 찍는다.

한 사람의 인생을 좌우할만큼 큰 일이 되어버린 시험이 과연 인간의 능력을 제대로 측정하는 것일까? 시험이라는 제도가 갖는 권위에 대한 도전일지 모르겠지만 이 같은 질문에 실제 많은 학자가 “NO"라고 답한다.

지난 17일 끝난 EBS <다큐프라임> ‘시험 6부작’(이하 시험)은 시험이 갖는 측정오차의 문제를 통해 이를 맹신하는 우리 사회에 경종을 울린 작품이다. <시험>은 <학교란 무엇인가>, <학교의 고백>, <왜 우리는 대학에 가는가>를 잇는 EBS의 또 다른 교육대기획이다. 지난 17일 <시험>의 공동 연출자 장후영, 이미솔 PD를 서울 도곡동 EBS 사옥에서 만나 이번 작품을 기획하게 된 배경과 방송에서 다하지 못한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편집자>

누가 1등일까?

<시험>에서는 흥미로운 시험이 진행됐다. OECD에서 개발한 역량 평가 모델인 ‘데세코(DESECO :The Definition and Selection of key Competences) 프로젝트’. 성공적인 개인의 삶과 건강한 사회를 만드는 데 필요한 역량 세 가지(도구 활용능력, 이질적 집단과 상호작용하기, 자율적으로 행동하기)를 정의, 이에 따른 능력을 보는 것이다.

이번 프로젝트에는 2015년도 수능 만점자부터 수능 전체 9등급까지 각기 다른 19살 동갑내기 학생들이 참여했다. 제작진은 세 가지 미션을 이들에게 주고 미션 수행 과정을 카메라에 담았다.

참가자의 배경과 정보를 모두 비밀에 부친 점은 흥미롭다. 참가자들은 물론 평가자에게도 완벽하게 ‘블라인드’로 진행됐다. 프로젝트의 결과는 놀라웠다. 세 명의 인재 평가 전문가들도 의외의 결과에 입을 벌릴 정도였다. 우리 사회에서 성공을 위한 첫 관문이라고 하는 ‘수능’에서 좋은 성적을 받았다고 해서 데세코 프로젝트를 성공적으로 수행한 것은 아니었다.

그렇다고 데세코 프로젝트가 현재 우리가 치르는 일반적인 시험의 대안일 수 없다. 하지만 한 가지 분명한 건 지식정보사회가 되면서 ‘문제풀이식’ 시험 문제는 한계에 직면했고, 세계 교육계가 그 대안을 찾기 위해 몸부림을 치고 있다는 사실이다.

장후영 PD는 "지금의 시험은 데세코 프로젝트의 구분으로 보면 도구 활용 능력의 한 파트일 뿐이다. 여기서 말하는 도구는 지식이다. 언어도 과학도 모두 지식인데 그 지식의 암기 정도를 테스트할 뿐“이라고 말했다.

▲ EBS '다큐멘터리-시험'을 공동 연출한 장후영(왼쪽), 이미솔 PD ⓒEBS

"우리의 시험은 지방 함유량을 측정한 소고기 등급 수준밖에 안 된다"

제작진이 교육대기획 시리즈 주제로 '시험'을 정한 이유는 교육 문제의 정점에 시험이 있다고 판단해서다. 이들은 현재 우리가 치르는 시험이 굉장히 불안정하며 측정오차가 있음을 분명히 인식해야 한다고 했다. 한국의 교육평가 전문가들은 물론 세계적인 석학들도 하나같이 시험이 인재를 평가하는 과학적인 측정 도구가 아님을 강조한다. 학생의 컨디션, 유전적 요인 그리고 가족의 소득 등이 시험 성적의 중요한 변수란 점은 과학적으로도 증명된 내용이다. 2부 ‘시험은 기술이다’와 4부 ‘서울대 A+의 조건’은 그런 시험의 맨살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이미솔 PD는 “‘시험은 기술이다’라는 그 문장 자체가 시험이 갖는 불안정한 속성을 대변한다"며 "시험이 사람을 재단하기에는 불안정한 도구이고 완벽하지 않으니 그 부작용으로 기술이 나오는 것”이라고 말했다. 2부 ‘시험은 기술이다’ 편에 출연한 수능, 공무원 시험, 토익 등 각 분야 기술자로 통하는 사교육 강사들이 알려주는 ‘시험의 기술’은 역설적이게도 시험이 한 사람의 실력을 완벽하게 테스트하기에는 한계가 있음을 말한다. 이미솔 PD는 그 예로 아이큐 테스트를 들었다.

