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르지 않는 샘, 휴먼다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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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욱한PD의 촌방촌설 村放寸說] 여수MBC ‘다큐 에세이, 여기 이사람’

▲ 여수MBC '다큐에세이, 여기 이 사람'은 언제든지 꺼내서 읽어볼 수 있는 작은 수필집 같은 소소한 감동을 준다. ⓒ여수MBC

여기 이 방송을 이야기 하려한다. 매주 수요일 저녁 여수MBC에서 전파를 타고 있는 프로그램 <다큐 에세이, 여기 이사람> 이야기다. 타이틀만 일견해도 프로그램의 전모를 고스란히 느낄 수 있는 정직하고도 꾸밈없는 네이밍 전략이다. ‘다큐 에세이’라는 수식어는 말 그대로 프로그램의 형식과 분위기를 알 수 있게 해주는 단서로 작동하고, ‘이사람’ 이라는 단어는 인물을 다룬 다큐 장르임을 암시하는 역할을 한다. 그리고 ‘여기’라는 말이 하나 더 추가된다. 이 단어가 프로그램의 성격을 여타의 인물 다큐와 차별화시키는 지형을 만들어내고 있다. ‘여기’는 물리적으로 가까운 특정 공간을 지칭하는 의미를 가지는 동시에 시간의 현재성도 나타내는 이중의 연상 작용을 일으킨다. 멀리 있는 거창한 인물이 아니라 동시대를 살아가는 평범한 우리 이웃이 주인공으로 등장할 것이라는 기대와 예측을 하게 만드는 역할을 ‘여기’라는 표현이 맡고 있다.

그리고 이런 기대와 예측은 빗나가지 않는다. 매주 두 명의 주인공이 등장한다. 프로그램 속에서는 주인공이지만 그들이 살아온 인생은 주인공이라는 말과는 어울리지 않는 평범한 장삼이사의 삶이다. 그래서 <여기 이사람>은 쉽고 밝다. 크고 높고 빛나는 삶이 아니라 작고 낮고 조금은 그늘진 인생의 단면들이 심각하지 않게 조명되고 편하게 이야기된다. 언제든지 꺼내서 읽어볼 수 있는 작은 수필집이 우리에게 주는 소소한 감동을 TV를 통해서 느낄 수 있게 해주는 그런 프로그램이라고 소개하고 싶다. 개인적으로 이런 프로그램을 만나고 소개하는 일은 참 행복하다. 복잡한 논란에서 비껴나 있는 평온한 전원 같은 기운을 보는 이들에게 전달하는 느낌이라 표현할 수 있을까. 여담이지만 경상도 식으로 이 타이틀을 표현하자면 ‘여어~ 이 양반’쯤 되겠다. 이쯤에서 제작을 맡고 있는 이동신PD가 스스로 평하는 타이틀의 의미를 소개하면 조금 더 이해가 쉬우리라.
“우리 주위의 소박한 이야기를 해보자는 생각에서 출발한 프로그램입니다. 평범한 이웃들의 일상을 화면에 담아 우리가 쉽게 지나치는 소중한 것들의 가치를 찾아보고 싶었습니다. 타이틀은 정말 고심했는데요. 소소한 삶의 이야기를 가감 없이 담는 다큐라는 의미로 '다큐 에세이'를, 휴먼이라는 소재에 공간적 느낌을 주고 싶어서 '여기 이 사람'이 조합되었습니다.”

▲ 여수MBC '다큐에세이' 타이틀 ⓒ여수MBC

휴먼다큐는 한국방송역사 속에서 오랜 세월을 거치며 다양한 변주를 보여주고 있는 장르이다. 이른바 교양프로그램이라는 영역을 정착시킨 견인차라는 평가를 받으며 오늘에 이르고 있다. 본격 다큐멘터리 제작의 노하우도 없고 제작 여건도 변변치 않았던 초창기 교양PD들이 열정 하나로 쉽게 접근할 수 있었던 장르가 인물다큐였다. 그리고 그 방송을 접한 시청자들의 반향은 열광적이었다. 1985년에 시작된 MBC <인간시대>가 그 효시였다고 평가 받을 수 있겠다. <인간시대>는 휴먼다큐의 한국적 전형을 제시하면서 엄청난 인기를 아울러 누리는 성공을 거둔다. 오래지 않아 <인간시대>는 국민 프로그램이라는 칭호를 받는 경지에 이른다. 교양PD들과 교양프로그램의 전성시대를 여는 신호탄이기도 했다. 그 전통을 이어받아 새로운 인물 다큐의 확장된 전형을 보여준 프로그램이 KBS의 <인간극장>이다. 비슷한 타이틀과 비슷한 포맷으로 시대를 뛰어넘어 휴먼다큐의 전통을 이어간 프로그램이다. 하지만 시간은 흐르고 트렌드는 바뀐다. 오랜 시간 찬란한 영광을 누렸던 휴먼다큐가 지금에 와서는 외주 프로덕션의 전유물로 인식되는 동시에 소품 프로그램으로 여겨지는 시대가 되었으니 세월이 무심하긴 하다.

