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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6.02.05 12:19
  • 수정 2016.02.15 12:11

“6500명의 ‘미래참여단’ 명견만리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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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KBS ‘명견만리’ 정현모 팀장

성장의 진통은 컸다. 경제 양극화 문제로 빚어진 사회 갈등은 새로운 패러다임의 변화를 요구하고 있으며, 미래 세대에게 남아있는 가장 큰 숙제이기도 하다. 미래 이슈를 다루는 KBS <명견만리>가 시청자에게 회자하는 이유 역시 이러한 지점과 맞닿아 있다.

‘한국에는 왜 주커버그가 없는가?’ ‘대학 교육이 생각의 발전을 키워주는가?’ ‘어떻게 생각의 힘을 키울 것인가?’ ‘왜 경제통일인가?’ ‘착한 소비의 미래’ ‘저성장 시대의 생존법’ 등 지난해 <명견만리>가 던진 화두는 당장 해결할 수 없지만 내일을 위한 오늘의 문제이다. “미래는 이미 와 있다. 단지 널리 퍼져있지 않을 뿐이다”라는 소설가 윌리엄 깁스의 명언처럼….

렉처(Lecture)와 다큐멘터리(Documentary)의 조합인 렉처멘터리라는 새로운 장르를 기획한 <명견만리>의 정현모 팀장을 KBS에서 만나 <명견만리>의 가치, 제작 뒷얘기 등을 들어보았다. 지난해 3월 시즌제로 방송을 시작한 <명견만리>는 2월 5일 ‘설 특집-집안일의 나비효과’ 편을 시작으로 정규 편성으로 시청자를 만나게 됐다. <편집가>

‘렉처멘터리’는 소통이다

- 왜 렉쳐멘터리를 고민하게 되었나?

“매체의 힘이 강하던 시절이 있었다. 그때는 다큐멘터리의 영향력도 컸다. 하지만 요즈음은 그렇지 않다. 일방적으로 던지는 메시지에 대해 수용자들이 받아주지 않는다. 아무리 기발하다 해도, 좋은 가치를 지녔다 해도, 일방적으로 전달하고 설파하는 콘텐츠는 힘을 가질 수 없다는 문제의식이 있었다. 그래서 어떻게 보편적 공감을 이루어낼 수 있는가를 고민하기 시작했다. 그것이 이야기 방식이다. 그런데 이것도 일방적이면 사람들이 싫어한다. 쌍방향으로 구현할 때에 효과적으로 전달된다. 그래서 강연과 다큐멘터리를 합친 렉처멘터리와 미래참여단 구조를 만들었다.”

- 다큐멘터리의 ‘돌파구’라는 얘기인데, <명견만리>의 기본 베이스는 강연 아닌가?

“<명견만리>를 강연 프로그램으로 생각하지는 않는다. 처음부터 다큐멘터리라고 생각하고 기획했다. 기존에 하던 것을 대화하듯이 만드는 것이다. 조금 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프리젠터가 등장하는데, 그들의 개인적 주장이나 지식을 전달하는 게 아니다. 제작진과 함께 취재한 그 단상을 이야기하는 것이다. 실제로 원고나 이야기 구조를 짜는 건 기존의 다큐멘터리와는 다를 바가 없다. 공공성이 강한 아젠다를 일방적으로 던지는 과정이 아니라 사람들과 직접 대면해서 취재한 내용을 하나씩 전달하며 동의를 구하는 게 <명견만리>의 프로그램 콘셉트다.”

- 강연이라는 형식을 사람들이 좋아하는 이유는?

“5~6년 전부터 강연 수요가 급증했는데 이는 이야기에 대한 욕구 때문이다. 이야기는 쌍방향성에 대한 욕구라고 생각한다. 강연은 인터넷에서 찾아볼 수도 있고 TV나 동영상으로 충분히 접할 수 있는데 사람들은 오프라인 현장에서 듣고 싶어 한다. 그것은 그 이슈에 대한 자기 목소리를 내고 싶은 욕구가 있어서다. 그래서 미래참여단이라는 구조를 만들었다. 미래참여단이 던진 메시지나 화두는 프로그램의 중요한 요소다.”

