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은 한 편의 연극을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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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은 한 편의 연극을 보았다
‘짜고 친 고스톱’으로 끝난 대통령 기자회견 “머리 좋다” 애드립이 씁쓸한 이유
  • 최영주 기자
  • 승인 2016.01.13 13:5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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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근혜 대통령이 13일 대국민담화 발표 및 기자회견을 가졌다. YTN이 이번 기자회견에 대해 국정 전반에 적극적 질의와 응답이 이어졌다고 평가하고 있다. ⓒ화면캡처

“제가 머리가 좋으니까 그래도 이렇게 기억을 하지, 머리가 나쁘면 이걸 기억을 못해요. (기자 한 분이 한 번에) 질문을 여러 개 하시니까(웃음).”(박근혜 대통령, 2016년 1월 13일 대국민담화 및 기자회견 중)

박근혜 대통령의 대국민담화 발표 및 취임 이후 세 번째 기자회견이 13일 오전 10시 30분부터 열렸다. 대국민담화 이후 이어진 기자회견에서 13명의 기자들의 질문과 이에 대한 박 대통령의 답변이 이어졌다.

한 기자가 한 번에 질문을 서 너 개씩 하자 박 대통령이 “제가 머리가 좋으니까 그래도 이렇게 기억을 하지, 머리가 나쁘면 이걸 기억을 못해요. (기자 한 분이 한 번에) 질문을 여러 개 하시니까”라며 ‘쇼맨십’과 함께 기자들의 웃음을 이끌어냈다.

순서와 질문이 정해져 있는, 그리고 ‘추가질문’ 없는 기자회견이라는 점에서 박 대통령의 발언은 그야말로 연극 무대 연기자의 애드립에 가까웠다. ‘주연 대통령, 조연 기자들, 극본 및 감독 청와대’라는 비판이 이어지는 것도 이러한 이유다.

취임 후 약 315일 만에 가진 첫 번째 기자회견(2014년 1월 6일), 취임 후 두 번째 기자회견이자 집권 3년차 기자회견(2015년 1월 12일), 그리고 취임 후 세 번째 기자회견(2016년 1월 13일)에서 다른 점은 ‘조연’, 다시 말해 ‘기자’들과 질문 내용이 바뀌었다는 것 정도다.

▲ 박대용 <뉴스타파> 기자가 지난해 1월 12일 열린 대통령 기자회견에 앞서 질문 순서를 올려 화제가 된 바 있다. 사진은 당시 트위터에 올라온 질문 순서. ⓒ화면캡처

첫 번째 기자회견에선 <연합뉴스>, MBC, <동아일보>, <매일경제>, <대구일보>, <뉴데일리>, 채널A, <로이터>, <세계일보>, <중부일보>, YTN, 중국 CCTV 순으로 모두 12인의 내외신 기자들이 질문 했고, 이른바 ‘진보’ 성향으로 분류되는 <경향신문>, <한겨레>, <오마이뉴스>, <프레시안> 등은 질문의 기회를 할당받지 못했다.

두 번째 기자회견 역시 참석기자 120명 가운데 16명의 기자가 질문했다. 90분 동안 이뤄진 기자회견 동안 <서울신문>, SBS, <국민일보>, <머니투데이>, <강원도민일보>, MBN, <데일리안>, <뉴스1>, <경향신문>, <연합뉴스>, 미국 <월스트리트저널>, 채널A, <한국경제>, <전북도민일보>, <중앙데일리>, CBS 순으로 질문이 진행됐다. 이번에는 이른바 ‘진보’ 성향의 언론사도 포함됐지만, 질문을 할 시간을 할당받은 기자들이 사전에 약정된 질문을 했다. 그 외에 ‘추가질문’은 없었다. 이 같은 기자회견 모습에 국민들은 ‘짜고 치는 고스톱’이라는 비판을 했다.

