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과 먹을거리에 관한 따스한 고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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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욱한PD의 촌방촌설 村放寸說] 부산MBC ‘어부의 만찬’

▲ 부산 MBC <어부의 만찬> ⓒ부산MBC

하늘 높이 떠오른 카메라는 천천히 포구의 상공을 지나다가 어느 작은 마을로 다가간다. 그리고 멈추지 않는 새의 날개 짓처럼 우아하게 허름한 어촌의 한 집안으로 날아들고 그 곳에 차려진 소박한 어부의 밥상에 사뿐히 내려앉는다. 이렇게 <어부의 만찬>은 시작된다. 제작진 스스로 프로그램의 정체성이 담긴 카메라 워킹이라고 부르는 드론의 부감 촬영은 무척 효과적이고도 인상적이다. 거창한 만찬 식탁이 아니라 시골의 장삼이사들이 매일 먹는 그런 소박한 밥상을 하늘에서부터 서서히 접근하는 방식은 <어부의 만찬> 시즌2가 어촌 마을과 어부들을 대하는 따뜻하고도 새로운 시선을 상징적으로 확인시켜주는 듯하다.

부산MBC가 3년 전에 야심차게 출범시킨 <어부의 만찬>은 어느 듯 부산을 대표하는 프로그램 가운데 하나로 당당히 자리를 잡고 있다. 해양과 어업을 소재로 수많은 대형 특집을 제작해왔던 부산MBC는 바다에 관한한 내로라하는 자부심을 가질 만한 역사를 이어오고 있다. 그 연장선에서 <어부의 만찬>도 기획되었을 것이다. 그리고 몇 년 전부터 인기를 누리는 먹방의 유행과 목포MBC <어영차 바다야>의 성공도 자극제가 되지 않았을까 짐작해본다. 하여튼 <어부의 만찬>은 해산물 소비를 늘리자는 기획의도를 전제로 셰프 두 명과 여행작가 두 명이 각각 팀을 이뤄서 새로운 레시피의 해산물 요리를 만드는 프로그램으로 시즌1의 문을 열었다. 대결의 형식이 가미되고 예능의 리듬이 더해지면서 지역에서 시도하는 새로운 예능 먹방의 가능성을 연 것이다.

시즌1이 예능의 가능성을 확인했다면 지난해 1월부터 시작된 이른바 시즌2는 다큐의 문법을 따라가는 교양의 영역으로 포커스를 옮기고 있다. 시즌1이 ‘어부의 만찬’이라는 타이틀에서 ‘만찬’에 집중했다면 시즌2는 ‘어부’에 시선을 더 많이 두고 있다고 표현할 수 있겠다. 레시피나 맛에 대한 탐식적인 호기심은 접어두고 이 소박한 음식과 밥상이 차려지기까지의 평범한 일상에 렌즈를 맞추는 방식인 것이다. 김경민 PD가 직접 이야기하는 <어부의 만찬>에 대한 단상을 소개한다.
“현재 어촌에서 살고 있는 어민들이 얼마나 수고스럽게 해산물을 기르고 잡는 지를 보여주고 싶었습니다. 우리가 밥상에서 쉽게 맛보는 생선구이와 회, 탕이 매일 새벽 바다로 나가 파도와 그물과 씨름해야 하는 어부들의 손에서부터 시작되었다는 것을 전달하고자 했습니다. 날 것 그대로의 어업현장과 어민들의 삶을 통해 해산물의 소중함을 시청자들에게 전해주고 싶었습니다.”

김경민PD의 이야기처럼 새롭게 변신한 <어부의 만찬>은 어찌 보면 먹방이라는 범주를 벗어나서 오히려 휴먼다큐에 더 가깝게 다가서 있다. 이런 면에서는 KBS가 제작하는 <한국인의 밥상>을 조금은 닮아있는 듯하다. 그러나 그 속살을 파고들면 확연한 결의 차이를 보인다. 먹거리 방송 열풍의 시류를 따라서 왔지만 이 프로그램만의 차별성은 분명히 확인된다.

