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리버스터 ‘왜’ 빠진 지상파 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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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도비평] 테러방지법 직권상정 문제에 대한 설명 없이 여야 갈등으로 보도

▲ 은수미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24일 국회 본회의장에서 테러방지법의 본회의 의결을 막기 위한 필리버스터(무제한 토론을 통한 합법적 의사진행방해)를 마친 뒤 눈물을 훔치고 있다. 이날 은수미 의원은 10시간 18분 발언으로 국회의 필리버스터 국내 최장 기록을 경신했다. ⓒ뉴스1

정의화 국회의장이 지난 23일 현재의 한반도 상황을 ‘전시·사변에 준하는 국가 비상사태’로 규정하며 국가정보원에 테러 용의자 감청·계좌추적 등을 허용하는 내용의 ‘국민보호와 공공안전을 위한 테러방지법’(이하 테러방지법) 제정안을 국회 본회의에 직권상정했다. 이에 야당은 47년 만에 필리버스터(무제한 토론)를 진행하며 본회의 표결을 막기 위해 나섰다. 그러나 지난 23일 지상파 3사 메인뉴스에서는 필리버스터가 발동됐다는 소식에만 초점을 맞췄을 뿐 ‘왜’ 필리버스터가 진행될 수밖에 없었는지, 왜 법안 통과에 대한 반대 목소리가 있는지 그 ‘이유’는 설명하지 않았다.

테러방지법안은 해당 법안이 갖고 있는 인권침해 문제, ‘테러위험인물’의 모호함, 국가정보원(이하 국정원)에 부여될 과도한 권한 등의 문제로 지난 15년간 통과되지 못한 법이다. 이에 지난 23일 직권상정을 놓고 국민들은 정부여당의 주장처럼 실질적인 테러방지의 효과가 있는지, 법안을 둘러싼 여야의 첨예한 대립, 법안의 실효성과 목적을 믿지 못하겠다는 반대 여론에도 왜 국회의장이 ‘직권상정’이라는 최후의 카드를 썼는지 등에 대한 의문이 이어질 수밖에 없다.

▲ KBS 메인뉴스인 <뉴스9> 2월 23일 톱 리포트 <테러방지법 직권 상정…야, ‘무제한 토론’ 돌입>. ⓒ화면캡처

지상파 메인뉴스, 직권상정 반발하는 야당 중계에 초점

그러나 지상파 3사 메인뉴스만을 봤을 때, 이 같은 의문은 의문으로만 남게 된다. 47년 만에 일어난 ‘필리버스터’가 ‘왜’ 일어났는지에 대한 구체적인 내용보다는 직권상정에 ‘반발’해 ‘맞불’을 놓으며 실력저지에 나섰다는 식으로 보도했기 때문이다.

KBS와 MBC, SBS가 해당 소식을 전하는 방식은 유사하다. KBS 메인뉴스인 <뉴스9>는 톱 리포트에서 <테러방지법 직권 상정…야, ‘무제한 토론’ 돌입>에서, MBC 메인뉴스인 <뉴스데스크>에서는 세 번째 리포트 <더민주 직권상정에 반발, ‘무제한 토론’ 돌입>에서, SBS 메인뉴스인 <8뉴스>에서는 두 번째 리포트 <정치테러방지법 직권상정…더민주 ‘필리버스터’ 맞불>에서 각각 해당 소식을 전했다.

내용은 비슷하다. 정 국회의장의 직권상정에 야당이 지난 2012년 국회 선진화법 개정 이후 처음으로 ‘필리버스터(무제한 토론)’를 진행해 직권상정에 반발하고 있다는 내용이다. “더불어민주당은 테러 관련 정보 수집 권한을 국가정보원에 주면 권한남용이 우려된다면서 법안 처리에 반대하고 있다”(MBC <뉴스데스크>)며 반대 이유에 대해 언급했지만 법안의 어떤 부분에 대해 반대하고 있는지, 법안이 시행될 경우 우려대로 국정원의 권한남용이 될 만한 내용이 있는지, 있다면 어떤 부분에서 여야의 첨예한 의견 대립을 하고 있는지 등에 대한 궁금증을 풀어내기엔 역부족이었다.

KBS가 두 번째 리포트 <테러법 핵심 ‘정보 수집·조사 권한 국정원 부여’>에서 본회의에 상정된 테러방지법안에 대해 설명하긴 했지만 말그대로 법안이 어떤 내용을 담는지에 대한 설명이었을 뿐 ‘무엇’이 문제인지를 찾아보기는 힘들었다.

