숙크러쉬가 갖는 의미에 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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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교석의 티적티적]

김숙은 현재 가장 흥미로운 예능인이다. 그 어떤 예능 프로그램보다 새롭고 신선하다. 고정출연 중인 TV프로그램은 JTBC <최고의 사랑> 한 편 뿐이지만 <무한도전>, <라디오스타>, <문제적 남자> 등을 종횡무진 누비며 시청자들에게 각인됐다. 뿐만 아니라 인터넷 방송과 라디오 DJ, 그리고 지금의 가부장적인 김숙 캐릭터를 널리 알린 팟캐스트 방송 등 무대를 계속 넓혀나가는 중이다.

올해 예능의 중요한 화두 중 하나가 여성 예능인의 자리다. 그런 이때 김숙은 여성 시청자들의 공감을 이끌어내면서 기존에 없던 여성 예능인만의 역할을 개척했다. 리얼 버라이어티 시대 이후 예능에서 본 적 없었던 여성 주도형 캐릭터로 말이다. 이것이 그녀의 가모장적인 캐릭터를 주목해야 하는 이유다.

한 번 따져보자. 그동안 토크쇼, 리얼버라이어티, 관찰형 예능에서 소비된 여성상은 크게 세 가지로 분류된다. 첫 번째는 박미선처럼 쇼에 ‘여성의 시각’을 보완·첨가하는 보조적 역할이다. 멘트나 상황극 모두 엄마로서, 여자라는 말머리가 붙는다. 두 번째는 이국주, 박나래 등으로 대표되는 여성 코미디언들의 슬랩스틱이다. 20~30대 신진 예능인의 씨가 보이지 않는 상황에서 이들의 약진은 대단한 사건이다. 하지만 이 또한 여자임에도 여기까지 망가진다는 게 포인트다. 그리고 세 번째는 <나 혼자 산다>의 한채아나 <진짜사나이> 여군특집 출연자들처럼 허당끼나 순수함 등 반전 매력을 보여주는 예쁜 여성 연예인이다. 여기서 민낯 공개는 필수 옵션이다.

▲ MBC '무한도전-예능총회'편에 출연한 김숙 ⓒMBC

그런데 김숙은 이 모든 유형에 해당하지 않는다. 그녀는 그동안 여성 예능인의 틀과 성 역할에서 자유롭다. 아예 기존의 상식을 뛰어넘은 지점에서 출발한다. 올해 NBA의 스테판 커리가 기존의 개념과 전술을 무용지물로 만든 3점슛으로 농구의 새로운 패러다임을 쓰고 있듯이 모계사회로 회귀한 캐릭터를 내세운 김숙 또한 기존 예능과 그 작법에 뿌리박힌 성 역할과 기준을 깡그리 갈아엎고 새로운 예능 문법을 쓰는 중이다.

여성들의 워너비, 혹은 스타일을 뜻하는 걸크러쉬와 김숙의 이름을 합성한 ‘숙크러쉬’는 이 모든 것을 설명한다. 지난 주 <최고의 사랑>에서 찾아간 부부상담 전문가는 둘의 성 역할이 바뀐 것 같다며, 보통은 남편들이 하는 말과 행동을 윤정수가 아닌 김숙이 한다고 했다.

더 나아가 ‘가모장 숙’은 더 나은 부부생활을 위한 다짐으로 폭력, 비교, 욕, 비난, 무시를 하지 않겠다고 했다. ‘여자 목소리가 담을 넘으면 안 된다’라든가 ‘아침부터 어디 남자가 잔소리를 하느냐’는 남녀차별 발언과, 경제권을 남성에게 기대는 가부장제의 남성 의존적 문화를 바로잡으려는 게 아니라 아예 뒤집으면서 여성이 공감할 수 있는 정서의 코미디와 캐릭터를 만들어낸 것이다. ‘돈은 됐으니 남자는 집에서 살림이나 잘하고 있으라는’ 일갈은 여성 시청자들에겐 자각을, 남성 시청자들에게도 어색함을 넘어선 신선함과 위로로 다가온다.

이런 김숙에게 여성 예능이 어려운 이유가 남성 출연자와 비교했을 때 여성 예능인은 한계와 제약이 많기 때문이란 지적은 더 이상 통용되지 않는다. 이 또한 남성 위주의 예능으로 인식하고 재단한 주장이기 때문이다. 그동안 남자 출연자들이 해왔던 예능에 여성 출연자만 바꿔 넣고 남자들보다 제약이 많다고 아쉬워했다. 그런데 아예 김숙처럼 여성이 할 수 있는 범위, 여성이기에 할 수 있는 코미디를 찾아서 시청자들과 공감을 나누면 될 일이다. 후배 개그우먼들과 함께 출연한 <문제적 남자>에서 후배들을 챙기는 김숙에게서 느껴지는 진정성은, 믿음직하고 듬직한 큰언니의 모습은 가모장적인 캐릭터와 일맥상통한다. 그동안 보지 못했던 예능 캐릭터에 여성 시청자들은 통쾌함과 호감을 느낀다.

▲ JTBC <최고의 사랑>에서 김숙(왼쪽)은 윤정수와 가상 부부로 출연 중이다. ⓒJTBC

그런데 이렇게 굳이 남여 시청자로 나누는 건 여성예능인의 한계와 가능성을 김숙이 어떻게 넘어가고 보여주고 있는지 말하기 위함이다. 그동안 우리 예능이 여성 예능을 대하는 방식은 남자 예능의 대체재나, 보완재로만 여겼다. 여성 시청자들도 여성 예능인의 이야기를 즐기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여성 예능은 늘 외모비하, 여자임에도 망가지기, 이성의 호기심을 자극하는 쪽으로 펼쳐졌다. 여기엔 여성을 위한 여성의 예능은 없었다.

그런데 김숙은 모든 걸 좌우 반전했다. 여기서 공감대가 형성된다. 돈도 내가 벌테니 목소리도 내가 내겠다는 거다. 일종의 육참골단 페미니즘 코미디인데, 걸크러쉬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방송의 주시청자라는 여성들의 공감을 살 수 있는 여성 코미디. 여자이기 때문에 할 수 있는 예능의 문을 작지만 큰언니 김숙이 열어젖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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