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은숙 작가, 완벽한 건 아니지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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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은숙 작가, 완벽한 건 아니지 말입니다
'태양의 후예' 김은숙 작가, 진화 포인트와 한계점
  • 이혜승 기자
  • 승인 2016.03.30 09:5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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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폭발적인 칭찬과 날선 비판을 동시에 받는 작가가 또 있을까. 김은숙 작가에게는 ‘로맨스 끝판왕’이라는 타이틀과 ‘자기복제’라는 꼬리표가 동시에 따라 붙는다. 하지만 2004년 <파리의 연인>에서부터 2016년 <태양의 후예>까지 ‘김은숙표 드라마’가 쉬지 않고 시청자들에게 어필할 수 있는 이유는 그녀의 드라마가 분명 변하고 있기 때문이다.

결국 로맨스 ‘판타지’지만 판타지 역시 시대에 따라 빠르게 변화한다. 그리고 김은숙 작가는 그 ‘트렌디한’ 판타지를 자신의 캐릭터에 분명하게 투영하는 능력을 가지고 있다. 2004년 <파리의 연인>에서 그치지 않고 2010년 <시크릿 가든>, 2012년 <신사의 품격> 그리고 2016년 <태양의 후예>까지 계속해서 김은숙 작가의 작품이 성공할 수 있는 이유는 캐릭터들이 항상 시대에 맞춰 진화해왔기 때문이다.

하지만 한편, ‘김은숙표 드라마’ 속에 항상 성공에 가려진 ‘불편한’ 요소들이 자리 잡고 있다는 점을 부정할 순 없다. 특히 드라마 중반을 넘어서고 있는 지금 지나친 애국주의 논란과 비현실적인 군대 모습이 비판을 받고 있다. 여기에 더해 무심코 지나갈 수 있는 상황들과 특유의 ‘위트 있는 대사’들 사이에서 사회와 여성을 바라보는 시각의 한계가 보인다.

지상파 미니시리즈로서는 이례적으로 ‘꿈의 시청률’ 30%에 도달한 KBS <태양의 후예> 속에 숨겨진 김은숙 작가의 ‘진화 포인트’와 ‘한계점’를 짚어봤다.

▲ KBS 수목드라마 <태양의 후예> ⓒ화면캡쳐

진화 포인트 #1. ‘신데렐라’보다 ‘걸크러쉬’

2004년 “이 남자가 내 남자다”라 말하지 못했던 SBS <파리의 연인> 강태영(김정은 분)에게 여성 시청자들이 감정이입을 했다면, 2016년엔 좋으면 좋다, 싫으면 싫다고 말하는 강모연(송혜교 분)의 모습에서 쾌감을 느낀다.

첫 회에서부터 유시진(송중기 분)과 강모연(송혜교 분)은 서로에 대한 호감을 숨기지 않는다. 남자 주인공은 여자 주인공을 향해 “되게 특이하네, 되게 예쁘고” 등의 대사들로 자신이 사랑에 빠졌음을 대놓고 드러낸다. 여자 주인공 역시 “힘든 하루였는데 문득문득 유시진 씨가 끼어들었다”며 감정을 숨기지 않는다. 어쭙잖은 ‘밀당’ 대신, 갑자기 사라졌다 돌아온 남자 주인공에게 “내가 듣고 싶은 건 사과가 아니라 설명인데요”하고 당차게 말하며 ‘답답하고 착하기만 해서’ 혼자 속 끓이는 여자 주인공의 모습을 보이지 않는다.

여자들의 ‘워너비 여주(여자주인공) 캐릭터’가 바뀌었다. 이제 드라마를 보는 여성시청자들은 ‘신데렐라’ 캐릭터보다 ‘걸크러쉬’ 캐릭터에 반응한다. 남자와의 신분 차이에도 불구하고 근거 없는 당돌함을 보이며 ‘이런 여자는 너가 처음이야’하고 반하게 만드는 ‘신데렐라’ 캐릭터보다, 자기 능력이 충분해서 남자에게 꿀리지 않는 ‘근거 있는’ 자신감을 가진 ‘걸크러쉬’ 캐릭터에게 대리만족을 느낀다.

