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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 ‘○○녀’ 낚시질, 돈벌이와 맞바꾼 여성혐오

[위클리포커스] 살인사건 피해여성에 ‘가방녀’·성추행 피해여성엔 ‘대장내시경녀’, 언론 윤리는? 김세옥 기자l승인2016.03.07 22:36: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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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H의료재단 강남센터의 내시경 센터장이었던 한 의사가 대장내시경 검진 중 여성 환자들을 상습 성추행한 혐의로 지난 2일 구속됐다. 그리고 <헤럴드경제>는 지난 3일 이 소식을 전하는 기사의 제목을 이렇게 뽑았다. ‘檢, 대장내시경女 성추행 혐의로 의사 구속’

#처조카를 성폭행해 집행유예를 선고받았던 30대 남성이 수차례 똑같은 범행을 저질러 지난 2월 1일 징역 10년형과 선고받았다는 소식을 전하는 SBS 기사 제목은 ‘재혼녀 조카 성폭행해 집행유예 받고 또 범행’(2월 1일)이었다. SBS 외에도 <연합뉴스>, <조선일보>, <신아일보>, <아시아투데이>, <아주경제> 등 역시 이 소식을 전하는 기사 제목에 “재혼녀 조카”라는 표현을 넣었다.

#지난 1월 18일 SBS <모닝와이드>는 한 달 전 서울 마포구에서 20대 여성의 시신이 담긴 가방이 발견된 살인사건의 용의자로 지목된 A씨가 유서를 남기고 자택에서 숨진 채로 발견된 사실을 전했는데, 이 리포트의 제목은 ‘가방女 시신 용의자 숨진 채 발견’이었다.

#법원 보안관리대원이 2015년 9월 만취해 길에 쓰러져 있던 여성을 성폭행하려다 붙잡혀 불구속 입건돼 조사를 받고 있다고 같은 해 10월 12일 경찰이 밝혔다. 그리고 이 소식을 전하는 <연합뉴스> 기사의 제목은 ‘길에 쓰러진 20대 만취女 성폭행하려던 법원 보안대원’(2015년 10월 12일)이었다.

▲ 1월 18일 SBS <모닝와이드> ⓒSBS 화면캡쳐

그게 열광이든 혐오든 여성과 관련한 일이 화제에 오를 때 이를 전하는 언론에서 ‘○○녀’라는 표현을 담은 제목을 사용하는 모습은 더 이상 낯설지 않다.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관음의 시선으로 여성을 호명하거나 여성을 부정적 측면에서 일반화하며 낙인찍는 용도 등으로 흔히 사용하던 ‘○○녀’라는 표현을 고민 없이 수용한 언론이 언제부턴가 여성이 피해자인 사건‧사고 소식을 전하면서까지 ‘○○녀’ 표현을 제목과 기사 안에서 반복해 사용하고 있다. 왜일까.

대장내시경 검진 중 여성들을 성추행한 의사의 구속 사실을 전하는 기사에서 구속의 당사자이자 가해자인 의사 대신 피해자인 여성들에 초점을 맞추는 모습으로도 모자라 피해자들을 “대장내시경녀”로 명명한 제목의 기사를 내보낸 <헤럴드경제>의 사과문에 이유가 담겨 있다. <헤럴드경제>는 기사를 내보낸 다음날인 지난 4일 독자들에 대한 사과문에서 “온라인 편집부에서 기사 제목을 다는 과정에서 과장되고 오해 소지가 다분한 표현을 사용했다”며 “독자들에게 쉽고 흥미롭게 접근하려는 생각이 너무 강해서 깊은 성찰이 부족했다”고 밝혔다. 즉, ‘○○녀’ 표현으로 독자들의 흥미를 불러 클릭을 유도하겠다는 의도가 앞섰다는 말이다.

