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잇따른 드라마 PD 이탈, 문제는 ‘KBS’ 안에 있었다

PD 3명 동시 사표에 회사는 보도국 TF 구성?…떨어진 자존감·시청률 압박 분위기 개선 필요 최영주 기자l승인2016.03.14 20:59: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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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 돈만 좇는다면 KBS 있을 이유 없다

“드라마 PD들의 사기저하가 커요. 드라마가 시청률을 못 내면 회사 내에서 드라마국을 ‘문제아’ 취급하는 데, 그런 시각이 현재 더 큰 위기를 불러오고 있는 것 같아요.”

지난 9일 다수의 언론매체를 통해 KBS 드라마 PD 세 명이 동시에 사표를 제출했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한 KBS 드라마 PD는 이 같이 말했다. 지금 이 순간에도 드라마국 내부에서는 이직을 고민하는 PD들이 있다. 거듭되는 ‘탈KBS’ 분위기 속에서 사측이 내놓은 방안은 JTBC를 타깃으로 하는 보도국 TF(태스크포스)팀 구성이다. 그러나 문제는 ‘바깥’이 아닌 ‘안’에 있다고, 무한경쟁이 불러온 자존감 하락과 성과주의 제작 환경이 문제라고 PD들은 이야기했다. 그리고 PD들의 이탈을 ‘외부’와 ‘개인’ 탓으로만 돌리는 한 이 같은 ‘엑소더스’는 계속될 거라고 말했다.

▲ KBS <태양의 후예> ⓒKBS

‘지상파 엑소더스’로 이뤄진 케이블・종편의 성장

현재 시청률 30%에 육박하는 인기를 누리고 있는 드라마 <태양의 후예> 함영훈 CP와 <세상 어디에도 없는 착한 남자>・<너를 기억해> 등의 김진원 PD, <직장의 신>의 전창근 PD 이렇게 세 명의 PD가 4월 1일자로 사표를 제출했다. 이들의 행선지는 종편 JTBC로 알려졌다.

세 명의 PD가 이적할 것으로 유력시 되는 JTBC는 최근 예능에 이어 드라마 분야에서도 입지 굳히기에 나서는 모양새다.

김석윤 JTBC 제작1국장은 지난 2월 <이데일리>와의 인터뷰에서 “예능이 자리 잡힌 JTBC의 마지막 숙제는 드라마다. 단기간의 성과도 중요하지만 장기적인 안목으로 접근하는 것이 중요하다”며 드라마에 힘을 쏟을 것임을 시사했다. 이 같은 상황에서 KBS 출신 베테랑 기획자와 연출자를 영입한 것은 앞서 JTBC가 지상파 출신 PD들을 대거 영입하며 빠른 시간 내에 예능에서 입지를 굳힌 것처럼, 드라마에서도 경쟁력을 확보하겠다는 수순으로 보인다.

앞서 KBS를 떠난 드라마 PD들은 바깥에서 ‘드라마 PD’로서 이름을 알리고 있다. 비지상파 채널로 드라마 분야에서 최근 시청률과 화제성에서 시청자를 끌어들이고 있는 tvN에도 KBS 출신 PD들이 활약하고 있다. 지난 12일 종영한 tvN <시그널>을 연출한 김원석 PD, 후속작인 <기억>의 박찬홍 PD 모두 KBS 출신이다. 김원석 PD는 지난 2014년 <미생>으로 연출력을 인정받기도 했다.

▲ tvN <시그널> ⓒtvN

한정된 시장에서의 무한경쟁이 불러온 성과 중심 드라마 제작환경

외부에서는 물론 내부에서조차 드라마 PD들의 이탈을 두고 거액의 이적료가 작용했을 거라는 추측을 내놓기도 한다. 물론 개인의 선택과 직업 선택의 자유에 따라 회사를 옮길 수는 있다. 그러나 내부에서는 그 이유만은 아니라고 말한다. 드라마 PD들의 이적 배경에는 경직된 조직 문화와 함께 급격하게 변화하는 미디어 환경 속 무한경쟁에 내몰리며 발생한 성과 압박 등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물론 시장이 변화하기도 했다. 케이블과 종편이 약진하면서 지상파에서 비지상파 채널로 이적하는 데 대한 PD들의 부담감이 줄어든 부분도 작용했을 수 있다. 실제로 한 KBS 중견 드라마 PD는 “초창기에는 나가서 드라마를 한다는 데 부담이 있었다면 이제는 종편이나 케이블에 가서도 잘할 수 있다는 판단이 생긴 것도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럼에도 큰 틀에서는 수익에 따라 드라마국을 대하는 시선의 변화도 한몫 했을 거라고 한 드라마 PD는 말했다. 이 중견 PD는 “드라마를 보는 시선이 너무 차갑다. ‘천덕꾸러기’로 보는 게 있다. 조직 안에서 대접받고 내부적으로 같이 걱정해주는 걸 바라는데 (시청률에 따라) 차가운 시선을 보내는데, 그런 정서적인 면도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다수의 채널이 생겨나고 새로운 플랫폼의 등장 역시 지상파에는 위기로 다가왔다. 한정된 시장에서 좀 더 큰 파이를 가져가기 위한 경쟁은 치열해졌다. 시청률이 곧 광고수익으로 이어지는 상황에서 ‘작품성’보다는 ‘수익성’을 중시하는 구조로 내부 환경이 바뀌게 됐다.

