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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수만 합의제, 소수에겐 승자독식

[위클리포커스] ‘합의제’ 정체성 놓고 잇단 파열음 내는 방통위와 방심위 김세옥 기자l승인2016.03.03 18:04: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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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송통신위원회(위원장 최성준, 이하 방통위)와 방송통신심의위원회(위원장 박효종, 이하 방심위)가 정체성인 ‘합의제’ 원칙 대신 ‘승자독식’ 구조로 운영되고 있다는 논란 속 불협화음을 내고 있다. 정치‧사회적으로 민감한 사안에 대한 논의를 진행할 때마다 여대야소(與大野小)의 불균형한 위원 구성의 한계를 그대로 노출하고 있다는 문제제기가 두 위원회 모두에서 야당 추천 위원들로부터 반복해 나오고 있는 상황이다. 이들은 수의 우위를 점한 여권 추천 위원들이 ‘합의제’ 운영의 원칙을 무너트리는 도구로 ‘다수결’ 제도를 이용하고 있다고 비판하고 있다.

조직 운영부터 의사 결정까지 소수의 자리는 없다?

지난 2월 29일 방통위 김재홍 부위원장과 고삼석 상임위원은 기자간담회를 열어 방통위 운영의 어려움을 토로했다. 야당 추천의 두 위원은 방통위가 합의제 운영을 정체성으로 하는 위원회임에도 불구하고 다수의 위치에 있는 여권 추천 위원들이 소수의 비토(veto‧거부)권을 무시한 채 수의 우위에 따른 일방 운영을 반복하고 있다고 말했다. 지난 2월 EBS 감사 선임이나 ‘MBC 녹취록’ 관련 MBC와 방송문화진흥회(MBC 대주주, 이하 방문진)에 대한 자료요구, 지난해 공영방송 이사(KBS‧방문진‧EBS) 선임 등의 과정에서 여권 추천 위원들이 일방의 의사결정을 ‘다수결’로 밀어붙이는 모습을 반복했다는 주장이다.

두 위원은 ‘여대야소’의 의사결정 구조가 방통위 조직 운영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며 지난 2월 25일 진행한 워크숍을 예로 들었다. 이 워크숍은 방통위의 중장기 방송정책 방안에 대한 연구결과를 논의하는 자리였음에도 사무처에서 상임위원 사전 의견수렴 절차도 없이 2월 19일 워크숍 일정만을 통보했다는 설명이다. 고삼석 상임위원은 “1년 단위 정책과제도 상임위원들이 수차례 논의를 거쳐 정책 방향을 정하는데 중장기 방안에 대한 논의를 위원장과 사무처만 사전에 공유하고 있었던 것”이라고 지적했다.

안팎으로 조직을 대표해야 하는 만큼 위원장의 사무처 통할 권한을 인정하더라도 인사와 운영 등의 내용 공유는 필요하다는 문제제기다.

이는 2기 방통위원을 지낸 양문석 전 위원도 지적하는 부분이다. 양 전 위원은 “여야가 처음 방통위설치법을 만들었을 당시 합의한 건 위원장을 청와대 지명 인사가 맡는 만큼 합의제 정신에 맞춰 부위원장은 야당 몫으로 두자는 것이었지만 지켜지지 않았다”며 “당초의 법 정신에 맞게 인사위원회를 부위원장이 맡도록 함으로써 조직 운영에서의 합의제 원칙을 도모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현재 방통위의 인사위원장은 여야가 임기의 절반을 나눠 역할을 하는 부위원장이 아닌 기획조정실장이 맡고 있다. 위원장의 영향권 아래 있는 것이다.

