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니면 그만? 중앙일보의 오보 논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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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동기의 ‘톡톡’ 미디어 수다방] 4월 총선이 걱정되는 한국의 정치보도

“꼭 정권교체 하세요, 꼭” 이희호 여사, 안철수 지지

<중앙일보>가 1월 6일 보도한 기사(8면) 제목이다. “고(故) 김대중 전 대통령의 부인 이희호 여사가 무소속 안철수 의원에게 사실상 지지 의사를 밝혔다”는 게 기사의 핵심 내용이다. <중앙일보> 기사가 주목받은 이유가 있다. 야권이 분열되는 상황에서 ‘호남 민심’이 어디로 향할 것인가를 가늠할 수 있는 바로미터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이희호 여사가 무소속 안철수 의원 지지의사를 밝혔다는 건, 4월 총선을 앞둔 시점에서 정치권에 미치는 여파가 클 수밖에 없다.

또 다른 이유는 <중앙일보>가 그동안 언론의 추측성 보도에 종지부를 찍었기 때문이다. <조선> <중앙> <동아일보> 등 이른바 보수신문은 호남민심 향해와 관련해 ‘안철수 20분’ ‘문재인 8분’과 같은 기사를 쏟아냈다. 이희호 여사가 문재인·안철수 의원을 독대한 시간이 다르다는 점을 강조하며 호남 민심이 안철수 쪽에 기울었음을 시사했다. 야권 지지들 사이에 미묘한 신경전까지 벌이게 만든 이 보도는 <중앙일보> 보도로 일단락되는 듯 했다.
 

▲ 2016년 1월 6일자 <중앙일보> 6면. ⓒ중앙일보

안철수 핵심 관계자 멘트만 있는 중앙일보 기사…‘기본 요건’에 미흡

하지만 <중앙일보> ‘안철수 지지’ 보도는 오보 논란에 휩싸였다. 이희호 여사의 3남인 김홍걸씨가 보도 내용이 사실이 아니라고 반박한 것이다. 김홍걸 씨는 지난 6일 보도자료를 통해 “ 중앙일보 보도와 관련해 어머님께 직접 확인한 결과, 어머님은 안철수 의원의 말씀을 듣기만 하였을 뿐 다른 말씀을 하신 적이 없음을 확인했다”고 강조했다.

김씨는 또한 “사실과 다른 보도 내용에 대해 어머님께서는 어이가 없어 하셨다”면서 “어머님 뜻과 전혀 다르게 보도된 것에 대해 매우 유감스럽게 생각하셨다. 중앙일보에 관련 보도를 정정해 주실 것을 요청 드린다”고 밝혔다.

김홍걸 씨가 공식적으로 밝힌 입장을 논외로 하더라도 <중앙일보> 기사는 ‘저널리즘 기본’에서 상당히 벗어나 있다. 우선 <중앙일보> 기사에 등장하는 취재원이 모두 ‘안철수 의원 관계자’ ‘안철수 의원 핵심 관계자’라는 점이다. ‘안철수 의원 관계자’ 발언만 가지고 이희호 여사가 안철수 의원을 지지했다는 기사를 보도한다? 야권이 분열된 대단히 민감한 시점에? 내가 데스크였다면 이 기사는 ‘보류’ 아니면 ‘취재 보강지시’를 내렸을 만큼 기본요건이 안 된 기사였다.

<중앙일보>의 단정적 제목도 고개를 갸우뚱하게 만든다. 안철수 의원 측 관계자 발언을 바탕으로 기사가 작성됐다면 “이희호 여사, 안철수 지지”와 같은 단정적 제목은 피했어야 했다. “꼭 정권교체 하세요, 꼭”과 같은 발언 내용도 직접 인용이 아니라 안철수 의원 측 관계자 전언으로 갔어야 했다. 굳이 보도를 하고자 했다면(?) 그런 방식으로 기사화 했을 거라는 얘기다.

중앙일보에 등장한 ‘배석한 안철수 의원 측 관계자’는 누구?

더 이해가 안 가는 대목은 <중앙일보> 기사에 등장한 ‘회동에 배석한 안 의원 측 관계자’가 누구인가 하는 점이다. <중앙일보>는 회동에 배석한 안 의원 측 관계자가 전한 내용을 바탕으로 기사를 작성했지만 <미디어오늘> 보도에 따르면 당시 비공개 회동 때는 두 분(이희호 여사, 안철수 의원)만 들어가셨을 뿐 아무도 안 들어간 것으로 알려졌다. 이런 저런 상황을 종합해보면 <중앙일보> 보도는 오보일 가능성이 높다.

의구심이 드는 건 <중앙일보>가 필자가 언급한 ‘기사의 미흡한 점’을 몰랐을까 하는 것이다. 안철수 의원 측 관계자의 발언이 신빙성이 있다고 <중앙일보>가 판단했더라도 미묘한 시점에 나온 이런 발언이 언론플레이 가능성이 있다는 걸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정치인들의 생리와 생존법칙, 언론활용 방식 등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정치부 기자들이 ‘뻔히 수가 보이는 발언 의도’를 파악하지 못했다면 ‘미안하지만’ <중앙일보> 정치부는 문을 닫는 것을 심각히 검토해야 한다.

‘오보 논란’ 이후 <중앙일보>가 보인 태도도 문제다. 김홍걸 씨가 <중앙일보>에 공식적으로 정정보도 요청을 하고, 보도 이후 정치권에 적지 않은 파장이 일었지만 <중앙일보>는 지금까지 침묵으로 일관하고 있다. 정정보도 요청에 대해 명확한 입장을 지면을 통해 밝힌 적도 없고, 후속보도도 없다. 중앙일보 인터넷에는 해당 기사 앞에 여전히 ‘단독’이라는 타이틀이 달려 있다.

한국 정치보도의 문제점…따옴표 보도 기승·팩트체크는 뒷전

문제는 이 같은 ‘인용 보도’를 빙자한 ‘정체불명의 추측성 보도’가 4월 총선을 앞두고 기승을 부릴 가능성이 많다는 것이다. 한국 정치보도의 가장 큰 문제점 가운데 하나는 발언의 진위여부는 논외로 한 채 익명을 가장한 정치인과 핵심 관계자 등의 ‘따옴표 보도’가 많았다는 점이다. 해당 발언이 사실에 부합한 지를 검증하는 ‘팩트체크’는 항상 뒷전이었다. <중앙일보> 오보 논란은 바야흐로 한국이 정치의 계절로 본격 진입했음을 보여주고 있다.

 

* 필자는 미디어평론가로 CBS라디오 ‘뉴스로 여는 아침’ 조간브리핑, 고발뉴스 팟캐스트 '민동기의 뉴스박스', 국민라디오 '민동기의 뉴스바', 팟캐스트 '관훈나이트클럽'을 진행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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