“표준화 시험의 모태인 아이큐 테스트를 처음 만든 프랑스 심리학자 비네는 자신이 쓴 논문에서 이것은 아무것도 아니며, 이를 통해 사람을 평가하거나 단체로 이 테스트를 시행해서는 안 된다고 밝혔어요. 하지만 미국으로 넘어가면서 비네가 하지 말라는 대로 테스트는 치러졌으며, 그것이 미국의 수능인 SAT로 발전했고, 한국으로 건너와 지금의 우리 입시 시험이 되었죠. 수능을 한국으로 가져 온 박도순 고려대 명예교수도 학생이 가져야 할 18가지 영역 중에 이 시험은 고작 한두 영역에 대한 평가일 뿐인데 마치 모든 능력을 다 본 거처럼 평가하는 건 문제라고 지적하고 있어요.”

장후영 PD는 소고기 등급제로 우리의 시험을 빗대었다. 선정적이라는 판단에 따라 편집과정에서 제외되었지만 이 한 마디로 우리의 시험을 표현해도 지나침이 없다고 했다.

“한우의 품질을 측정하는 등급 '1, 1+, 1++'는 마블링(근내지방함유량)에 따른 분류로 한국과 일본에만 있어요. 소고기 품질을 평가하는 분류 방법은 세계적으로 아주 많은데, 우리는 유독 이 등급제를 고집하죠. 요리법에 따라 한우의 품질을 평가하는 기준은 다를 수 있고, 목초를 먹인 소의 경우 등급은 낮게 나와도 건강에는 더 좋다고 하지 않나요. 이렇다보니 다양한 방식으로 키운 소가 없는거예요. 한국의 교육은 지방이 많은 1등급 1++을 고집하고 길러내는 것과 다르지 않죠.”

▲ EBS '다큐프라임-시험' ⓒEBS

"시험은 한 사람의 행동과 사고를 통제한다"

이렇게 치러진 시험으로 명문대에 합격한 아이들은 학점이라는 굴레에서 4년을 살아간다. 4부 ‘서울대 A+의 조건’은 서울대 교수학습개발센터에서 7년간 근무한 이혜정 교육과 혁신연구소장이 서울대에서 4.0 이상의 학점을 받은 학생들의 행동양식에 대한 연구를 바탕으로 이야기를 풀어간다. 이 소장은 최우등생 46명의 행동 패턴을 연구한 뒤, 이를 바탕으로 서울대 학생 1213명에게 설문조사를 해 ‘공부 잘하는 학생’에 대한 빅데이터를 만들었다. 조사에 참여한 학생 상당수가 교수의 설명 대부분을 필기하고, 시험 문제에 대한 생각이 교수와 다를지라도 교수의 생각을 써내려간다고 대답했다. 장후영 PD는 이 소장의 연구 결과는 서울대를 흠집내기 위한 것이 아니라 우리의 교육이 어떤 인재를 기르고 있었는가를 보여주고 있다며 그 내용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이 소장의 연구는 우리의 시험이 얼마나 창의적이고 비판적인 인재를 배제하는지를 보여줍니다. 수동적으로 받아들이는 아이들이 좋은 평가를 받고 훌륭하다는 칭찬을 받는 거죠. 교수의 의견과 다른 생각을 쓰는 것은 용기가 필요한 일인데, 그걸 아이들은 포기하죠. 지금의 시험이 아이들의 어떤 능력을 우수하다고 평가하는지, 그리고 어떤 거는 안 된다고 구분 짓는지 명확하게 보여주죠. 그래서 시험은 한 사람의 행동과 사고방식을 통제하는 아주 큰 힘을 갖고 있어요.”