▲ MBC 메인뉴스인 <뉴스데스크> 2월 23일 세 번째 리포트 <더민주 직권상정에 반발, ‘무제한 토론’ 돌입>. ⓒ화면캡처

여론의 궁금증, 테러방지법 문제와 반대 이유는 어디서 볼 수 있나

“총선이 불과 50일 앞으로 다가온 상황에서 야당이 오는 26일로 잡혀 있는 선거법 처리를 미루면서까지 필리버스터를 계속할 수 있을지는 불투명해 보인다”(SBS <8뉴스>)라고 했지만 중요한 것은 ‘필리버스터’를 얼마나 이어갈 수 있느냐가 아니다. 어느 의원이 몇 시간 동안 발언을 이어가고 있는지가 중요한 게 아니다. 시청자들이 궁금해 하는 건 거듭 말했듯이 ‘무엇’과 ‘왜’이다.

앞서 직권상정이 된 날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과 민주주의법학연구회, 인권운동공간 ‘활’, 인권운동사랑방, 진보네트워크센터, 참여연대는 <이철우 의원 발의 ‘테러방지법안(국회의장 직권상정안)’에 대한 긴급의견서>를 통해 테러방지법에서 인권침해 독소조항이 발견됐다며 ‘반(反)인권적 법안’에 대한 우려를 내비쳤다. 또한 해당 법안을 직권상정하는 것은 “최악의 법에 대한 최악의 처리 조치”라고 비판했다.

이들 단체가 긴급의견서를 내고 ‘최악의 법’, ‘최악의 조치’라고 비판한 이유는 일단 법안에서 말하는 ‘테러위험인물’, 다시 말해 “테러단체의 조직원이거나 테러단체 선전, 테러자금 모금・기부 기타 테러예비・음모・선전・선동을 하였거나 하였다고 의심할 상당한 이유가 있는 자”에 대한 정의가 모호하다는 점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테러방지법에서 말하는 ‘테러위험인물’을 지정하고 해제하는 절차와 주체가 명확하지 않은 상황에서 테러방지법의 핵심이라 할 수 있는 ‘정보 수집·조사 권한’을 부여받아 ‘테러위험인물’ 지정의 주체가 될 국정원의 판단만으로 법안의 핵심 정의가 이뤄진다는 사실 또한 반대 여론이 높다.

지난 2012년 대선에서 댓글 조작 논란이 있었고 그 이후에도 제대로 된 진실 규명이 되지 않은 채 국민들로부터 해체 내지 개혁 요구를 받아온 국정원이 테러방지법을 통해 막강한 권한을 부여받는 다는 사실에 대한 우려가 큰 것도 사실이다.

▲ SBS 메인뉴스인 <8뉴스> 2월 23일 두 번째 리포트 <정치테러방지법 직권상정…더민주 ‘필리버스터’ 맞불>. ⓒ화면캡처

“뭐하고 있는 걸까요?”

24일 KBS ‘강민수・김나나 앵커의 손바닥 뉴스’에서는 이번 테러방지법 직권상정과 이에 반대하는 야당 의원들의 필리버스터를 두고 이렇게 말하고 있다.

“국가 안보 국민안전에 한목소리 내도 부족할 때 우린 뭐하고 있는 걸까요? 이러다 주변국들이 우리 운명까지 결정하게 됩니다.”

그러면 ‘국가 안보 국민안전에 한목소리 내도 부족할 때’라면 왜 부족하고 왜 한목소리를 내야 하는지, 왜 테러방지법이 통과되지 않는다면 ‘주변국들이 우리 운명까지 결정하게 된다’는 건지 묻고 싶다. 알려야 할 것을 알리고 설명해야 할 것을 설명하고 국민과 시청자의 질문에 답해줘야 하는 게 언론이라면 말이다.

이 같은 테러방지법 보도를 접한 언론인의 반응은 지상파 언론이 다시 한 번 곱씹어봐야 할 내용이다.

“이 나라의 주류 언론에 의존하면 지금 의회에서 일어나는 일을 제대로 알기 어렵다. (기자들은) 간밤에 ‘죽은 기자의 사회(Dead Journalists Society)’를 향한 시민의 필리버스터가 네트워크를 울렸음을 인식해야 한다.”(최진순 한국경제신문 기자, 24일 트위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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