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송업계의 만연한 위장 도급, 명백한 불법 파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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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이강택 KBS PD, 전 언론노조 위원장

1. 언론사는 간접고용 비율이 유달리 높다

언론사 역시 1997년 외환위기 이후 노동시장 전반에 걸쳐 지속되어온 고용안정성 저하 추세에서 예외가 아니었다. 특히, 2007년 7월 비정규직법이 시행된 이후에는 직접고용 계약직(기간제)의 규모가 최소 수준으로 감소하고, 파견직이 크게 증가했다.

공식 통계 자료만을 기준으로 할 때, 주요 언론사의 비정규직 비율은 18.6%나 되었다. 우리나라의 기간제 노동 비율은 14.8%, 파견용역(간접고용) 노동 비율은 4.5%인데, 주요 언론사의 기간제 노동 비율은 4.0%, 간접고용 비율은 14.6%로 간접고용 비율이 상대적으로 유달리 높다. 위의 자료는 오로지 사업체에서 신고한 내용만을 바탕으로 작성되었을 뿐만 아니라, 자회사 인력 및 프리랜서 형태로 고용된 인력 등이 누락되었기 때문에 실제 언론사의 비정규직 비율은 훨씬 더 높을 것으로 추정된다.

2007년 파견법 시행령이 개정되면서 언론사 종사 직종 상당수가 파견허용업종에 추가되었다. 이후 실제로 방송업계를 중심으로 파견 노동자 수가 급격히 증가했다.. 또한, 언론사 업무를 전문으로 하는 아웃소싱업체의 규모가 비약적으로 성장했고, 방송제작 및 편성PD조차도 파견직으로 채용되는 일이 일반화되었다.

[표 2. 파견 허용 업무에 포함되는 언론사 종사 주요 직종]

· 영화감독(18415) 예시) 영화감독, 텔레비전 감독
· 무대감독(18416) 예시) 무대감독, 연극감독
· 아나운서(18421) 예시) 라디오 아나운서, 텔레비전 아나운서, 뉴스 캐스터
· 사진기자(23512) 예시) 신문 사진기자, 잡지 사진기자
· 촬영기사(23513) 예시) 영화 촬영기사, 비디오 촬영기사, 녹화기사
· 녹음기사(23514) 예시) 음반녹음 장비기사, 음향녹음 장비기사, 테이프녹음 장비기사, 라디오 스튜디오 음향기사, TV 스튜디오 음향기사
· 방송장비 기사(23523) 예시) 라디오방송장비 조작원, TV 방송장비 조작원, 유선방송장비 조작원
· 송신장비 기사(23524) 예시) 라디오 송신장비 조작원, TV송신장비 조작원

2. 방송업계 파견노동의 실태

파견고용의 상당수는 방송 프로그램 제작에 참여하는 직종에 몰려 있다. 방송사는 음향기술, CG, 자막, AD, FD, 영상편집, VJ, 카메라 보조 등 업종을 불문하고 파견직을 고용하고 있다. 방송 프로그램 제작팀에서 외주 제작이 아니라 자체 제작인 경우에도 CP와 PD만 본사 정규직이고, 나머지 인력은 전부 비정규직으로 고용하는 경우도 비일비재하다. .

KBS의 경우, 파견직의 월 임금은 정규직 전체 평균 대비 17.2%에 불과하다.. 우리나라 전체 기준으로 파견직의 월 임금이 정규직 대비 53.6%라는 점을 감안하면, 상대적으로 정규직보다 매우 낮은 임금을 받고 있다. 이러한 격차(5.82배)는 경활 부가조사(2011. 8.)에서 소득하위 10%와 소득상위 10%의 격차(5.43배)보다도 높은 수치임. 게다가 파견직의 월 임금은 경활 부가조사(2011 .8.)에 의한 우리나라 전체 파견직 월 임금의 76.3%에 불과했다. 즉 KBS의 경우만 보더라도 방송업계 파견직의 급여 실태가 매우 심각한 것을 알 수 있다.

