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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헬조선’ 공분의 시대, 그들만의 방송

[송년기획] 2015년 방송계 키워드 김세옥 기자l승인2015.12.26 12:4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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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방송은 꽁꽁 얼었다. 겨울이기에 느끼는 물리적 한기가 아니다. 지난해 세월호 침몰 사고 이후 배경이야 어떠했든 정권에 의한 보도통제가 있었다고 폭로하며 더 이상 기자에 쓰레기를 더한 ‘기레기’란 이름으로 불리지 않겠노라 다짐했던 방송‧언론의 현실은 여전히 그 자리라고 말하기도 어려울 정도다. 이런 현실 속엔 지금의 방송이 권력으로부터 독립하지 못하고 있다고, 더 이상 공공성을 담보하지 못하고 있다고 말조차 꺼내기 어려운 내부의 입막음이 있다. 법원에서 해고는, 징계는 과하다고 잇달아 판결해도 내부를 향한 비판과 반성의 말들을 꺼낸 언론인들은 여전히 해고와 징계의 대상이 되고 있다.

설상가상, 지상파 방송이 처한 물리적 환경조차 녹록지 못하다. 수익의 중심인 광고는 이미 인터넷에 추월당한지 오래고, 거대 통신사에서 운영하는 IPTV는 인터넷‧모바일 시장에서의 우월적 지위를 앞세운 결합상품으로 방송시장을 잠식하고 있다. 날치기로 탄생해 특혜에 생존을 기댔던 종합편성채널(이하 종편)은 저비용 저품격의 프로그램들과 편향되게 관대한 심의의 비호 속에 영토를 확장하고 있다.

상대적으로 젊은 시청 층을 타깃으로 설정한 콘텐츠로 영향력을 키우고 있는 CJ E&M과 종편 중 홀로 다른 길을 걷는 JTBC는 꾸준한 투자로 경쟁력을 갖추며 더 이상 지상파를 콘텐츠 강자의 위치에 머물지 못하게 하고 있다. 자본을 앞세운 통신미디어와 선동을 방송의 언어로 채택한 종편, 그리고 구매력을 갖춘 시청자들을 포획하기 시작한 유료채널의 전방위 공세 속 생존마저 위협당하기 시작한 지상파의 현실은 경제성장을 위해 민주화를 유보해도 좋다는 주장이 설득력을 보였던 그때 그 시대로의 회귀를 정당화하는 듯 보인다. 하지만 정말 그래도 좋은 걸까. 2015년을 정리하며 <PD저널>이 선택한 단어들의 무게를 생각해볼 수 없는 이유다.

#VIP: 뉴스의 중심

11월 14일 민중총궐기에 참여했던 한 농민이 경찰의 물대포에 맞아 세밑을 눈앞에 두고 있는 지금도 사경을 헤매고 있다. 그는 전문 시위꾼도, 폭력시위를 주도한 이도 아니었다. 그저 쌀 시장을 다 열어버려선 안 된다고 말하기 위해 길 위에 선 평범한 농민인 노인이었지만 경찰은 그를 향해 물대포를 쐈고, 그가 아스팔트 위에 쓰러진 후에도 멈추지 않았다. 이렇게 한 사람의 평범한 시민이 국가 앞에 쓰러졌지만, 방송은 그의 존재를 잊었다. 그의 존재를 잊지 않은 시민들이 국가의 존재와 책임을 묻고 있지만, 방송은 그들을 보지 않는다.

그리고 세월호 참사 발생 608일이 지난 후에야 열린 사흘 동안의 청문회도 지상파 방송 뉴스에선 대부분 20초도 채우지 못한 단신으로 처리됐다. 지난해 4월 16일 스스로를 구조한 승객 외 사실상 한 명도 구조하지 못한 정부의 책임을 ‘알아서’ 묻지 않았던 언론의 모습은 더욱 후퇴한 모습으로 반복하고 있다. 1970~1980년대 엄혹했던 시절처럼 대중은 외신에서라도 진실을 말해주길 기대하고 있다. 상황이 이런데도 뉴스를 책임지는 이들은 대통령과 정부의 시각으로 사안을 바라보고 말하고 있을 뿐이다. 심지어 야당도 시민사회의 목소리도 뉴스 안엔 거의 없다. 비판받던 기계적 형평조차 뉴스에 자리하지 못하는 시대인 것이다. 뉴스의 중심에 있는 그분이 보기에만 좋을지 모르는 언론의 시대가 이미 와있는지도 모르겠다.

