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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6.03.03 14:25
  • 수정 2016.03.09 13:29

“MBN 폭행 사태, 다 끝난 문제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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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송규학 신임 독립PD협회장

독립PD 인권 보호할 제도적 장치 새 독립PD협회의 과제

지난 2015년 6월 독립 PD가 MBN 외주 프로그램 관리자에게 폭행을 당한 일을 계기로 그동안 잘 알려지지 않았던 독립PD들의 인권 문제가 수면 위로 올라왔다. 한국독립PD협회(이하 독립PD협회)는 비상대책위원회를 구성해 전면적인 대응에 나서면서 방송사의 ‘갑질’ 문제로까지 번졌다. 급기야 지난해 10월 독립 PD의 인권문제가 국정감사에서 처음으로 이슈화되었고, 시민단체까지 합세해 ‘MBN 법’을 추진을 요구하기도 했다. 하지만 여전히 독립PD들의 인권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제도적 장치는 미흡한 상태다.

지난 19일 독립PD협회 정기총회에서 제6대 회장으로 취임한 송규학 PD가 “지난해 기세를 더 밀어붙여 보자는 마음으로 출마를 결심했다”고 말한 목소리에서 결연함이 느껴진 것도 이런 이유다. 지난해 MBN 측으로부터 공개 사과를 받으면서 사태는 일단락됐지만 2라운드 그리고 3라운드는 남아있다. 지난 17일 서울 서교동 작업실에서 송규학 PD를 만나 새롭게 출발하는 독립PD협회의 계획과 앞으로의 과제를 들어보았다.

▲ 송규학 신임 독립PD협회장

쉽지 않은 결정이라고 했다. 독립PD협회장에 출마하고, 취임하기까지. 대부분의 독립PD들이 방송사와 갑을 관계로 엮이다 보니 독립PD협회 집행부 제안을 받으면 주저한다고 한다. 하나가 여럿이 모일 때 힘이 커지지만 개개인의 독립PD는 여전히 약자다. 송규학 PD가 독립PD협회장 출마를 결심한 것도 그가 방송사에서 프로그램을 제작하는 PD들보다는 자유로운 위치에 있기 때문이다. 오랜 기간 방송 프로그램을 만들며 여의도에서 생활했지만 몇 년 전부터 그는 다큐멘터리 영화 등을 제작하는 데 매진하고 있다.

그는 올해로 방송을 시작한 지 23년째를 맞는다. 1993년 방송 일을 시작해 독립 PD로 KBS <생방송 전국은 지금> 등 다양한 교양 프로그램들을 오래 연출했다. 2004년부터 2010년까지는 중요무형문화재 기록영화를 맡으면서 꾸준히 다큐멘터리 작업을 해왔다. 그리고 현재 그의 사무실 옆방에 있는 진모영 감독, 안재민 감독 등 많은 독립 PD들과 함께 ‘창작집단 917’이라는 제작사를 만들어 다큐멘터리 영화도 제작하고 있다. ‘창작집단917’은 여의도에서 故 이성규 감독과 작업할 때 함께 쓴 방 번호인 917호를 따서 지어진 이름이다. 그가 연출한 작품으로는 <푸른 바람의 노래>(2012), <시간의 소리>(2015) 등이 있고, <시바, 인생을 던져> (2014), <나의 아들, 나의 어머니>(2015)의 프로듀서를 맡기도 했다. 그렇게 20여 년을 독립 PD로서 살면서 그는 문득 ‘우리의 비전’에 대해서 고민했다고 한다.

“독립PD로서 20여 년씩 일을 한 우리의 비전은 무엇일까 고민을 해보았다. 누구나 첫 직장에 들어가면 선배들을 보면서 ‘나도 10~15년 일 하면 저렇겠구나’라고 생각하며 비전을 한 가지 정도는 가지기 마련인데 당시 우리를 보니 그런 게 없었다. 조연출을 구하기 힘들어진 것만 보더라도 좋은 인재들이 별로 선호하지 않는 일이 되어버렸단 걸 체감했다. 경제적으로도 그렇고 사회적 지위 역시 그렇다 보니……. 작품을 아무리 잘 만들어도 방송사 말고는 판로가 안 보였다. 그러다 방송콘텐츠진흥재단의 수출 콘텐츠 관련한 세미나, 아시안 사이드 오브 더 닥(Asian Side of the Doc) 등 다큐멘터리 피칭 세션 등을 다니며 새로운 도전을 할 용기가 생겼다. 해외 영화제에서 상영하는 작품을 보면서, 한국 방송 PD들도 저만큼 잘 만들 수 있다고 생각했다. 알다시피 한국 독립PD들도 작품을 굉장히 잘 만든다. 그래서 가지게 된 목표는 ‘방송사뿐만 아니라 생계를 해결하며 작업할 수 있는 또 하나의 길을 만들자’였다. 우리의 비전이 생긴 것이다.”

