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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이 확인해준 ‘방송의 공정성’

[송년기획] 판결로 되새기는 공영방송의 역할과 방송 공정성의 의미 최영주 기자l승인2015.12.31 09:19: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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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은 권력을 감시하고 견제하고 비판하는 역할을 해야 한다고 말한다. 그러기 위해서 필요한 것은 ‘공정성’이다. 그러나 사람들은 언론에서 ‘공정성’이 실종됐다고 말한다. 누구를 위한 ‘공정성’이며, 무엇을 위한 ‘공정성’인지 묻는다. 시청자들은 공정하지 않은 언론으로부터 등 돌리고, 언론을 ‘기레기(기자+쓰레기)’라고까지 표현한다. 그렇다면 과연 공정성이란 무엇일까. 공정성 있는 언론을 만드는 책임과 의무를 지는 것은 누구이며, 언론이 ‘공정하다’는 것은 과연 누가 판단하는 것일까. 사법부는 지난 2015년 여러 판결을 통해 이 같은 물음과 잃어버린 공정성의 의미를 되짚었다. <PD저널>은 언론종사자의 가장 큰 책임이자 근로조건은 ‘공정성’이라고 말한 판결을 통해 ‘공정성’이란 무엇인지 새삼 되새겨보고자 한다. <편집자>

▲ 많은 언론종사자들은 방송의 공정성을 지키기 위해 언론사 안팎의 권력과 싸우기도 한다. 지난 2010년 7월 언론노조 YTN본부 사무실 앞에 걸려있는 '공정방송 사수 구본홍 저지투쟁'. ⓒPD저널

“‘방송의 공정성’은 방송사 구성원들의 근로조건이다”

흔히 언론의 역할은 권력, 다시 말해 정치와 경제권력을 감시하고 비판하는 일이라고 한다. 특히 방송법 제1조(목적)에 “이 법은 방송의 자유와 독립을 보장하고 방송의 공적 책임을 높임으로써…”라고 명시된 데서 알 수 있듯이 공공재인 전파를 이용해 국민 대다수에게 전달되는 ‘방송’, 그 중에서도 ‘주인’이라 말하는 공영방송은 이 같은 의무가 더욱 무겁다. 그만큼 방송은 ‘공정성’을 생명으로 한다. 방송심의에 관한 규정에도 ‘공정성(제9조)’ 항목이 있을 정도다.

보통 노동자의 근로조건은 ‘경제적 활동’이라 생각하기 쉽지만 ‘방송’이 곧 ‘일(노동)’인 방송사 구성원에게는 ‘공정성’이 제1의 원칙이자 중요한 ‘근로조건’이기도 하다. 방송사 구성원들이 매번 ‘방송의 공정성’을 외치는 이유이기도 하다. 실제로 사법부도 추상적 내용이라 할 수 있는, 법에 명시된 방송의 공적 책임에 대해 방송사 구성원의 근로조건임을 강조하기도 했다.

서울고등법원은 제5형사부(부장판사 김상준)는 지난 5월 7일 2012년 파업으로 인한 업무방해 등 혐의로 기소된 정영하 전 노조위원장과 집행부 4명(강지웅·이용마·장재훈·김민식)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재판부는 “방송의 공정성과 독립성에 관한 법적 규율은 언론의 자유 및 민주적 기본질서의 유지·실현이라는 헌법적 가치이자 권리를 방송의 영역에서 실현하기 위한 것으로서, 단순히 권리를 부여하는 것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공정한 방송을 실현할 의무 또한 부여한 것이라고 할 것”이라며 “이러한 법적 규율의 취지 등에 비추어 보면, 방송법 등에 의해 부여되는 방송의 자유 및 공정방송의무를 구체적으로는 방송사업자인 MBC뿐 아니라 방송편성책임자 및 방송의 취재, 제작, 편성 등의 업무에 직접적으로 관여하는 방송사업 종사자들인 MBC의 구성원들에 대해서도 함께 부여된 것이라고 할 것”이라고 판시했다.

이어 재판부는 “MBC 노사 양측은 모두 방송의 자유의 주체이자 공정방송이라는 규범의 의무자라는 지위를 함께 향유하고 있다고 할 것이므로, 공정방송의 의무는 방송법 등 관계법규 및 MBC 단체협약 등에 의하여 노사 양측에 요구되는 의무임과 동시에 실제 방송 제작 등에 있어서 공정방송 의무를 실현하는 것이 가능한 환경이 조성되었는지 여부 등은 근로조건을 결정짓는 중요한 요소가 된다고 할 것”이라며 ‘방송 공정성’이 언론사 구성원의 근로조건임을 거듭 확인했다.