▲ 박근혜 대통령이 지난 23일 청와대에서 열린 2015년 핵심개혁과제 점검회의를 주재하고 있다. ⓒ청와대/뉴스1

#국정화: 뉴라이트가 장악한 방송

그때 그 시절로 돌아가기 위해 군홧발이 필요한 건 아니다. 합법적으로 권력의 의사를 대리할 수 있는 지배구조 속에 방송은 이미 위치해있기 때문이다. 권력이 무언가를 통제하길 원할 때 가장 손쉬운 방법은 권력의 의중을 헤아려 필요한 순간 돌격대처럼 돌진할 수 있는 인물들을 의사결정권자로 앉히는 것이다. 공영방송의 경우 이사회가 그 대상이 된다. 사장 인선 권한을 쥐고 있는 만큼, 사실상 이사회만 ‘잘’ 구성하면 많은 부분을 뜻대로 할 수 있는 것이다. 이런 구조를 지적하며 공영방송 지배구조 개선을 공약으로 내걸었던 대통령은 공약의 이행 대신 침묵을 선택했고, 그 결과 올해 새롭게 구성된 공영방송 이사회는 극우와 친박(親朴) 인사들로 메워졌다.

이후의 현실은 이렇다. 뉴라이트 역사학자인 이인호 이사장이 연임한 KBS에선 70만 여 건의 서훈 명단을 분석한 결과를 담은 다큐멘터리 ‘훈장’ 2부작(<시사기획 창>)이 벌써 반 년째 방송조차 되지 못하고 있다. KBS 탐사보도팀이 수년에 걸쳐 취재한 결과를 담은 이 프로그램은 이승만, 박정희 정부 시기 친일행적을 보인 인물과 일제 식민통치를 주도한 일본인들에게 훈장을 수여했다는 내용을 포함하고 있다. MBC를 관리·감독하는 방문진 이사장에 오른 고영주 변호사는 전직 대통령부터 야당 대표까지 모두를 ‘종북’, ‘공산주의자’로 규정하는 발언을 이어가며, 법에서 정한 회의 공개 의무에도 회의 속기록 공개를 거부하는 등의 밀실 운영을 계속하고 있다.

극단의 이념을 표현하길 주저하지 앉는 이들이 압도적 다수의 위치에 있는 공영방송 지배구조는 합법적으로 다수결의 원칙에 따라 원하는 모든 걸 밀어붙일 수 있다. 억울하면 선거에서 승리했어야 한다는 태도로 반대의 목소리를 무시하며 역사교과서 국정화를 밀어붙인 정부의 모습처럼 말이다. 하지만 권력을 비판하고 감시하며 소수자와 사회의 약자를 위한 방송의 역할과 책임은 경기의 승리자가 모든 걸 차지하는 ‘위너 테이크 올(Winner takes all)’의 구조에선 불가능하다. 후보 시절의 대통령이 말했던 것처럼 공영방송 지배구조 개선은 그래서 중요하다.

#복면: 언론사의 표현의 자유란

끝은 없었다. 지난 이명박 정부 시절부터 최장 2600일이 넘는 해직의 시간을 보내고 있는 언론인들이 아직 11명이나 남아 있지만, 올해 방송사들은 해고의 해결은커녕 오히려 그 숫자를 늘렸다. 지난 11월 KBS는 사내 게시판에 욕설과 함께 공정보도를 요구하는 글을 올렸다는 이유로 경영 직군의 구성원을 해고했다. 앞서 지난 1월 MBC는 회사를 비판하는 웹툰을 SNS(소셜네트워크서비스)에 올린 3년차 예능 PD인 권성민 PD를 해고했다.

