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도의 다른 이름, 보물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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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욱한PD의 촌방촌설 村放寸說] KBS제주 ‘보물섬’

▲ ‘보물섬’은 제주도라는 공간을 배경으로 이어져온 역사와 문화와 서민들의 생활을 보물로 인식하고 접근한다. ⓒKBS제주

보물섬을 찾아 떠나는 모험을 소재로 한 다양한 스토리텔링의 기원은 아마도 대항해 시대 이후 탄생한 서양의 문학에서 찾는 것이 맞을 것이다. 꿈과 모험을 찾아나서는 호연지기를 기르는 문학 장르인 것처럼 후대에 전해지고 있지만, 기실 그 보물섬에 대한 환상은 부와 욕망을 찾아 나선 해적에 가까운 무리들의 살육과 투쟁에 대한 이야기가 각색되고 탈색되어 전해진 허구의 이야기일 뿐이다. 서두부터 이런 살벌한 이야기를 꺼내는 이유는 진정한 보물섬에 대한 이야기를 시작하기 위해서이다. 서구에서 시작된 해묵은 보물섬의 이미지 때문에 제주도라는 아름다운 보물섬이 행여 빛을 잃을까봐 저어하는 마음이 있어서 생각이 여기에 미친 것이다. 그만큼 제주도의 진정한 아름다움을 담아내고 있는 KBS제주의 <보물섬>을 소개하는 작업이 설레기도 하고 삼가 조심스럽기도 하다.

<보물섬>은 두 개의 보물을 한꺼번에 선사하는 방송이다. <보물섬>은 제주도라는 공간을 배경으로 이어져온 역사와 문화와 서민들의 생활을 보물로 인식하고 접근한다. 제주도가 바로 한반도와는 다른 귀한 특성을 가진 보물들의 집산지 즉 보물섬이 되는 것이다. 여기에 더해 ‘보물섬’자체가 지역의 귀중한 보물 같은 프로그램으로 자리 잡고 있다. 보물섬을 찾아 떠나는 설레는 여정을 지금부터 시작해 볼까 한다.

제주어(語)를 아는가? 쉽게 말하면 제주 방언 혹은 제주도에서 쓰는 사투리를 칭하는 말이다. 전국 어느 지역의 방언도 독자적인 언어로 명칭을 부여받지 못하고 있지만 제주방언은 고유한 하나의 언어 체계로 그 가치를 인정받고 있다. 제주어는 한반도 방언과는 달리, 고어(古語)가 많이 보존되어 있고, 차용어도 많아서 한국어의 원형과 한글의 제작원리를 보여주는 언어로 그 특수성과 언어학적 가치가 풍부하다. 이런 제주어의 지킴이 역할을 자임하고 나선 프로그램이 ‘보물섬’이다. 한국에서 한국말로 제작된 방송에서 시종일관 자막이 등장하는 프로그램은 아마 ‘보물섬’이 유일하지 않을까 싶다. 그만큼 <보물섬>은 제주어를 방송에서 적극적으로 사용하고 또 지키기 위해 노력하는 프로그램이다.

▲ KBS제주 '보물섬' 타이틀 ⓒKBS제주

먼저 <보물섬>의 코너 이름을 소개하는 것이 이해를 돕기 편할 듯하다. ‘고치글라 우리마을’

‘요보록 소보록’ ‘불휘 짚은 제주’ ‘쉐프의 살레’의 뜻을 해석할 수 있는 이들이 흔치 않을 것이다. (이 퀴즈의 답은 마지막에 소개됩니다) 이렇게 코너 이름부터 정통(?) 제주어를 전면에 내세운 데서 짐작할 수 있듯이 제작진의 제주어 사랑은 각별하다 못해 사명감이 느껴지는 수준에 이른 듯하다. 각각의 코너에 등장하는 모든 진행자들은 자연스럽게 혹은 의식적으로 제주어를 방송에서 구사한다. 그리고 그들을 반기는 지역의 어른신들도 편안하게 제주어로 화답한다. 그리고 그들의 대화는 표준어 자막으로 지역 시청자들에게 번역되어서 다가간다. 새롭고 재밌는 방송 형태이다. 제주어를 향한 제작진의 책임감과 열정의 깊이를 느낄 수 있는 오수안PD의 말을 소개한다.
“제주어가 점차 사라져 간다는 위기의식이 있었습니다. 독특하게 발전해온 제주어라는 보물이 사라져 버린다면 너무 아쉽잖아요. 그래서 아예 제주어를 전면에 내세웠어요. 또한 실제 제주도민들이 사용하는 말이기 때문에 프로그램의 리얼리티를 확보하고 공감대를 얻을 수 있다는 판단도 있었습니다. 이 프로그램을 통해 시청자들이 제주의 말과 글에 대해 한번이라도 생각해 볼 기회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이 같은 제주어의 문화적 가치를 보전하고 계승하기 위해 2007년 전국 지방자치단체 중 처음으로 방언에 관한 조례가 제정되고, 2009년에는 '제주어사전' 개정증보판이 출간되기도 했다. 하지만 이러한 노력에도 불구하고 제주어는 2011년 유네스코가 지정하는 '소멸위기 언어' 5단계 중 4단계인 '아주 심각한 위기에 처한 언어'에 등재되어서 안타까움을 주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보물섬>이라는 보물 같은 프로그램이 등장한 것은 참 적절하고도 고마운 일이다.