A 인터넷 매체의 편집 담당자도 “성별이나 연령에 대한 정보를 반드시 전달하지 않아도 내용 전달에 문제가 없는 기사 안에 이런 정보들을 적는 건 일종의 습관 혹은 관례에 가까운데, 제목에서 성별이나 연령을 표현할 땐 클릭을 유도하고자 하는 의도도 있다”고 말했다. 이 담당자는 “뉴스를 선택하도록 했던 뉴스캐스트 방식에서 매체를 선택하도록 하는 현재의 뉴스스탠드 방식으로 변화하면서 ‘○○녀’라는 단어로 즉각 유입되는 독자(조회)수는 줄어든 게 사실”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어느 한 곳에서 자극적인 표현으로 사안을 유통시켜 반응을 얻으면 이를 사실상 ‘복붙’(복사 후 붙여넣기)하는 매체들이 존재하고, 또 화제성 사안에선 여전히 ‘○○녀’ 프레임이 일정 부분 유효하다”는 게 이 담당자의 설명이다.

<프레시안>이 지난 2012년 4월 27일 일본의 여성학자 우에노 치즈코의 ‘여성 혐오를 혐오한다’ 서평 기사의 제목에서 현실에 존재하지 않는 “압구정 가슴녀”를 제목으로 뽑자 이를 본 누리꾼들이 ‘압구정 가슴녀’를 검색한 결과 이 단어가 검색어 상위에 오르고, 이어 <조선일보>, <중앙일보>, <동아일보>, <경향신문>, <매일경제> 등 수십 개의 매체가 이 단어를 넣은 기사들을 쏟아냈던 모습과 유사한 일들은 여전히 존재하며 존재할 수 있다는 얘기다.

당장 “대장내시경녀” 표현을 사과했던 <헤럴드경제>는 사과 당일이었던 지난 4일 밀양 성폭행 사건에서 가해자를 옹호했다고 알려진 황모 경장과 관련한 소식을 전하는 기사에서 ‘밀양성폭행 옹호女, 황 경장 근황은?’이란 제목을 사용했다. 

미디어 속 넘치는 ‘○○녀’…기승전 ‘여성이 잘못’

하지만 이용자들의 이목을 끌어 이를 조회수, 즉 수익으로 연결하고자 언론에서 습관처럼 사용하는 ‘○○녀’라는 표현은 그 자체로 여성혐오, 우에노 치즈코의 표현을 인용하자면 ‘여성 멸시’를 전제하고 있다는 점에서 수용가능한 선을 넘는다는 지적이다.

‘○○녀’라는 온라인상 여성 호명의 유형을 보면 △관음주의나 성적 매력(월드컵녀‧엘프녀‧베이글녀 등) △사회규범과 윤리위반(개똥녀‧패륜녀‧지하철 반말녀) △남성 정서 위반(군삼녀‧루저녀) △여성 소비행태 비판(된장녀‧신상녀‧김치녀) 등으로 분류할 수 있다. 이렇게 호명당하는 여성들은 대부분 20대 여성들(여대생)로, 이들이 사회의 규범을 위반하거나 남성에 대해 부정의 표현을 할 경우 인터넷 확산→언론 기사화를 통한 확산‧재생산→사이버처벌(신상털이‧패러디 영상물 등 유포) 등의 과정이 반복해 발생한다. 그리고 이런 과정을 반복하며 ‘○○녀’라는 호명은 특정 여성의 신상에 대한 공격과 비난은 물론, 여성 등 소수자 일반에 대한 비하와 폭력을 고착화하고 있다.(주창윤, 젠더 호명과 경계 짓기(2011.5))

▲ 3월 3일 <헤럴드경제> 트위터 ⓒ화면캡쳐

이런 현실에서 성추행‧성폭행 사건의 피해자(대장내시경녀, 만취녀), 살인 사건의 피해자(가방녀) 등에 대해서까지 언론이 ‘○○녀’라는 표현을 독자의 흥미를 끌기 위해, 즉 수익으로 이어지는 조회수를 끌어내기 위해 습관처럼 사용하는 건, 피해자인 여성이 그런 일을 당했을 만한 원인을 제공했다는 의미로 읽힐 수 있을 뿐 아니라, 2차 가해로 이어질 수 있다.

