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리버스터가 정치 혐오 키운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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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리버스터가 정치 혐오 키운다고?
[비평] ’조선일보’ 사설에서 주장…野 필리버스터 찬반 의견은 팽팽, 정치관심 환기 분석 보도도
  • 김세옥 기자
  • 승인 2016.02.25 12:1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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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은수미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지난 24일 국회 본회의장에서 테러방지법의 본회의 의결을 막기 위한 무제한토론(필리버스터)을 하고 있다. 이날 은수미 의원은 10시간 18분 동안 발언했다. ⓒ뉴스1

“아무리 (테러방지법에) 걱정되는 부분이 있더라도 국민들 눈살을 찌푸리게 하고 정치 염증을 키우는 필리버스터를 당장 중단해야 한다. 필리버스터가 아무리 합법의 테두리 내에 있다 하더라도 마치 선거운동 하듯 필리버스터를 악용하면 국회에 대한 국민들의 혐오감을 키울 뿐이다.”

국회의장의 테러방지법 직권상정에 맞서 야당이 사흘째 필리버스터(합법적 의사진행 방해‧무제한 토론)를 이어가고 있는 25일 <조선일보> 35면에 실린 사설(‘국회 혐오 키우는 필리버스터, 그래도 與가 정치력 발휘하라’)의 일부다. <조선일보>는 이 사설에서 야당의 필리버스터를 국회에 대한 국민의 정치혐오를 부추기는 행동으로, 야당 의원들을 “무슨 대단한 기록에라도 도전하는 듯”, “선거운동 하듯” 필리버스터를 악용하는 존재로 규정하는 모습을 보였다. 정말 다수의 여론은 필리버스터에 나선 야당을 그렇게 바라보고 있을까.

100% 일치하는 여론은 적어도 민주 사회에선 존재할 수 없다. 다만 어느 쪽이 우세한지에 대해서 살필 수 있을 뿐이다. 즉, <조선일보>가 사설에서 규정한 것처럼 “야당 필리버스터=국민 정치혐오 부채질”이라고 단정하기 위해선 최소한 야당의 필리버스터에 대한 국민의 비판 여론이 우세하다는 확신의 근거가 필요하다. 그런데 <조선일보>의 사설 속 주장을 뒷받침하는 건 야당과 대립하는 새누리당의 말(“새누리당은 국회가 ‘기네스북’ 도전장이냐며 명백한 의사진행 방해 행위라고 비판했다”)뿐이다. 물론 새누리당은 다수당이다. 하지만 다수당의 주장이라고 해서 모든 경우 우세한 여론일 순 없는 일이다.

사실 이는 굳이 부연할 필요가 없는 부분으로, 당장 여론조사 전문기관 ‘리얼미터’에서 25일 오전 발표한 야당의 테러방지법 반대 필리버스터에 대한 찬반 여론은 <조선일보>에서 규정한 내용들과는 차이를 보였다.

‘리얼미터’는 CBS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의 의뢰를 받아 지난 24일 전국 19세 이상 성인 523명을 대상으로 야당의 필리버스터에 대한 찬반여론을 조사했다. (휴대전화(60%)+유선전화(40%) 임의전화걸기 자동응답 방식, 응답률 4.4%, 신뢰도 95%, 표본오차 ±4.3%p) 그 결과 ‘국가안보와 테러위험에 대처하기 위해 테러방지법을 조속히 통과시켜야하므로 야당의 무제한 토론에 반대한다’는 의견은 46.1%로 나타났다.

반면 ‘무제한 토론은 소수정당이 다수정당의 독주를 막거나 기타 필요에 의해 국회법이 허용하고 있으므로 찬성한다’는 의견은 42.6%였다.(‘잘 모름’ 11.3%) 오차범위 내에서 찬반 의견이 팽팽히 맞서고 있는 모습으로, 어느 한쪽이 우세하다고 단정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하지만 <조선일보>(◁링크)는 이날 온라인에서 ‘리얼미터’의 여론조사 결과를 전하면서도 오차범위에 대한 고려 없이 야당 필리버스터에 대한 반대 여론이 우세하다고 보도했다.

▲ 2월 25일 <한국일보> 12면

중도 성향의 <한국일보>는 25일 신문 12면(“몸싸움 없는 정치다운 정치” “실제로 보니 신기하네요”)에 필리버스터에 대한 시민들의 반응을 담은 기사를 게재하고 “야당 의원들의 필리버스터가 온‧오프라인에서 폭발적인 관심을 끌고 있다. 2012년 국회선진화법 입법으로 재도입된 필리버스터 제도가 테러방지법 및 정치 자체에 대한 관심도 환기하고 있다는 분석”이라고 전했다. 야당의 필리버스터를 접한 누리꾼들이 인터넷 카페와 블로그에 테러방지법을 분석하는 글을 올리고 관련 자료를 공유하고 있다는 내용으로 <한국일보>는 이 기사에서 온‧오프라인에서의 시민 목소리를 자세히 소개했다.

테러방지법에 대해, 국회의장의 직권상정에 대해, 야당의 필리버스터 선택에 대해 국민은 물론 언론도 저마다의 시각이 있을 수 있다. 이는 어쩌면 당연한 일일지도 모른다. 모두가 언론은 공정해야 한다고 말하지만, 한편에선 언론의 공정성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논의가 끊이지 않는 현실 또한 분명 존재한다. 

하지만 현실이 이렇다고 언론이 앞장서 여론을 뭉뚱그려 주장을 사실로 규정하는 듯한 모습을 보일 순 없는 일이다. 그 언론의 논조를 지지하는 이들만이 여론을 생성할 수 있는 주체라고 주장하고 있는 게 아니라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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