▲ 부산 MBC <어부의 만찬>은 어찌 보면 먹방이라는 범주를 벗어나서 오히려 휴먼다큐에 더 가깝게 다가서 있다. ⓒ부산MBC

매 회 세 가지 정도의 음식을 소재로 하는 아이템이 소개되지만 방송을 가득 채우는 것은 유명 셰프의 화려한 요리도 아니고 음식을 먹는 연예인들의 감탄사도 아니다. 그 음식 혹은 음식 재료들이 준비되기까지의 고단한 일상들이 거친 숨소리를 느낄 수 있을 정도로 밀착되어서 화면에 소개된다. 거기에 더해 그날의 주인공들이 전하는 애잔한 인생 이야기도 밥상머리에서 두런두런 들려온다. 그러다 보면 어느 순간 주인공들은 가족에 대한 사랑과 고마움을 고백하기도 하고 눈시울이 붉어지기도 한다. 이 지점이 바로 <어부의 만찬>이 먹방을 넘어서는 순간이 된다. 개인적으로는 <어부의 만찬>에 ‘토속 휴먼 먹방’ 이라는 수식어를 선사하고 싶어진다. 제작진이 이 수식어를 달가워할지는 알 수 없지만, 김경민PD의 고민도 나의 생각과 크게 다르지 않은 듯하다.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보여준다는 점이 <어부의 만찬>의 가장 큰 장점인 것 같습니다. 보통의 어부들이 그 날 잡은 고기로 실제로 어떻게 끼니를 해결하는지 그리고 그 밥상 위에서 그분들의 이야기를 듣는 것이 다른 요리 프로그램과 차별성을 띄는 점이라 생각합니다.

먹는 것이 곧 사는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그들이 먹는 밥상차림에 지금까지 살아온 인생들이 녹아있는 게 아닐까 라는 생각으로 프로그램을 만들고 있습니다.”

어부들 혹은 어민들의 삶 속으로 깊이 들어가는 <어부의 만찬>은 잔잔하고도 편한 볼거리를 제공하는 미덕도 가진다. 자주 사용되는 드론의 부감 촬영은 우리네 어촌들의 아름다움을 새로운 영상미로 전달하는데 큰 역할을 한다. 실제로 어부들이 자기가 사는 섬의 전체 모습을 본 적이 없어서 방송을 통해 확인하고 고마움을 전달한다는 김PD의 말은 입가에 미소를 짓게 만든다. 3년의 시간을 거치며 부산MBC의 간판 프로그램으로 자리 잡고 있는 <어부의 만찬>은 다양한 인간 군상들의 삶을 부박하지 않게 조명하면서 새로운 먹거리 방송의 영역을 탐색하고 있다. 그 과정에서 만나는 애환과 사연도 만만치 않다. 김경민 PD가 전하는 잊히지 않는 어부들의 삶들 중에서 하나를 소개한다.
“여수 상화도라는 작은 섬에서 만난 어머니들인데요. 배고픈 시절 허기를 채우려 톳으로 밥을 지어 주린 배를 채운 이야기를 하시더군요. 그러면서 자신은 괜찮지만, 당시 자식들에게 배불리 먹여주지 못해서 미안하다고 하시더군요. 부모의 마음이 대게 그렇겠지만, 섬에서 살면서 외로움이며 괴로움까지 모두 껴안으면서 자식들을 위해 사셨던 삶이 느껴졌습니다.”

