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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디어 선거 훼손하는 미디어, 피노키오 정치 키운다

[위클리포커스] ① 알파고에도 밀리는 총선 보도…깜깜이 선거 비판하는 방송이 ‘깜깜이 보도’ 김세옥 기자l승인2016.03.23 22:57: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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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0대 국회의원 선거가 20일(3월 24일 기준) 앞으로 다가오면서 선거방송을 준비 중인 방송사들도 분주히 움직이고 있다. 선거토론과 투‧개표 방송 등을 맡는 방송사들은 시청자의 눈길을 잡기 위해 저마다의 전략과 첨단 기술을 준비 중이다. 또 총선과 관련해 별도 페이지를 운영하며 관련 뉴스와 후보자 정보 등을 제공하고 있다. 하지만 이런 노력에도 불구하고 4‧13 총선은 어김없이 ‘깜깜이’ 선거의 길을 가고 있으며, 언론은 이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북한‧알파고에 밀린 총선…정책 대신 정쟁

현대의 선거를 미디어 선거로 규정하는 배경엔 후보자와 유권자의 접촉이나 유권자들끼리의 의사(정보) 교환이 직접 접촉보단 다양하게 발달한 미디어를 매개로 이뤄지는 현실이 있다. 그만큼 선거보도의 역할이 중요한 상황으로, 미디어는 유권자들에게 후보자나 정당에 대한 최선의 판단 기준이 될 수 있는 정보를 공정하고 정확하게 제공하는 동시에 유권자 중심의 의제를 발굴해야 한다.(박주현, 선거보도의 열 가지 편향(2015.3)) 그러나 총선 직전 달인 3월 현재 방송의 선거 보도는 미디어 선거를 긍정의 방향으로 견인하기엔 부족한 모습이다.

일단 총선 보도 자체가 적었다. <PD저널> 확인 결과 지난 1일부터 총선을 한 달 앞둔 시점이었던 14일까지 2주 동안 KBS의 메인뉴스인 <뉴스9>에선 하루 평균 2.14개의 총선 관련 보도가 있었다. 총선 한 달을 앞둔 시점인 지난 13일과 14일 총선 관련 기획 보도가 쏟아졌던 때를 제외하면 KBS <뉴스9>의 총선 보도는 하루 평균 1.75개에 그쳤다. 또 지난 1일과 8일엔 총선 관련 보도를 배치하지 않았다. MBC와 SBS도 이런 모습은 크게 다르지 않았는데, 이 기간 동안 MBC의 총선 보도는 하루 평균 2.21개였고 SBS는 2.5개였다.

반면 같은 기간 동안 KBS <뉴스9>의 북한 관련 보도(단신 제외)는 하루 평균 5.85개로 총선 보도보다 두 배 이상 많았다. 이 기간 동안 이세돌 9단과 알파고의 바둑 대국도 있었는데, KBS <뉴스9>에서 대국이 있던 일주일(3월 8일~14일) 동안의 관련 보도(인공지능 관련 보도 포함)는 하루 평균 4.57개였다.

▲ 제20대 국회의원 선거를 33일 앞둔 시점이었던 3월 11일 KBS <뉴스9> 리포트 목록. 집중도가 높은 뉴스 시작 20분 이내 리포트 중 총선 관련 리포트는 두 개 뿐이다. 북한과 알파고 등에 대한 리포는 각각 네 개씩 배치됐다. ⓒKBS 뉴스 페이지 캡처

그나마 있는 총선 관련 보도 대부분은 정쟁이었다. 야권 연대를 둘러싼 야당 간(더불어민주당-국민의당), 야당(국민의당) 내 갈등과 공천을 둘러싼 당내 갈등, 현역 국회의원 컷오프와 관련한 논란 등이 대부분 매일의 뉴스를 채웠다. 선거구 획정안이 국회 본회의를 지각 통과한 다음날인 지난 3일(‘선거법 지각 통과…총선 앞으로’)과 총선을 한 달 앞둔 시점이었던 지난 13일(‘깜깜이 선거…유권자는 혼란’, ‘총선 D-31, 혼탁 조짐…흑색선전‧여론조작 급증’), 그리고 14일(‘국민기대 못 미친 공천 개혁…물갈이 낙제점’, ‘총선 D-30…계파 싸움에 정책‧비전 실종’) 등 사흘만 정쟁 외 총선 보도도 있었다.

여야 정당에서 정책 공약을 발표하지 않은 건 아니다. 이 기간 동안 새누리당은 공정사회 구현(12개 실천과제)과 주거‧건강 등의 복지(11개 실천과제) 관련 공약을 발표했고, 더불어민주당도 △양극화 해소 △국민연금 △성평등 △노령 기초연금 인상 △가계부채 해소 등에 대한 공약을 제시했다. 국민의당도 12대 복지공약, 10대 청년공약, 10대 여성공약, 10대 어르신공약 등을 발표했다. 하지만 여야 정당에서 발표한 일련의 공약 관련 보도는 없었다.

KBS <뉴스9>는 총선을 한 달 앞둔 지난 14일 기획 보도에서 “선거 초기 국면이 여야 할 것 없이 계파 갈등에 파묻히면서 정책 공약이나 비전 개발은 뒷전으로 밀려났다”고 지적했다. 또 “그나마 제시된 공약 중 상당수도 과거 정책의 재탕이거나, 재원 마련 등 검증이 안 돼 현실성이 없다는 지적이 많다”고 비판했다. 그러나 이는 여야에서 어떤 공약을 제시했는지에 대한 검증 과정은커녕 정보 자체의 전달도 없이 ‘재탕’, ‘현실성 부족’ 등 결과에 대한 부정의 평가만을 내놓는 모습이다.