그런데 방송사들이 한 대부분의 해고는 법원에서 정당하지 못하다는 판결을 받아들고 있다. 지난 4월 서울고법은 2012년 공정방송 파업 이후 해고된 최승호 PD 등 6인에 대한 MBC 사측의 해고 결정은 무효라고 판단했다. 지난 7월 이상호 MBC 기자도 대법원에서 해고 무효 판결을 받았다. 또 지난 10일 권성민 PD 역시 해고무효 소송 항소심에서 승소했다.

그리하여 질문할 수밖에 없는 건, 반복하고 있는 “해고는 무효”라는 판결 앞에서도 또 다른 해고를 이어가고 재판 결과에 불복하며 소송비용을 쓰고 있는 이유가 어디에 있는지에 대한 부분이다. 방송사들의 해고와 징계의 칼춤을 경험하고 지켜보고 있는 이들은 “위축”을 답으로 내놓고 있다. 그 위축은 저널리즘의 미래를 어떤 모습으로 만들까. 표현의 자유를 말하기 위해 언론인들마저 복면을 써야 할 시대가 벌써 와 있는지도 모르겠다.

#자존심: 이미 우스운 위상

지난 2월 6일 KBS <뉴스9>는 이완구 당시 국무총리 후보자의 발언이 담긴 녹취록을 공개했다. 녹취록의 내용은 ‘협박’이었다. 녹취록 속에서 이 후보자는 총리 후보자인 자신을 검증하려는 기자에 대한 인사에 개입할 수 있다고 자신감을 내비쳤다. 또 언론사 간부에게 전화를 걸어 자신에 대해 비판적인 출연자를 뺐다는 말을 했다. 또한 자신을 곤란하게 만드는 기자들을 손보기 위해 언론인도 처벌 대상에 포함하는 ‘김영란법’을 통과시키겠다고 말했다. 기자들과 김치찌개를 먹으면서 한 이 후보자의 협박의 말들은 권력자들에 있어 언론의 존재가 얼마든지 통제 가능한 대상으로 인식되고 있음을 드러냈다.

그리고 올해 김성우 SBS 기획본부장과 정연국 MBC 시사제작국장이 각각 청와대 홍보수석, 대변인으로 자리를 옮겼다. 지난해에는 민경욱 KBS 문화부장(전 <뉴스9> 앵커)과 윤두현 디지털YTN 사장이 각각 청와대 대변인과 홍보수석으로 자리를 옮겼고, 박근혜 정부 출범 첫 해였던 2013년엔 이남기 SBS미디어홀딩스 대표이사가 청와대 홍보수석으로 하루 사이 변신한 바 있다.

이렇듯 며칠 전, 심지어 당일 아침까지만 해도 권력을 비판하고 감시하는 언론인의 위치에 있던 이가 아무렇지 않게 정권의 ‘입’으로 변신하는 게 더 이상 낯설지 않은 풍경이 됐다. 권력이 내민 손을 냉큼 잡아버리는, 권력의 감시자에서 동조자로 아무렇지 않게 변신하는 언론인들의 모습 앞에서 언론을 통제할 수 있다고 자신하는 권력자의 그릇된 인식만을 탓할 수 있을까.

▲ 2월 6일 KBS <뉴스9> ⓒKBS 화면캡쳐

#재갈: 가만히 있으라

공영방송을 관리‧감독하는 자리에 정권과 뜻을 함께하는 사람들을 앉히고, 현직 언론인들을 정권을 대변하는 자리에 마음대로 골라 쓰는 모습에 그치지 않았다. 정부와 여당은 2015년 한 해 동안 ‘언론 길들이기’ 목적으로 보이는 여러 법‧제도를 손보는 일에도 열심이었다.

