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상파 뉴스, 기자회견 중계식 보도 ‘비판 정신’ 실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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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도비평] 박근혜 대통령 대국민담화 및 기자회견

박근혜 대통령이 지난 13일 대국민담화 및 취임 이후 세 번째 기자회견을 열고 위안부 합의에 이를 수밖에 없었던 절박한 사정을 설명하고, 경제위기 속 ‘민생’을 위해서라도 국민과 국회가 나서 정부여당이 추진하고 있는 노동개혁법과 경제활성화법 처리에 힘을 모아달라고 호소했다. 그러나 어떤 점에서 국민을 위한 법인지, 왜 시급하게 처리하면 안 되는지에 대해선 기자회견에서도 지난 13일 지상파 3사 메인뉴스에서도 보이지 않았다. 대통령의 절박함과 호소만 보일 뿐 ‘질문’과 ‘비판’은 없었다.

▲ 2016년 1월 13일 KBS <뉴스9>. ⓒ화면캡처

지상파 3사 메인뉴스, 대통령의 ‘절박함’과 ‘호소’ 전달

박 대통령은 지난 기자회견에서 기자들을 향해 “제가 질문을 수십 개 받았으니까 저도 한 개 정도는 질문을 드릴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답을 하실 의무는 없으시지만”이라며 “이런 상황에서 대통령과 행정부가 더 이상 어떻게 해야 되겠느냐, 이런 것을 여러분께 한번 (웃음) 질문을 드리고 싶은 심정”이라고 말했다. 이 안에는 국회, 정확히는 야당과 국회의장, 그리고 비판여론에 대한 비판이 담긴 것으로 보인다.

박 대통령은 기간제법을 제외한 노동개혁 4법을 제시하며 한 발 물러선 듯 보이지만 대신 ‘파견법’은 받아들여달라고 강조했다. 그러나 파견법은 ‘불법의 합법화’라는 비판을 받고 있는 내용으로, 사내 불법하청 문제로 사회 갈등을 빚고 있는 기업에 유리한 법안이다. 이외에도 노동개혁법이 통과되면 언제든 기업의 의지에 따라 노동자 해고가 가능하고 비정규직을 양산하게 될 것이라는 점에서 노동계 안팎에서 비판을 받고 있다.

그럼에도 박 대통령은 이념의 문제가 아니라 “국민과 청년의 일자리”, 즉 ‘민생’을 위한 것임을 강조하며 국회, 사실상 야당과 그간 직권상정을 거부해 온 정의화 국회의장을 비판했다. “국회의장께서도 국가와 국민을 생각하시지 않겠습니까. 그래서 좀 국민과 국가를 위해 판단을 내려주실 것으로 생각합니다”라고 한 박 대통령의 말은 ‘직권상정’을 거듭 압박하는 것으로 읽힌다.

그러나 KBS와 MBC, SBS 등 지상파 3사 메인뉴스에서는 대통령의 절박함과 호소만 전달되었다.

KBS <뉴스9>는 ‘[앵커&리포트] 노동개혁 4법·경제활성화법 절박성 호소’ 리포트에서 “정부와 여당이 하나를 양보한다면 무엇을 할까요? 박 대통령은 고심 끝에 기간제법을 선택했다. 야당의 정치적 철학과 관련이 있어서 포기하기 어려워 한다는 점을 감안한 결정”이라며 “박 대통령은 현 상황을 IMF 직전의 상황에 비유했다. 당시 선제적으로 개혁하지 않아 엄청난 아픔을 겪었던 일을 상기시키며, 노동개혁 4법과 경제활성화법 처리의 절박함을 호소했다”고 보도했다. 이어 KBS는 “박 대통령은 국민과의 약속을 일방적으로 파기할 수는 없다며 한국노총의 태도 변화도 촉구했다”고 했지만 한국노총이 왜 노동개혁 합의에 대해 ‘파탄’이라고 했는지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았다.