파견금지업무에 파견 노동자 고용, 불법파견 : 현행 파견법 시행령 제2조 제1항의 [별표1] 근로자파견대상업무에 의하면, 방송구성작가 및 팩트체커의 업무는 한국표준직업분류기호 ‘1821 작가’ 혹은 ‘18293 편집자’에 해당되고, 기자의 업무는 ‘18291 기자’에 해당되어 파견대상업무가 아니다. 그럼에도 다수의 방송사는 파견법을 위반하면서 파견금지업무에 파견 노동자들을 사용하고 있다. 

하지만 고용노동부에서는 방송사의 이러한 불법파견실태를 전혀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 오히려 ‘물량위주 지도 · 감독을 지양하고 지역별 · 이슈별 · 취약 분야 등 특성에 맞는 맞춤형 감독을 실시한다’는 감독방침을 세워 지난 2011년 3920개이던 점검 사업장 수를 지난해 1017개까지 대폭 줄였다. 파견업체 또한 방송업계 구인구직 사이트에 버젓이 파견금지업무에 대한 파견계약직 채용 공고를 내고 있다.

도급계약, 위장도급 사례 많다 : 제조업뿐만이 아니라, 방송업계에도 아웃소싱업체와 “용역(도급)계약”을 맺고 사내에서 아웃소싱업체 소속 노동자들을 사용하는 경우가 흔하다. 이러한 사내용역 노동자들에 대한 업무지시 및 관리는 방송사 내부(인하우스) 정규직들에 의해 이루어지고 있으며, 현행 도급 · 파견의 구별기준에 의하여 판단해 볼 때, 위장도급에 해당하는 사례가 많다.

방송사 역시 위장도급으로 사내용역 노동자들을 사용하다가 ‘불법파견’에 관한 법적 분쟁에 휘말릴 것을 대비하여 진성도급업체 활용, 프리랜서 채용에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 미술분야의 경우, SBS아트텍은 대부분의 인력으 아웃소싱업체 및 프리랜서로 활용하고 있으며 KBS아트비전은 1년에 분장 관련 협력업체를 6 ~ 7개 지정하여 업체풀을 운영하여 자사프로그램의 제작이나 외주제작 시에 활용하고 있음. MBC아트만이 자체적인 정규직 미술인력을 상당 부분 보유하고서 나머지 부분에 대해 소수의 프리랜서와 사내용역 노동자들을 활용할 뿐이다.

3. 파견법 개악안 통과가 언론사에 미치는 문제점

▲ 지상파 방송 3사 사옥 이미지 모음 ⓒPD저널

파견천국 언론사의 탄생 :새누리당이 제출한 파견법 개정안 제5조 제2항 제4호에 따르면, 현행 파견대상업무와는 별도로 한국표준직업분류 대분류 1(관리직), 2(전문직)에 해당하는 업무는 일정한 소득기준 이상만 충족하면 기간제한 없는 파견이 허용되었다. 여기에 해당하는 업무에 사실상 언론사에 종사하는 “모든 직종”이 포함됨. 현행 파견법 상 파견대상업무가 아닌 방송작가와 기자 업무마저 파견대상업무에 포함됨. 즉 언론사 사업주는 사내 모든 업무에 파견직을 채용할 수 있게 되었다.

2015년 기준으로 “연 5,600만 원 이상”의 소득기준이 그대로 법제화된다고 하더라도 방송업계에 종사하는 정규직 노동자들은 이 기준에 부합하는 비율이 매우 높기 때문에 사업자 입장에서는 당연히 파견직을 고용해 정규직 결원을 대체할 것으로 보인다. MBC의 경우, 2013년 마지막 공채 이후 2년간 대졸신입사원 공채를 진행하지 않고 있다. 신입으로는 업무직으로만 올해 5명 채용됐을 뿐이다. 반면, 2013년부터 올해까지 파견직으로 채용되었던 인원은 무려 1128명에 이름. 지상파뿐만이 아니라, 지역방송 역시 2000년대 들어서면서 정규직 신입사원 공채를 거의 진행하지 않고 있다.