먼저 지난 3월 국회는 부정청탁 및 금품 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 이른바 김영란법을 통과시켰다. 이에 따라 공직자가 직무 관련성과 상관없이 1회 100만원(연 300만원) 이상의 금품을 수수하면 형사처벌 대상이 된다. 논란의 지점은 언론인을 법 적용대상에 포함한 부분이다. 비판 언론에 대해 일단 김영란법 위반 혐의를 적용할 경우, 추후 무혐의 처분이 내려진다 하더라도 이 과정에서 언론이 입을 피해는 막대할 수 밖에 없다. ‘언론 재갈 물리기’에 대한 우려가 나오는 이유다. 결국 대한변호사협회 등이 언론자유 침해를 이유로 이 법에 대해 헌법소원을 제기한 상태로, 헌법재판소는 이르면 내년 초 판단을 내릴 전망이다.

또 방송통신위원회(이하 방통위)는 지난 10월 공공성, 객관성, 선거방송과 관련해 방송통신심의위원회(이하 방심위) 제재를 받을 경우 감점 수위를 두 배 확대하는 등의 내용을 담은 방송평가 규칙 개정안을 행정예고 했다. 문제는 방심위가 모호하고 주관적인 심의 제재로 논란의 중심에 있다는 사실이다. 실제로 방심위 심의 제재의 부당성을 법원에서도 계속 확인하고 있는 상황으로, 지난 24일에도 대법원은 방심위가 CBS <김현정의 뉴스쇼>(2013년 11월 25일) 방송에 대해 공정성 위반 등을 주장하며 결정한 ‘주의’ 처분을 취소하라는 판결을 했다.

여권 비판 방송에 대해 유독 민감하게 공정성과 객관성의 잣대를 들이대며 중징계를 일삼는 방심위의 현실을 그대로 두고, 심의 제재 결과를 방송 재허가와 재승인에 큰 영향을 미치는 방송평가에 강화해 반영할 경우, 방송에서 비판 저널리즘이 설 자리는 더욱 좁아질 수밖에 없다. 더구나 방통위는 연내 방송평가 개정 작업을 완료할 예정인데, 이 과정에 ‘박근혜 정부의 일원으로, 박근혜 정부의 성공을 위해‘ 총선에 출마하겠다며 지난 21일 사의를 공식화 한 여권 측 방통위원이 아직 사표가 수리되지 않았다는 이유로 참여 의사를 밝힌 것으로 알려져 논란은 더욱 증폭되고 있다.

또한 방심위는 지난 10일 정보통신에 관한 심의규정 개정을 강행했다. 이에 따라 당사자가 아니어도 명예훼손 관련 사안에 대한 심의를 신청할 수 있고, 필요한 경우 방심위 직권으로도 심의 개시가 가능해졌다. 선거를 앞두고 대통령 등 권력에 대한 비판을 차단하려는 의도 아니냐는 지적이 이어지자 방심위는 고위공직자와 정치인 등 공적 인물에 한해 당사자, 혹은 대리인만이 심의 신청을 할 수 있도록 제한하는 내부 지침을 만들었지만, 지침은 강제력이 있는 심의 규정이 아니다.

내년과 내후년 총선과 대선이라는, 어느 때보다 공정의 가치가 중요한 시기를 앞두고 무리하게 법‧제도를 손질하며 비판 언론에 페널티를 줄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려는 시도를 착착 해내고 있는 상황이다. 언론은, 방송은 과연 공정한 전달자로, 진실의 목격자로 기능할 수 있을까.

#그것이 알고 싶다: 경쟁의 부재

동시간대 방송하는 예능 프로그램마저 이긴다. SBS <그것이 알고 싶다>(이하 <그알>)의 얘기다. 1992년 처음 방송을 시작했을 당시만 해도 <그알>은 다른 지상파 방송의 정통 시사프로그램에 비해 가볍고 선정적이라는 평가를 받았고, 이런 평가는 인기 여부와 상관없이 오랜 시간 지속됐다. 하지만 지난 9월 방송 1000회를 맞은 <그알>의 위상은 확연히 달라졌고, 온라인상에선 진실에 대한 추적이 필요한 모든 사안에 <그알>이 나서주길 바라는 목소리들로 가득하다.

