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C 녹취록’ 제보자 KBS 간부와 담합 폭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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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심의실장과의 문자 내용 공개…당사자 “사실 아니다”

“[기사검토]방송법 개정안 노사동수의 편성위원회 구성 민영 종편을 제외한 공영방송에는 여야합의가 된 것 같은데 여당이 정말 미친 것 같습니다. 방송법에 의한 편성규약으로 만들어진 공방위에서도 노조가 전횡을 일삼고 있는데.. 이 개정안이 통과되면 공영방송은 그야말로 노영방송으로 가는 수밖에 없습니다. ㅜㅜ”(2014년 3월 26일 오후 6시 49분, 당시 B KBS 심의실장이 A <폴리뷰> 기자에게 보낸 문자 내용)

“[보도협조]KBS논객 이OO PD의 글을 송부하였사오니 널리 보도해주시길 바랍니다. B 드림”(2014년 5월 23일 오전 11시 46분, 당시 B KBS 심의실장이 A <폴리뷰> 기자에게 보낸 문자 내용)

▲ 언론노조 KBS본부(위원장 성재호)가 19일 노보를 통해 공개한 B KBS인재개발원장(전 심의실장)이 보수 인터넷 매체 A 전 기자에게 보낸 문자메시지. ⓒ언론노조 KBS본부

‘MBC 백종문 녹취록’ 파문이 KBS(사장 고대영)로 이어지는 모양새다. 공정성과 중립성이 요구되는 KBS 전 심의실장이 보수매체와 긴밀한 관계를 유지하며 노조 등을 폄훼하는 내용의 기사화를 요구한 사실이 언론노조 KBS본부(위원장 성재호, 이하 KBS본부)의 취재를 통해 드러난 것이다.

KBS본부는 19일 노보 185호 통해 ‘MBC 백종문 녹취록’을 폭로한 보수 성향의 인터넷매체인 <폴리뷰>의 전 기자 A씨를 만나 B 전 KBS 심의실장(현 KBS인재개발원장)과 주고받은 문자메시지를 확보했다.

문자메시지는 B 원장이 심의실장으로 있던 지난 2013년 10월경부터 지난해 1월까지 계속된 것으로 드러났다. 이 가운데 28건의 문자는 B 원장이 심의실장 재직 중 주고받은 내용이다. KBS본부는 이 가운데 8개의 문자를 추려 노보를 통해 공개했다.

A 전 기자가 KBS본부에 밝힌 바에 따르면 지난 2012년 말에서 2013년 초쯤 B 원장의 요청으로 B 원장과 <폴리뷰> 편집국장, 또 다른 인터넷 매체 C 편집장 등이 만남을 가졌고, 이후 ‘긴밀한 관계’가 만들어졌다.

A 전 기자는 B 원장이 KBS본부를 폄훼하는 논리를 여러 차례 강조했다고 설명하며, 지난 2013년에는 A 전 기자가 KBS 내에 위치한 KBS공영노조 사무실에 초대받아 KBS 사내게시판인 ‘코비스’에 직접 접속해 KBS본부 조합원 관련 자료를 검색한 적도 있다고 밝혔다.

▲ 언론노조 KBS본부(위원장 성재호)가 19일 노보를 통해 공개한 B KBS인재개발원장(전 심의실장)이 보수 인터넷 매체 A 전 기자에게 보낸 문자메시지 내용. ⓒ언론노조 KBS본부

공개된 문자들은 오전 오후를 가리지 않고 B 원장이 A 전 기자에게 심의 결과를 알려주거나 사내게시판에 올라온 글을 A 전 기자에게 보냈다며 기사화를 검토해달라는 내용 등을 담고 있다. 문자 내용은 다음과 같다.