외주제작사들이 인물 다큐에 강세를 보이는 이유는 무엇일까. 가장 큰 원인으로 제작비와 제작인력의 효율성이 한국 방송계 전반에 걸쳐 프로그램 제작의 큰 전제 조건으로 작동하고 있다는 사실을 주목해야 할 것이다. 인물 다큐만큼 저 비용으로 적정 수준의 시청률을 담보하기 쉬운 장르도 드물다. 더구나 인물 다큐는 큰 카메라 보다는 눈에 띄지 않는 값싼 소형 카메라가 더 위력을 발휘하는 프로그램이다. 이런 측면에서 본다면 지역방송사가 인물다큐 제작에 가장 최적화된 제작기지일 수도 있다는 판단이 가능해진다. 더구나 좁은 지역사회에서 알음알음으로 엮어지는 인간관계는 출연인물이 시청자와 가지는 친밀성을 극도로 높일 수 있는 더할 나위 없는 여건을 제공하고 있으니 새삼 다시 말할 필요가 없을 정도이다. 그래서 여수 MBC가 올해 새롭게 시작한 <다큐 에세이, 여기 이사람>은 지혜롭고 반짝이는 기획이었다고 평가 받을 만하다.

▲ 여수MBC '다큐 에세이, 여기 이사람'은 억지로 오지를 찾지도 않고 시골마을이라는 한정된 공간을 전제하지도 않으면서 도시 안에 숨겨진 이웃들을 담백하게 만난다. ⓒ여수MBC

<다큐 에세이, 여기 이사람>이 가지는 많은 미덕중에 하나를 꼽으라면 도시의 재발견이라고 말하고 싶다. 많은 지역방송사들이 프로그램을 기획할 때 지역 내에서도 중심과 주변부를 관념적으로 구분하는 경우가 많다. 도시에 거주하는 힘 있는(?) 중심 시청자들의 입맛에 프로그램을 맞추기 위해 주변부로 인식되는 농촌과 어촌의 이야기들을 좀 더 재미있고 자극적으로 엮어서 안방에 뿌리고 싶은 유혹을 느끼기 쉽다는 말이다. 이런 기획은 농어촌을 다루는 프로그램이 오히려 방송 안에서 농어촌의 어르신들을 희화화하고 소비하는 뜻하지 않은 결과를 가끔 초래하기도 한다. 이런 면에서 <다큐 에세이, 여기 이사람>은 억지로 오지를 찾지도 않고 시골마을이라는 한정된 공간을 전제하지도 않으면서 도시 안에 숨겨진 이웃들을 담백하게 만난다. 도시가 그리 각박하지도 않고 어지럽지도 않음을 이 프로그램은 잘 보여준다. 과장된 시골의 웃음을 찾는 것보다 잔잔한 도시의 인생들을 소개하는 것이 결코 지역방송에서 뒤떨어지는 아이템이 아니라는 것을 증명하고 있는 것이다. 프로그램이 여기까지 이르기 위해서는 출연자 선정에 남다른 고민을 쏟아 붇는 노력이 이어졌을 것이다. 프로그램의 분위기만큼이나 명랑한 톤의 목소리를 가진 이동신PD의 이야기를 소개한다.
“남녀노소 모두가 주인공이 될 수 있습니다. 다만 아이템당 22분 정도 제작해야 해서 밀도 있게 이야기를 끄집어낼 수 있는 취재원인지의 여부를 회의 시간에 집중적으로 점검합니다. 사람 사는 게 다 비슷한 것 같아도 자세히 보면 각양각색이니 소구력을 갖는 게 아닐까 싶어요. 그 '자세히 보기'를 어떤 방식으로 할 것인가는 담당 PD와 작가가 매주 고민하고 있습니다. 그 고민의 결과가 아이템마다 다른 접근 방식으로 나타나죠. 그걸 찾아보는 것도 재미있으실 거예요.(웃음) 그러나 제작진이 공통적으로 추구하는 것은 삶의 진솔한 이야기입니다. 저희 제작진의 모토는 소박합니다.“

▲ 가보지 않고도 추억하게 만드는 힘이 노래에 있듯이 여수MBC '다큐 에세이, 여기 이사람'은 보지 않고도 향기를 맡게 하는 힘이 있다. ⓒ여수MBC

중소제작사가 선호할 수 있는 장르가 인물다큐라고 하더라도 지역방송사의 입장에서는 사실 이마저도 감당하기 만만치 않다. PD 세 명이 투입되어서 빠듯하게 돌아가는 시스템은 지역사로서는 큰 각오를 해야 가능한 결정이다. 촬영은 3일 동안 하는 것을 원칙으로 정하고 있다.

