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력 비판 ‘재갈’ 논란 방송평가규칙 개정 강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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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정성 등 심의 제재 감점 확대, 與 방통위원 3인 밀어붙여…“총선 전 틀 만들어줘야” 주장도

최성준 위원장을 비롯한 방송통신위원회(이하 방통위) 여권 추천 위원들이 22일 공정성‧객관성‧선거방송 관련 심의 제재 감점을 강화하는 내용의 방송평가규칙 개정을 강행했다. 야권 추천의 부위원장은 “언론 자유 제약”을 이유로 안건 상정 자체를 반대하며 퇴장했고, 야권 추천의 또 다른 상임위원이 반대 의견을 밝혔다.

하지만 쟁점 사안에 대한 의결과정마다 등장하는 ‘다수결’ 주장이 ‘합의제’ 위원회로서의 방통위의 정체성을 뛰어 넘었다. 방송평가규칙의 직접 이해당사자인 방송사업자뿐 아니라 언론‧시민단체, 언론학자들까지도 “언론의 비판기능 위축”에 대한 의견을 여러 차례 제시했다는 점에서 이날 여권 추천 방통위원들의 방송평가규칙 개정 강행의 파장은 적지 않을 전망이다.

공정성 등 심의 제재 감점 확대 쟁점은 그대로

방통위는 지난해 10월 23일 행정예고 한 방송규칙 개정안에 대한 수정안을 이날 회의에서 공개했다. 당초 안에서 가장 쟁점이었던 부분은 공정성, 객관성, 선거방송 관련 심의의 경우 감점 수위를 두 배 확대하는 내용이었다.

방통위는 이날 수정안에서 방송사업자가 공정성‧객관성‧재난방송‧선거방송 심의규정의 동일 항목을 3회 이상 반복 위반하는 경우 방송평가에서 감점수준이 두 배 확대 적용된다고 밝혔다. 막말 등 기타의 경우 감점수준은 1.5배 확대 적용된다. 또 공정성 제고를 위한 사업자의 자율적 노력을 평가하기 위해 공정성 관련 자율규제 제도를 구축‧운영한 경우 최대 6점의 가점을 부여한다. 또한 외주제작사에 간접광고를 허용한 방송법 개정에 따라 방송사의 귀책 사유가 없는 제재조치의 경우 감점사유로 반영하지 않는 규정을 신설했다.

언론중재위원회의 정정보도 직권 결정에 대해선 6점을, 법원의 정정보도 판결과 허위보도에 의한 명예훼손 판결시 8점을 감점하고, 방송사가 전문가를 활용해 여론조사를 검증할 경우 3점의 가점을 부여하기로 했다.

그러나 작금의 방송평가규칙 개정을 둘러싼 논란의 핵심은 방송평가의 내용영역에 대한 평가 기준이 되는 방송통신심의위원회(이하 방심위)의 방송심의 자체가 ‘이중 잣대’, ‘정치심의’ 등의 의혹을 받는 상황이라는 데 있다. 즉, 이 부분에 대한 감점 수위 확대라는 전제 자체를 그대로 둔다면 논란은 계속될 수밖에 없다. 이날 회의에서 야권 추천 방통위원들이 “반대” 의견과 함께 추가 논의의 필요성을 제기한 것도 이 때문이다.

김재홍 부위원장은 “현재의 개정안을 놓고 학계와 전문가단체, 다수의 언론인들이 헌법에서 규정하고 있는 ‘언론의 자유’를 침해한다는 의견을 전하고 있고, (방송평가를 담당하는) 방송평가위원회 외부 위원 7인 중 6인도 반대 의견을 냈다”고 말했다.

김재홍 부위원장은 “방송공정성을 강화해야 한다는 데 대해선 이견이 없지만 그 방법과 관련해선 심도 있는 검토와 논의가 필요하다”며 방송평가 속 내용평가의 기준이 되는 방송심의의 문제를 제기했다.

김 부위원장은 “국정교과서 논란과 관련해 <뉴욕타임스> 사설을 인용하는 과정에서 날짜를 오기한 방송에 대해 법정제재를 밀어붙인 여권 추천 방심위원들이 야당에 대해 ‘국정원 얘기만 나오면 발작적으로 적개심을 표현한다. 새정치민주연합(현 더불어민주당)이 최소한 한민족의 편은 아니라는 걸 국민들은 아셨을 것’이라는 패널 발언을 그대로 내보낸 또 다른 방송에 대해선 행정지도를 주장했다”며 “여야 6대 3의 (정파적 의결구조로) 정권이 심의를 끌고 가고 있는 상황에서 이런 기구(방심위)에 공정성 심의를 맡길 수 있는 건가”라고 따져 물었다.

김 부위원장은 “(공정성 등에 대한 심의 제재 감점을 확대하는) 방송평가규칙 개정에 앞서 방심위와 관련한 법률과 제도의 재검토가 필요하다”며 “방심위를 폐지‧축소하고, 방송사의 자율심의로 대폭 전환하는 방향으로 가는 게 옳다”고 주장했다.

고삼석 상임위원도 “방송평가에 방송심의 결과 적용 비율을 상향하기 위한 전제는 방심위에서 맡는 방송심의 결과의 신뢰성과 공정성, 객관성이 담보돼야 한다는 부분”이라며 “하지만 현재는 심의결과를 둘러싼 논란이 크고 그로 인해 심위 과정에서 파행이 발생하는 상황인 만큼, 공정성 등에 대한 심의 제재 감점을 확대하는 현재의 개정안에 찬성할 수 없다”고 말했다.

