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9일 여론을 뜨겁게 달궜던 이세돌 9단과 구글 마인드가 개발한 인공지능 프로그램 알파고(AlphaGo)의 바둑 대결. 인공지능이 인간지성을 누르고 승리했다는 소식이 보도되는 한편, 일각에서는 무섭게 진화하는 인공지능에 대한 윤리적 고민이 필요한 때라고 말하고 있다. 그렇다면 수백 명의 사람이 바다 속에서 죽어간 세월호 사건의 진상규명을 위한 청문회는 외면했던 KBS가 인간과 인공지능의 대결은 생중계하는 현실. 우리는 언론에 대한 어떤 고민을 가지고 어떤 질문을 던져야 하는 걸까.
세월호 참사 발생 608일째인 지난해 12월 14일, ‘4·16세월호참사 특별조사위원회 제1차 청문회’가 열렸다. 당시 청문회는 지난해 8월부터 실질적인 활동에 들어간 4·16 세월호 참사 특별조사위원회(이하 세월호 특조위)의 세월호 참사 진상 규명을 위한 첫 공개 활동이었다.
청문회는 ‘반쪽짜리’가 됐다. 이헌 부위원장을 비롯해 공영방송 이사이기도 한 고영주 방송문화진흥회 이사장, 차기환 KBS 이사 등 여당 측 위원 5명이 전원 불참한 채 야당 측 위원들만이 청문회를 이어나갔다. 주요 증인에 대한 소환도 쉽지 않았다.
이렇게 이뤄진 반쪽짜리 청문회를 지상파 3사마저 외면했다. 많은 국민들의 관심사였고, 이 같은 비극이 반복되지 않도록 하기 위한 청문회였다. 세간의 이목이 집중됐지만 지상파의 관심은 세월호 청문회에 있지 않았다. 팩트TV, 유튜브, 아프리카TV 등 인터넷을 통해서만 생중계됐을 뿐이다.
청문회 첫 날, KBS 메인뉴스인 <뉴스9>에서도 세월호 참사의 진실규명에 대해 관심을 할애한 시간은 ‘간추린 단신’ 코너에서 전한 18초뿐. 그것도 청문회가 열렸고, 이 과정에서 자해 소동이 있었다는 내용이 전부였다.
이 같은 언론의 무관심 속에 종료된 청문회. 그로부터 3개월여가 지난 지금, ‘세기의 대결’이라는 이름으로 인간과 인공지능의 대결이 지난 9일부터 5차례 펼쳐진다. KBS는 지난 9일 편성을 바꾸며 낮 12시 40분부터 오후 5시까지 2TV를 통해 생중계 했다. 메인뉴스인 <뉴스9>는 ‘첫’대결에 대해 지난 9일 톱뉴스부터 6개의 관련 리포트를 보도했다. 그렇게 <뉴스9>가 관심을 할애한 시간은 671초. 대결 전 날인 지난 8일에도 <뉴스9>는 10, 11번째 리포트를 통해 413초간 관련 소식을 전했다.
물론 방송사는 편성권을 가지고 있어, 아이템을 취사선택할 권리가 있다. 인공지능과 인간의 대결, 그것도 최초의 바둑 대결이라는 점에서 사람들의 호기심이 가득한 아이템이라는 것도 맞다. 그렇지만 지난해 세월호 청문회도 세월호 사건 이후 ‘첫’ 진상규명 자리였다.
물론 SBS도 10일 오후 3시 2차 대결을 중계할 예정이다. 그러나 다른 곳도 아닌 공영방송 KBS에 묻고 싶다. 국민이 내는 월 2500원의 수신료로 운영되는 ‘국민의 방송’이라는 KBS에게 말이다.
국민이, 사람이 죽어간 그날의 진실을 밝히고자 하는 데에도 관심을 가질 수는 없었던 걸까. 인간의 존엄과 생명을 지킬 수 있도록 사회를 감시하고 약자를 대변하는 게 언론이다. 세월호 청문회에 대한 관심 18초와 알파고라는 인공지능에 대한 관심 671초. 한 개의 인공지능 프로그램과 304명의 사망자와 실종자의 생명이 갖는 차이다. 언론의 윤리와 역할이란 무엇인지 묻지 않을 수 없는 씁쓸한 시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