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를 떠나서 살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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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채훈의 영상미래학 ③] ‘인터스텔라’ ‘마션’ ‘엘리지움’

[글 싣는 순서]

1. 영상인문학은 누구에게나 열려 있다
2. 자연과학이 밝혀준 사실(fact)에서 출발
3. <인류가 사라진 세상>에서 인류를 보다
4. 빅히스토리로 본 영상인문학의 가능성
5. 지구를 떠나서 살 수 있을까? - <인터스텔라>, <마션>, <엘리지움>
6. SF, 인류의 뿌리를 탐구하다
7. 영상, 인문학을 대중화하다.

2014년 <인터스텔라>는 한국에서 1000만 명 넘는 관객을 모으며 크게 화제가 됐다. 매스컴은 “현대 우주론의 성과를 잘 반영한 역작”이라는 찬사를 보냈다. 그러나, 웜홀을 통해서 5차원의 우주여행을 한다는 설정은 개연성이 떨어졌다. 오히려 최근의 피곤한 나날에서 지구를 탈출하고 싶다는 욕구가 팽배해 있기 때문에 흥행에 성공한 게 아닐까? 낯선 별로 떠나는 우주여행이 많은 사람들의 환상(fancy)을 자극했고, 거기에 가족애라는 헐리우드의 흥행 코드를 덧칠한 결과 아닐까? 이러한 가정이 맞다는 걸 사람들과 대화할 때마다 확인할 수 있었다. 숨막힐 듯한 경쟁, 앞이 보이지 않는 나날, 많은 사람들은 “지구를 떠나고 싶다”고 말하고 있었다.

지구를 떠나 다른 별로 이주하는 게 가능한 일일까? 영화 <마션>은 화성 이주 계획을 다루어서 인기를 끌었다. 외계의 ‘쌍둥이 지구’는 고사하고, 지구 코 앞에 있는 화성으로 이주하는 것조차 지금 기술로는 거의 불가능하다는 게 천문학자 이명현 박사의 지적이다. 화성은 지구에서 평균 7,800만Km 떨어져 있고 가장 가까이 왔을 때 5,500만Km다. 빛의 속도로 날아가면 200초 안팎, 즉 3분 남짓 걸린다.

▲ 영화 '마션'의 한 장면

화성은 지구 크기의 반 정도로, 지구처럼 계절이 있고 자전축도 지구와 비슷하다. 화성의 하루는 지구의 하루보다 약간 길며, 축이 기울어져 있기 때문에 남극과 북극이 있다. 적도 부근은 여름에 온도가 15~20도까지 올라가기 때문에 쾌적하다. 화성의 토양은 미국 그랜드 캐년과 구분하기 어려울 정도다. 표면에 굵은 모래들이 있기 때문에 애리조나에 먼지 폭풍이 불듯 엄청난 폭풍이 일어난다. 지구는 질소와 산소가 많지만 화성의 대기는 주로 이산화탄소로 돼 있다. 비나 눈 대신 진눈깨비가 주로 내린다. 화성에서는 최근 소금물이 발견된 바 있고, 물이 땅으로 스며들었다 나왔다 한 흔적이 있다. 땅을 파면 얼음이 나오며, 2미터 정도 지하에는 액체 상태의 물이 있지 않을까 추정된다. 화성은 중력이 지구의 4분의 1이라 대기권이 얇다. 자외선에 노출되어 암이 유발되기 쉽지만 생각보다 강하지는 않다고 한다. 우주정거장에서 피폭 당하는 것보다 조금 더 강한 수준의 자외선이라 견딜 만 한 정도라고 한다.

화성을 관광 삼아 여행한다면 아주 근사할 것 같다. 지구에서 볼 수 없는 멋진 풍경이 펼쳐지기 때문이다. 지구의 저녁놀은 붉지만 화성의 저녁놀은 푸르다. 빛이 산란하는 정도가 다르기 때문에 화성의 하늘은 낮에는 연분홍빛이나 연보랏빛이고, 저녁놀은 파란색이다. 하지만 화성 유인탐사 계획은 아직 실현되지 않았다. 가장 큰 문제는 너무 멀다는 점이다. 지금 기술로는 화성까지 가는데 빠르면 8개월, 길면 9개월 정도 걸린다. 인간이 화성까지 9개월 동안 살아서 가려면 일단 먹어야 하고, 대소변을 처리해야 하고, 그 기간의 심리적인 불안상태를 잘 조절해야 한다. 무중력 상태에서 오래 지내면 뼈가 몸을 지탱할 필요가 없어지니 관절이 늘어나고, 근육도 쓸 일이 없으니 말랑말랑해진다. 칼슘이나 칼륨이 다 빠져나가서 골다공증에 걸리게 된다. 우주비행사들은 지구로 돌아오면 잘 걷지 못하기 때문에 재활치료를 받아야 하는데, 이 신체 적응 문제를 해결하는 게 어렵다. 지구로 돌아오기 위해 화성에서 로켓을 발사하는 것도 지금 기술로는 불가능하다.