이런 가운데 경쟁 프로그램이었던 MBC <PD수첩>과 KBS <추적 60분>은 부침을 거듭하고 있다. 금기도 없고 분야도 가리지 않는 묵직한 고발정신으로 황우석 줄기세포 조작사건과 스폰서 검사의 진실 등을 파헤치며 탐사 저널리즘의 대명사로 자리 잡았던 <PD수첩>은 간판 PD였던 최승호 PD가 해고되는 등의 상황을 거치면서 현재 시청률과 화제성에서 예전만 못하다는 평가를 받고 있고, <추적60분>은 지난 6월 1.1% 시청률(닐슨코리아)로 체면을 구겼다.

어떤 프로그램도 인기의 굴곡을 경험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시간을 돌고 돌아 <그알>의 제작문법이 시청자들의 구미에 맞는 시대가 왔다고 단순하게 결론지을 수 없는 건 경쟁하던 다른 프로그램들이 직면하고 있는 내‧외부의 제작환경 때문이다. <그알>과 경쟁하던 정통 시사프로그램의 황금기를 이끌던 제작진들이 프로그램 외의 이유로 제작에서 손을 놓게 됐고, 오랜 시간 공들여 취재한 아이템은 편성을 받지 못한 채 불방의 수순으로 이어지는 상황을 잊을만하면 마주한다.

다양하고 흥미로운 소재를 드라마틱하게 전개함으로써 시청자들을 프로그램 안으로 끌고 오는 <그알>의 장점은 뚜렷하다. 하지만 당연하게도 <그알>만으로는 세상의 진실을 모두 추격할 순 없다. <그알>과 함께 경쟁하던 시사 프로그램들의 부침이 길어지게 만드는 상황을 우려할 수밖에 없는 이유다.

#종편: 비웃기엔 커져버린

출범 이후 0%대의 저조한 시청률로 비웃음을 샀던 종편은 4년 만에 위협적인 존재로 성장했다. 지난 23일 방통위가 발표한 ‘2015 방송시장경쟁상황평가’ 결과를 보면 지난해 종편은 IPTV와 함께 방송시장의 성장을 이끌었다. 출범 3년째였던 지난해 종편의 방송사업 매출은 전년 대비 31.2% 늘었다. 반면 같은 기간 지상파의 방송사업 매출은 고작 2.8% 증가하는 데 그쳤다. 종편의 시청률 또한 4사 합계 7%에 근접하며 지상파 한 개 채널의 시청률(2015년 6월 기준, KBS 6.004%)을 뛰어넘었다.

종편의 이런 성장을 이끈 것은 아이러니하게도 ‘후퇴’다. 출범 초기 지상파와의 경쟁을 위해 드라마와 예능을 편성했지만 막대한 제작비만큼의 거대한 실패를 경험한 종편들은 예능의 ‘떼 토크’ 방식을 시사프로그램에 접목, 시사토크 프로그램이라는 신종 장르를 내놨다. 그리고 공정과 객관의 언어와 구성을 지향하는 저널리즘 대신, 전문성을 확인하기 어려운 인물들을 앉혀놓고 정제되지 않은 언어로 모든 주제에 대해 떠들도록 했다. 2014년 5월 계간지 ‘언론과 사회’에 실린 한 논문에선 종편의 이런 시사토크 프로그램에 대해 분석하며 “사담 저널리즘”(박지영, 김예란, 손병우 ‘종편 시사 토크쇼와 사담 저널리즘’)이라고 명명했을 정도다.

