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KT·CJ헬로비전 인수합병 공청회, 마지막까지 깜깜이
상태바
SKT·CJ헬로비전 인수합병 공청회, 마지막까지 깜깜이
기본 자료나 심사기준도 없이 찬반 의견만 반복 청취…기업들만 이해당사자인가 문제제기
  • 김세옥 기자
  • 승인 2016.02.25 07:1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SK텔레콤과 CJ헬로비전의 인수합병 심사를 진행 중인 미래창조과학부(이하 미래부)가 24일 공청회를 열었다. 인가 심사 과정에서 미래부가 사실상 마지막으로 외부 의견을 공식 수렴하는 자리였지만, 심사기준은 물론 이동통신과 유료방송, 초고속인터넷 가입자 수 등 기본 자료의 공개조차 없었다. 방송‧통신 산업은 물론 사회 전반에 큰 파장을 예고하는 사안임에도 정부가 형식으로만 여론을 수렴하는 모양새를 갖추고 서둘러 논의를 마무리하려는 게 아니냐는 지적이 이날 공청회에서 이어진 이유다.

결합상품 폐해 부정하며 멀티플렉스 효과 말하는 SKT…독과점 우려는?

서울 양재동 더케이서울호텔에서 열린 이날 공청회에서 가장 논란이었던 부분은 SK텔레콤에서 인수합병 이후 결합상품을 통해 시장지배력을 확대할 경우에 대한 내용이었다. 이동통신 시장 점유율 50%에 육박하는 SK텔레콤이 케이블TV 1위 사업자인 CJ헬로비전을 인수합병 할 경우 ‘이동통신-유료방송(케이블TV)’ 결합상품 등을 통해 이동통신 시장에서의 지배력을 더욱 강화함은 물론, 초고속인터넷‧유료방송 등의 시장에서도 영향력을 확대하지 않겠냐는 우려다.

이와 관련해 박추환 영남대 교수(경제금융학)는 “SK텔레콤이 CJ헬로비전을 인수합병 할 경우 시장 집중도가 높아져 이동통신‧유료방송‧초고속인터넷 등 개별 시장에서 최대 17조 6000억 원, 결합시장에서 최대 6조 7000억 원의 소비자 후생손실이 있을 수 있다”고 말했다. 후생손실이란 시장경쟁이 줄어 소비자가 원래의 서비스 가치보다 더 많이 지불해야 하는 비용을 의미한다.

▲ 미래창조과학부 주최로 24일 오후 서울 양재동 더케이서울호텔에서 SK텔레콤-CJ헬로비전 인수합병 공청회가 열리고 있다. ⓒPD저널

최영묵 성공회대 교수(신문방송학)는 “거대 통신사업자가 케이블TV를 인수합병 할 경우 방송서비스는 결합상품의 떡고물로 전락할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IPTV를 운영하는 이동통신사업자들이 이미 결합상품으로 방송(IPTV)을 가입자 확대를 위한 미끼상품처럼 이용하는 상황인데, 이동통신과 케이블TV라는 새로운 묶음상품으로 이런 경향을 더욱 확대할 거란 우려다.

최영묵 교수는 “방송 정책은 기본적으로 공익성과 공공성, 다양성, 지역성 등 시장에서 (자연스레) 공급되지 않는 서비스를 공급할 수 있도록 하는 게 핵심으로, 경쟁의 논리로만 갈 수 없다”며 “경영에 성공해도 저널리즘에서 실패할 경우 그 방송사업자는 실패한 사업자인 게 방송임을 고려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반면 전성훈 서강대 교수(경제학부)는 “결합상품이 장기적으로 소비자들에게 해가 될 수도 있지만 그러려면 사전에 가격 출혈경쟁이 있어야 한다”며 “즉, 경쟁사를 시장에서 퇴출시킬 만큼 가격을 낮춘 후 이후 이를 보상받아야 의미가 있는 건데, 현재 정부에선 사후규제로 가격을 제한하고 있기 때문에 이런 일은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업체들 간의 의견대립도 이어졌다. 박형일 LGU+ 상무는 “이동통신 시장 점유율이 5대 3대 2로 십수년 고착화 된 상황으로, SK텔레콤이 전체 영업이익의 80%를 차지하고 있다”며 “인수합병 성사 시 시장경쟁을 무력화하는 결과가 나올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이에 인수합병의 당사자인 SK텔레콤의 이상헌 실장은 “과거 하나로텔레콤 인수합병 당시에도 독점으로 다른 사업자를 퇴출시키는 결과를 낳을 거란 주장이 LG 쪽에서 나왔지만, 현실은 (LG가) ARPU(가입자당 매출액)와 가입자 측면 모두에서 SK텔레콤과 KT를 능가하는 성장을 기록했고, 결합상품으로 가입자를 늘리는 건 경쟁사들도 마찬가지”라고 말했다.