“<열린채널> 관련기사 잘 보았습니다. 고맙습니다. 이 내용에 대하여는 심의실에서 KBS본부노조에 정정보도를 요청하였고, 홍보실에 방송심의규정을 보내 기자들의 문의에 답할 수 있도록 조치하였습니다. B 배상.”(2013년 10월 27일 오후 7시 5분)

“열린채널 기사 잘 보았습니다. 심의실에서는 OOO PD에게 경고를 주어 재발방지를 촉구하였습니다. B 배상.”(2013년 11월 1일 오후 2시 9분)

“최근 KBS 길환영 사장 퇴진과 관련, 사내게시판에 올라온 글을 메일로 송부하였습니다. 확인하시고 널리 알려주시길 바랍니다. B 드림.”(2014년 5월 18일 오후 5시 10분)

“[보도요청]사내게시판에 올라온 글-방송에 복귀해야 하는 이유-를 송부하였사오니 확인바랍니다. B 드림.”(2014년 5월 28일 오전 8시 18분)

최근 논란이 되고 있는 ‘MBC 백종문 녹취록’은 MBC 경영진인 백종문 미래전략본부장 등이 <폴리뷰> 편집국장과 기자를 만나 MBC 내부 정보를 외부 매체에 제공하겠다는 이른바 ‘파이프라인 구축’, 라디오는 빨갱이라는 내용, 시사프로그램에 경영진의 개입이 의심되는 발언 등이 담겨 있다. 이 같은 녹취록을 두고 MBC 안팎에서는 영화 <내부자들>의 ‘현실판’이라며 진상규명과 함께 관련자에 대해 책임을 물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이번 B 원장의 문자 내용은 MBC 녹취록 속 ‘파이프라인 구축’ 논의가 KBS에서는 실제로 행해졌음을 보여주는 하다. 방송사 간부, 그것도 공정성과 중립성을 지켜 프로그램을 심의하는 심의실의 실장이 내부 정보를 외부에 유출하고 기사화할 것을 요청했다는 사실이 드러났다는 것이 KBS본부의 설명이다.

이는 지난 2007년 공개된 ‘강동순 녹취록’을 떠올리게 하는 대목이기도 하다. 지난 2007년 <PD저널>의 보도로 알려진 이른바 ‘강동순 녹취록’에서는 2006년 강동순 전 방송위원회 위원이 윤명식 당시 KBS 심의위원, 유승민 한나라당(현 새누리당) 의원 등과 만나 나눈 대화가 담겨 있다.

당시에도 정치적 중립성과 방송의 공정성 의무를 지켜야 할 방송위원과 공영방송 간부가 특정 정파에 대한 정치적 편향성을 드러내며 KBS 방송을 이용하고 관리하겠다는 내용 등이 알려지며 방송계에 큰 파문을 던진 바 있다.

이번 문자메시지 파문을 두고 KBS본부는 감사실 감사 요청 등 다양한 방법을 통해 B 원장의 행위가 사규와 법규를 위반했는지에 대해 확인하기로 했다.

이에 앞서 KBS본부는 B 원장에게 전화를 걸어 이 같은 행동이 당시 심의실장으로 적절했느냐고 물었고, 이에 대해 B 원장은 “공영노조위원장 시절에는 보도협조 (요청)한 것은 있지만 사용자적 위치(심의실장 재직시)에서는 그런 기억이 없다”고 말한 것으로 전해진다.

KBS본부는 “B 원장은 엄정한 공정성과 중립성이 요구되는 심의실장으로 있으면서 논란이 있는 회사 현안과 방송프로그램과 관련해 일방적이고 편향적인 시각의 기사를 확대, 재생산하는 데 외부 매체와 담합한 흔적이 곳곳에서 드러난다”고 지적했다.

이 같은 논란에 대해 B 원장은 19일 <PD저널>과의 통화에서 A 전 기자는 알고 있지만 KBS본부가 제기한 내용에 대해서는 “사실과 다르다. 오래돼서 기억 할 수 없다”고 말했다.

이어 B 원장은 “(KBS본부에게) 사실 확인을 하고 난 다음에 하는 게 온당하다고 의견을 낸 바 있다”며 “지금은 (노보) 내용도 모르겠고, 내용을 확인하는 과정을 거쳐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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