▲ 2015년 8월 6일 방송통신위원회 전체회의가 최성준 위원장을 비롯한 여권 추천 위원 3인만이 참석한 상황에서 열리고 있다. 방통위는 이날 KBS와 방송문화진흥회 이사 인선을 예정하고 있었지만 야권 추천 위원 2인이 일방 의사결정에 반대하며 회의에 불참, 논의를 미뤘다. ⓒ뉴스1

이 같은 문제제기는 정책 실무를 담당하는 사무처와 상임위원들이 긴밀하게 소통하지 않을 경우 자칫 법에서 규정하고 있는 위원들의 역할과 권한을 제한하는 결과를 낳을 수도 있다는 데서 비롯한다. 장관 한 명이 사실상 모든 정책결정을 맡는 독임제 부처와 달리, 개개인의 위원들이 동일한 권한을 갖는 의사결정 단위로 기능하는 합의제 위원회인 방통위의 특성을 고려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

고삼석 위원은 “방통위는 합의제와 다수결이라는 두 속성 모두를 충족시키며 운영해야 하는 조직으로, 단순 다수결로만 운영할 경우 다수가 법에 근거하지 않은 힘의 논리로 소수 의견에 위치한 위원들의 권한을 제약, 이는 결국 직무수행을 방해하는 결과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현재 김재홍 부위원장과 고삼석 상임위원은 원활한 의사결정을 위해 공개회의에 앞서 진행하는 티타임(상임위원 간담회)가 반대 발언을 순화시키는 용도로 이용되고 있다며 참여 거부 의사를 밝힌 상태다. 또 △방통위를 대표해 참석하는 외부 회의 안건 등에 대한 사전 협의 △사무처 운영에서의 합의제 원칙 준수 △합의제 원칙에 따른 운영과 개별 위원의 권한 보장을 위한 관련법(방통위설치법‧방송법) 개정 추진 등을 요구하고 있다.

방통위와 마찬가지로 합의제 운영을 원칙으로 하는 방심위도 최근 ‘여대야소’ 의사결정을 둘러싼 논란으로 한 달 이상 파행했다. 정부 비판 방송과 야당‧시민단체 등에 대한 비판 방송에 대해 형평을 잃은 심의가 이어지고 있으며 그 배경엔 수의 우위를 앞세운 여권 추천 위원들의 의사결정이 있다는 문제제기가 나오며 지난 1월 20일부터 이달 초까지 야권 추천의 장낙인 상임위원과 윤훈열 위원이 회의에 불참하고 퇴장하는 상황이 계속됐다. 지난 2일 장낙인 상임위원이 복귀하면서 방송소위는 가까스로 정상의 모습을 보이고 있지만, 여전히 종합편성채널(이하 종편) 등의 심의에서 이중 잣대 심의 논란은 해소되지 않고 있어 파행의 불씨는 여전히 살아있는 상황이다.

단순 다수제가 최선? 파행은 정상이 아니다

이처럼 ‘무늬만 합의제’라는 문제제기가 방통위와 방심위 내부에서 계속 나오는 상황을 끝내기 위한 근본의 대책은 두 위원회의 조직 구성, 즉 위원 추천 방식부터 운영까지 모든 부분을 바꾸는 것이다. 하지만 이는 현실에서 당장 선택할 수 있는 방법이 아니다. 두 조직의 구성 등을 바꾸기 위해선 관련 법 개정 등의 작업이 앞서 이뤄져야 하고 무엇보다 이에 대한 입법‧행정부의 의지가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때문에 방송계 안팎에선 합의제 정체성을 최소한 담보할 수 있도록 운영의 묘를 살려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2012년 대선을 앞두고 언론계와 학계, 시민사회는 미디어커뮤니케이션네트워크를 구성해 ‘미디어 생태계 민주화’를 위한 정책보고서를 만들어 여야 대선후보들이 이를 공약으로 완성하길 촉구했는데, 당시 방통위 개편 방향에 대한 연구를 담당했던 채수현 언론노조 SBS본부장은 “정책결정에 대한 소수의 저항권을 적극 보장할 수 있도록 운영방식을 개선해야 한다”고 말했다.