▲ KBS <추적60분> '의문의 천안함, 논쟁은 끝났나' 편에 대한 서울고등법원의 제재조치처분취소 판결문 일부 캡쳐.

“‘공정성’은 양시양비적으로 접근해서는 안 된다”

그러나 이 같은 ‘공정성’에 대해 단순하게 기계적 균형을 맞추는 방식으로 접근하려는 시도가 있다. 정치를 예로 들면 여야 입장을 똑같은 비율로 제시함으로써 공정성이 해결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사법부는 공정성에 대한 이 같은 ‘양시양비적’ 접근을 경계해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

서울고등법원 제1행정부(재판장 곽종훈)는 지난 2월 10일 방송통신위원회가 KBS <추적60분> ‘의문의 천안함, 논쟁은 끝났나’ 편(2010년 11월 17일 방송)에 내린 경고제재조치 처분을 취소하라는 판결을 내리면서 방송심의 기준으로서 공정성, 균형성 및 객관성에 대해 “양적 균형의 문제로 파악한다면 양시양비론으로 수렴할 수밖에 없다. 정량적으로 접근해 판단하는 것은 헌법이 정하고 있는 방송의 자유를 과도하게 제한할 우려가 크므로 지양되어야 한다”고 판시했다.

재판부는 “우리 헌법이 보장하는 자유민주주의 기본질서 하에서 공적인 토의는 우리 정부의 본질적 원칙이자 정치적 의무이며, 이러한 토의는 정부나 공직자에 대한 격렬하고 신랄하며 가끔은 불쾌할 정도의 날카로운 공격이 포함된다고 할지라도 결코 억제되어서는 안 되며 가급적 광범위하고 활발하게 전개되도록 보장되어야 할 것”이라며 “그것이 공공적·사회적 의미를 가진 사안에 관하여 정부기관의 공식적 조사발표를 대상으로 하는 탐사보도 프로그램인 경우에는 이와 같은 언론자유의 보장 필요성이 더더욱 커진다고 할 것이다”라고 판시했다.

▲ 방송 공정성을 판단하는 주체는 방송을 보고 듣는 '시청자'다. 서울 여의도 KBS본관 앞에 ‘KBS를 버립니다’라는 피켓과 함께 TV들이 버려져 있다. 피켓터스 소속 회원들이 지난 지난 4월 19일 버리고 간 TV에는 수신료 납부를 거부한다는 스티커와 함께 KBS가 진정한 공영방송으로 돌아오는 날 TV를 수거해가겠다는 문구가 붙어 있다. ⓒPD저널

“‘방송의 공정성’은 국민인 시청자가 판단할 몫이다”

그렇다면 이처럼 ‘방송’이 공정하다는 것은 누가 판단하는 걸까. 시청률과 수익성이 공정성을 반증하는 지표가 될 수 있을까. 공정성에 대해 판단하는 것은 방송을 접하는 ‘시청자’다. 다시 말해 방송사와 구성원들은 시청자를 위한, 시청자를 위해 공정한 방송을 만들어야 한다는 뜻이기도 하다.

서울고등법원은 제5형사부(부장판사 김상준)는 MBC 노조 집행부에 대한 업무방해 2심 판결선고에서 “MBC의 구성원들은 MBC와 함께 방송의 자유의 주체이자 공정방송을 실현할 의무자의 지위도 함께 보유하고 있는데, 위와 같은 방송의 자유 및 공정방송의무는 모두 국민의 알 권리 보장, 올바른 여론 형성 등을 위한 것”이라며 “방송의 공정성이 준수되었는지 여부는 결국 국민인 시청자가 판단할 몫”이라고 판시했다.

▲ 언론사의 수장은 외부의 압력으로부터 언론사를 지켜내는 것이다. 그것이 곧 공정성을 지키는 길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방송공정성을 지키는 것은 공영방송 수장의 가장 큰 책임 중 하나이다. 지난 2010년 3월 노조의 ‘낙하산 사장 출근 저지 투쟁’에 김재철 전 MBC 사장이 “제가 그(공정방송) 약속을 지키지 못하면 우리 사원들이 한강에 저를 매달아서 버리세요”라고 말하고 있다. ⓒ언론노조 MBC본부

“공영방송의 수장은 ‘공정성’과 ‘투명성’을 담보해야 한다”

국민은 정부와 정치인, 국회의원 등이 그들의 의무를 성실하게 수행하는지, 그들의 권력을 남용하고 있지는 않은지 알고 싶고 보고 싶어 한다. 국민들로부터 위임받은 권한을 바탕으로 국민의 권리와 복지를 위해 일해야 하는 자리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국민의 눈과 귀가 되어야 하는 것이 언론의 역할이다. 공정한 방송은 언론 본연의 역할, 즉 권력을 감시·견제할 수 있어야 한다.

