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인트, ‘이윤정표 드라마’로 정점 찍을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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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송 따져보기] tvN 월화 드라마 ‘치즈 인 더 트랩’

말도 많고 탈도 많았다. 지난 4일 동명의 웹툰을 원작으로 한 tvN <치즈 인 더 트랩>(연출 이윤정, 극본 김남희·고선희, 이하 <치인트>)이 첫 방송되기 전까지 ‘치어머니’라는 우스갯소리가 나올 정도로 캐스팅에 대한 누리꾼들의 설전이 이어졌다. 워낙 웹툰 인기가 높았던 터라 기대만큼 우려도 컸던 탓이다. 막상 뚜껑을 열어보니 시청률 성적표는 케이블 채널이라는 접근성의 한계에도 ‘평타’ 그 이상의 수준을 보여주고 있다. 시청률 3.5%로 시작해 5회 만에 6%대까지 치솟으며 tvN 월화 드라마 중 역대급 시청률을 기록하고 있다. 게다가 드라마를 보면 볼수록 ‘이윤정 표’ 드라마다.

<떨리는 가슴>, <태릉선수촌>, <커피프린스 1호점>, <트리플> 등 ‘이윤정표 드라마’는 그만의 섬세한 시선과 연출력이 두드러졌다. 특히 ‘뻔한 이야기’를 ‘뻔하지 않게’ 풀어내는 스토리텔링이 강점이었다. 이번 <치인트>를 비롯해 이 PD의 작품들에서는 ‘삼각관계’, ‘백마 탄 왕자’, ‘신데렐라’ 등 진부한 장치들을 곳곳에서 찾아볼 수 있다. 하지만 이 PD는 ‘진부함’을 그대로 수용해 반복하진 않았다. “드라마 클리셰들이 있는데 그건 인간을 너무 쉽게 보기 때문에 가능한 것”(<매거진t>)이라던 그의 말처럼 삼각관계를 다루더라도 인물의 감정을 켜켜이 쌓는 과정에 공을 들였다. ‘극적 전개’에 매달리기보다 개연성 있는 스토리텔링에 주목했다.

▲ tvN '치즈인더트랩' 포스터 ⓒCJ E&M

진부한 소재에서 ‘진부함’을 걷어내는 방식은 이렇다. 갈등에 따른 파생적 결과물보다 갈등에 처한 주인공의 감정의 밀도와 선택의 순간을 촘촘히 구성하는 데 많은 비중을 할애한다. 예를 들면 <커피프린스 1호점>에서 한성(이선균 분)이 은찬(윤은혜 분)에 대한 호감(혹은 ‘바람’)이 유주(채정안 분)에 대한 사랑을 깨닫는 기폭제로 작용한다. 오히려 한결(공유 분)과 은찬의 신분 차이로 인한 집안의 반대라는 전형적인 갈등은 간단하게 봉합된다. <치인트>에서도 3회 만에 유정(박해진 분)이 홍설(김고은 분)에게 단도직입적으로 “나랑 사귈래”라며 고백한다. ‘사이다 고백’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밀당’ 과정은 생략됐고, 선후배 공적인 관계를 넘어선 사적 관계에서 홍설과 유정의 관계가 어떻게 발전 혹은 후퇴할 지에 방점을 찍은 듯하다.

이 PD는 ‘진부함’을 걷어낸 자리에 ‘일상’을 채워 넣는다. 공간에 대한 남다른 해석으로 드라마의 분위기, ‘생활감’을 살리는 것이다. “어떤 구석, 어떤 코너, 어떤 계단, 들풀, 햇살까지 좋았고, 그러한 공간적인 설렘 속에서 그 신에 대한 느낌이 나왔다”(<매거진t>)고 밝혔듯이 이 PD의 작품마다 공간에 대한 애정이 묻어난다. 대인기피증을 앓는 차홍도(최강희 분)의 집에는 손때가 묻은 물건들과 작은 화분들이 곳곳에 놓여있다. 이는 ‘유일한 안전’을 표상하는 공간(tvN<하트 투 하트>)으로 거듭난다. 또 MBC <커피프린스 1호점>에서 ‘카페’, ‘옥탑방’이라는 공간은 은찬과 한결의 사랑이 싹트고, 로맨틱함을 극대화하는 데 제격이었다. <치인트>에서 홍설의 공간은 합판으로 된 벽, 부실한 창문이 달린 허름한 단칸방이다. 이 좁디좁은 공간은 ‘청춘’이라기엔 너무 ‘팍팍한 현실’에 처한 홍설의 처지를 대변하고 있다.

▲ MBC 드라마 <커피프린스 1호점> ⓒMBC

마지막으로 이 PD는 홍설, 홍도, 은찬, 하루 등 여주인공의 시선을 적극적으로 이야기의 중심에 끌어들이는데 집중한다. 기존 로코물에서 여주인공이 지나치게 도도하거나, 사랑을 갈구하는 등 상대 남성에 의해 좌지우지되는 등 단면적으로 그려지는 경우가 왕왕 있었다. 하지만 이 PD의 드라마 속 여주인공은 눈에 띄지 않아도 ‘자신’만의 방식을 고수하고, 움직인다는 점에서 눈길을 끌었다. 대인기피증을 앓는 홍설은 두수에게 7년간 ‘반찬 배달’을 하며 ‘전투적으로 몰래’ 마음을 전하고(<하트 투 하트>), 도도한 방수아(최정윤 분)나 새침떼기 정마루(송하윤 분)도 사랑을 쟁취하는 데 망설임이 없다.(<태릉선수촌>) 여주인공이 욕망의 대상화되거나 수동적인 역할에 머물지 않았다.

이처럼 이 PD의 강점들을 발판 삼아 <치인트>는 순항하고 있다. 하지만 <치인트>의 성공은 좀 더 두고 봐야 할 듯하다. ‘이윤정 표 드라마’답게 공간에 대한 해석, 단편적 사건이 아닌 인물의 감정변화에 따른 스토리텔링 등이 이어지고 있지만, 드라마 초반부여서 그런지 홍설은 전형적인 ‘캔디형 여주인공’으로만 묘사되고 있어서다. (‘치어머니’까진 아니지만) 원작에서 홍설은 남들보다 눈치가 빠르고 관찰에 능한 인물로 등장한다. 앞으로 홍설을 얼마나 입체적인 인물로 그리느냐에 따라 <치인트>만의 매력 지수도 달라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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