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D의 눈] 작은 씨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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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D의 눈] 작은 씨앗
  • 김태경 평화방송 PD
  • 승인 2016.02.04 17:3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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씨앗 하나를 심었습니다. 믿음, 희망, 가능성만으로도 그 씨앗은 작지만 충분했습니다.

화분은 작았고 토양은 거칠었습니다. 하지만 하루도 거르지 않고 물을 주고 햇볕을 쏘여주었습니다. 한참을 기다려도 싹이 나올 기미가 안 보이더군요. 기도하고, 사랑하고, 마음을 다했습니다. 그러자 아주 작게 싹이 올라왔습니다. 참 감사했습니다. 천천히 그리고 겸손하게 자라고 있는 그 싹을 사랑하게 되었습니다.

옆 화분에 있던 씨앗은 벌써 발아가 되어 열매를 맺기도 하고 또 다른 씨앗을 발아하기도 하더군요. 그래도 전 제가 심은 작은 씨앗에 사랑을 모으는 일이 행복했습니다.

큰 화분을 가지고 있는 것도 아니고 싹이 금방 자라게 하는 양분을 수액 받지도 않았습니다. 저를 괴롭히는 주변 벌레들과 진드기들의 공격에 저항할 수 있는 살충제를 가지고 있지도 않았습니다. 아프기도 하고 따갑기도 했지만 작은 싹을 지키고 싶었습니다. 분명 좋은 곳에 쓰일 것 이라는 그 믿음 하나만으로 매일 바라보고 주문을 걸었습니다.

ⓒpixabay

"널 사랑한다. 널 아낀다. 지금 이 바람과 폭풍은 줄기를 더 단단하게 해줄거야. 어둡다고 불평하지 말자. 어둠 속에 빛은 더 반짝일 거야. 시간은 좀 걸리겠지만 분명히 값진 열매가 되어 더 좋은 곳에 쓰일 거야. 믿는 데로 이루어질거야!"

참 신기하게도 작은 화분 안에 살짝 올라온 싹은 뿌리를 단단하게 내리면서 거친 바람에도 잘 흔들리지 않고 추운 겨울이 와도 그렇게 춥지도 않았습니다. 물이 부족하면 부족한 데로 햇볕을 더 받고. 구름이 지속하면 마음의 볕을 밝혔습니다.

지나가는 사람들이 제 싹을 바라봐줍니다. 그리고 미소를 보냅니다. 한 번씩 ‘쓰담 쓰담’ 해주면서 생전 처음 보는 모습이라며 신기하게 바라봅니다. 넓은 들판에 당당하게 서서 더 많은 사람에게 행복을 줄 시간을 상상하며 하늘을 바라보며 줄기를 힘껏 치켜 오릅니다.

신기하게도 이 추운 겨울날 아기 예수의 탄생을 코앞에 두고 꽃을 피우려 합니다. 두근거리는 그 설렘이 지속됩니다. “행복하여라 그리고 기뻐하여라.” 그 기다림의 시간은 늘 행복합니다.

물을 좀 더 달라고 햇볕이 부족하다고 애원했습니다. 물도 햇볕도 줄 수 없다면 ‘사랑한다’는 말 한마디만 해달라고 애원했습니다. 하지만 생전 관심을 두지 않던 주인님이 나타나시더니 단단히 자라고 있던 제 싹을 힘으로 뽑아버리십니다. 열매를 맺는 것 보다 지금 필요한 크리스마스 장식이 더 중요하다고 합니다.

결국 열매를 맺지 못하고 생명을 잃었습니다. 나무에 데롱데롱 매달려 있어야 하는 마른 가지가 되었습니다. 말라서 떨어질 줄 알았지만 그동안 함께 이야기를 나누었던 나비와 풀벌레들이 꼭 잡아줍니다. 떨어지면 상처가 날지도 모른다고 꼭 붙들고 있으라고 숨결을 불어넣어 줍니다. 그리고 더 넓은 세상을 향해 또 다른 씨앗을 힘껏 던지라고 응원합니다. 아프지만 그래도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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