▲ '명견만리' 정현모 팀장 ⓒPD저널

팍팍한 서민의 삶에서 ‘공존과 공생’의 가치를 찾다

- 아젠다 세팅을 위한 주제 선정은 어떻게 하나?

“문서로 만들어진 기준이 있는 건 아니다. 보편적 공감의 여지가 큰 주제를 중심으로 아이템을 정한다. 아직 우리 사회가 ‘시민적인 담론’을 만들어내는 데에 서툴다. 가령 통일이나 북한 이슈는 소수의 엘리트 혹은 정부 관료들이 독점하던 이슈였다. 그런 걸 좀 더 효과적인 취재과정을 통해 시민들에게 화두를 던지고 나의 문제로 받아들이고 공론화하는 과정을 거치게 된다. 그러다 보니 요즘처럼 서민들의 삶이 어려운 상황에서는 ‘공존과 공생’이라는 가치를 아이템으로 채택하게 되는 것 같다. 여러모로 이런 가치를 지향할 수밖에 없겠더라.”

- 그러나 이슈파이팅이 좀 약한 것 같다.

“<명견만리>는 시사프로그램으로 포지션하기는 어렵다. 우리는 미래이슈 프로그램 혹은 아젠다 프로그램으로 설정하고 있다. 사실 첨예한 현안에 대해 이슈파이팅 하기에는 현재의 프로그램 성격으로는 한계가 있다. <명견만리>가 <심야토론>이 되어서는 안 되는 거다.”

- 주제의 다변화가 필요하지 않을까?

“그렇다. 그 지점에 대한 고민이 많다. 다음에 기다리고 있는 아이템이 여성들의 가사노동. ‘도시의 공공성’을 어떻게 더 살릴 것인가. 공간에 대한 사적 욕망이 강한 우리 사회를 반추하는 도시에 대한 욕망 등인데 아이템의 폭을 넓히려고 주안점을 두고 있다.”

- 프리젠터 섭외가 어렵다고 들었는데.

“프리젠터를 섭외하는 가장 중요한 기준은 ‘진정성’이다. 그 테마에 대해서 진정성 있는 저널리스트로서 해야 할 역할을 할 용의가 있느냐를 본다. 자기가 알고 있는 전문적 지식을 그대로 전달하고자 하는 사람을 원하는 게 아니다. 그렇게 하면 ‘꼰대 강연’이 된다. 직접 발로 뛰고 여러 가지 사안을 깊이 있게 전달할 수 있는 진정성 있는 인사를 우선으로 찾고 있다. 실제 프리젠터도 비슷한 고민을 한다. 취재 계획부터 이야기의 구성에 대해 취재진과 함께 고민한다. 단순히 그쪽에 딱 들어맞는 전문가가 아니더라도. 그 주제에 대해 함께 할 의지가 있고 진정성이 있는 분이라면 누구나 충분히 할 수 있다.”

▲ KBS '명견만리-퍼스트 무버, 재벌 시대를 넘어' ⓒKBS

‘올바른 공론화’ TV의 역할

- 제작진 입장에서 보면 ‘미래참여단’과의 소통 과정은 오히려 방송의 흐름을 깨는 요소로 여길 수 있는데.

“제작진이 전달하고자 하는 이야기의 맥을 미래참여단이 끊을 수도 있다. 그래서 진행이 매끄럽게 잘되지 않는 경우도 있다. 그런데도 ‘대화’의 형식으로 진행하는 게 훨씬 더 중요하다. 개인적으로 TV의 긍정적 역할은 ‘올바른 공론화’라고 생각한다. 이것을 지향하다 보면 어떤 담론의 깊이나 메시지의 밀도가 떨어질 수 있다. 그런데도 대중들의 공론 수준을 고려하지 않은 채 특정 가치를 설파하는 것은 효과적이지 않다. 그것 보다는 오히려 깊이가 깊지 않더라도 올바른 공론화를 마련하는 게 TV가 할 수 있는 좋은 역할이다.”

- 미래참여단을 사실 방청객 정도로 생각했다.