KBS의 경우 지난해 <힐러>, <왕의 얼굴>, <블러드> 등 드라마 성적이 타 지상파에 비해 좋지 못했다. 드라마와 예능 프로그램이 방송사 주 수입원인 상황에서 예능은 물론 드라마 성적마저 부진하자 이를 비난하는, 성적에 따라 일희일비하는 분위기가 회사 안에 형성됐다는 게 내부 PD들의 전언이다.

성적이 부진한 가운데 드라마국이 아닌 예능국, 콘텐츠창의센터, 편성국에서 드라마를 기획하는 일도 생겨났다. 물론 타 부서와의 협업을 통해 좋은 드라마를 만들어낸다면 좋겠지만, ‘협업’이 아니라 부진함을 ‘비난’하는 분위기 속에 생겨나는 기획 드라마에 대해 불편한 시각이 존재하는 것도 사실이다. 그리고 이 같은 분위기 속에서 드라마 PD들은 위축될 수밖에 없다.

▲ 1980년대부터 방영을 시작해 20년이 넘는 역사를 자랑하는 KBS 단막극 <드라마스페셜-연우의 여름>(2013년 9월 4일 방송). ⓒKBS

‘개인의 선택’ 문제로 보는 한 엑소더스는 계속될 것

이처럼 수익을 중시하는 구조에서 이전과 같은 자유롭고 창의적으로 기획하고 ‘작품’을 만들 수 있는 기회가 줄어든 분위기도 드라마 PD들이 이탈하는 이유라고 PD들은 말했다.

외주제작사, 기업, 중국 등의 자본이 흘러들고 물량공세가 이어지면서 드라마 제작 시장도 자본이 중심이 됐다. 작가와 연기자 등을 확보하기 어려운 상황에서 PD가 자신의 기획을 가지고 드라마를 만들기란 어려운 상황이 됐다. 지상파이자 공영방송인 KBS가 거대 기업인 CJ E&M 비해 자본력이 부족한 상황에서 이를 대신할 수 있는 다른 대안이 필요한 상황이다. 그러나 안정과 수익을 중시하다 보니 소재도 기획도 출연자도 평균 시청률을 담보할 수 있는 기준을 우선시 하게 된다. 외부의 도전과 위협 속 새로운 기획과 아이디어가 필요한 상황이지만 그것마저 여의치 않은 것이다.

한 드라마 PD는 “예전에는 다른 방송사에 비해 비싼 작가, 비싼 연기자를 쓸 수 없는 대신 내부적으로 PD들이 낸 아이디어를 통해 보완하려고 했다. 서로 하나의 ‘창작집단’으로서 서로 도와주고 창의력을 북돋아 주려는 전통이 있었다. 그리고 이 같은 작업을 통해 좋은 성적이 나기도 했다”며 “지금은 ‘한류’ 이후로 급속히 상업화되면서 이 같은 시스템이 무너졌다. 그러나 이를 대체할 만한 새로운 시스템이 마련되지 않은 상황에서 성과만 강요받는 문화가 생겨났다”고 말했다. 이 같은 현상이 특히 지난 2~3년 사이 급격화됐다고 말했다.

이 PD는 “자기가 하고 싶은 걸 마음껏 할 수 있는가, 창의력을 발휘할 수 있는 여건인가가 핵심인데 지금처럼 드라마국에 적대적으로 ‘왜 성과를 내지 못하느냐’면서 공개적으로 비난하니 PD들이 자부심을 가지고 일하기 쉽지 않다”고 말했다.

다양한 기획력과 아이디어, 장르를 실험할 수 있는 것은 물론 작가와 PD들의 데뷔 무대인 단막극 <드라마스페셜>도 점차 축소해오며 사실상 폐지 수순에 놓였다는 위기감이 강하다. ‘돈이 안 되는 드라마’는 하지 말라는 암묵적인 분위기가 형성된 속에서 작품에 대한 실험이 이뤄지긴 어려운 것이다.

또 다른 PD는 “회사 내에서 드라마국을 불신하고 ‘문제아’ 취급하는 상황에서 PD들의 사기저하는 당연하다. 드라마를 상업적으로만 바라보는 시선은 연출자에게는 상처가 될 수밖에 없다”며 “그런 시각이 PD들의 이탈 등 더 큰 위기를 불러오고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 지난 2015년 3월 방송된 KBS 금요드라마 <스파이> ⓒKBS

‘연출자’로서의 자부심과 창작력 북돋아 줄 수 있는 시스템 마련 시급

그러나 드라마 PD 세 명의 이적과 관련해 KBS가 내놓은 대응방안은 보도국에 태스크포스(TF)팀을 구성한 것이다. 세 명의 PD의 이적이 유력시되는 JTBC를 겨냥한 TF를 구성했고, 이에 내부에서는 ‘보복성 TF’라는 비판이 일고 있다. 이직이 유력시되는 회사를 겨냥으로 한 TF 구성은 결국 사측이 PD들의 이탈이 갖는 문제를 내부가 아닌 외부 혹은 PD 개인에게서 찾는다고 해석할 수밖에 없다.

