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응팔’과 ‘내부자들’에 대한 조선·중앙의 ‘창조적’ 해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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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팔’과 ‘내부자들’에 대한 조선·중앙의 ‘창조적’ 해석
[민동기의 ‘톡톡’ 미디어 수다방]
  • 민동기 미디어평론가
  • 승인 2016.01.25 0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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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과도한 창조성’은 독자의 눈살을 찌푸리게 할 수 있다

드라마와 영화에 대한 언론의 해석과 평가는 자유다. 하지만 아무리 자유라 하더라도 정도라는 게 있다. 최근 조선·중앙일보에 게재된 칼럼을 보면 ‘해석과 평가의 자유’ 차원을 넘어 비약으로 치닫고 있다. 이번 주 ‘미디어 수다방’은 이들 칼럼에 대해 얘기해 보고자 한다.

먼저 <중앙일보>. <중앙일보>는 1월18일자 칼럼 <이철호의 시시각각-규제 완화가 낳은 ‘응답하라’ 신드롬>에서 “종편·케이블 등 새로운 미디어들의 치열한 경쟁과 규제완화가 응팔의 기적을 낳았다”고 분석했다. 드라마 <응답하라 1988>이 끝난 후 그 신드롬을 분석한 언론보도가 쏟아졌지만 <중앙일보>의 해석은 단연 독보적(?)이다. ‘미디어법’과 ‘응답하라 신드롬’의 연관성을 강조하는 놀라운 창조성을 선보였기 때문이다.

‘응답하라 신드롬’에 대한 중앙일보의 창조적(?) 해석

▲ <중앙일보> 1월 18일자 30면

이철호 <중앙일보> 논설실장은 이 칼럼에서 “6년 전 미디어법은 ‘악법 중의 악법’이라 손가락질 받았지만 그 이후부터 규제와 장벽이 허물어지면서 소비자들의 선택권이 몰라보게 넓어졌다”고 강조했다. 미디어법 이후 새로운 미디어들이 치열한 경쟁을 벌였고, 그 결과 ‘응답하라’와 같은 경쟁력 있는 드라마 콘텐츠가 나왔다는 것이다.

참 재밌는(?) 분석이다. 드라마 제작비율이 ‘바닥을 기는’ - 그래서 일각에선 종편이 아니라 ‘보도전문채널’이라고 비아냥거리는 종편을 ‘응답하라 신드롬’과 연결시키는 발상 자체가 우습다. ‘응답하라 신드롬’에 종편을 어떻게든 묻어가게 하기 위한 <중앙일보>의 지나친 ‘종편 끼워넣기’라고 보는 건 필자만의 생각일까. 비평과 해석은 언론의 자유지만 ‘과도한 창조성’은 독자들의 눈살을 찌푸리게 할 수 있다는 점을 명심하자.

“종편·케이블 등 새로운 미디어들의 치열한 경쟁과 규제완화가 응팔의 기적을 낳았다”는 분석도 고개를 갸우뚱거리게 만든다. 치열한 경쟁? 황금채널 배정, 종편 의무재송신, 중간광고 허용을 비롯해 1사1미디어렙을 통한 광고특혜, 방송통신발전기금 납부 유예 등 온갖 특혜로 출범한 종편과 치열한 경쟁은 어울리지 않는 단어다. 특혜란 특혜는 다 누리면서 치열한 경쟁을 얘기하다니 … 어이가 없다.

이미 수년 전부터 드라마와 예능 등 콘텐츠 계발에 집중 투자한 케이블과 ‘막말 시사토크’를 거의 하루 종일 방송하고 있는 다수 종편을 ‘동일선상’에 놓는 것 자체부터 공정하지 못하다. <중앙일보>는 ‘응답하라 신드롬’과 종편을 연결시키기 전에 종편 특혜에 대한 비판과 자성부터 할 필요가 있지 않을까.