▲ 유출된 13일 대통령 기자회견 질문 순서 및 질문지. ⓒ국민TV 뉴스K

세 번째 기자회견에서도 이 같은 모습은 반복된다. 기자회견 하루 전 인터넷과 SNS(소셜네트워크서비스)에는 <서울신문>, KBS, <조선일보>, <이데일리>, <헤럴드경제>, <경상일보>, OBS, <뉴데일리>, JTBC, <한국일보>, 평화방송, 일본 <마이니치>, <대전일보> 등 총 13명의 기자가 질문을 할 것이라는 내용이 돌았다. 당일 기자회견은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순서대로 진행됐다. 기자의 ‘필수품’이라 불리는 노트북을 가지고 있는 기자의 모습을, 그리고 수첩을 들고 있지만 대통령의 답변을 받아 적는 기자를 찾기 힘들었다. 답변하는 도중 수시로 아래 무언가를 바라보는 대통령의 모습과 대통령의 얼굴만 바라보는 기자들의 모습이 이어졌다. 지난해에 이어 이번에도 추가질문 없이 끝났다.

기자회견은 보통 기자들이 손을 들어 질문 기회를 요청하고 답변할 자가 기자를 지목한다. 그러면 기자는 궁금한 걸 질문한다. 답변이 부족하거나 추가로 묻고 싶은 게 있으면 거듭 추가 질문을 한다. 그러나 한국 대통령의 기자회견에서는 이 같은 모습을 찾기 힘들다. 오죽하면 미국 대통령의 기자회견 내용과 기자들과 치열하게 질문과 답변 공방을 벌이는 모습이 화제가 될까. 한국에서는 대통령이 ‘기자회견’을 한다는 것 자체가 이슈이며, 그 이후 나오는 ‘기자회견 질문 순서 및 내용’이 화제다.

▲ 박근혜 대통령이 13일 오전 대국민담화 발표에 이어 기자회견을 진행한 가운데, 기자들의 질의에 대해 응답을 하면서 계속 아래를 바라보는 모습을 볼 수 있다. ⓒ화면캡처

물론 그동안 대통령 기자회견에서 질문할 기자와 질문 내용, 질문의 수 등을 사전에 조율하는 것이 우리나라 대통령 기자회견의 일종의 ‘관례’이기도 했다. 그러나 그동안 세 차례의 기자회견에서 보인 모습은 단지 ‘관례’이기 때문일까, 아니면 대통령에게는 불편한 질문을 하지 못하는 우리나라 언론 현실을 반증하는 모습일까. 박 대통령의 ‘쇼맨십’이 불편한 이유이기도 하다.

심인보 <뉴스타파> 기자는 트위터에 “대통령 기자회견에서 가장 황당한 건, 자기들끼리 질문 순서를 이미 정해놓고도 앞 다퉈 손을 드는 청와대 출입기자들의 모습입니다. 청와대의 연출에 적극 협조하는 셈인데요, 손 들 사람까지 미리 정해놓은 것은 아닌지 궁금하네요”라고 지적했으며 최경영 <뉴스타파> 기자 역시 트위터에 “지겹다. 이미 질문순서 다 정해놓고 자기들도 담 순서 누구인줄 다 알면서 짐짓 손드는 저 청와대 출입기자들의 찬조출연은 무엇이냐”라고 비판했다.

▲ <뉴스타파>가 박근혜 대통령의 신년 기자회견에서 정해진 기자가 미리 조율된 질문만을 하는 모습에 대해 비판하고 있다. 2016년 1월 13일 기자회견에 대한 보도로 보이지만, 사실 해당 사진은 2015년 1월 12일 기자회견에 대한 내용이다. ⓒ화면캡처

‘백악관의 전설’로 불리는 헬렌 토머스 기자는 “언론은 정례적으로 대통령에게 질문할 수 있는 특권을 갖고 대통령에게 책임을 요구할 수 있는 특권을 갖고 있다”, 그리고 “대통령에게 일문일답할 수 없는 사회는 민주주의가 아니다. 나는 국민을 대표해 거칠고 어려운 질문을 던진다”고 말했다. 여기에 우리 언론이 생각하고 고민해야 할 지점이 담겨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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