방송 프로그램 제작에 참여하는 인력의 경우에는 다수를 프리랜서 고용형태로 사용해왔으나, 이마저도 법적 분쟁에 휘말릴 소지가 적고 인력공급 및 노무관리가 수월한 파견고용형태로 상당수 전환될 가능성이 높다. 즉 파견법 개악안이 통과되면, 정규직만이 아니라, 프리랜서마저 파견직으로 전환되는 매우 기형적인 결과를 가져올 것ㅇ로 보인다.

결국 새누리당이 제출한 파견법 개정안이 통과되면, 현재 파견금지업무에 파견 노동자들을 사용하고 있는 방송사와 아웃소싱업체에 면죄부를 주게 될 것이다. 또한, 파견법 개정안에 따라 파견이 전면적으로 허용되는 대상자는 504만 명(전체 노동자의 26.8%)이나 되는데, 고용노동부에서는 파견 근로감독과 관련된 어떠한 준비도 하고 있지 않으므로 실제로 일정한 소득기준조차 무용지물이 될 가능성이 높다.

파견직 고용 확대와 언론 공공성 붕괴는 한 몸: 현재 정부가 추진 중인 ‘취업규칙 불이익 변경요건 완화 지침’ 및 ‘일반해고 지침’과 패키지로 작동해 정규직 노동자 퇴출에 악용될 수 있다. 노동조합이 없거나, 단체협약을 체결하지 못한 사업장은 물론이고 노동조합과 단체협약이 존재하더라도 노조 동의 없이 취업규칙을 변경해 노동조건을 열악하게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 장기근속 저성과자의 경우 55세 이상 고령자 파견 전면 확대조항을 이용해 임금피크제가 도입되었을 때보다 훨씬 저렴한 비용으로 사용할 수 있고, 노조의 교섭력이 약한 경우에는 “파견으로 돌리겠다”는 식으로 임단협에서 기존 임금 및 노동조건을 하락시킬 수 있다. 즉 정규직 노동자들의 노동조건을 하락시키고 노조의 힘을 약화시킬 수 있다. 최근 MBC의 사례만 하더라도 사측이 비정규직을 고용하여 노조 조합원들이 맡았던 업무를 하게 함으로써 노조의 힘을 약화시키고 언론 공공성을 크게 무너뜨리고 있다.

2015년 8월 경활 부가조사에 따르면, 정규직 노동자의 노조 가입률은 16.9%인데 비해 비전형 노동자(파견, 용역, 특수고용형태)의 노조 가입률은 1.4%에 불과하다. <표1>에서 언급된 언론사 대부분에는 노조가 있지만, 파견 노동자들은 아무도 노조에 가입되어 있지 않다. 따라서 파견직이 늘어나면 노조가 교섭대표노조 지위를 유지하더라도 비정규직을 포함한 전체 구성원들의 노동조건 개선과 보도 및 제작 자율성 증대를 위한 활동의 영향력, 조직력은 갈수록 축소될 것으로 예측된다.

특히 방송업계의 경우 지상파 3사마저 영업적자를 면치 못하고 있는 상황에서 사업자들은 콘텐츠제작 및 수출을 미래의 수익창출분야로 보면서 제작능력 강화를 위한 각종 규제 철폐를 외치고 있다. 사업자 입장에서는 프로그램 제작비가 오히려 축소되고 있는 상황에서 제작능력을 강화하기 위해서는 인건비가 매우 적게 드는 파견직 고용을 늘릴 수밖에 없다. 방송업계의 경영난 때문에 정규직 노동자들 역시 자사의 수익확대추구논리에 빠져들 가능성이 높아 독립성, 공공성, 시청자주권 등 언론 공공성의 핵심 가치들이 언론사 내부에서부터 무너지게 될 것이다. 따라서 제작인력 부문 인건비 절감이라는 명분으로 내부 파견직들과 외주제작분야의 프리랜서들의 열악한 노동권 문제가 지속적으로 묵인되거나 은폐될 수도 있다.

* 이 글은 지난 지난 12월 21일 민주노총,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 장그래살리기운동본부 등 노동계와 시민사회단체가 주최한 '노동 5법에 대한 시민, 전문가' 공청회에서 필자인 이강택 KBS PD(전 언론노조 위원장)가 토론자로 참석하여 '언론사에서의 파견문제'에 대해 발표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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