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로거 수사대와 공조를 이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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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윤기의 시시콜콜 취재노트 ⑤] ‘추적60분-제주 7대 자연경관, 의혹의 실체는’

이번에는 2012년 1월과 2월, 두 차례 <추적60분>을 통해 방송된 ‘제주, 7대 자연경관, 의혹의 실체는’편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자 한다. 두 번의 방송은 당시 ‘묻지마 애국심’으로 추진되던 제주도의 7대 경관 사업의 문제점들을 대중적으로 알리는 계기가 되었다. 하지만 PD인 나에게는 이전에 겪지 못했던 남다른 경험을 했던 방송이기도 하다. 1인 미디어 블로거들과 협업을 통해서 방송이 만들어졌기 때문이다.

지금이야 7대 경관 이야기를 꺼내면 적지 않은 사람들이 사기집단에 우리가 이용당한 사건이 아니냐고 말한다. 하지만 그때는 달랐다. 제주도청과 우리 정부는 7대 경관 선정을 국가적인 목표로 삼았다. 대통령까지 나섰고 전직 국민총리가 추진위원장을 맡을 정도였다. KBS를 비롯한 대한민국 대부분의 언론들도 이를 물심양면으로 도와주었다. 대다수 언론들은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제주도가 7대 자연경관에 뽑힐 수 있도록 유료 전화투표를 하고 또 별도의 성금까지 모으는 것이 당연한 애국심의 표현이라 여기게끔 여론을 부채질 했다. 주최 측에 대한 제대로 된 검증도 없었고, 선정 절차가 투명하게 이루어지는지 누구도 의문을 제기하지 않았다. 메이저 언론들이 책임을 방기하고 있는 사이, 어느새 7대 경관 본 투표가 시작되었고 최종 발표가 얼마 남지 않은 시점이 되었다. 그때가 2011년 초겨울이었다.

▲ KBS '추적60분-제주 7대 자연경관 의혹의 실체는' ⓒKBS

<추적 60분>은 여러 차례 회의를 통해 더 늦기 전에 이 문제를 공론화자고 의견을 모았다. 다행히 투표가 시작되기 전부터 온라인상에서는 1인 미디어와 지역 언론인들에 의해서 7대 경관 사업의 문제점들이 공유되고 있었다. 논란이 되고 있던 주최재단 (스위스 소재 ‘뉴세븐원더스재단’)이 공신력이 없으며 심지어 제대로 된 사무실도 없는 유령재단이라는 것이 그 핵심이었다. 사실 이 부분을 입증하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았다. 현장에 가서 탐문해 보면 된다.

하지만 이 사건은 눈으로 드러나지 않는 의혹들, 예를 들어 선정과정이 투명하게 이루어지고 있는지 전화투표 자체는 공정한지 등에 대한 진실을 밝혀내는 것이 논란의 실체에 접근하는 길이었다. 또 그런 취재가 이루어져야 뒤늦게라도 <추적60분>이 이 아이템을 다루는 최소한의 명분이 될 수 있었다. 그런데 우리가 가지고 있는 리서치 능력의 한계도 명확했다. 실체에 접근하는 것도 여간 어려운 것이 아니었고 실마리를 잡는다 해도 남은 시간에 비해 조사해야할 양이 실로 어마어마했다. 지금까지 공개된 네티즌 수사대의 진도를 따라가는 것조차 버거워 보였다. 제작진의 고민이 깊어졌다.

계속되던 제작진의 회의 중 누군가가 이런 제안을 했다. 인터넷에서 이 문제를 제기하고 있는 블로거들과 함께 협업을 해보면 어떻겠냐는 말이었다. 사실 지상파 방송 제작자들이 시사프로그램을 만들면서 다른 언론사도 아닌 블로거들과 함께 협업을 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나만 해도 ‘지상파 시사프로그램이 가지고 있는 자존심에 금이 가는 것은 아닌가’ 걱정이 들었던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우리 팀의 막내 작가가 건네준 블로거들의 취재 내용들을 자세히 들여다보면서 그런 생각은 단숨에 사라졌다. 솔직히 웬만한 언론보다 나았다.

그들은 인터넷미디어에 조금만 관심을 가지고 있다면 누구나 한번쯤 들어 봤을만한 유명한 블로거들이었다(실명을 거론하는 것은 여전히 적절치 않아보여서 이 글에서도 익명으로 처리한다). 지방에 거주하는 사람도 있었고 해외에 살고 있는 유학생들도 있었다. 그들에게 협업을 통해서 프로그램을 제작하자고 제의했다. 결과물은 방송시점에 맞춰서 함께 공유한다는 공감대가 중요했다. 그들도 각자의 활동에 어느 정도 한계를 인식하고 있었고 방송을 통해 논란의 실체를 대중적으로 알리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에는 동의했다.