고 상임위원은 “박근혜 대통령의 대선 공약에도 현재의 심의 제도를 개선하겠다는 부분이 있다”며 “이중 잣대 등의 비판을 받는 방심위의 심의제도를 지금처럼 계속 운영하도록 방치하는 게 바람직한지, 그 결과를 방송평가에 그대로 반영해야 하는 건지, 이 부분에 대한 보완책 마련이 필요한 만큼, 좀 더 숙려 기간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중잣대’ 방송심의 문제제기에도 與 방통위원들 “野 위원들이 잘 설득해야”

최성준 위원장을 비롯한 여권 추천 위원들은 개정의 시급함을 말했다. 숙려 기간이 더 필요하다는 고삼석 상임위원의 말에 최성준 위원장은 “올해 방송평가에 적용해야 하는 만큼 빠른 규칙 개정이 필요할 뿐 아니라, 방송평가규칙 개정은 2015년 업무계획에 포함돼 있던 내용”이라고 반박했다.

이에 고삼석 상임위원은 “올해 방송평가에 개정안을 적용해야 한다고 하지만 오늘 의결을 한다 하더라도 2016년 2월 1일 방송부터 소급 적용해야 하는 상황”이라며 “월 단위로, 분기 단위로 끊어 적용을 달리 할 수 있는 만큼, 이견을 좁히기 위해 논의를 더 할 수 있다”고 말했다.

고 상임위원은 또 “(위원장이) 2015년 업무계획에 포함돼 있다는 점을 강조했지만 당시 방송평가 제도 개선 등에 대해 합의하면서 수신료 인상과 관련해 공영방송 거버넌스를 개편하고 종합편성채널 관련 정책에 대한 종합 검토를 하자고도 했다”며 “다른 합의에 대해선 현재 논의를 하지 않고 있으면서 특정 과제만 반드시 시기 내에 처리해야 한다는 건가”라고 문제를 제기했다.

방송심의의 공정성과 객관성 등이 의심받는 상황에 대해 여권 추천 위원들은 일부의 의견일 뿐이라고 일축했다. 이기주 상임위원은 “심의 결과는 보는 사람에 따라 다르게 판단할 수 있다”며 “불만이 있다면 법적으로 이의를 제기할 수 있는 절차가 마련돼 있다”고 말했다.

김석진 상임위원은 “(특정 정파 등에 대해) 과도하게 불합리한 제재가 나올 수도 있지만 방심위를 통하지 않고 방송심의를 할 방법이 있나. (방심위의) 여야 6대 3 구조가 중요한 게 아니다. 야당의 추천을 받은 위원들이 (다수인 여권 측을) 잘 설득해 공감대를 이뤄 좋은 결과를 도출해야 한다”고 말했다.

최성준 위원장도 “방송 공공성과 공정성 심의에 대해 규정하고 있는 방송법 제32조의 적정성을 놓고 헌법재판소에서 문제된 사안이 없다”며 “앞으로 이 조항의 적정성에 대한 논의를 할 수 있지만 현행법 하에선 이에 따라 모든 절차를 진행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언론단체 등은 방통위가 총선을 앞두고 언론계 안팎의 반발에도 방송평가규칙 개정을 강행하려는 데 대해 “총선을 앞두고 재갈 물리기에 나선 것이냐”는 의혹을 제기하고 있다.

당장 언론노조가 지난 21일 발표한 성명에서 “시급성이 요구되지 않음에도 총선을 불과 80여일 앞둔 지금 선거방송심의까지 포함한 규칙을 개악하려는 건 방송 종사자의 공정하고 객관적인 방송 의지에 중대한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앞서 지상파 방송사들을 회원으로 두고 있는 한국방송협회도 “총선을 몇 개월 앞둔 시점에서 공정성‧객관성에 더해 선거방송 심의에 대한 감점까지 강화함으로써 방송평가 및 재허가를 통해 방송사에 재갈을 물리려는 것으로 오해를 살 수 있다”(2015년 11월 10일 성명)고 우려했다.

그러나 이기주 상임위원은 “당초 2015년 말에 개정하려 했지만 (야권 측) 일부 위원들이 반대해 연기된 것”이라며 “또 한 번 연기를 하면 오히려 총선에 더 가까워지는 만큼 오늘 결정을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김석진 상임위원은 “시기가 부적절하다고 하지만, 선거 앞두고 (방통위가) 틀을 만들어줘야 한다”고 강조했다.

결국 최성준 위원장은 본인을 포함해 여권 추천의 이기주‧김석진 상임위원까지 3인의 찬성으로 방송평가 규칙 개정을 의결했다. 앞서 김재홍 부위원장은 쟁점 사안마다 3대 2 의결을 반복하는 구조를 비판하며 안건 상정 자체를 반대한다는 의견을 밝히고 퇴장했고, 고삼석 상임위원이 남아 반대 의견을 냈지만 소수 의견에 그쳤을 따름이다.

한편 이날 여권 추천 방통위원들이 개정을 강행한 방송평가규칙은 2월 1일 방송부터 적용된다. 

▲ 매체별 세부 배점표. 붉은색 표기는 개정항목이며, 괄호 점수는 개정전 배점임 ⓒ방통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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