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경 없는 시장, 국적 뛰어넘는 콘텐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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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기형 PD의 글로벌 프로듀싱] 국제 공동제작과 글로벌 프로듀싱

세계가 글로벌화 되었다는 것은 국가 간의 경계를 넘어선 활동이 보편적이 되었다는 것이다. 즉, 국경 개념의 종말을 의미한다. 아울러 지도상의 거리나 경계 등 물리적인 위치가 더 이상 사회 관계적인 제약이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콘텐츠 비즈니스에는 국경이 없다. 이제 국가 간의 콘텐츠 흐름이 프로그램 단위의 유통뿐 아니라 채널 단위의 유통으로 확장되고 있으며, 인터넷과 날이 갈수록 촘촘해지는 디지털 유무선 망 덕분에 콘텐츠에 대한 전 지구적 접근이 가능하게 되었다.

이러한 글로벌화는 한국의 영상 콘텐츠 산업의 기회로 해석될 수 있다. 왜냐하면 한국의 콘텐츠가 세계적 차원에서 소비되는 것이 수월해졌기 때문이다. 좋은 예가 바로 한류 콘텐츠, 그 중에서도 케이팝(K-Pop)이다. 한류의 확산과 케이팝의 인기는 콘텐츠 산업이 전 지구적으로 팽창하여 다중 유통이 가능한 플랫폼이 증가하는 환경, 즉 유튜브를 비롯한 인터넷 스트리밍 서비스와 페이스북 같은 소셜 네트워크 서비스에 크게 힘입은 것이기 때문이다.

▲ 케이팝은 적극적인 온라인 유통으로서 전 세계의 10∼20대에게 소비되었다. 스마트폰, 태블릿이 국경 없는 콘텐츠의 소비를 더욱 용이하게 만들었다 ⓒshutterstock

따라서 이제 우리가 콘텐츠를 얘기할 때, 그 공간 감각을 글로벌하게 넓히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전 세계가 우리 콘텐츠의 소비 시장이기 때문이다. 이 사실은 우리가 전 세상 사람들의 관심사에 부합하는 보다 보편적인 콘텐츠를 만들어야 하는 필요와 동기를 제공한다. 과거에는 세계 각국의 미디어 소비자들은 지역에 따라 콘텐츠 선호에서 큰 차이를 보였으나, 점차 전 세계적으로 미디어 콘텐츠에 대한 이해와 요구가 동질화되는 있다는 것을 주목해야 한다. 전 세계 소비자들은 실시간으로 콘텐츠와 정보를 공유하고 있다. 유튜브와 페이스북 같은 소셜 미디어가 대표적인 예다. 전 세계는 국경 없이 촘촘히 연결되어 있으며, 그 정보 유통량은 가히 폭발적으로 성장하고 있다. 이와 같이 인터넷과 디지털 기술의 발전은 필연적으로 콘텐츠 소비자의 수요를 동질화하고, 콘텐츠 경쟁을 보다 글로벌하게 만든다.

글로벌 프로듀싱의 관점에서 볼 때 케이팝(K-Pop)의 성공 요인은 제이팝(J-Pop)의 몰락 요인과 궤(軌)를 같이한다. 제이팝은 1990년대까지 황금기를 구가하다가 21세기 들어 쇠락의 길로 접어든다. 오프라인 음반 시장이 위축되고 디지털 음원 시장으로 바뀌는 환경 변화에 적극 대처하지 못한 제이팝은, 아시아 대중음악계의 팬덤(fandom)을 케이팝에 내주고 만다. 그 차이는 소셜 미디어 활용에서 드러났다.

케이팝의 저변을 넓힌 것은 유튜브, 트위터 그리고 페이스북 같은 소셜 미디어다. 소셜 미디어를 십분 활용한 디지털 유통에서 케이팝은 성공했고, 소셜 미디어 이용을 주저했던 일본은 뒤처지게 된 것이다. 일본인 특유의 조심스러움으로 아티스트들의 저작권 보호와 같은 전통적 입장을 고수하느라 제이팝은 음반의 온라인 마케팅 시대를 선도하지 못했다. 반면, 케이팝은 적극적인 온라인 유통으로서 전 세계의 10∼20대에게 소비되었다. 스마트폰, 태블릿이 국경 없는 콘텐츠의 소비를 더욱 용이하게 만들었다. 지난 시대에는 한국에서 인기를 얻은 후 해외로 진출하는 형태였다면, 이제 소셜 미디어가 일차적인 유통 기반이 되면서 전 세계적으로 동시 다발적인 소비를 촉진하는 것으로 마케팅 전략이 바뀌었다.