“욕심 같아서는 일주일 이상 출연자들과 지내고 싶다”는 PD들의 각오는 프로그램 곳곳에서 감지된다. 따뜻한 분위기의 화면을 연출하기 위해 DSLR을 촬영을 원칙으로 하되 상황에 따라 다양한 카메라들을 실험하고 또 사용한다. 그에 따른 후반 작업은 각 카메라들마다 다른 화면 색상을 보정해야하는 고난으로 이어질 것이다. 그리고 프로그램 전체를 관통하는 경쾌한 음악들도 보고 듣는 이들의 마음을 편안하게 이끈다. 여기에 또 하나 칭찬을 더하자면 더빙을 하는 아나운서들의 신선하고도 따뜻한 음색이다. 전국적으로 알려지지 않은 여수MBC의 아나운서들이기 때문에 기존의 유명 성우들과는 분명히 구분되는 신선한 음색으로 귀를 쫑긋하게 만든다. 이동신PD의 인터뷰 속에서 아나운서들과의 협업이 얼마나 차지게 이루어지는지 짐작할 수 있게 하는 대목이 있어서 소개해본다.

“더빙 성우는 여수MBC 아나운서들(채솔이, 박성언)입니다. 명료하면서 따뜻한 음색이 저희 프로그램과 잘 맞죠? 이 친구들이 TV와 라디오에서 담당하고 있는 일들이 많아서 미안함과 고마운 마음으로 매주 원고를 건네는데 저희 프로그램 더빙이 재미있다며 항상 의욕적으로 임해줍니다. 목 상태가 안 좋다며 미안해 할 때는 목에 좋은 약을 구해다 주고 싶을 정도로 예쁜 후배들입니다. 더빙하면서 두 아나운서가 아이템의 주인공을 궁금해 하는 정도를 보면서 그 주의 공감도를 예측해 볼 수 있기도 하구요.”

지역방송이 가장 행복한 순간은 지역민들에게 사랑받을 때이다. <다큐 에세이, 여기 이사람>에 대한 지역민들의 반향이 어느 정도인지 포항에 있는 나로서는 알 수 없다. 하지만 어렴풋이나마 호응의 정도를 짐작할 수는 있다. 먼저 홈페이지에 나타나는 지역민들의 관심이 뜨겁다는 사실이 눈에 띈다. 다시보기 조회 수도 지역사의 규모에 견주어보면 남다른 수치를 보여준다. <다큐 에세이, 여기 이사람>이 지역민들 사이에서 관심의 대상으로 자리 잡고 있음을 유추해볼 수 있는 단서이다. 홈페이지 운영이 활발한 성과를 내는 이유 가운데 하나를 더 꼽자면 미리보기 코너의 완성도를 들 수 있겠다. 한 주 전에 다음 주 방송을 예고하는 소개 글이 올라오는 미리보기 코너는 조회 수가 높을 뿐만이 아니라 그 글의 완성도도 독립적인 하나의 작품으로 여겨질 만큼 높다. 제작진이 프로그램에 기울이는 정성을 미루어 짐작할 수 있는 대목이다. 이 정도의 상황을 종합해보면 채 일 년도 되지 않은 <다큐 에세이, 여기 이사람>이 지역사회에 무척 단단히 뿌리내리고 있음을 충분히 짐작할 수 있다. 그렇다면 이동신PD가 체감하는 반향은 어느 정도일까.

“저희 프로그램은 일단 출연자의 만족도가 높으시더라고요. 취재원의 목소리를 충분히 전달하고 그분들이 생각하는 최고의 가치를 표현하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출연 후 일이 잘 풀린다는 이야기를 해 주시기도 하세요.(웃음) 그럼에도 생활이 공개된다는 점 때문에 처음에 꺼려하시다가 방송 영상을 보시고 마음을 돌리시는 경우도 종종 있고요. 방송이 나가고 한참이 지나서도 시청자 분들한테 문의가 오는 경우들도 있는데 그럴 때는 정말 흐뭇하죠.”

여수 밤바다 이 바람에 걸린 알 수 없는 향기가 있어

네게 전해주고파 전활 걸어 뭐하고 있냐고

나는 지금 여수 밤바다 여수 밤바다

'버스커버스커'가 이렇게 노래한 후부터 여수는 대한민국의 청춘들에게 아련한 낭만의 밤바다를 꿈꾸게 하는 도시가 되었다. 가보지 않고도 추억하게 만드는 힘이 노래에 있듯이 <다큐 에세이, 여기 이사람>은 보지 않고도 향기를 맡게 하는 힘이 있다. 그 향기의 힘은 사람에서 비롯된 것 일진데, 평범한 지역 사람의 향기를 전하는 이 프로그램이 여수 밤바다의 조명과 향기처럼 널리 또 아름답게 오래도록 퍼지길 기원한다.

*필자 김욱한 PD는 포항MBC 편성제작센터장이면서 PD연합회 대구경북지부장을 역임하고 있다. 술과 썸타면서 방송과 연애하고 있고 책과 밀당 중이다. '변방에서 낮게 나는 부엉이'라는 황당한 닉네임을 스스로 즐겨 사용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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