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래 한 곡에 추억 하나씩…KBS ‘가요무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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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 어르신들의 ‘뮤뱅’ KBS 1TV ‘가요무대’ 설특집 녹화현장

▲ 지난 1월 25일, <가요무대> 설특집 녹화를 보러 온 방청객들이 서울 여의도 KBS별관 공개홀 앞 로비에서 대기하고 있다. 벽쪽에는 방청객들이 공개홀에 입장하기 위해 줄을 서 있다. ⓒPD저널

“추워도 와야지. <가요무대> 아니면 좋아하는 가수 얼굴 보면서 좋아하는 노래를 들을 곳이 없거든. 가수 얼굴 한 번 보고 싶어서 왔어. 오늘 누가 나온대?”

<가요무대> 설특집 녹화를 방청하러 왔다는 70대 변영섭씨(서울 북가좌동)의 얼굴을 정말 즐거워보였다. 함께 온 양오순 씨(74세)도 “<가요무대>에는 옛날 노래가 나오니까 좋아. 재밌거든. 옛날도 추억하고. <가요무대> 아니면 TV에서 가수들 얼굴 보기가 힘들어”라며 최대한 빼놓지 않고 <가요무대>를 ‘본방사수’하려는 애청자라고 밝혔다. 두 분의 ‘직접방청’에 일등공신 역할을 한 이날 모임의 막내 문정애 씨(54세)는 작은 딸 덕분에 이모님들 앞에서 체면을 세웠다고 했다. 문씨는 “옛날 노래를 들을 수 있는 곳이 정말 없어요. <7080>도 보는데 그건 너무 짧아요. <가요무대>는 한 시간 동안 가수들도 많이 나오고, 엄마 생각도 나고”라고 말했다.

최저 기온 영하 14도를 기록한 지난 1월 25일, 이른바 ‘최강한파’에도 불구하고 <가요무대> 녹화가 진행되는 서울 여의도 KBS별관 로비는 말 그대로 사람으로 꽉 찼다. 매주 월요일 오후 7시부터 녹화에 들어가는 <가요무대>를 방청하기 위해 로비에는 티켓 배부 한 시간 전인 오후 4시부터 이미 사람들이 줄을 서기 시작했다. 티켓이 선착순으로 배부되기에 조금이라도 무대 가까이에서 가수들을 보기 위함이다. 매주 월요일은 KBS별관 평균 연령이 가장 높아지는 날이 아닐까 싶을 정도로 많은 어르신을 뵐 수 있었다.

▲ 700여명의 방청객들이 <가요무대> 녹화가 진행되는 서울 여의도 KBS별관 공개홀을 가득 메우고 있다. ⓒPD저널

녹화 시작 세 시간 전부터 로비는 분주했다. 경북 영주, 경남 김해, 거제도 등 지방에서 올라온 사람, <가요무대>를 보러 온다는 기대감에 일찍부터 와서 이곳저곳 구경하는 사람 등이 로비를 가득 매웠다. 표를 받은 후 자신의 자리가 어딘지 확인하는 중국인 방청객도 있었다. 가족 3대가 온 방청객도 있었다. 로비 한 편에서는 어르신들이 각자 싸온 김밥과 도시락 등을 나눠먹으며 녹화가 시작되기만을 기다렸다. 전날 본 드라마 이야기를 하고, “요즘 유행하는 그 ‘백세인생’의 이애란이 나오지 않을까?”, “난 설운도가 나왔으면 좋겠던데” 등 오늘의 출연자가 누구인지, 어머님들의 ‘오빠’가 나올지 등 오후 6시 공개홀 입장을 기다리는 사람들의 이야기들이 도란도란 오고 갔다.

녹화 시작 30여 분 전, 오랜 시간 기다린 방청객들의 지루함을 달래줄 사전MC의 등장은 <가요무대>의 또 다른 재미이자, 이제 곧 녹화가 시작된다는 신호이기도 하다.

▲ <가요무대> 출연 가수들이 지난 1월 25일 오후 4시 설특집 녹화를 위한 카메라 리허설을 진행하고 있다. ⓒPD저널

사전MC와 함께 몸과 입을 푼 어르신들은 첫 곡부터 이른바 ‘떼창’(공연을 하는 가수의 노래를 일제히 열정적으로 따라 부르는 것을 일컫는 말)의 진수를 보여줬다. 처음엔 박수치길 쑥쓰러워 하던 어르신들은 한 곡, 두 곡, 노래가 계속되자 점차 공연에 빠져들며 환호를 보냈다. 객석에서는 “손이 아파 박수를 못 치겠어”, “너무 재밌어”, “오늘 스트레스 다 풀고 가자”라며 약 두 시간에 걸친 녹화시간 동안 열정적으로 박수를 치고 노래를 따라 불렀다.

지난 2003년부터 <가요무대>를 맡고 있는 최헌 작가는 이처럼 어르신들이 즐거워하는 모습을 볼 때 가장 보람을 느낀다고 말했다.