▲ 여수 상화도에서 만난 출연자들과 개그맨 윤형빈 그리고 배우 김하영 씨. 사진은 부산 MBC <어부의 만찬> ⓒ부산MBC

이렇게 어부들과 소통하는 프로그램을 만들기 위해서는 필연적인 애환이 제작진에게 따라온다. 20여명에 이르는 대규모 제작진이 2박3일 동안 현지 촬영을 이어가는 일은 만만치 않은 작업이다. 더구나 변덕이 심한 바다의 날씨는 늘 제작진의 발목을 잡는다. 순간순간이 임기응변과 현장 박치기(?)의 연속이었을 것이다. 그리고 이어지는 편집과 헌팅은 또 불면의 밤을 강요했을 터이다. 그래도 외딴 섬마을이나 어촌에서도 <어부의 만찬>을 본 적이 있다는 얘기를 듣는 것은 제작진들에게 무엇보다 큰 힘이 될 것이다.

<어부의 만찬> 시즌2의 진행자는 개그맨 윤형빈과 연기자 김하영이 콤비를 이뤄 맡고 있다. 전문 진행자가 아닌 두 사람의 역할은 크게 부각되지도 않고 크게 모자라지도 않는다. 조금은 어눌해서 오히려 진정성이 느껴지는 느낌이라고 말할 수 있겠다. 식상한 입담과 상투적인 감탄사보다 진솔한 이야기가 더 힘을 가진다. 그런 면에서 두 진행자들의 한 템포 느린 대화와 차분한 말투는 정겨움을 불러온다.

먹을거리에 대한 과잉된 욕망이 빚어낸 먹방의 질주가 멈추지 않고 한국 방송계를 휩쓰는 요즘이다. 뒤에 오는 컷들이 앞선 컷들을 하나씩 모두 지워버리는 것 같은 현란한 편집에 무수한 감탄사와 고성이 오가는 먹방을 보고 나면 허기진 배와 허탈한 영혼이 남는다. 이런 혼탁한 먹방 흐름 속에서 자연산 ‘토속 휴먼 먹방’의 시도는 그 자체로서 의미가 크다 하겠다. <어부의 만찬>이 가야할 길도 중앙의 먹방과는 달라야 한다. 김경민 PD가 들려주는 <어부의 만찬>의 꿈을 여러분과 공유한다.
“우리나라에 있는 섬의 개수가 대략 3358개라고 합니다. 그중에 무인도서는 2876개라고 하더군요. 앞으로는 무인도서의 섬이 더 늘어날 거고요. 섬이 아닌 어촌 역시 상황이 열악한 건 마찬가지입니다. 해마다 어획량은 줄고 어업을 물려받을 사람도 없습니다. 조만간 어촌이 사라질 수 있다는 생각을 많이 합니다. 제가 바라는 건 어느 섬이 더 이상 사람이 살지 않는 곳이 되기 전에, 그곳이 엄연히 어민들의 삶의 터전이었다는 것을 기록하고 싶다는 점입니다. 그리고 저희 프로그램이 어민들의 어려움과 고민을 알리고 해결하는 데 일조하고 싶다는 점입니다.”

냉장고도 보온 밥솥도 없던 시절 어머니는 온돌방 아랫목에 놋쇠 밥그릇들을 이불로 덮어두고 자식들과 남편을 기다렸다. 그리고 반찬은 잘 삭은 김치 몇 조각이면 충분했었지. 그 밥이 어찌나 따뜻했던지 입에서 배로 그리고 가슴으로 전해지는 훈훈함이 가득했었던 기억이 남아있다. <어부의 만찬>이 그러하다. 보고나면 남는 알 수 없는 훈훈함. 이게 바로 어머니의 따뜻한 아랫목 밥이다. <어부의 만찬>이 바로 이런 어머니의 따스한 밥과 따스한 삶까지 복원시키는 의미 있는 고찰이 되길 기원한다.

▲ 김욱한 PD

*필자 김욱한 PD는 포항MBC 편성제작센터장이면서 PD연합회 대구경북지부장을 역임하고 있다. 술과 썸타면서 방송과 연애하고 있고 책과 밀당 중이다. '변방에서 낮게 나는 부엉이'라는 황당한 닉네임을 스스로 즐겨 사용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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