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림학교’ 실패의 반면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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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송 따져보기] 학원물 드라마의 미래는

‘학원물 드라마’가 수렁에 빠졌다. KBS는 지난달 28일 <무림학교>를 20회에서 16회로 조기 종영한다는 입장을 공식화했다. 방송 4회 만에 불거진 <무림학교> 촬영 중단과 제작사와 방송사 간 갈등이 수면 위로 떠오른 지 일주일만의 일이다. 보도에 따르면 KBS는 <무림학교>의 저조한 시청률을 문제 삼으며 제작사에 편성 축소를 통보했다. 제작사 측도 원활한 촬영을 위해 제작비 증액을 요구하는 등 양측 간 마찰이 이어진 것으로 전해졌다. 이번 갈등이 불거지기 전부터 ‘무술’과 ‘캠퍼스’를 접목한 <무림학교>는 기대에 못 미친다는 지적이 나왔다. KBS는 학원물 드라마의 입지를 다져왔으나 이번 사태로 체면을 구기게 됐다.

KBS는 <무림학교> 이전부터 학원물 드라마를 꾸준히 방영해왔다. 지난 1999년 ‘학교’ 시리즈의 첫 선을 보인 뒤 약 15년 동안 시즌 4까지 방송했다. 방송계 드라마들이 로맨스물에 치우친 가운데 ‘청소년’을 전면에 앞세운 ‘학교’ 시리즈는 드라마 다양성에 기여할 뿐 아니라 신인 배우들의 등용문 역할을 한다는 점에서 의미가 남달랐다. 특히 ‘학교’ 시리즈는 학교 울타리 안에서 벌어지는 집단폭력, 왕따, 사교육 문제, 교권 추락, 그리고 청소년의 성(性) 문제까지 다양한 소재를 끌어들이면서 KBS의 간판 브랜드로 자리 잡아갔다.

▲ KBS '무림학교' ⓒKBS

KBS가 학원물 드라마의 입지를 넓혀갈수록 풀어야 할 과제들도 생겨났다. ‘학교’ 시리즈를 방영할 때마다 학내 문제를 반복·재생산하게 되는 소재의 한계에 부닥쳤기 때문이다. 실제 <학교1>(1999)~<학교3>)(2001)의 소재들을 보면 학내에서 벌어진 폭력과 성적 경쟁 등이 주요하게 다뤄졌다. 이러한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 학원물 드라마의 배경 혹은 아이돌 배우의 출연으로 변화를 꾀하기도 했다. 걸그룹 지연이 출연한 <정글 피쉬2>, 연예예술고등학교를 배경으로 수지, 정진운 등이 나선 <드림하이1>·<드림하이2>, 그리고 동아리 중심으로 이야기를 풀어낸 <발칙하게 고고> 등을 보면 기존 ‘학원물 드라마’의 무거운 분위기를 덜어내려고 한 흔적이 보인다.

최근에는 서사 전개에서 인물 간 갈등 혹은 장르적 성격을 강화하려는 시도도 엿보였다. <학교 2013>는 가해자와 피해자가 애매한 폭력 상황을 설정했다. ‘사건의 연결’ 대신 ‘인물 간 갈등’에 방점을 맞춘 것이다. 또 5년차 기간제 교사 정인재(장나라 분)의 모습을 통해선 무너진 공교육, 교사의 고민을 가감 없이 드러냈다. <후아유- 학교 2015>에서는 장르적 플롯을 강화했다. 보육원에서 자란 일란성 쌍둥이 자매 중 언니는 학교 폭력의 가해자, 동생은 학교 폭력의 피해자로 등장했는데, 언니의 실종을 둘러싼 미스터리한 요소들이 곳곳에 배치돼 서사 전개에 긴장감을 불어넣었다.

▲ KBS '후아유-학교2015' ⓒKBS

이러한 흐름으로 볼 때, <무림학교>도 나름의 방식으로 소재 실험에 나섰다고 볼 수 있다. 20대 청춘이라고 해도 고등학생과 다를 바 없는 현실을 풀어내기 위해 ‘무술’이라는 판타지적 요소에 주목했다. 그러나 방송사-제작사 간 갈등 때문만이 아닌 ‘서사의 실패’는 조기종영 사태를 가져왔다. 방송 초기부터 엉성한 스토리, 배우들의 어설픈 연기력이 도마에 올랐다. “취업과 스펙쌓기가 아닌 정직·신의·생존·희생 등 사회에 나아가 세상에 맞설 수 있는 덕목을 가르치는 특별한 인생 교육을 보여주는 드라마”라는 기획 취지가 무색하게 판타지 요소를 극대화하지도, 스토리의 개연성을 확보하지도 못하면서 시청률은 3%대에 그치고 있다.

이번 <무림학교> 사태는 시청률 잣대에 따른 조기종영이라고 재단하는 데 그치기보다 학원물 드라마를 점검할 시점임을 알려준다. 청소년 혹은 청소년 언저리를 갓 벗어난 20대들이 주인공인 학원물 드라마에 대한 시청자들의 기대치는 더 이상 예전 수준에 머물러 있지 않다. 특정 세대의 생각 혹은 그들이 처한 현실에 주목하는 학원물 드라마는 주류 드라마와 달리 성적/스펙 지상주의와 같은 현실의 이면을 환기시켜준다는 점에서 ‘학원물’이 지닌 역할을 수행한다고 볼 수 있다. 여기서 한 발 더 나아가 소재, 장르적 실험을 얼마나 설득력 있게 풀어내느냐에 따라 ‘드라마’의 힘이 발휘될 수 있다. 즉, ‘재미있는’ 학원물 드라마를 마다 할 시청자가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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