최 작가는 “녹화 때마다 객석을 보면 연로한 분들이 정말 많다. 공개방송 치고는 <가요무대>가 가장 연령층이 높을 거다. 힘드실 법도 한데 어르신들이 녹화 내내 노래를 따라 부르고 박수를 치고, 현장 분위기가 정말 좋다”며 “옛 가요를 들으며 어르신들이 즐거워하는 모습을 볼 때마다 보람을 느낀다. 또 30~40대 자식들이 60~70대 부모님을 모시고 와서 함께 옛 가요를 즐기는 모습을 보면 흐뭇하기도 하다”고 말했다.

젊은 세대는 컴퓨터, 인터넷, 휴대전화 등 다양한 경로와 기기를 통해 자신이 좋아하는 음악을 언제 어디서나 즐길 수 있다. 지상파 3사 주요 음악프로그램도 모두 젊은 세대, 조금 높게 잡아도 3040을 위한 프로그램이다. KBS에서 <콘서트 7080>을 하지만 7080 이전 세대가 즐겨 부르던 옛 가요를 TV를 통해 접할 수 있는 경로는 지난 1985년 방송을 시작해 올해 31년을 맞는 <가요무대>가 유일하다. 월요일 오후 10시, 어르신들이 <가요무대>를 손꼽아 기다리는 이유이기도 하다.

최 작가는 “자신이 살아온 인생을 반추하면서 볼 수 있는 프로그램”이라고 말했다. 가요 프로그램 중 유일하게 시청등급을 분류하지 않는 음악프로그램인 <가요무대>는 동시대를 함께 했던 가수들이 부르는 노래를 들으며 음악이 주는 위로에 젖어들 수 있는 시간이다.

▲ 2016년 2월 1일 <가요무대> 중. ⓒ화면캡처

또한 다른 이들의 사연을 들으며 때로는 눈물을 훔치기도 하면서 타인과 공감하는 시간이기도 하다. 매월 마지막 주 월요일 <가요무대>는 시청자들의 사연을 받아 소개하는 날이면 그날의 신청곡은 어르신들의 감수성을 한층 더 자극한다. 그 시대의 문화와 사회상, 동시대를 살아온 이들만이 느낄 수 있는 감성이 담긴 멜로디와 가사에 어르신들은 자신들의 추억을 꺼내어 곱씹게 된다.

이처럼 <가요무대> 시청률이 높은 이유는 단순히 어르신들이 볼 프로그램이 없어서이기 때문만은 아니며, <가요무대>가 갖는 의미 역시 어르신들을 위한 프로그램이 부족하다는 점 때문만은 아니다.

<가요무대>의 팀장을 맡고 있는 양동일 PD는 옛 가요를 ‘문화유산’이라고 표현했다. 양 PD는 “<가요무대>에서 불리는 노래들은 그 시대를 대표하는 노래”라며 “<가요무대>는 원곡의 발표년도를 꼭 기록한다. 그건 그 노래에 담긴 ‘역사성’을 알리는 것이기도 하다. 다시 말해 <가요무대>는 단순히 흘러간 노래를 트는 게 아니라 우리나라 현대음악사와 함께 가고 있는 것”이라고 프로그램의 의미를 짚기도 했다.

<가요무대>가 시작한 지도 31년이 됐다. 그 사이 남백송, 정원, 백설희, 조미미, 신세영, 박경원, 신카라니아 등 원로 가수들이 세상을 떠났다. 그들의 곡이 세대를 이어 사람들이 기억하고 되새길 수 있도록 무대를 제공하는 것은 <가요무대>의 또 다른 역할이기도 하다.

최 작가는 “옛날에는 원로 가수들이 많이 살아계셨는데 <가요무대>도 31년이라는 세월이 지나면서 거의 다 돌아가셨다”며 “그런 점에서 <가요무대>는 옛 가요를 잘 해석하고 소화해낼 수 있는 가수를 섭외하는데 많은 신경을 쓰고 있다. 그렇게 젊은 가수들이 대를 이어서 옛 가요를 이어 부르고 있다”고 말했다.

▲ <가요무대>는 곡을 소개할 때마다 원곡이 발표된 날짜와 작사가, 작곡가, 원곡 가수를 표기한다. 사진은 2016년 2월 1일 <가요무대> 화면. ⓒ화면캡처

이처럼 지난 1985년부터 전통가요의 명맥을 이어가고 있는 <가요무대>. <가요무대>는 어르신들의 유일한 볼거리라는 점뿐 아니라, 변함없이 그 시절 그 노래를 지켜오고 시간을 넘어 후세에 전해줄 수 있는 창구이기도 하다.

그렇게 <가요무대>는 월요일마다 어르신들을 찾아간다. 익숙한 오프닝 음악, 그리고 김동건 아나운서의 멘트와 함께 말이다.

“네, 오늘도 변함없이 저희 <가요무대>를 찾아주신 많은 방청객 여러분, 정말 반갑기도 하고 또 고맙기도 합니다. 댁에서 이 시간을 기다려주신 전국의 <가요무대> 가족 여러분. 또 멀리 해외에서 이 시간을 기다려주신 해외 동포 여러분, 해외 근로자 여러분. 지난 한 주 안녕하셨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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