이런 이유에서 1부 ‘시험은 우리를 어떻게 지배하는가‘는 시험이 갖는 본래의 의미에 대해 제작진이 시청자에게 던지는 화두이면서 <시험>이라는 다큐멘터리를 관통하는 주제이기도 하다. 인도, 중국, 독일, 프랑스의 시험을 통해 국가에 따라 다르게 작용하는 시험의 의미가 무엇인지 그럼에도 변하지 않는 ‘시험의 본질’이 무엇인가 대해 질문을 던진다.

"시험이라는 제도는 그 사회가 추구하는 교육철학을 압축해 놓은 엑기스로 그 나라의 시험을 보면 그 나라의 교육 철학과 제도가 한꺼번에 보인다"고 말한 이 PD의 말처럼 독일과 프랑스의 대입자격시험은 그 나라가 어떤 인재를 길러내고자 하는지 보여준다.

▲ 바칼로레아에 출제된 철학문제 대해 토론하는 프랑스인들. 사진은 EBS '다큐프라임-시험' ⓒEBS

시험은 이데올로기다. 시험은 성장이다.

나치 정권 시절, 폭력적인 이념을 전달하는 도구였던 독일의 시험은 학생 개개인의 자유로운 의견을 발화하는 도구로 변화했다. 그런 이유에서 독일의 대입자격시험 ‘아비투어’는 구술시험과 논술형식으로 진행된다.

200여 년의 역사를 가진 프랑스의 논술형 대입자격험인 ‘바칼로레아’. 그중에서도 철학 시험은 수험생뿐만 아니라 프랑스 사회 전체에 던지는 그 해의 질문이기도 하다. 지난 6월에 치러진 2015년 바칼로레아 철학시험 문제는 ‘정치는 진실에 대한 요구를 회피하는가?’, ‘과거의 나는 지금의 나를 만들었는가’였다. 바칼로레아는 생각하는 시민 그리고 자기 생각을 피력할 줄 아는 시민을 기르는 데 이바지하고 있다.

이 PD는 “인도와 중국 그리고 우리 아이들은 시험을 치르면서 자기가 없어지지만 프랑스와 독일의 아이들은 오히려 자기가 더 생긴다”며 “이런 느낌을 시청자들도 제작진과 똑같이 느끼길 바라는 마음”이라고 설명했다. 그래서 연출진은 1부를 나레이션 없이 인터뷰로 설명을 대신했다. 인터뷰와 인터뷰의 공백은 화두에 대한 답을 찾는 시청자만의 시간이었던 셈이다.

아비투어와 바칼로레아처럼 현재의 수능을 당장 고치자는 얘기는 아니라고 제작진은 말한다. 문제는 우리 사회가 최소한 수능을 통해 어떠한 인재를 키워내고 발굴할 것인가에 대한 원칙과 철학이 있느냐다.

장후영 PD는 “시험을 좀 못 봐도 되는 거여야 한다. 하루 시험으로 인생이 판가름 나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고등학교는 건강한 시민을 길러내고 수능은 그런 시민인지를 평가하면 되는데, 줄세우기식 시험이 절대적 가치가 되었어요. 결국 이로 인해 대학 서열화와 학생들에게 학교라는 브랜드의 낙인을 찍어주게 됐죠. 인재 발굴에 게을리한 대학도 책임이 있어요. 대학은 어떠한 인재를 뽑을지 원칙을 세우지 않고 입시시험에 치중했죠." 

그런 측면에서 “작품과 경력이 아닌 시험방식으로 치러지는 방송사 입사 전형 역시 변화가 필요하다”고 두 PD는 입을 모았다.

이들은 이번 교육다큐멘터리 연출 계기로 앞으로 시험에 대한 대안적인 얘기를 하고 싶다고 했다. 이번에 시험이라는 제도에 대한 문제 자체에 치중하면서 이렇다 할 대안이 나오지 않았던 점이 아쉬움으로 남기 때문이다.

바칼로레아 철학 출제 책임자 폴 마티아스는 <시험> 연출진에게 이렇게 말했다. “바칼로레아의 핵심은 성장이다. 자신이 그동안 무의식적으로 믿고 말하고 생각하던 것과 마주할 기회를 얻는 거다. 그렇게 학생들은 바칼로레아를 통해 자신을 들여다보게 된다”

시험 성적 1, 2점에 목숨을 던지며 경쟁으로 점철된 우리의 시험이 현재 무엇을 얘기하는지 생각해 봄 직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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