이처럼 ‘개인’의 문제로 치환하는 방식은 예능 PD들의 대거 이탈 때도 있었다. 길환영 전 사장은 지난 2013년 10월 23일 국회 미래창조과학방송통신위원회 KBS 국정감사 과정에서 나영석 PD 등 예능 PD들의 이적과 관련해 “방송계의 상업화 물결 속에 (그들은) 공영방송 보다는 개인적인 측면을 택한 것 같다. 모두 높은 스카우트 비용과 보수를 받고 떠났는데, KBS는 그들을 붙잡을 만큼의 임금체계를 갖고 있지 않다”고 말한 바 있다.

“관제 방송 위협, 예능 비중 축소 등의 분위기가 사내에 존재한다”(신원호 KBS 예능 PD, 2010년 언론노조 KBS본부 파업 당시 언론 인터뷰 중)는 오래된 내부의 지적에도 ‘개인’과 ‘외부환경’의 탓으로만 돌렸다. 이 같은 인식은 바뀌지 않고, 예능에 이어 드라마 PD의 이탈로 이어졌다.

내부에서는 이번 역시 JTBC를 타깃으로 하는 보도국 TF 구성처럼 모든 문제를 ‘외부’로만 돌려서는 앞으로 이어질 드라마 PD 이탈을 막을 수 없다고 입을 모으고 있다. 외부 환경적 변화와 내부 시스템의 문제를 단순히 특정 회사를 겨냥하는 것으로 해결할 수 없기 때문이다.

필요한 건 PD들의 이탈을 개인의 문제가 아닌 내부 시스템의 문제로 보고, PD들의 제작 자율성을 보장하고 드라마 연출과 제작에 집중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주는 것이다. <미생>, <시그널> 등 tvN의 사례에서 볼 수 있듯이 중요한 건 ‘콘텐츠’이고, 콘텐츠를 만들고 연출하는 건 사람, 다시 말해 PD들이다. 취재 중 많은 PD들이 현재 드라마 PD들에게 필요한 것 중 하나가 ‘자부심’이라고 했다. 자본으로 평가받기보다 연출로 평가받고 싶은 마음이 큰 것이다.

tvN <시그널> 후속으로 <기억>을 연출하게 된 KBS 출신 박찬홍 PD는 지난 10일 열린 제작보고회에서 “예전부터 40대 주인공이 등장하는 드라마를 해보고 싶었다. 40대가 주인공인 드라마는 쉽게 편성해주지 않는데, 의외로 드라마 국장이 받아들였다. tvN에서 드라마에 대한 자부심과 자신감을 갖고 있다는 생각이었다. 믿어준 만큼 열심히 하겠다”고 말했다. 박 PD의 말은 지상파가 가진 한계를 되돌아보게끔 만든다. 또한 지상파가 해결해야 할 숙제가 무엇인지 보여주는 말이기도 하다.

한 드라마 PD는 “거대한 스테이션이 생기고 중국 자본이 들어오면서 파이가 커진 상황에서 외부에서 인력을 스카웃하려는 현상은 당연하다. 이럴 때 회사는 자기 조직과 직원을 보호하기 위한 장치를 마련해야 하지만 TF 구성은 수준 낮은 대응일뿐더러 드라마 PD의 대거 이탈은 보도국 TF 구성으로 해결될 일도 아니다”라고 꼬집으며 “지금 또 다른 PD들이 이직을 준비한다고 한다. 다들 이직하려는 마음이 있다. 지금의 조직 이탈의 책임은 경영진에 있다”고 지적했다.

이 PD는 “PD들이 드라마를 기획하고 연출하는 전문가로 활동할 수 있게끔 환경을 마련해주기보다 돈을 벌어오라고 짐을 지우고 돈을 못 벌면 PD 개인을 난도질하고 폄하해서는 PD들의 이탈은 계속될 것”이라며 “드라마와 PD를 돈벌이 수단으로만 볼 것이 아니라 ‘연출자’로 키우려는 인식과 시스템, 자유로운 제작 환경, 연출자로서의 전문성을 키우는 등 내부 구조를 개선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처럼 떠나가는 이들에 대한 대책이 세워지지 않는 한 드라마 PD들의 KBS 이탈 행보는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함영훈 CP, 김진원・전창근 PD 외에도 <태양의 후예> 연출자인 이응복 PD에 대한 이적설도 제기되고 있으며, 몇 몇 PD들도 이적을 고민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들의 이탈은 단순한 ‘엑소더스’가 아니다. 그간 KBS에서 쌓아온 경험과 아이디어, 기획의 이탈이다. 앞으로도 이어질 드라마 PD들의 이탈을 통해 ‘제2의 tvN’이 나타나 또다시 지상파를 위협하게 될 것이다. 이들의 이탈을 ‘외부’와 ‘개인’탓으로 돌리는 한 말이다.


최영주 기자  yj719@pdjourna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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