▲ 영화 '마션' (왼쪽), '인터스텔라' 공식 포스터

다른 별로 가는 것보다 푸른 지구를 잘 가꾸는 게 낫지 않을까?

화성에서는 호흡을 할 수 없기 때문에 달에 갈 때처럼 우주복을 입어야 한다. 기지를 건설하고 그 안에서 생활해야 하는데, 이산화탄소를 배출해야 하고 안전하게 자동시스템을 작동시켜야 한다. 궁극적으로 시아노 박테리아를 증식시켜서 대기에 산소를 공급하고 식물들을 키워서 자급자족하는 게 필요하지만 아직은 비현실적인 얘기다.
 
민간 차원에서 화성 이주를 추진하는 단체도 있다. 2012년에 네덜란드 청년 두 명이 창업한 ‘마스 원’(Mars One) 이라는 비영리 프로젝트가 재미있다. 이 사람들은 2027년 화성으로 이주해서 돌아오지 않겠다며 화성에 갈 사람을 모집하는 오디션 프로그램을 만들었다. 누가 이런 황당한 일에 응모할까 싶었지만, 놀랍게도 20만명 넘는 사람들이 지원했다. 이들 중 남자 둘 여자 둘, 이렇게 4명씩 한 팀을 짜서 10팀을 화성에 보낼 계획이며, 이 모든 과정을 TV 리얼리티쇼로 만들겠다는 것이다.

천문학자 이명현 박사는 화성이 너무 척박한 땅이며, 무엇보다 생명유지 장치를 마련하는 게 곤란하기 때문에 화성 이주는 불가능에 가깝다고 말했다. 조금 더 긴 안목으로, 언젠가 인류가 지구를 떠나야 할 때가 온다면, 화성은 정거장 같은 역할을 할 수 있다. NASA는 2011년 로보놋2(Robonaut2)를 우주정거장에 보냈는데, 장차 이 인공지능이 더 똑똑해지면 인간 대신 화성이주 프로젝트를 실행할 가능성도 있다. 우주로 나갈 때 가장 큰 걸림돌은 생명유지 장치인데, 이 로봇이 있으면 “왜 굳이 사람이 가야 해?” 라고 생각하게 된다는 것이다. 어느 경우든 인간이 다른 별로 이주하는 꿈은 비현실적이기 때문에, 지구에서 그냥 잘 사는 게 낫다는 결론이 나오는 것이다. 이렇게 보면 영화 <마션> 또한 과학의 외피를 쓴 오락물의 범주를 벗어나지 못하며, 영상인문학으로서는 그리 높은 점수를 주기 어렵다는 결론이다. 

▲ 영화 '엘리시움' 공식 포스터

이에 비하면 영화 <엘리지움>이 훨씬 더 뛰어난 영상인문학의 가능성을 보여준다. 작금의 빈부격차를 그대로 둘 경우 세상은 어떻게 변할까? <엘리지움>은 소득 불균형과 계급 격차가 극단으로 치닫는 미래의 디스토피아를 보여준다. 2054년, 소수의 선택받은 사람들은 지구 궤도에 호화로운 ‘엘리지움’을 건설하고 의료 혜택을 독점하며 살아간다. 압도적 다수인 평범한 사람들은 지상의 오염된 도시에서 로봇 경찰들의 감시 아래 강제노역에 시달린다. LA 슬럼에 살던 맥스는 방사선에 오염되어 닷새 뒤 죽을 운명인데, 엘리지움의 의료시설을 사용하면 나을 수 있다. 삼엄한 경계를 뚫고 엘리지움에 진입한 맥스는 결국 목숨을 잃지만, 모든 지구 주민들이 의료 서비스를 받을 수 있게 만든다. 영화는 해피엔딩이지만 참 고생스럽게 도달한 결론이다. 이 영화는 미래 인류의 모습을 묘사한 수많은 영화 중 ‘개연성’이 가장 높은 빼어난 영상인문학이라 할 수 있다.

(계속)

[이채훈의 영상미래학 다른 글 보기]

*글쓴이는 MBC에서 <이제는 말할 수 있다>로 방송대상, 통일언론상을 수상했다. 한국PD교육원 전문위원으로 일하며 인문학과 클래식으로 이 시대 PD들과 소통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저서로는 <ET가 인간을 보면> <이마에 아저씨의 토닥토닥 클래식> <음악가의 연애>(공저)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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