케이팝을 이끈 한국의 대형 기획사들은 글로벌 프로듀싱의 일환으로 애초부터 해외 시장을 염두에 두고 현지화를 꾀했다. 대표적인 것이 아예 ‘글로벌 캐스팅’으로 다국적 멤버를 구성하거나, 작곡이나 안무에 글로벌 스태프를 투입하는 등의 ‘글로벌 매니지먼트’다. 특히 해외 진출의 불확실성과 리스크를 줄이기 위해 현지 유력 기획사 및 음반사와 파트너십을 맺고 현지 유통에 최적화된 비즈니스 모델을 창출하고자 했다. 이런 노력의 종합(綜合)이 바로 글로벌 프로듀싱이다. 글로벌 프로듀싱 결과로 확장된 케이팝의 전 세계 소비자들은 온라인상을 넘어 오프라인까지 매개하며 한국 문화에 대한 선호를 보여주고 있다. 글로벌 프로듀싱으로 전 세계인들이 한국 상품에 대해 보다 많은 관심을 갖게 되고, 총체적으로 한국 문화에 대한 애정을 추동(推動)하게 된 것은 반갑고도 뿌듯한 성과다.

▲ 이제 우리가 콘텐츠를 얘기할 때, 그 공간 감각을 글로벌하게 넓히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전 세계가 우리 콘텐츠의 소비 시장이다. ⓒpixabay

사실 한국의 콘텐츠 산업이 글로벌화를 외친 지 이미 오랜 시간이 흘렀다. 그러나 대부분의 한국 콘텐츠 기업들은 주요한 리소스인 인력과 재원 확보를 한국 내에서만 의존하고 있은 상황이다. 콘텐츠 산업의 글로벌화 주체는 국가나 기업 단위가 아니라 이제 개인 단위로 확대되고 있다. 굳이 연기자나 가수 등 킬러 콘텐츠의 셀러브리티(celebrity)뿐만 아니라 카메라 뒤에 숨어 있지만 콘텐츠 생산의 실제 주역인 프로듀서와 디렉터 그리고 기술 제작 인력들도 국경을 넘어 이동하고 있다. <별에서 온 그대>의 장태유 PD나 <찬란한 유산>, <닥터 이방인>의 진혁 PD 등 드라마 연출자와 대표적인 예능 연출자, 김영희 PD 등 다수의 방송 인력이 중국행을 선택했다. 글로벌화가 국가와 거대 기업 단위로 추진되는 과거와 달리 언어적 장벽이 영어의 보편적 사용으로 해소되는 지금, 개개인이 글로벌한 네트워크를 형성하고 해외에서 일자리를 찾고, 또 일할 수 있는 인프라가 조성되었기 때문이다. 이제 인력의 측면에서 글로벌 소싱(sourcing)은 글로벌 경쟁력 확보를 위한 주요한 전략이 되었다.

인력뿐 아니라 자본의 경우에도 마찬가지다. 콘텐츠 리소스의 국제적인 펀딩은 이미 서구권에서는 보편적인 방식이다. 사실 국제 공동제작은 펀딩 리소스를 국내에서 뿐만 아니라 국제적으로 찾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렇지만 우리 한국의 콘텐츠 산업은 그동안 국내 자본에만 과다하게 의존했을 뿐이다. 그동안 상품으로서 우리 콘텐츠를 두고 어떻게 세계에 팔 것인가 하는 문제가 주요 관심사였다면, 이제 더 높은 글로벌 경쟁력을 위해 인력과 재원 그리고 기술 등을 어떻게 글로벌하게 소싱할 것인가로 관심을 기울일 필요가 있을 것이다. 유럽 시장을 공략하길 원한다면 유럽의 자본을 투자 자본으로 끌어들어야 한다. 아울러 유럽의 네트워크를 확보한 배급사와 함께 일하는 것이다. 중국 시장이나 인도 시장에서도 현지 자본과 현지인 출신을 소싱할 필요가 있다.