MBC <뉴스데스크>(‘“청년 일자리 걸린 노동개혁 시급, 고통 분담 있어야”’)와 SBS <8뉴스>(‘“기간제법 뺀 노동 4법이라도”…우선 처리 호소’)도 각각 박 대통령이 한국노총에 대화와 타협으로 풀어갈 것을 당부한 것, 그리고 정 국회의장에게 ‘국민과 국가를 위해’ 직권상정 해줄 것을 우회적으로 요구한 것을 전달할 뿐, KBS와 마찬가지로 한국노총이 파기 가능성을 밝힌 이유라든지 정 국회의장이 왜 직권상정을 거부해왔는지에 대한 이야기는 볼 수 없었다.

▲ 2016년 1월 13일 SBS <8뉴스>. ⓒ화면캡처

질문·비판 보이지 않아

또한 정작 사과와 보상의 대상자인 피해자가 인정하지 않는 ‘사과’를 ‘절박한’ 심정으로 이뤄냈으니 사실상 받아들이라고 말하는 박 대통령의 입장을 지상파 방송사들은 그대로 전달하는데 그쳤다.

박 대통령은 일본과의 ‘위안부 피해자 문제’ 합의에 대해 “한 분이라도 살아계실 때 사과를 받고 마음의 한을 풀어야 하지 않습니까. 명예와 존엄을 회복시켜 드려야 한다는 다급하고 절박한 심정으로 노력했습니다”라며 ‘졸속합의’, ‘피해자 없는 일방적 합의’라는 비판에도 불구하고 “제대로 합의되도록 노력한 것은 인정할 만하다”고 자평하기까지 했다.

KBS는 “박 대통령은 한일 위안부 협상에 대해서도 설명했는데요. ‘100% 만족할 순 없지만, 절박한 심정으로 노력했다’고 설명했다. 소녀상 철거 문제는 정부가 이래라 저래라 할 문제가 아니라는 점을 거듭 분명히 했다”(‘박 대통령 “위안부 협상, 절박한 심정으로 노력”’)고 보도했으며, SBS는 “박 대통령은 일본과의 위안부 합의 비판 여론에 대해서는 목소리를 높여서 정면으로 반박했다. 합의 무효를 주장하는 건 정치 공세라고 일축했다”(‘박 대통령 “위안부 합의 무효 주장은 정치공세”’)며 박 대통령의 입장을 중계하는 데 그쳤다.

▲ 2016년 1월 13일 MBC <뉴스데스크>. ⓒ화면캡처

이날 박 대통령의 기자회견에 대해 MBC는 “박 대통령은 기자들의 쏟아지는 질문에는 농담으로 분위기를 바꾸기도 했다”, “경제활성화 복장으로 불리는 붉은색 옷을 선택한 박 대통령에게 질문을 한 기자는 13명이나 된다”(‘박 대통령, 반 총장에 우호적 평가 ‘농담·한숨도’’)고 보도했다.

그러나 국내 여론은 물론 외신조차도 “이 정부(박근혜 정부)는 외신을 다루는 아주 웃기는 방식을 가지고 있습니다. 오히려 이명박 시절이 더 나았죠”, “‘내가 머리가 좋으니까 기억을 다 하지’ ㅋㅋㅋ 아휴”(제임스 피어슨 로이터통신사 서울특파원, 트위터) 라고 할 정도로 기자회견에서 질문을 할 수 있는 기자와 질문순서, 질문이 정해져 있는, 그리고 ‘추가질문’ 없는 기자회견 방식에 대한 비판조차도 볼 수 없었다.

최경영 <뉴스타파> 기자가 지난 13일 박 대통령의 기자회견 이후 자신의 트위터에 “그렇다 박근혜 대통령의 말대로 노동악법은 이념문제가 아니라 민생문제기 때문에 반대하고 있는 것이다. 그건 노동자의 해고에 관한 문제고 기업의 이익에 관한 문제다. 박 대통령의 민생은 대체 누구의 민생이냐”라고 질문했다.

기자회견에서 그간의 ‘관례’에 따라 질문하지 못했다면 적어도 뉴스에서는 보도를 통해 질문하고 비판할 수 있어야 하는 것 아닐까. 13일 기자회견이 대통령에게는 불편한 질문을 하지 못하는 한국의 언론 현실을 반증하는 모습이었다면, 13일 보도는 정권에 대해 비판하지 못하는 언론의 현실을 반증하는 모습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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