▲ 올해에는 독립PD의 기세를 더 밀어붙여보자는 마음”으로 회장에 출마했다는 송규학 PD를 지난 17일 서울 서교동 사무실에서 만났다. ⓒPD저널

"다큐멘터리 제작, 후배들에게 비전을 보여주고 싶어 시작"

하지만 방송사의 정규 프로그램을 연출하던 독립PD들이 다큐멘터리 작품을 시작하기는 쉽지 않다. 방송사 프로그램을 맡을 때는 정기적으로 수입이 생기지만, 다큐멘터리를 한다면 최소 여섯 달 정도는 밥벌이가 없다. 기획에 두 달, 작업이 완성되기까지 석 달, 방영되는 데에도 한 달은 족히 소요된다. 그러나 당장 어려움 때문에 악순환을 이어갈 수는 없다고 그는 여겼다. 그 시기를 잘 버티면, 다른 작품을 제작할 수 있는 또 다른 기회도 더 생길 수 있다. 또 다큐멘터리를 수출하는 것도 가능해지고 그러면 또 다른 해외 채널에도 작품을 팔 수 있다. 하나의 선순환 구조를 만들어야 한다고 여겼다. 계속해서 작품을 만든다면 언젠가 안정권에 들어가는 시기가 생기고 그 사이클이 완성된다면 자신 있게 다른 동료들에게 권할 수 있을 거라고 믿었다고 한다. 그렇게 그는 다큐멘터리 작업을 시작했다.

다행히 몇 년 지나지 않아 다큐멘터리 작업을 하던 독립PD들이 해외 영화제에서 먼저 인정받기 시작했다. 다큐멘터리 영화계의 칸(Canne)이라 할 수 있는 암스테르담 다큐멘터리 영화제(IDFA)에서 3년 연속 성과를 낸 것이다. 만들어진 박봉남 감독의 <아이언 크로우즈>(Iron Crows, 2009)가 대상 수상을, 이성규 감독의 <오래된 인력거>(My Barefoot Friend, 2011)가 장편 경쟁 부문에 노미네이트 되었고, 이승준 감독의 <달팽이의 별>(Planet Of Snail, 2012)이 대상을 받았다. 이외에도 2014년에는 진모영 감독의 <님아, 그 강을 건너지 마오>가 해외 영화제 수상은 물론 국내에서도 크게 흥행하면서 많은 사람이 ‘독립 PD들의 다큐멘터리 영화’를 보고, 그들을 알게 됐다.

그러나 그는 “아직 안정적인 사이클에 들어온 건 아니며 다큐멘터리 영화 작업을 하더라도 방송 일 시작을 프로그램 만나는 PD였고 지금도 독립PD라는 이름으로 활동하고 있기에, 현업에서 방송사 정규 프로그램을 열심히 하는 후배들도 혹여나 ‘자신들과는 너무 다른 나라 이야기’로 생각하진 않았으면 좋겠다”며 노파심을 전하기도 했다.

그는 “한 사람, 한 사람이 ‘협회가 있어서 참 좋다, 든든하다’고 생각하길 바란다”며 “특히 후배들은 한창 일할 시기라 협회에서 진행하는 교육이나 모임이 있더라도 못 오는 경우가 많아 독립PD협회에 대해 든든함을 느끼지 못할 수 있는데 이들을 모을 수 있는 자리를 많이 마련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법률지원단 구축, 표준계약서, 단체 상해보험 가입 등 계획 

사실 지난해 MBN 폭행 사건을 해결하는 과정에서 독립PD협회는 큰 기둥으로 존재했다. 그런 측면에서 그는 독립PD들의 인권을 보호하기 위한 제도적인 장치를 두는데 역점을 두고 있다. ‘법률지원단 구축, 독립PD인권센터 설치, 프리랜서 연출자를 위한 표준계약서 추진, 연 1회 정기검진 시행’, ‘단체 상해보험 가입’ 등을 추진하는 것도 더 좋은 환경에서 일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다. 

특히 지난해 독립PD협회에서 여성PD들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에서 “성폭력(성추행, 성희롱)을 당한 경험이 있다”고 응답한 비율이 87.5%(16명 중 14명)에 이를 만큼 문제가 심각한 상황이기에, 독립PD인권센터 내에 신고전화와 여성 성폭력 상담 창구를 개설할 예정이다. 프리랜서 연출자를 위한 표준계약서를 ‘의무화’하는 방안도 추진할 계획이다. 2013년부터 문화체육관광부에서 배포하는 표준계약서의 이용비율이 23.4%(175명 중 41명)(2015년 독립PD협회 설문조사)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결과적으로 이 모든 공약이 이루어진다면 “결국 작품의 질도 향상할 것”이라 그는 믿고 있다.

그는 마지막으로 독립PD협회의 초대 회장이자, 오랜 동료였던 故 이성규 감독을 떠올리며 “이 감독은 어디를 가나 주목을 받는, 강성(強性)이었다. 떠나면서도 우리에게 모일 힘, 응집력을 주었다. 누군가가 그 역할을 계속 이어나가야 한다. 그동안 회원으로서 혜택을 받아왔다면, 이젠 회장으로서 갚아나갈 생각”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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