하지만 협업 제의에 흔쾌히 응하는 사람은 없었다. 무엇보다 우리 회사를 비롯한 소위 메이저 언론에 대한 불신이 가장 큰 문제였다. 그들의 첫 반응은 똑같았다. “막상 취재하고 나서는 방송도 제대로 못할 것 아니냐.” 딱히 적당한 변명이 생각나지 않았다. 그냥 삼고초려하기로 했다. 지방에 계신 분은 직접 찾아가 설득했다. 직접 만나기 힘든 경우에는 계속해서 나의 취재 결과물들을 공유하며 연락을 취했다. 일주일 정도 지나자 블로거들이 마음을 열기 시작했다. 직접 인터뷰를 통해서 자신의 리서치 내용을 밝혀준 분도 있었고 어떤 분은 앞에 나서는 대신 우리 제작진들은 상상도 못할 리서치 능력으로 필요한 자료들을 찾아 취재를 도와주기 시작했다. 그때만 해도 낯설었던 취재용 공유 드라이브를 만들어 함께 토론하고 결과물들을 공유했으며, 이를 토대로 심층적인 취재가 이어졌다. 제작진들만의 작업이었다면 수개월이 걸릴 일들이었다. 특히 해외에 있는 유학생 블로거들은 독보적인 어학능력과 함께 자신들의 전공을 살려 짧은 시간에 취재 내용의 통계를 만들고 참고자료까지 챙겨주는 놀라운 성과를 보여주었다.

▲ KBS '추적60분-제주 7대 자연경관 의혹의 실체는' ⓒKBS

그렇게 제작진의 취재와 블로거들의 협업을 병행하며 몇 주가 지나자 성과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우선 세계적으로 전화투표가 진행된다던 우리의 순진한 믿음과는 달리 수많은 후보국들 중에서 통화 당 100원이 넘는 유료 전화를 걸어 투표를 진행하는 나라는 오직 우리나라, 제주도 밖에 없었다. 다른 나라들은 훨씬 더 저렴한 가격의 문자메시지 투표만을 시행하고 있었다. 뿐만 아니었다. 우리나라의 경우, 1인당 투표할 수 있는 전화 통화량의 한도마저 없는 상황이었다. 한사람이 수 백통, 수 천통을 걸어도 상관이 없다는 것이다. 결국 전혀 객관성과 공정성이 보장되지 않는 이상한 투표라는 결론에 이르렀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제주도 공무원들이 실적을 올리기 위해 하루에 수백 통씩 공무 전화로 유료 투표를 하는 일까지 벌어진 것이었다.

7대 경관 문제를 다룬 두 편의 <추적 60분>중에서 첫 번째 방송이 재단의 실체에 대한 현장 취재가 주를 이루었다면, 2주 뒤 방송된 2편에서는 협업을 통해 밝혀낸 전화투표의 비밀을 방송에 담아낼 수 있었다. 본 방송이 나가고 협업의 결과물들은 각자의 방식으로 재가공되어 공유되었다.

방송환경이 변하면서 지상파 방송이 가지고 있던 장점들은 급속하게 쇠퇴하고 있다. 이제는 양적으로나 질적으로 훨씬 막대한 양의 정보들이 모바일을 통해서 실시간으로 공유되고 있다. 방송을 통해서 특종이라고 내세우는 일이 점점 더 어려워지고 있다. 취재를 통해 잘못을 밝혀내야할 대상도 진화하면서 더 교묘하고 치밀하게 진실을 숨기고 있다. 이미 미국이나 유럽 등에서는 이러한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해서 TV, 라디오, 신문, 인터넷 언론 등 매체 유형을 가리지 않고 다양한 방식의 협업을 시도하고 있다. 2007년 창립되어 여러 기존 언론매체들과 협업을 하고 있는 ‘프로퍼블리카’가 하나의 예가 될 수 있으며 <뉴스타파>가 참여하는 세계적 탐사보도 연합체도 마찬가지다. 아직 한국에서는 언론매체 간의 협업은 거의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비록 한 번에 그친 시도였지만 내가 ‘7대 경관’ 프로그램을 제작하면서 경험한 협업의 성과는 여러 프로듀서들이 한번쯤 시도해볼 만한 것이 아닐지 제안해본다. 마지막으로 7대 경관 사업의 실체를 밝히기 위해 <추적 60분>제작을 도와준 블로거들에게 다시 한 번 깊이 감사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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