조선일보가 영화 ‘내부자들’을 불편해 하는 이유

<조선일보> 김윤덕 문화부 차장이 쓴 <트렌드 돋보기 ‘응팔’과 ‘내부자들’>(1월20일자 30면)은 <조선일보> 속내가 비교적 솔직히 드러난 칼럼으로 보인다. 드라마 <응답하라 1988>과 영화 <내부자들>을 도마에 올린 김윤덕 차장은 “‘응팔’은 악인이라곤 찾아볼 수 없는 무결점 행복 드라마이고, ‘내부자들’은 도끼와 전기톱이 번뜩이는 복수극”이지만 리얼리티로 포장한 판타지라는 점에서 둘 사이엔 공통점이 있다고 지적했다.

‘응팔’에 대한 <조선일보>의 분석에 동의할 수 없는 부분이 있지만 이 글에서는 일단 논외로 할까 한다. 필자가 보기에 김윤덕 차장이 칼럼에서 주로 비판 대상으로 삼고하 했던 게 <내부자들>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김 차장은 이 칼럼에서 영화 <내부자들>과 관련해 이렇게 비판했다. “도끼로 신체 일부를 잘라내는 장면, 포르노에 가까운 성 접대 신(scene)은 감독 개인의 취향이 아닌가 싶을 만큼 역겹고 선정적이다. 벌거벗은 엉덩이를 카메라 앞에서 흔드는 백윤식과 이경영의 연기엔 혼이 담겨 있었을까.”

▲ <조선일보> 1월 20일자 30면

사실 <조선일보>의 영화 <내부자들>에 대한 불편한 속내는 일찌감치 감지가 됐다. 역대 청소년관람불가 영화 흥행 1위를 기록하며 흥행돌풍을 일으킬 때 유독 <조선일보> 지면에서 관련 기사를 찾기가 쉽지 않았기 때문이다. 언론비평지 <미디어오늘>도 <조선일보>의 <내부자들>에 대한 ‘지면 침묵’을 거론하며 “‘역대급 영화’를 대하는 조선일보의 모습은 지난해 ‘연평해전’과 사뭇 대조적”이라고 지적했다.

흥행 영화에 대한 ‘지면 침묵’을 <조선일보>의 권한과 자유라고 인정한다 해도 김윤덕 차장의 칼럼은 지나친 감이 있다. 특히 정치권력과 자본·언론권력의 유착과 민낯을 상징하는 장면을 “감독 개인의 취향이 아닌가 싶을 만큼 역겹고 선정적”이라고 비난한 것은, 필자가 보기에 비판을 가장한 감독 개인에 대한 공격으로 읽히기 때문이다. 언론권력에 대한 <내부자들>의 비판을 불편하게 여긴 <조선일보>가 이런 식으로 자신들의 감정을 드러냈다고 보는 건 필자의 지나친 생각일까. 판단은 독자들의 영역으로 남겨둔다.

‘조선일보’ 김윤덕 차장에게 ‘중앙일보’ 이하경 논설주간 칼럼을 권하며

<중앙일보> 이하경 논설주간은 2015년 12월23일자 칼럼([이하경 칼럼] 영화 ‘내부자들’이 언론에 묻는 것)에서 <내부자들>에 대해 이렇게 촌평했다.

“한국 언론도 권력에 대해 가혹한 비판을 하지 않은 것은 아니다. 하지만 정권 차원의 스캔들은 예외 없이 집권 후반기 레임덕 시기나 정권이 바뀐 뒤에 보도됐다. 만일 제때에 살아 있는 권력과 재벌의 비리를 정공법으로 고발했으면 이렇게 언론이 조롱받는 일은 없었을 것이다. ‘내부자들’은 시종 언론을 향해 과연 당신들은 제 역할을 다하고 있는가라고 묻고 있다.”

김윤덕 <조선일보> 문화부 차장에게 <중앙일보> 이하경 논설주간의 칼럼을 권한다. (이미 일독했다면 다시 한 번 읽어볼 것을 권하고 싶다.)

▲ 민동기 미디어평론가

* 필자는 미디어평론가로 CBS라디오 ‘뉴스로 여는 아침’ 조간브리핑, 고발뉴스 팟캐스트 '민동기의 뉴스박스', 국민라디오 '민동기의 뉴스바', 팟캐스트 '관훈나이트클럽'을 진행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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