각 정당과 후보의 정책을 사실 그대로 유권자들에게 알려 선택의 기준을 객관적으로 전달하는 게 선거보도의 기본이자 핵심이라는 점을 고려할 때, 이런 식의 보도는 선거에 대한 건전한 관심을 높이는 대신 정치에 대한 혐오만을 부채질 할 우려가 있다. 국회가 기대와 다르게 움직일 때마다 대통령이 책상을 열 번쯤 쾅쾅 치거나 한숨을 쉬면서 “이러고 어떻게 총선에서 국민에게 표를 달라고 할 수 있나”라고 말할 때, 언론이 “답답한 심정이 어느 때보다 강하게 묻어난다”(2월 24일 KBS <뉴스9>)며 이해하는 모습을 보이는 상황이라면 더욱 그렇다.

피노키오 정치 키우는 미디어…‘팩트 체크’도 부재, 의제 설정은 먼 얘기

후보자의 정치 철학과 정책 등 본질과 관련한 부분보다 경마식의 여론조사 보도나 후보자와 정당의 정치 캠페인, 정쟁 등에 집중하는 선거보도는 비단 한국의 미디어만의 문제는 아니다. 시청자와 독자가 이슈보다는 갈등에 더 많은 관심을 두고 있기 때문에 선거를 정치인 개인들이 권력을 위해 경쟁하는 게임으로 묘사하는 건 외국의 언론도 마찬가지라는 지적이다.(방송위원회, 공정 선거방송 모델 연구(2002.5))

하지만 동시에 ‘팩트 체크’에도 열심이다. 오는 11월 대선을 치르는 미국의 경우 현재 각 정당에서 경선을 진행하고 있는데 후보자들의 TV토론이 있을 때면 주요 방송과 신문들은 웹페이지에 후보자들의 발언 내용을 검증하기 위한 코너를 만든다. 팩트체크(factcheck.org)나 폴리티팩트(politicfact.com) 등처럼 검증을 전문으로 하는 웹사이트도 있다. 기자들의 노벨상이라고도 불리는 퓰리처상을 수상하기도 한 폴리티팩트의 경우 정치인 발언의 진실성을 새빨간 거짓말(Pants On Fire)-거짓(False)-거의 거짓(Mostly False)-절반의 사실(Half True)-거의 사실(Mostly True)-사실(True) 등 여섯 단계로 검증한다.

▲ 미국의 ‘폴리티팩트’는 정치인들의 발언을 ‘새빨간 거짓말’부터 ‘사실’까지 6단계로 구분해 검증하고 있다. ⓒ폴리티팩트 홈페이지 캡처

물론 이런 검증에도 유권자들은 정치인의 거짓말에 관대한 모습을 보일 때가 있다. 일례로 5분에 한 번꼴로 거짓말을 한다는 지적을 받은 도널드 트럼프는 미국 공화당의 유력 대선주자로 승승장구하고 있다. 하지만 언론이 선거와 관련해 정확한 정보를 전달하기 위한 사실 검증에서 손을 놓을 때 정치인들은 선거에서 이기기 위한 무책임한 거짓말을 필승전략으로 채택하기 쉬워진다. 선거가 피노키오 정치판을 만드는 도구로 이용될 수 있는 것이다.

이런 우려의 배경엔 여전히 공약의 절반은 거짓으로 끝나고 마는 현실이 있다. 한국매니페스토실천본부가 지난해 말까지 19대 국회의원 239명(공석·사고 제외)의 공약 총 8481개의 이행 여부를 분석한 결과, 이행률은 51.24%로 절반을 겨우 넘는 수준이었다.

이런 현실에도 불구하고 총선까지 3주의 시간도 남겨놓지 않은 지금 국내 방송들은 선거운동에 나선 후보자의 말이나 각 정당에서 내세우고 있는 공약의 진실 여부를 확인하는 작업은커녕 공천과 정당끼리의 연대를 둘러싼 갈등 상황을 드라마처럼 전하고 있을 뿐이다. 이런 상황에서 방송 등 미디어의 의제설정은 기대조차 어려운 ‘고급’ 기능일 수밖에 없다.

방송 등 미디어가 정쟁에만 골몰하는 사이 정책으로 기성 정치와 차이를 보이려는 소수당들은 더욱 소외된다. 원내 4당인 정의당의 경우 야권 연대 논란이나 격전지 판세 등에 대한 보도에서나 언급되는 정도이며, 원외의 녹색당과 노동당 등은 아예 관심 밖이다.

이에 대해 추혜선 정의당 언론개혁기획단장(비례대표 3번)은 “선거구 획정 등이 늦어지면서 총선 스케줄 자체가 촉박하게 진행되면서 정치적 책임이 상대적으로 더 큰 거대 정당들의 정책 공약은 이제야 나오고 있는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추 단장은 “이런 와중에도 정의당과 녹색당 등 소수 정당에선 일찌감치 분야별 공약을 충실히 준비해 제시하고 있는데, 언론들은 이런 부분에 뉴스의 공간을 할애하지 않고 거대 여야 정당의 갈등만 쫓고 있다”며 “의도 여하를 떠나 언론의 이런 모습은 갈등을 증폭하며 정치 불신과 무관심을 심화할 수밖에 없다”고 비판했다.


김세옥 기자  kso@pdjourna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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