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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안부' 문제에 대한 ‘문화적 증거’ 남기고 싶다”

[인터뷰] '위안부' 피해여성 이야기 담은 영화 ‘귀향’ 조정래 감독 구보라 기자l승인2016.01.15 08:11: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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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군 ‘위안부’ 피해 사실이 세상에 드러난 지 25년. 피해가 있은 지도 벌써 80년 가까이 되었다. 얼마 전 있었던 12·28 한일 협상 타결은 피해자를 배제한 양국의 선언적 협상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고스란히 위안부 피해자의 문제는 오늘날 우리의 문제로 치환된다. 일본대사관 앞 ‘평화의 소녀상’을 지키기 위해 밤을 지새우는 학생들의 마음이나 위반부 피해 사실을 그린 영화 <귀향>의 상영을 바라며 후원을 자처한 시민의 마음이 그렇다.

곧 개봉을 앞둔 영화 <귀향>은 16살에 강제로 '위안부'로 끌려가 갖은 고초 끝에 극적으로 탈출한 한 소녀의 실화가 바탕이 되었다. 이 영화가 의미가 있는 건 ‘크라우드 펀딩’으로 시민의 손으로 만들어졌다는 데 있다. 어렵게 관객을 만날 수 있게 된 <귀향>의 조정래 감독을 지난 1월 8일 서울 여의도에서 만나 영화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편집자>

조정래 감독이 작품을 구상한 건 14년 전, 2002년이었다. 광주 퇴촌에 있는 나눔의 집으로 국악봉사활동을 하러 다녔던 그는 강일출 할머니가 심리치료 중에 그렸던 ‘태워지는 처녀들’을 보았다. 위안부로 중국에 끌려간 할머니는 모진 고초로 병에 걸렸는데 치료를 해 준다는 말을 믿고 따라가다가 총살을 당한 수많은 여성이 구덩이에서 불태워지는 장면을 목격했다. 자신도 똑같은 신세가 될 뻔했는데 갑자기 한국군과 일본군과의 교전이 벌어져 가까스로 살아났다. 할머니의 기억은 고스란히 그림에 담겨있었다. 그림 속 이야기를 듣고 그는 큰 충격을 받았다.

할머니의 그림과 증언을 통해서 그 시절, 20만 명이나 되는 조선의 여성들이 일본군 '위안부'로 취업사기, 협박, 납치, 폭력, 유괴로 인해 끌려갔고, 고향으로 돌아가지 못한 채(정확한 통계가 없으나, 1만 명이 채 되지 않을 것), '태워지는 처녀들'의 그림처럼 처참하게 버려지거나 살해된 사실이 세상에 알려졌다.

▲ 강일출 할머니가 그린 '태워지는 처녀들' ⓒ강일출

“그림을 보고 충격이 컸던지 오한이 들고 감기몸살까지 났어요. 이 그림의 이야기를 알려야겠다는 생각을 했죠. 그러던 어느 날 시신 구덩이에서 불타고 있는 소녀들이 자리를 툭툭 털고 일어나 하늘로 날아 고향으로 돌아오는 꿈을 꾸었어요. 하늘을 날고 바다 위를 나는 거에요. 그러면서 눈이 확 떠졌죠. 그래서 바로 적었죠. 최초의 기록이에요.”

2002년, 그는 영화를 통해서나마 억울하게 돌아가신 영혼들이 고향으로 돌아왔으면 좋겠다는 마음으로 시나리오 작업을 시작했다. 그런데 다큐멘터리가 아닌 극영화를 통해서 표현해야겠다고 생각을 한 건, 초등학교 교사인 <귀향> 후원자의 얘기 때문이었다. 이 교사가 학생들에게 “'위안부' 할머니들이 끌려갔어요.”라고 하니까 학생들이 “할머니가 왜 끌려갔느냐”고 물었다는 거다. 그 얘기를 듣고 나니 고민이 더 깊어졌다고 한다. ‘이걸 우리가 아이들한테 어떻게 가르쳐야 할 것인지…….’ 그래서 아이들이 보고도 이해할 수 있는 극영화로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위안부'에 끌려갔던 소녀들의 평균 나이는 16세밖에 안 돼요. 11세에 끌려간 경우도 있어요. 당시 16세라면 초경도 시작 안 하고, 신체나이로는 12세밖에 안 되었을 때죠. 신체 파열과 같은 병으로 돌아가신 분들이 너무나도 많고……. 소녀상이 왜 있겠습니까? 그 당시 소녀였기 때문이거든요. 그런데 일본의 우익들은, ‘직업여성들이었다, 매춘부였다’, 그런 말도 안 되는 얘기를 하는 거죠. 그래서 저는 소녀들이 그 고초를 당했던 것을 ‘눈으로 목도할 수 있도록 만들자’고 생각했어요.

조 감독은 영화 내용을 좀 더 발전시킬 수 있도록 여러 군데 지원 신청도 해보았으나 잘되지 않았다. 그렇게 시간만 흘렀다. 제작사를 못 구하다 보니 배우를 섭외하는 것 또한 힘들었다. 그러다 2014년 투자를 받기 위한 새로운 방법으로 크라우드 펀딩 방식을 사용했다.

펀딩을 통해 1만 4737명의 시민이 2억 5098만원의 제작비를 후원했다. 뉴스펀딩 후원금, 일본과 미국의 교민들이 건넨 제작비, 제작진 계좌로 직접 입금한 많은 시민의 후원까지 모두 더하면 5억여 원에 달했다. 조 감독의 말처럼 기적이 일어난 거다. 그는 그 뒤로도 후반 작업 등의 제작비를 마련하기 위한 2차 펀딩을 시도했다. 이렇게 성금이 모여져 총 5만 2525명이 후원했다.

