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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6.03.21 12:07
  • 수정 2016.03.24 12:11

“알파고도 엄마의 자장가를 대체할 수 없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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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PD대상 수상자 인터뷰 ①] 라디오 실험정신상 KBS ‘꿈을 그리는 소리, 자장가’ 박천기 PD

“아이를 키우다 보니, 자장가 음반이 다 서양 자장가인 거에요. 브람스, 모차르트, 슈베르트 등등. 그런데 저는 어릴 때 할머니한테 들은 자장가가 있거든요. 요즘 알파고, 인공지능 얘기가 나오는데, 2040년이 돼도 엄마가 불러주는 자장가를 로봇이 대체할 순 없어요. 엄마의 자장가를 대체할 수 있는 건 세상 어디에도 없죠”

제28회 한국PD대상 라디오부문 실험정신상을 수상한 박천기 KBS PD는 라디오 다큐멘터리 <꿈을 그리는 소리, 자장가>를 기획하게 된 계기에 대해 이렇게 밝혔다. KBS 글로벌 음악다큐 <꿈을 그리는 소리, 자장가>는 기억 속에서 사라져 가는 우리의 지역별 전래 자장가를 복원한 1부와, 30여 개 국의 세계 자장가를 모아 그 안에 담긴 보편성과 특수성을 분석한 2부로 구성돼 있다.

박 PD는 2012년에도 KBS 실험다큐 <소리로 보는 세상>으로 한국PD대상 라디오부문 실험정신상을 수상한 경력이 있다. ‘실험정신상’은 남다른 시도에 대해 동료 PD들에게 인정을 받은 것이기 때문에 더 의미가 있다.

한국PD대상 시상식을 하루 앞둔 지난 17일 서울 여의도 KBS본관에서 만난 박 PD는 “단순히 자장가를 다루는 데에서 그친 것이 아니라, 자장가의 보편성과 특수성을 씨줄과 날줄로 엮어 하나의 스토리로 만들어냈다는 부분이 높이 평가받아 실험정신상을 받은 것 같다”고 소감을 말했다.

▲ 제28회 한국PD대상에서 KBS 글로벌 음악다큐 <꿈을 그리는 소리, 자장가>로 라디오부문 실험정신상을 수상한 박천기 KBS 라디오 PD ⓒPD저널

일본은 ‘자장가 보존협회’가 있어 10만 개 이상의 자장가가 전해지고 있는 데에 반해, 한국은 자장가를 보존하려는 노력이 따로 행해지고 있지 않다. 이미 많은 전래 자장가가 사라져버렸다. 그래서 박 PD는 “단순한 소리 채집이 아니라, 사라져가는 우리 전래 자장가만의 독특한 특징은 무엇인지 찾아 그걸 따로 채록하고 보관하는 게 일차적인 목적이었다”고 말했다.

우리의 지역별 전래 자장가를 모으는 과정에서 가장 힘들었던 것도 자장가를 알고 있는 ‘생존 할머니’를 찾는 일이었다고 한다. 박 PD는 “우리 자장가 같은 경우 전승 작업이나 채록이 잘 돼있지 않아 그 자장가를 부르던 할머니가 돌아가시면 끝이더라”며 안타까워했다. 또 “실제 생존 할머니를 만나도 기억의 한계 때문에 원형에 가까운 걸 찾기 어려운 것도 문제였다”고 한다.

이렇게 사라져 가는 전래 자장가에는 한국의 역사와 문화가 고스란히 담겨 있다. 특히 자장가는 부르는 이에 따라 얼마든지 변주될 수 있어 지역별, 시대별 특수성이 뚜렷하게 나타난다. 박 PD는 “엄밀히 따지면 프리스타일 랩의 원조는 우리 할머니들”이라며 “전래 자장가의 특징은 자장가를 들려주는 엄마, 할머니가 창작자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라고 전했다.

세계 자장가를 모으는 과정 역시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었다. 다큐멘터리 제작을 위해 꼬박 1년이 걸렸다. 국내에 거주하고 있는 외국인들을 대상으로 모국의 자장가를 채집하고 크로스체킹하는 과정을 반복했다. 몽골, 독일 등에 퍼져 있는 KBS 현지 통신원들의 도움을 빌려 현지 녹음도 진행했다. 제작비 등의 한계 때문에 200개가 넘는 세계 자장가를 모두 밝혀낼 수는 없었지만, ‘종교’, ‘문화’, ‘지역의 특수성’이라는 세 가지 키워드를 기준으로 선정한 30여 개 국가의 자장가를 모았다. 박 PD는 “이슬람권과 불교 문화권의 자장가, 농경문화권과 유목문화권의 자장가, 적도 지역과 추운 지역의 자장가가 가사와 멜로디는 물론 전체적인 느낌 자체가 다른 것이 신기했다”고 밝혔다.

세계 자장가 중에서는 우리 전통 자장가와 아주 흡사한 것들도 존재하고 있었다. 이를 더 집중적으로 알아보기 위해 박 PD는 일본, 인도, 피지 등에 직접 건너가보기도 했다. 일본 이츠키 지방의 ‘이츠키 자장가’는 우리의 ‘아리랑’에서 건너왔다는 학설이 존재한다. ‘오로롱 오로롱 오로롱바이’로 시작하는 ‘이츠키 자장가’가 임진왜란 당시 일본에 끌려간 조선인들이 구마모토현의 이츠키에서 조국을 그리며 부르던 ‘아리랑’에서 시작됐다는 내용이다. 또 지리적으로 멀리 떨어진 인도 자장가의 리듬이 우리 자장가의 리듬과 매우 유사하다는 점도 특이한 일이었다.

▲ 제28회 한국PD대상에서 KBS 글로벌 음악다큐 <꿈을 그리는 소리, 자장가>로 라디오부문 실험정신상을 수상한 박천기 KBS 라디오 PD가 시상식에서 수상소감을 말하고 있다. ⓒPD저널

다큐멘터리를 제작하는 과정에서 자장가의 소중함을 더 절실히 느낄 수 있었다는 박 PD는 여기서 그치지 않고 더 폭을 넓혀보고 싶다고 했다. 그는 “전래 자장가를 채록하여 음반 작업까지 마칠 수 있으면 좋겠고, 좀 더 많은 세계 자장가를 모아 보다 학술적인 가치를 재조명하고 싶다”고 전했다.

앞으로 ‘가장 라디오적인 다큐’를 계속 하고 싶다는 박 PD는 라디오와 저널리즘을 접목시키는 데에 관심이 크다. 2004년 KBS <라디오 스페셜 PD리포트>를 통해 기획, 취재, 진행 모두를 라디오 PD가 직접 담당하는 ‘PD저널리즘’을 구현한 바 있는 그의 궁극적인 목표는 ‘오디오 저널리즘’을 하는 것이다.

그는 “‘오디오저널리즘’은 그냥 내가 만든 단어다. 학술적 체계도 없다”며 “예를 들면 아프리카의 난민 문제, 중동 분쟁, 이런 것들을 소리로 전하는 저널리즘이다. 저널리즘적인 성격을 가지고 현장 깊은 곳에서 취재하고 전달하는 것”이라고 소개했다. 박 PD는 한국에는 저널리즘 성격의 다큐멘터리가 너무 적다며, 라디오에서도 이런 저널리즘 성격의 다큐멘터리를 해야 한다고 의지를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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