더구나 언론 스스로 정한 윤리강령(사회의 건전한 여론형성, 개인의 명예 보호, 바른 언어생활 주도 등)과 인권보도준칙(사회의 약자‧소수자 인권 보장을 위한 차별‧소외 감시활동과 제도적 권리보장 촉구, 고정관념‧편견 등에 의한 인권침해 방지를 위해 용어선택 및 표현 주의 등) 속 책무를 이행하지 않는 이런 모습은 여성을 남성과 동등한 존재로 인정하지 않는 태도로 이어진다.

테러방지법 직권상정에 반대하며 필리버스터에 나선 야당의 국회의원을 성별로 구분지어 묘사하는 언론의 태도에서도 이런 모습을 엿볼 수 있는데, 일례로 10시간 18분의 토론을 진행한 은수미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가녀린 50대 女의원’(2월 24일 <국민일보>)으로 소개됐다. 심지어 11시간 39분의 토론을 진행한 같은 당의 정청래 의원 관련 기사 중엔 ‘정청래, ‘여성’ 은수미 필리버스터 기록 꼭 깨야했을까’(2월 28일 <국민일보>)라는 제목까지 있었다. 국회의원의 의정활동조차 성별로 구분짓는 모습이다.  

때때로 언론의 이런 모습은 규제 테이블에 오르기도 한다. 그러나 규제를 담당하는 이들의 인식과 적용할 수 있는 규제의 엉성함으로 한계를 보이는 게 현실이다. 일례로 지난 2월 3일 방송통신심의위원회(이하 방심위)는 SBS <모닝와이드> ‘가방녀’ 표현의 부적절함을 지적하면서도 “편집기자가 제목을 뽑으면서 딴에는 아이디어 차원으로 했을 것”(하남신 위원), “‘가방에서 발견된 시신’이 너무 길어서 줄이다 실수를 범한 듯”(함귀용 위원) 등 ‘○○녀’ 표현이 나올 수밖에 없는 이유를 적극 감안해주는 모습을 보이며 행정지도(권고) 처분을 내리는 데 그쳤다. 행정지도 처분에 적용한 조항도 방송심의규정 제20조(명예훼손)과 제27조(품위유지)였을 뿐 양성평등(제30조) 관련 규정이 아니었다.

앞서 여성가족부는 지난 2015년 12월 29일 현행 방송심의규정의 양성평등 조항을 방송심의에 실질적으로 적용할 수 있도록 내용을 구체화하라고 방심위에 권고했다. 현재의 양성평등 조항이 구체적이지 않은 선언 수준에 머물러 실제 심의기준으로 적용하는 데 한계가 있다는 지적이다. 여성가족부는 양성평등 조항 속 ‘성차별 의식을 조장할 우려가 있는 내용’으로 △특정 성을 비하, 비난, 모욕 또는 희화화하거나 왜곡하는 내용 △특정 성에 대해 폭력적 언어를 사용하는 내용 △특정 성을 성적 대상 또는 도구로 묘사하는 내용 등을 예시했다.

또 ‘성별 역할에 대한 고정관념을 조장할 우려가 있는 내용’에 △특정 성의 존엄성과 가치를 인정하지 않는 내용 △특정 성을 다른 성보다 열등하거나 다른 성에 의존적인 것처럼 묘사하는 내용 등을, ‘성관련 범죄를 정당화 할 우려가 있는 내용’에 △성관련 범죄를 희화하거나 사소한 문제로 묘사하는 내용 △성관련 범죄의 발생을 불가피한 성욕의 문제로 묘사하는 내용 △성관련 범죄의 발생 동기를 피해자가 제공한 것으로 묘사한 내용 등을 예시했다.

하지만 규제가 만능일 순 없다. 이윤소 한국여성민우회 미디어운동본부 사무국장은 “언론이 이용자(독자)를 자극해 클릭을 유도하려는 목적으로 여성에 대한 혐오를 기반으로 하는 ‘○○녀’라는 단어를 계속해서 만들어내는 모습을 멈추기 위해선 결국 언론(기자들) 스스로 의식 변화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 국장은 “이용자인 독자 역시 언론이 만들어내는 ‘○○녀’ 낚시에 반응하지 않는, 그런 기사를 클릭하지 않으려는 노력을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세옥 기자  kso@pdjourna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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