▲ 영화 귀향의 조정래 감독

“1차 때에 모였던 돈이 제작을 위한 쌈짓돈이 되었죠. 물론 제작하다 보니 일주일 만에 제작비가 바닥났어요. 그때 스태프와 배우들이 나서서 제작비를 모으러 다녔어요. 임성철 제작 PD는 장모님께서 돈을 빌렸고, 살고 있던 곳에서 이사도 가야 했어요. 정말 고생했어요. 촬영에 집중하다가 어느 순간 통장을 보면 5만원, 15만원 이런 식으로 돈이 입금되어있는 걸 보게 되었어요. 그걸 실제로 겪어보면 정말 기가 막혀요. 다음날 보면 500만원이 입금되어있기도 하고 말이죠. 그럼 그걸 진행비로 쓰고 그랬죠.“

보통 영화들이 80회에서 100회까지 촬영하는 데 반해 <귀향>은 총 44회차로 촬영이 진행되었다. 하루에 2회차 분량을 찍은 셈이다. 게다가 배우들이 대부분 ‘노개런티’로 영화에 참여했고, 스태프들의 작품에 대한 열의가 엄청났다. 예산이 부족하니깐 애초에 비싼 장비는 빌릴 엄두도 하지 않았다. <명량>, <암살> 등의 작품을 제작했던 실력 있는 스태프들이 오히려 “이 장면은 이렇게 찍으면 안 된다”며 비싼 장비를 저렴하게 빌려오겠다고 나설 때도 있었다. 심지어 세트를 맡았던 한 대표는 나중에 알고 봤더니 카드론을 받아서 직원들 월급을 주면서까지 <귀향> 제작에 함께 해주었다.

이렇게 <귀향>을 찍기 위해서 조 감독부터, 스태프, 배우, 후원해준 많은 후원자, 그리고 할머니들까지 모두 큰 힘을 보탰기에 제작할 수 있었다. 제작하기에 힘들었음에도 끝까지 작품을 만들 수 있었던 원동력은 어디에서 나온 것일까?

▲ ⓒ제이오엔터테인트

“처음에 할머니들께 할머니들의 이야기를 영화로 만들겠다고 말씀드렸더니, ‘그래, 잘 만들어봐’라고 안 하셨어요. ‘우리 이야기가 많이 알려질 수 있도록 도와 달라’고 하셨죠. 그 말이 ‘만들어 달라’는 말보다도 더 무서운 명령으로 다가왔어요. 그런 얘기를 해주었던 분들이 시간이 흐르면서 한 분 두 분 다 돌아가셨어요. 지금은 이제 마흔여섯 분밖에는 안 계신대요. 그렇게 할머니들이 한 분씩 돌아가실 때마다 영화를 더욱더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후반 제작을 마친 후 지난해 12월 7일 제일 먼저 ‘나눔의 집’에 가서 할머니들께 보여드렸다. 그리고 12월 한 달간 7개 도시에서 ‘후원자 시사회’를 열었어요. 후원금만으로 진행해야 해서 어려움을 예상했지만, <귀향>의 후원자가 극장 대관에도 많은 도움을 주었다. 그렇게 고비를 또 넘겼다. 시사회마다 극장은 꽉 채워졌다. 배우들은 자비로 지역 시사회를 찾아와 무대 인사를 했다. 매번 상영이 끝날 때마다 눈물바다였고, 관객들은 배우들을 꼭 껴안았다.

“지금까지 <귀향>은 후원자 시사회를 포함해서 14번 상영이 되었어요. ‘영화가 한 번 상영될 때마다 한 소녀의 영령이 고향으로 돌아온다‘고 생각해요. 지금까지 열네 분이 오신 거죠. 이렇게 다른 시사회를 준비하면서 개봉으로 연결되는 게 이루어졌으면 생각하고 있고요.”

개봉을 위해서 배급사를 찾느라 시간이 걸렸는데 마침 인터뷰 전 날, 배급사가 정해졌다. 많은 관객이 영화를 관람했으면 했던 바람이 이루어진 셈이다.

▲ 영화 <귀향>에서 소녀들이 태워지는 장면 ⓒ제이오엔터테인먼트

“얼마 전 한일 협상이 타결되었는데, 어떻게 사과라는 것이 20만명이나 되는 피해자들이 계시는데 이걸로 사과 끝났으니깐 얘기하지 말라는 것 자체가 상식적으로 말이 되나요? 피해자인 할머니들이 지금 너무 힘들어하시잖아요. 안타까워요. 우는 애 달래듯이 “사과했으니깐 땡!” 이거는 정말 말도 안 되는 일이라고 생각해요. 이런 이야기들을 저는 문화인으로서 <귀향>에 담았어요. ‘문화적 증거를 만들겠다’는 생각으로 만들었어요.”

이렇게 문화적 증거로써 만들어진 <귀향>은 ‘위안부’를 단순히 소재로 만든 영화가 아니다. 그 당시의 처참했던 풍경을 극영화로서 재현한 작품은 처음이라 할 수 있다. 감독이 직접 할머니들에게서 들은 이야기를 바탕으로, 이 이야기를 알려야 한다는 절실함으로 만들었다. 또 제작하지 못할 수도 있는 상황이었으나 많은 사람의 관심과 후원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귀향>을 통해 '위안부'의 진실이 더 많은 사람들에게 알려지고 그로 인해 할머니들의 한이 풀어지는 것, 그것이 바로 <귀향>과 함께했던 사람들, 그리고 개봉 이후 관람할 관객들 모두의 바람일 것이다. “많은 사람이 극장에 오셔서 고향으로 갈 딸들을 맞이하길 바란다”는 조 감독의 바람처럼 말이다.

▲ 영화 '귀향' 포스터

 


구보라 기자  9bora@pdjournal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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