“<명견만리>의 가장 중요한 포인트가 바로 미래참여단이다. 처음에는 과연 미래참여단 운영이 제대로 될까 반신반의했다. 방송 시작 단계에서는 청중 200명, 미래참여단 50명 정도로 방청객 규모를 생각했는데, 지금은 미래참여단에 등록한 사람이 6500명에 달할 정도로 그 규모가 커졌다. 그들을 대상으로 미리 녹화 일정을 공지하고 방청 신청을 받는다. 요즈음은 자체적으로 독서 모임을 통해 방송 주제와 관련된 서적을 미리 읽고 오는 이들도 있더라. 지금까지 25회 방송했는데 회가 거듭할수록 미래참여단의 논의 수준이 높아지고 담론을 만들어내는 정도가 깊어지고 있다. 예를 들어 지난 12월에 방송된 ‘유전자 혁명, 선택의 기로에 서다’편의 경우 과학적인 주제라 굉장히 어려울 수 있는데, 미래참여단이 수준 높은 토론을 끌어냈다. 그걸 프로그램에 대폭 반영했고, 실제로 시청률도 굉장히 잘 나왔다. 어떤 아이템의 경우에는 완성도가 조금 떨어져 보임에도 ‘미래참여단’의 공감이 크면 그 주제에 대한 시청자의 반응 역시 좋다. 프로그램을 진행하면서 ‘이게 바로 힘이구나’라는 걸 느낀다.”

▲ KBS '명견만리-교육의 위기'편 ⓒKBS

미래참여단 ‘10만 양병설’ 우스갯소리지만 명견만리의 미래

- 수백 명에 달하는 시청자를 이끄는 건 시사교양PD들에게 굉장히 생소한 일이기도 하다.

“이런 게 익숙하지 않았다. 녹화는 프로그램을 위한 거로 생각해 왔다. 녹화 자체가 하나의 쇼의 기능을 해야 하는데 처음에는 그렇게 생각하지 못했다. 실제 현장에서 재미가 없더라도, 편집하면 된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그게 아니더라. 막상 회를 거듭하면서 즐거움을 줄 수 있는 녹화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하게 됐다. 현장이 지루한 경우 스태프를 혼내는 분들도 있다. 요즘은 주부 참여단이 많은데, 한 번은 아이들 20-30명을 데리고 KBS 투어를 시켜주기도 했다. 그런 측면에서 여러 아이디어를 고민 중이다. 앞으로도 미래참여단이 잘 유지되려면 새로운 분들이 계속 참여해 선순환 되어야 한다.”

- 앞으로의 라인업은?

“이제까지는 편성이 굉장히 불규칙했는데 2월부터 매주 금요일 정규 편성된다. 설 연휴 직전인 2월 5일 ‘설특집-집안일의 나비효과’편에서는 유인경 전 경향신문 선임기자가 프리젠터로 나선다. 또 기업의 사회적 책임에 대해 손봉호 교수가, 한중일 청년들의 벤처 에너지에 대해 싸이월드를 만들었던 이동영 씨가 프리젠터로 나설 계획이다. 또 30년 후가 되면 평균 수명이 120세가 된다고 하는데 이에 대한 주제도 준비 중이다.”

- 마지막으로 이 프로그램 기획자로서의 꿈은?

“PD는 자기가 만든 이야기로 사람들과 소통하고 영향을 미치고 싶어 한다. 그게 PD들의 로망이다. 사람들한테 뭔가 더 회자하고 영향을 미치고 그런 로망이 있다. 그러나 이러한 영향력은 일방적으로 이루어지지 않는다. 무엇보다 사람들의 생각을 모을 수 있는 것, 소위 플랫폼이라고 하는데. 좋은 플랫폼으로서의 영향력을 만들고 싶다. 현재 미래참여단이 5000명 정도다. 제작진들끼리 ‘10만 양병설’이란 이야기를 우스갯소리로 하는데, 좋은 시민적 담론을 만들어내고, 좋은 공론화를 만들어내는 것 그것이 나의 꿈이다. 그런 프로그램이라면 우리 사회가 정상적으로 굴러가는 데에 큰 도움이 되지 않겠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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