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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D의 눈] 선거방송심의위 심의 참관기

지난 7일 선거방송심의위원회는 채널A의 시사토크 프로그램 <쾌도난마>에 대한 심의에서 ‘경고’를 주기로 결정했다. 지난 1월 26일 방송된 내용 중 김대중 대통령의 3남 김홍걸 씨의 더불어민주당 입당에 대해 지나친 비방, 확인되지 않은 내용을 근거로 한 방송이 문제가 됐다. <쾌도난마>의 당일 방송을 본 사람으로서 이번 제재에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지만 언론 검열을 반대하는 나로서는 인지부조화를 극복할 논리가 필요했다.

퍼뜩 떠오른 기억이 있었다. 언론학 개론에 나왔던 연구사례다. 1차 세계 대전 당시 남태평양의 한 섬에 이주했던 독일인과 프랑스인들은 낯선 환경에 적응하느라 서로 돕는 사이였다. 전신시설이 없던 이주민들과 외부세계를 이어주는 유일한 통로는 한 달에 한 번 오는 연락선이었다. 연락선에서 신문을 받아 들고서야 1차 세계대전이 터진 걸 알게 된 이주민 사회는 극심한 혼란을 겪었다고 한다. 어제까지 서로 돕던 사람들이 서로의 적이 되어버린 것이다. 연구의 결론은 ‘우리 인식의 상당부분이 직접경험이 아닌 간접경험을 통해서 형성되며 미디어는 간접경험에 매우 큰 영향력을 가진다’였다. 미디어에 대한 통제 논리는 이런 미디어의 영향력에 근거하고 있다.

2016년의 한국에서 특정 미디어가 사람들의 인식을 좌우할 수는 없다고 생각하기 쉽다. ‘나는 그런 것에 영향 받지 않아’라고 할 수 있지만 ‘콘크리트’에 비유되는 ‘박근혜 지지율’을 보면 상당히 많은 사람들이 ‘편파적인 미디어’에 영향을 받거나 ‘편파적’으로 미디어를 소비한다고 볼 수 있다. 종편과 공영방송과 뉴스전문채널이 정권에 장악됐다는 우려가 과도하다고 볼 수만은 없지 않은가! 식당과 터미널, 관공서에 가면 늘 종편 채널 중 하나가 떠들어대고 있고 KBS와 MBC에서도 야당과 국회에 대한 비난 일색의 보도가 줄지어 나온다. 이쯤 되면 방송 뉴스는, 특히 선거와 관련한 방송 뉴스는 공정성과 사실보도의 심의규정으로 엄격하게 감시해야 할 필요를 부정할 수 없다.

▲ 박효종 방송통신심의위원회 위원장(오른쪽에서 네 번째)이 지난 해 12월 15일 서울 목동 방송회관 19층 방송통신심의위원회 회의실에서 제20대 국회의원선거 선거방송심의위원회 위촉식을 진행하고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방송통신심의위원회

지난해 11월부터 언론노조에 파견돼 정책실장으로 일을 하면서 선거보도 감시 활동을 시민단체와 함께 하고 있다. 시민사회단체는 20대 총선을 앞둔 지난 1월 14일 ‘2016총선보도감시연대’를 조직했다. 연대의 일원으로 심의규정을 위반한 프로그램에 심의를 신청하기도 했고, 매주 월요일에 진행되는 선거방송심의를 다섯 번째 참관했다. 처음 심의를 참관하면서 느낀 건 황당함이었다. 이유는 세 가지다.

첫째는 선거방송심의에 관한 특별규정 대부분이 너무나 상식적인 내용이어서 놀랐다. 제12조(사실보도) 3항은 “방송은 선거와 관련한 보도에서 감정 또는 편견이 개입된 용어를 사용하여서는 아니된다”고 규정하고 있다. 제16조(사실과 의견의 구별)은 사실보도와 해설, 논평 등을 구별해야 하며 해설이나 논평 등에 있어서도 사실 전달과 의견을 명백히 구분해야 한다고 한다. 제17조(출처명시)는 확인되지 않은 내용을 보도해서는 아니되며 인용할 때는 출처를 밝혀야 한다고 돼있다. 방송사에서 훈련받은 기자가 이런 상식적인 걸 위반할까 하는 심정이었다.

둘째는 TV조선과 채널A, MBN 등에서 이런 상식적인 규정을 위반하는 기사가 넘쳐난다는 것 때문이었다.

마지막으로 규정을 위반한 수많은 ‘보도’가 심의에서 ‘문제 없음’으로 처리된다는 것과 더 많은 기사가 심의 대상으로 상정조차 되지 않는다는 점이었다. 심의위원 중 어떤 이는 “문제가 되는 건 맞지만 이런 걸 다 문제 삼으면 종편은 방송을 하지 말라는 것과 같지 않겠느냐”는 의견을 제시하기도 했다. 문제가 있는데 문제를 지적하면 문제를 일으킨 방송사더러 방송을 하지 말라고 하는 것이니 문제를 덮자고 하는 셈이다. 이런!

지난 1월 23일 채널A의 <박근혜 대통령, 후보도 바꾼 ‘달서사랑’>이란 보도에 대한 민언 신청 민원도 선거방송심의위에서 기각됐다. 해당 보도는 박근혜 대통령이 대구 달서지역을 너무나 사랑해서 평소 ‘추진력 있는 추실장’이라고 칭하던 추경호 비서실장을 후보로 꽂았다는 내용이었다. 총선 국면에서 대통령이 추경호 전 비서실장을 편들고 있음을 ‘미담’으로 전하는 기사가 심의대상조차 되지 못했다.

<쾌도난마>에 대한 ‘경고’는 법정제재로 벌점 2점에 해당하는 중징계다. 징계 받은 사실을 5초 이상 자막으로 고지해야 한다. 향후 방송사 면허 재허가 심사에 반영된다. 언뜻 강한 징계를 받은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쾌도난마>는 광주민주화항쟁 당시 북한군이 시민군에 섞여있었다고 발언하는 등 과거 몇 차례나 비슷한 내용의 징계를 받았던 프로그램이다. 반복 위반에 대한 가중처벌 원칙이 있음에도 ‘경고’에 그친 것은 ‘봐주기 심의’라는 비판을 피할 수 없다.

심의의 한계는 명확하다. 세월호 청문회처럼 사회적으로 중요한 사안을 다루지 않는 공영언론의 ‘한 수 높은 편파성’은 아예 심의 민원을 신청할 수도 없다. 방송심의위원을 여야추천으로 구성하고 여권 인사가 다수인 상황에서 공정한 심의가 이루어질 수도 없다. 심의를 무조건 옹호할 수도 없다. 여기서 방송 프로듀서가 해야 할 역할은 무얼까? 무엇보다 공정 언론을 내 프로그램에서라도 구현하려고 노력해야 한다. 우리 사회의 균형과 정의를 위해 조금이라도 프로그램을 통해 역할을 찾으려는 작은 실천 말이다. 지나치게 기울어진 언론환경을 탓하고 포기하지 않는 PD의 실천. 후세대를 위한 최소한의 양심을 지키려는 노력은 소중하다. 정말 소중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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