정확성이 생명인 보도가 아닌 의견을 말하는 ‘토크’ 프로그램이라는 점을 앞세운 종편의 이런 프로그램들은 개인의 ‘의견’을 말했을 뿐이니 괜찮다며 솜방망이 심의를 이어가는 방심위로 인해 면죄부를 받고 있다. 그리고 거짓에 기반한 막말과 선동의 언어로 높은 지지율을 기록하고 있는 미국 공화당 대선주자 트럼프처럼, 종편은 전직 대통령을 북한의 간첩이라고 주장하고 집회를 진압하기 위해 ‘위수령’을 발동해야 한다는 등의 막말 화법을 무기로 특정 계층에서 거대한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다.

종편이 출범 4년 동안 구축한 이런 영향력은 날치기와 특혜로 종편을 낳고 육성한 권력으로 하여금 황금채널처럼 더 좋은 ‘무언가’를 선물하려 하게 하고, 그에 따른 보답을 기대하게 한다. 이런 과정에서 무너지고 있는 규제와 진흥의 형평은 이미 생존마저 고민해야 하는 처지에 놓은 저널리즘과 대형 선거를 앞두고 있는 한국 사회에 어떤 영향을 미칠까.

▲ KT가 드라마와 스포츠 마니아를 위한 신규 요금제 '올레 기가 UHD tv 12'를 출시했다고 지난 11월 23일 밝혔다. 드라마와 스포츠·레져, 예능·애니메이션에 특화된 요금으로 장르 별 30여개 이상, 총 226개 채널을 제공한다. 사진은 지난 11월 18일 모델들이 '올레 기가 UHD tv 12'를 알리는 모습. ⓒKT/뉴스1

#독과점: 통신의 미끼 상품이 되고 있는 방송

더 이상 통신을 빼놓고 방송을 말할 수 없다. 2008년 상용서비스를 시작한 IPTV는 출범 8년 만에 방송시장을 이끄는 위치에 섰다. ‘2015 방송시장경쟁상황평가’ 결과에 따르면 지난해 IPTV의 방송사업 매출은 전년 대비 33.2%(3733억원) 늘었다. 같은 시기 케이블 SO(종합유선방송사업자)의 방송사업매출은 330억원 줄었다.

IPTV 성장의 배경엔 결합상품이 있다. IPTV를 운영하는 거대 통신사들이 방송과 인터넷 등을 한데 묶어 판매하는 결합상품으로 영향력을 확대하고 있는 상황으로, 올해 6월 기준 유료방송 가입자의 42.3%(1199만명)가 결합상품을 이용 중이다. 방송과 이동전화를 포함한 결합상품 가입자는 496만명으로 전체 결합상품 가입자의 41.4%나 된다.

더구나 IPTV는 콘텐츠를 생산하지 않는 플랫폼이다. 콘텐츠를 생산하는 방송이 아닌 플랫폼이, 그것도 독점의 위치에서 시장을 지배할 경우 콘텐츠 제 값 받기는 실현하기 어렵다. 방송시장경쟁상황평가 결과를 공개하며 방통위가 “일부 대규모 유료방송 플랫폼의 경우 광고매출에 대한 기여와 대량구매 등을 통해 (핵심 콘텐츠를 생산하는) 지상파 방송에 대한 높은 수준의 협상력을 가질 수 있다”고 지적한 이유다.

방송이 한류를 이끌 수 있었던 배경엔 콘텐츠 경쟁력이 있다. 번만큼 콘텐츠에 투자한다는 기본에 충실했기 때문이다. IPTV는 출범 당시 콘텐츠 산업에 대한 적극 투자를 약속했지만 지키지 않았다. 통신시장에서의 지위를 유지하기 위해 방송을 미끼 상품처럼 활용해 가입자 유치와 이탈 방지의 수단으로 사용했을 뿐이다. 이런 통신자본들이 방송시장을 포획하기 시작한 지금, 공공 서비스로서의 방송의 가치는 선순환하며 성장하는 방송 산업은 이미 과거의 얘기가 됐는지도 모른다.