<보물섬>의 제주어 사랑은 제주어 드라마에서 그 정점을 찍는다. ‘요보록 소보록’ 코너에서 지역 연극인들과 함께 제주어만으로 드라마를 만드는 전인미답의 실험을 하는가 하면, 후속 코너인 ‘불휘 짚은 제주’에서는 제주어 다큐드라마를 밀어붙이는 뚝심을 발휘한다. 전작의 코너가 드라마 속에서 제주어 속담과 표현을 시청자들에게 알리는 효과를 거두었다면, 후속 코너는 드라마 속에서 제주도의 역사가 자연스럽게 안방으로 전달되는 성과를 거두는 데까지 나아간다. 이런 기획과 시도 모두 제주어에 대한 뜨거운 자부심과 사랑이 없다면 불가능했을 것이다. 그 열정의 한 단면을 오수안PD의 이야기 속에서 엿볼 수 있다.
“매주 20분 정도의 분량으로 더구나 제주 속담에 부합하는 상황까지 만들기는 결코 쉽지는 않았습니다. 배우들이 제주어가 입에 붙지 않아서 외우느라 몹시 힘들어 했습니다. 한정된 예산과 제작일정 탓에 새벽 5시부터 시작해 밤 9시가 넘어서 촬영이 끝날 때가 빈번했습니다. 새해가 되면서 여기에 덧붙여 제주의 여러 문화 상징과 역사적 사건들을 정리해 소개해보자는 욕심을 부렸는데요, 출연하는 배우들과 여러 스텝들의 헌신적인 노력이 없었다면 불가능한 일이었다고 생각합니다.”

▲ 보물섬>의 제주어 사랑은 제주어 드라마에서 그 정점을 찍는다. ⓒKBS제주

그런데 <보물섬>이 제주어 사랑에만 머물러 있었다면 공익성과 재미라는 두 마리의 토끼를 잡는데 실패했을 수도 있을 것이다. 의외로 보물섬은 재미라는 잣대를 들이대도 전혀 부족함이 없다. ‘쉐프의 살레’가 그 대표적 예이다. 제주도의 젊은 쉐프가 등장한다는 점에서는 기존의 수많은 이른바 ‘쉐프 프로그램’과 비슷해 보이지만, 이 코너 속으로 눈길을 주는 순간 전혀 다른 결의 먹방 프로그램이 정체를 드러낸다. 김태효 쉐프는 제주도의 작은 마을 곳곳을 찾아다니며 동네 할머니 어머니들의 제주도 전통 요리들을 배우고 또 대접받는다. 그 다음에는 그 지역에서만 나는 제주의 산물들로 그만의 새로운 요리를 어르신들에게 대접한다. 유럽의 음식을 만들던 청년 쉐프는 제주도의 향토 요리에 감동을 받고, 어른신들은 집으로 찾아온 젊은이로부터 활기를 얻고 또 근사한 새로운 요리도 맛보는 호사를 누린다. 주는 이와 받는 이의 구분이 사라지고 남는 것은 행복한 음식과 인정과 세상에 없던 새로운 레시피이다. 이 얼마나 행복한 방송인가.