채수현 본부장은 “현재 어떤 정책결정에 반대하는 위원이 할 수 있는 일은 반대 토론에 나서는 것과 표결 불참이 전부”라며 “위원별로 횟수에 제한을 두되 의견이 첨예하게 대립하는 민감한 의사결정에 대해 표결 전 일정 기간을 정해 공청회 등의 개최를 보장해야 한다”고 말했다. 의사결정의 책무가 있는 방통위원 5인 전원이 해당 안건에 의견이 있는 이들과 함께 공개 토론을 진행하도록 함으로써 신중한 의사결정은 물론 위원들의 책임 또한 높여야 한다는 설명이다.

방심위의 한 관계자도 “민감한 사안, 방심위의 경우 형평 논란이 잦은 공정성 등의 심의나 재심 안건 등에 대해 논의할 때 의결에 앞서 다양한 의견을 청취할 수 있도록 특위 등을 구성하는 방안도 고려해봄직 하다”고 말했다.

그동안 방심위 안팎에서도 이에 대한 요구가 없던 건 아니다. 방심위의 심의제재에 불복하는 방송사에서 재심을 청구할 때 원심을 맡았던 방심위가 아닌 별도의 기구를 통해 제재의 적정성을 판단하도록 하자는 제안이 안팎에서 나온 바 있다. 실례로 2014년 8월 현재의 3기 방심위 주최로 열린 토론회에서 윤정주 한국여성민우회 미디어운동본부 소장은 “과반수 출석, 재적 위원 과반수 찬성으로 돼있는 현재의 의결 규정을 재적위원 3분의 2 찬성으로 강화하는 방안 등을 검토할 필요가 있으며, 재심을 위한 별도의 기구를 설치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일련의 제안들은 방통위와 방심위가 추천권자인 여야 정파의 이해에서 자유롭지 못한 의사결정 구조로 갈등을 반복하는 게 현실인 만큼, 의견 청취의 범위를 넓혀 의사결정의 투명성과 공정성을 제고하자는 것이다.

공영방송 이사 선임 등 통상 비공개로 이뤄지는 인사와 관련해선 비토권을 전제한 특별다수제 운영이 필요하다는 제안도 있다. 최진봉 성공회대 교수(신문방송학)는 “단순 다수결로는 합의제 운영의 정체성을 살릴 수 없고 갈등만 키운다”며 “위원 구성에서부터 전제된 정파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선 인사 등 주요 의사결정에선 특별다수제(재적위원의 3분의 2 이상 찬성, 방통위의 경우 5분의 4) 운영을 합의해야 한다”고 말했다. 또 채수현 본부장은 “양자 간 비토권을 인정하면 어느 한 쪽에서 절대 반대하는 인사는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어느 한 쪽이 절대 반대하는 인사를 제외한다면 극단의 인사로 인한 파행으로 이어지진 않는다는 설명이다.

민주적 의사결정에 대한 위원장의 책임을 강조하는 목소리도 나온다. 양문석 전 방통위원은 “독립적으로 조직을 운영할 책무가 있는 위원장이 청와대 등의 눈치를 보지 않고 스스로 의사결정을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공영방송 이사‧사장 등의 선임이나 주요한 정책을 결정할 때마다 위원회 안팎에서 청와대 개입설 등이 나오고 있는 현실에 대한 반성이 필요하다는 지적으로 양 전 위원은 “자기 결정권이 없는 위원회 운영 자체가 위법 행위”라고 비판했다.

사실 일련의 제안들은 완전히 새롭지 않다. 지난 대선과 총선을 거치며 언론인들과 학자들, 그리고 시민사회에서 줄곧 제기해 온 내용들이다. 하지만 수년이 지난 현재까지도 이런 제안들은 여전히 제안에 그치고 있을 뿐이다. 다수의 위치에서 의사결정을 주도하는 쪽에선 일련의 제안들에 미온적인 태도를 보이며 지금도 가능한 범위 안에서 합의제 정신을 최대한 구현한다고 주장한다. 그렇다면 현재 반복하고 있는 파행은 정상이란 말일까. 그렇지 않다. 파행의 정의는 파행이다. 순조롭지 않고 이상하게 진행된다는 의미의 그 파행 말이다.  


김세옥 기자  kso@pdjourna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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