SK텔레콤은 세계 미디어 시장과의 경쟁을 위해서라도 인수합병은 필요하다고 강조하고 있다. 이와 관련해 이상헌 실장은 영화 시장을 예로 들며 “한국 영화가 1000만명 시장을 개척할 수 있었던 배경엔 멀티플렉스 도입이 있다”며 “양질의 콘텐츠를 제작‧공급할 수 있는 환경을 제공했기 때문에 이런 성장이 가능했지만, 유료방송은 현재 성장이 닫히고 침체의 장기화 상황에 놓여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최영묵 교수는 “SK텔레콤에서 인수합병의 목표로 일자리 창출과 글로벌 미디어 경쟁력 등을 말하고 있지만 이는 상식에 맞지 않다”며 “내수시장의 문제일 뿐인 만큼 몸집을 키운다고 일자리 창출이나 글로벌 경쟁력 확보는 가능하지 않다. 결국 결합판매 확대와 독점으로 시장 지배력을 키우려는 목적”이라고 말했다. 박형일 상무도 “(SK텔레콤 쪽에서) 영화산업과 비교하며 멀티플렉스를 언급했지만, 이로 인해 중소‧독립제작사에선 상영관을 구하지 못하는 문제도 있다”며 “경쟁을 촉진하기 위해선 (독점이 아닌) 다양상 플랫폼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사업자만 이해관계자? 미래부 의견청취 방식 ‘논란’…“숙의를 위한 시간 더 필요”

이날 공청회에선 산업 전반에 영향을 미칠 인수합병에 대한 논의를 하면서도 심사기준이나 관련 자료조차 공개하지 않는 미래부의 의견수렴 방식을 놓고 비판이 이어졌다.

강혜란 한국여성민우회 미디어운동본부 정책위원은 “미디어 산업의 지속 가능한 발전과 이용자들에 대해 더 나은 콘텐츠를 제공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기 위해선 다양한 쟁점을 들여다보고 숙의하는 게 필요한데, 이 공청회에서조차 이동통신과 케이블TV, 초고속인터넷 가입자 수 등과 같은 기본 자료를 제시하지 않고 있다”고 지적했다.

강혜란 위원은 “왜 아날로그에서 디지털로 전환하지 않는 케이블 가입자들이 상당수 있는지, 왜 ARPU가 높아지지 않는지 등을 보면 결국 합당한 콘텐츠 서비스 개발이 없기 때문”이라며 “인수합병으로 플랫폼 사업자가 비용의 효율화를 꾀하며 독과점을 심화시킬 때 과연 콘텐츠와 서비스를 만들어낼까, 이런 의문에 대해 논의하기 위한 시간이 더 필요하다”고 말했다.

조성동 한국방송협회 연구위원은 “(민간에서 진행한) 10여 차례의 관련 토론회에선 이번 인수합병과 방송법제가 충돌하는 부분의 문제와 함께 경쟁적 결합판매 확대에 대한 우려, 그리고 인수합병에 따른 고용시장의 문제 등도 나왔다”며 “인수합병의 당사자인 SK텔레콤과 CJ헬로비전에서 지금처럼 앞으로 이렇게 하겠다는 식의 약속만 할 게 아니라, 일련의 우려와 문제제기에 대해 설명하고 설득하는 주체로 나서야 한다”고 말했다. 조성동 연구위원은 “이를 위해서라도 공청회는 더 필요하다”며 “공청회의 기본원리에 맞게 미래부에서도 2월 중 결정하겠다는 식이 아니라 1년 이상 길게 보고 진지한 논의를 이어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 방송통신실천행동은 24일 오후 서울 서초구 더케이서울호텔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SK텔레콤의 CJ헬로비전 인수합병을 허가하면 안 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방송통신실천행동은 이날 "SKT는 CJ헬로비전 인수합병 신청서를 공개하고 공익성을 입증해야 한다"며 "미래부는 여태까지 인수합병 심사의 명확한 기준조차 제시하지 않아 정부가 졸속으로 인허가를 내주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고 밝혔다. ⓒ뉴스1

객석 토론 과정에서도 ‘깜깜이 심사’에 대한 문제제기가 나왔다. 김동찬 언론개혁시민연대 사무처장은 “이번 인수합병으로 해고의 위협을 느끼는 노동자들이 있다”며 “이런 상황에서 SK텔레콤의 인수합병 신청서와 심사기준조차 공개하지 않고 진행하는 공청회와 심사는 국민의 동의를 받을 수 없다”고 말했다.

이와 관련해 탁용석 CJ헬로비전 상무는 “합병법인에서 합병 전 고용을 모두 승계 하겠다”고 말했다. 앞서 SK텔레콤은 인수대상인 CJ헬로비전 인력에 대해 3년 간 고용보장을 약속한다고 발표했다.

하지만 일련의 약속들은 현재로선 약속에 불과할 뿐 아니라, 정규직이 아닌 CJ헬로비전 23개 지역에 종사하는 외주업체 노동자들의 고용보장까지 담보하지 않는다는 게 언론‧시민단체들의 문제제기다.

이날 공청회에 앞서 언론노조 등 14개 언론‧시민단체에서 구성한 방송통신 공공성 강화와 이용자 권리보장을 위한 시민실천행동(이하 방송통신실천행동)은 기자회견을 열고 “고용보장 대상에 외주업체 인력을 포함하는지, 간접고용 비정규직을 직접 고용해 안정된 일자리를 창출하고 가입자 서비스를 획기적으로 개선할 계획이 있는지 SK텔레콤은 답을 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방송통신실천행동은 미래부에서 사업자와 전문가 등의 의견청취에만 집중하는 모습을 보이는 데 대해서도 문제를 제기했다. 인수합병의 이해당사자 가운데 한 축인 노동자들은 이달 초 진행했던 토론회에서도, 이날 공청회에서도 배제했다는 지적이다.

방송통신실천행동은 사업자들의 장밋빛 약속만으로 인수합병 심사를 진행할 수 없다고 강조하며 △SK텔레콤 제출 인수합병 신청서 △인수합병 인허가 세부심사 기준 △국민의견청취‧사업자의견청취 자료 일체 △인수합병 심사 참여 위원회 구성‧활동일정‧계획‧명단 등에 대한 정보공개를 미래부에 요청했다. 한편, 일련의 요구와 문제제기에도 불구하고 이날 미래부는 사실상의 마지막 의견수렴 과정이었던 공청회 과정 내내 어떤 답변이나 입장을 밝히지 않았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
이슈포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