<보물섬>에서 빼놓을 수 없는 또 하나의 대표 코너가 있다. 어쩌면 <보물섬>이 가장 지역민들과 살갑게 접촉할 수 있는 장을 만드는 코너일 것이다. 바로 ‘고치글라 우리마을’이다. 매주 한 마을을 찾아간다는 점에서는 농촌순회 프로그램의 장르에서 크게 벗어나 있지 않다. 하지만 이 코너만의 장점과 특징은 말과 노래에 있다. 그리고 말과 노래를 코너의 장점으로 만들어내는 요소는 진행자 박순동씨이다. 초등학교 교사인 그는 나이와 어울리지 않을 정도로 구수하고 자연스러운 제주어의 고수이다. 여기에 더해 제주어를 활용한 자작곡들을 방송의 곳곳에 활용하고 있다. 코너 타이틀 음악은 물론이고 촬영 중에 그의 음악과 노래들이 소개되고 또 현장에서 라이브로 불려진다. 당연히 그 가사는 표준어 해석 자막을 동반한다. 자막으로 해석되어 소개되는 노래임에도 불구하고 그 뜻과 느낌이 더 친근하고 편하게 와 닿는다. 이는 아마도 박순동씨가 전문 방송인이 아니어서 더 진솔한 느낌을 전하기 때문이 아닐까 짐작해 본다. 이렇게 ‘고치글라 우리마을’ 코너는 왁자지껄한 소란스러움 보자는 다정다감한 제주어 진행과 밝은 제주어 노래, 그리고 안정된 내레이션을 도입함으로써 제주만의 새로운 농촌 프로그램의 가능성을 제시하고 있다.

▲ 제주방언은 고유한 하나의 언어 체계로 그 가치를 인정받고 있다. 제주어는 한반도 방언과는 달리, 고어(古語)가 많이 보존되어 있고, 차용어도 많아서 한국어의 원형과 한글의 제작원리를 보여주는 언어로 그 특수성과 언어학적 가치가 풍부하다. ⓒKBS제주

<보물섬>에는 보물 같은 코너들을 관통하는 큰 줄기가 있다. 바로 공익성을 향한 우직한 발걸음이다. 그리고 그 공익성의 바탕에는 제주도라는 지역에 대한 뜨거운 자부심이 자리 잡고 있다. 예를 들면 ‘쉐프의 살레’에서 요리 재료로 흑우(黑牛)가 등장한 방송에서 요리 코너가 어느새 제주도 특산물인 흑우의 역사 다큐로 순간 이동하기도 한다. 사소한 것 하나라도 놓치지 않고 제주도의 다양한 생활사들을 소개하고자 하는 제작진들의 노력이 이렇게 방송에 녹아드는 것이다. 오수안 PD의 말 속에 그 답이 있다. ‘보물섬’이 출발했던 지점의 기획의도이자 ‘보물섬’이 가 닿고자하는 꿈이 담겨있는 말이 될 것이다.
“결국 제주와 제주 사람들의 이야기를 제대로 해보자는 거죠. 제주가 단순히 아름다운 풍광만을 가진 섬이 아니라 그 위에 독특한 역사와 문화, 자연 그리고 사람들의 삶의 이야기가 가득한데, 이를 재미있게 전달해주자!” 

2010년 보물섬이라는 타이틀로 첫발을 내디딘 이후 휴지기를 지나 작년부터 새로운 각오로 재도약하고 있는 제주KBS의 <보물섬>은 2명의 PD와 3명의 작가가 열정 페이를 지불하는 프로그램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 페이 속에는 제주의 생활사를 하나씩 구축해나간다는 큰 보람이 따라 붙는다. 더구나 제주어 보존이라는 인류사적 사명도 또 하나 추가된다. 그만큼 ‘보물섬’이 짊어진 책임과 기대의 무게가 큰 것이다. 이런 노력에는 지역 사회 전체가 호응하고 발맞춰 주는 지원도 따라야 할 것이다.

끝으로 퀴즈 정답을 밝힌다.

고치글라 우리마을 = 같이가자 우리마을

요보록 소보록 = 알게 모르게

불휘 짚은 제주 = 뿌리 깊은 제주

쉐프의 살레 = 쉐프의 찬장

이런 아름다운 제주어의 수호천사인 <보물섬>이 반짝이는 빛을 오래오래 간직할 수 있기를 기원한다. 더불어 제주도가 진정한 보물섬이 되어서 한반도의 남쪽 끝에서 평화와 행복의 따뜻한 마파람을 불어 올려 주길 꿈꿔본다.

▲ 김욱한 PD

*필자 김욱한 PD는 포항MBC 편성제작센터장이면서 PD연합회 대구경북지부장을 역임하고 있다. 술과 썸타면서 방송과 연애하고 있고 책과 밀당 중이다. '변방에서 낮게 나는 부엉이'라는 황당한 닉네임을 스스로 즐겨 사용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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