특히 국민이 주인인 공영방송은 공정성, 정치중립성, 공공성을 최우선 가치로 한다. 이를 위해 당연히 최고 책임자인 공영방송의 수장도 방송의 ‘공정성’과 ‘투명성’을 담보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대부분의 방송사 구성원과 시청자들이 원하는 것도 이러한 부분이다. 이를 확인해 준 법원의 판결이 있다.

서울남부지법 형사 11단독(판사 신중권)는 지난 2012년 MBC 파업 과정에서 의혹이 제기돼 업무상 배임과 감사원법 위반 혐의로 기소된 김재철 전 MBC 사장에게 지난 2월 13일 열린 판결선고에서 징역 6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했다.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양형의 이유를 밝히기에 앞서 “피고인(김재철)은 공영방송인 MBC의 수장으로서 자신의 처신이 곧 회사의 이미지를 좌우하고 공영방송으로서의 공정성과 투명성을 담보하는 중요한 직위에 있다”며 ‘공영방송 수장’이란 어떤 자리이고, 어떤 역할을 해야 하는지 그 의미를 되새겼다.

그리고 이 같은 공영방송 수장으로서의 역할을 다하지 못할 경우 이에 대한 퇴진을 요구하는 것은 타당하다고 사법부는 판단했다.

“김재철이라는 특정한 경영자를 배척하는 것이 아니라 방송의 공정성을 보장받고자 하는 데 있고, 그러한 목적을 이루기 위한 하나의 수단으로서 방송의 공정성 확보를 위한 조치를 약속하고도 이를 지키지 않고 대화에도 응하지 않는 김재철 사장의 퇴진을 요구한 것으로 봄이 타당하다.”(서울고등법원 민사15부, MBC-MBC노조 195억 손해배상청구소송 2심 판결 중)

▲ 방송의 공정성이라는 것은 방송사 구성원 모두의 책임이자 의무이다. 그것은 노사의 구분이 없다. KBS 보도위원회 운영 세칙은 공정성을 지키는 주체가 노사 모두에 있음을 명시하고 있다.

“‘방송 공정성’은 노사 ‘양측’의 의무이자 책임이다”

공영방송의 공정성을 담보하는데 있어서 최고 책임자인 사장을 비롯해 경영진의 책임이 무거운 건 사실이다. 그러나 공정성을 지키는 것은 사장이나 경영진, 간부 등 일부 구성원만이 아니다.

지난 17일 KBS보도국 국부장단 일동이 “헌법이 보장하고 있고 방송법이 지향하는 언론자유, 방송제작의 자유는 제작진의 편집권을 존중하는 기본적인 일에서 출발해야 한다”면서 평기자 대표인 기자협회장의 의견을 ‘편집권 침해’ 내지 ‘압박’이라며 반발한 바 있다. 그러나 사법부는 법에 근거해 ‘방송 공정성’이라는 것은 노사 양측, 즉 방송서 전 구성원들이 함께 지켜나가야 할 ‘책임’이자 ‘의무’라고 강조한다.

서울고등법원 민사15부(부장판사 김우진)는 지난 6월 12일 MBC가 2012년 170일 파업을 이유로 MBC노조를 상대로 한 195억원에 달하는 손해배상 청구 소송 2심에서 노조의 손을 들어주며 “공정방송의 의무는 구 방송법 등 관계법규 및 피고 단체협약에 의하여 노사 양측에 요구되는 의무임과 동시에 근로관계의 기초를 형성하는 원칙”이라고 이 같은 점을 명확히 했다.

재판부는 덧붙여서 “나아가 방송편성, 보도, 제작자들의 기본적인 직업적 양심에 관련된 것인 점 등에 비추어 보면, 방송기업 내부에서 방송사업자와 편성종사자의 관계를 규율하는 구 방송법 제4조 제3항 등의 규정이 편성종사자 또는 취재 및 제작종사자에게 독점적으로 편집권 또는 편성권이라는 법적 권리를 부여하였다거나 편성의 주체가 편성종사자 또는 취재 및 제작종사자라는 것을 명시한 것으로 보기는 어렵다 하더라도, 방송의 공정성을 실현하기 위한 근로환경이 조성되었는지 여부는 편성종사자 또는 취재 및 제작종사자인 피고들의 본질적인 근로조건에 해당한다고 볼 것”이라며 다시금 방송의 공정성이 방송사 구성원들의 ‘본질적인 근로조건’임을 확인했다.


최영주 기자  yj719@pdjourna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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