한국의 콘텐츠 기업이 진정한 글로벌화를 지향한다면 인력, 자본, 기술의 리소스 확보에서 글로벌 차원에서 어느 것이 가장 경쟁력이 있을 것인가를 선택 기준으로 두고 가장 경쟁력 있는 리소스를 찾아야 한다. 글로벌화는 단지 상품 판매 시장의 글로벌화만이 아니라 리소스 중심의 글로벌 프로듀싱이 바탕이 되어야 한다. 그렇지 못하면 진정한 글로벌 기업의 길은 멀어지고 계속 로컬 기업으로 남게 될 뿐이다.

글로벌 프로듀싱에서는 각국의 서로 다른 지역적, 문화적 특성에 맞추어 현지화 된 콘텐츠를 공급해야 할 필요성도 증대한다. 해외 마케팅 활동은 국내에 한정한 마케팅에 비해 훨씬 복잡하고 리스크도 크다. 따라서 글로벌 마케팅을 위해서는 각 나라의 정치, 경제, 문화, 법률적인 환경 요인을 분석하고, 글로벌 차원에서 경영다각화와 시장 다변화, 경영 리스크의 분산 등을 고려해야 한다. 또한 각 나라의 특성에 적응할 수 있도록 마케팅 전략을 특화하여 조정하는 것이 필요하다. 타깃(target) 국가에 어떤 형식으로 접근할 것인가를 고민하고 각 나라의 법과 제도에 따른 맞춤형 전략을 준비해야 한다. 글로벌 프로듀싱은 글로벌화와 동시에 현지화(localization)를 추구해야 하는 복합적인 전략이다.

어차피 모든 교류는 섞이고 받아들여지고, 또 충돌하고 그래서 어느 한쪽으로 수렴되기도 하는 현상이다. 글로벌 프로듀싱은 그 방향을 제대로 잡고 각국의 문화적 존재감을 살리는 동시에, 보편적인 공동선을 추구하는 것이다. 글로벌 프로듀싱은 바로 이런 면에서 ‘국제적인 파트너십의 구축’으로 이해해야 한다. 공동의 문제에 동율(同律)의 인식을 나누고 함께 대처하는 것이 파트너십의 기본이다.

▲ MBC 무한도전의 포맷을 수입해 제작한 중국 CCTV <대단한 도전> ⓒCCTV

따라서 글로벌 프로듀싱은 국제적인 파트너십을 조화롭게 발전시켜서 최선의 가치를 찾는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국제 공동제작은 글로벌 프로듀싱의 실천적인 전략이다. 국제 공동제작의 진정한 실체는 윈윈(win-win)하는 교류이기 때문이다. 내 것과 남의 것을 나누고, 서로 배워서 보다 새롭고 가치 있는 것을 만들어 내는 것, 이것이 바로 국제 공동제작이다. 국제 교류는 내 것을 잃는 것이 아니라, 남의 것을 통해 내 것을 제대로 보고 더 나은 내 것을 만드는 생산적인 활동이다. 국제공동제작은 바로 우리의 콘텐츠를 지역화하고 이를 다시 세계화하는 과정이다. 국제 공동제작을 추진하면서  ‘국경 없는 시장, 국적을 뛰어넘는 콘텐츠’라는 패러다임의 변화를 실천할 수 있기를 기대한다. 교류는 협력이다. 협력은 함께 일을 도모하여 공동선(共同善)을 추구하는 것이다. 글로벌 프로듀싱과 국제 공동제작은 바로 이러한 국제 교류와 협력에서 생산성과 가치를 찾는 일이다.

▲ 배기형 KBS P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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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필자는 KBS 국제협력 업무 전문가로서 주요 국제기구의 총회와 콘텐츠 포럼에서 초청 연사 및 진행자로 활약했다. 현재 KBS 월드 채널 마케팅을 담당하고 있으며, 저서로 <OTT 서비스의 이해>, <국제공동제작>, <다큐멘터리 피칭> <텔레비전 콘텐츠 마켓과 글로벌 프로듀싱>, <국경없는 TV, 경쟁하는 프로그램>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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