#격랑: 예측할 수 없는

2015년 한 해를 마무리하는 하는 지금 방송가 최대의 이슈는 이동통신 1위 사업자인 SK텔레콤의 케이블 1위 기업 CJ헬로비전 인수합병이다. SK텔레콤은 지난 1일 인가신청서를 정부에 제출했고 예정대로라면 내년 2월 그 결과가 나온다. 이동통신과 IPTV, 케이블TV, 초고속인터넷, 알뜰폰 등 방송통신 전체 영역에서 시장의 구도를 완전히 뒤흔드는 격변의 시작점이 될 수 있는 이 이슈 앞에서 방송의 공공성, 콘텐츠의 가치, 저널리즘은 어떻게 될까.

오직 이윤을 위해 사업자들이 뭉친 이 현실과 변화 앞에서 정책 당국이 먼저 짚어봐야 할 부분은 IPTV 사업자인 통신 사업자들이 출범 당시 내놓은 약속들을 지켰는지, 인수합병 승인을 위해 내놓고 있는 콘텐츠와 지역채널에 대한 투자, 이용자 편익 강화 방안 등에 대한 계획이 이행될 수 있도록 무엇을 강제해야 하는지 등의 부분이다. 사업자의 계획서에 적힌 장밋빛 미래를 약속하는 갖가지 단어들에 대한 신뢰를 말하며 휘뚜루마뚜루 허가 도장을 찍었던 정책 당국의 과거는 역사에 기록돼 있다.

#장동민: 방송과 인권

2015년 한 해 동안 온라인 공간에서 여성 혐오는 주요한 이슈 가운데 하나였다. 그리고 그 이슈의 발화 지점에 개그맨 장동민이 있다. 그는 종편의 한 예능프로그램에서 함께 출연한 한 여성에 대해 설치고, 떠들고, 생각하기 때문에 싫다는 표현을 했고, 그의 동료들(유세윤, 유상무)과 함께 진행하는 팟캐스트에선 여성과 소수자를 조롱하고 혐오하는 발언을 했다. 이후 논란은 커졌고, 그는 시청자들의 방송하차 요구에 직면했다.

결국 장동민은 함께 팟캐스트를 진행했던 동료들과 함께 기자회견을 열고 사과를 했으며 <무한도전>(MBC) ‘식스맨’ 후보에서 하차했다. 시청자들은 장동민이 출연 중인 방송에서 모두 하차를 해야 한다고 주장하며 그를 출연시키는 방송사 앞에서 1인 시위를 하고 방송사 앞으로 의견서를 보냈다. 하지만 하차는 없었고, 장동민은 2015년 한 해 동안 끊임없이 방송에 출연하며 그 누구보다 더 활발한 활동을 했다.

논란 이후에도 활발한 활동을 이어간 장동민의 사례는 방송에서 인권의 가치가 어떻게 취급되고 있는가를 다시 한 번 생각해보게 한다는 점에서 주목할 만하다. 사실 장동민이 아니어도 방송에서 그저 웃음을 위해 혐오와 차별의 언어들이 사용되는 순간들은 적지 않았다. KBS <개그콘서트>에선 여성 코미디언이 “김치녀가 될 거야”라는 대사를 했고, MBC every1 <결혼 터는 남자들>에선 회식 때문에 늦게 귀가한 아내의 종아리를 회초리로 때렸다는 남편의 얘기를 가정 폭력이 아닌 코믹 에피소드로 취급했다.

방송심의규정에서도, 방송사에서 마련하고 있는 편성규약과 윤리강령, 그리고 방송제작가이드라인에서도 여성 등 소수자에 대한 차별 금지와 인권보호를 위한 조항을 어김없이 마련하고 있지만, 재미와 시청률 앞에선 힘이 없다. 누군가의 인권을 웃음과 바꿀 수 없다는 당연한 명제를 책임 있게 받아들이기 위해 필요한 건 무엇일까. 논란의 끝은 망각이 아닌 개선에 있음을 기억해야 할 때다. 참고로 최근 세계경제포럼이 발표한 ‘세계 성격차보고서’ 속 한국의 성평등 지수는 145개 중 115위였다.


김세옥 기자  kso@pdjourna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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