▲ KBS 수목드라마 <태양의 후예> ⓒ화면캡쳐

진화 포인트 #2. 재벌 2세, 엘리트 시장, 건축가 넘어 ‘특전사’다

‘군인’이라는 유시진(송중기 분)의 직업은 기존 로맨스 드라마에서 느끼지 못했던 판타지를 불러일으킨다. 돈이면 다 될 것 같은 세상에서, 돈보다 중요한 신념을 가지고 있는 모습이 묘한 매력을 불러일으킨다.

여자들은 ‘자기 일 열심히 하는 남자’에 대한 판타지가 있다. 소매를 걷어 올린 흰 와이셔츠를 입고, 열변을 토해가며 전화하는 모습에서 남자다움을 느낀다는 말들이 있다. 예전에는 돈 많고 까칠하면서도 나한테는 잘해주는 ‘재벌 2세’가 최고의 판타지였다면, 이제는 어느 정도의 재력이 있으면서 자기 일에 최선을 다하는 남자가 ‘현실적 판타지’가 됐다.

김은숙 작가는 그동안 남자 캐릭터를 그릴 때 직업이 가지는 매력을 부각시키는 데에 장점을 보여 왔다. 이번에도 역시 ‘직업 군인’이 가지는 매력 포인트를 잘 잡았다. 그동안의 정형화된 군인 이미지를 역전시킨 것이 주효했다. 강인함과 과묵함을 미덕으로 여기는 남성미 넘치는 군인이 아니라, 유머러스함과 이해심을 가지면서도 때로는 카리스마 있는 신(新)군인 캐릭터를 구축했다. 얼핏 ‘재벌 2세’보다 현실감 있어 보이지만, 김은숙 작가는 ‘내가 쓴 최고의 판타지’라고 명명했다.

▲ KBS 수목드라마 <태양의 후예> ⓒ화면캡쳐

한계점 #1. ‘여자는 예뻐야 한다’는 공식

드라마는 ‘신데렐라’ 캐릭터를 극복해냈지만, 결국 ‘여자는 예뻐야 한다’는 시각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강모연(송혜교 분)은 교수들도 인정하는 능력 있는 의사지만, 이른바 ‘금수저’를 물고 태어난 동료에게 밀려 교수시험에서 떨어진다. 그녀가 “실력은 빽이 될 순 없느냐”고 소리치는 모습은 많은 사람들의 공감 섞인 분노를 자아냈지만, 이후 여자주인공이 화려하게 부활하는 방법은 방송으로 인기를 얻는 것이었다.

물론 방송에서 똑 부러지게 말을 잘한 건 실력이지만, 외모가 뒷받침되지 않았다면 얻을 수 없는 결과였다. 드라마는 여성이 사회에서 성공하기 위해서는 결국 실력이 아닌 ‘빽’, 혹은 실력을 뒷받침하는 ‘외모’가 필수적이라는 관점을 벗어나지 못했다. 김원 문화평론가는 “길게 설명하지 않고 방송에 나와서 이렇게 떴다고 보여주면 되는 거니까, 제작진 입장에선 손쉬운 선택이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게다가 유시진(송중기 분)은 첫 회에서부터 “군인은 미인과 노인과 어린이를 보호해야 할 의무가 있다”는 대사를 반복한다. 나름의 ‘유머’가 담긴 대사일지 몰라도 꼭 ‘여자’가 아닌 ‘미인’만을 보호해야 하는 것인지 의문이 생긴다.

▲ KBS 수목드라마 <태양의 후예> ⓒ화면캡쳐

한계점 #2. ‘성범죄’에 대한 풍자 혹은 무감각

드라마는 여성이 당하는 직장 내 성희롱 문제, 권력관계에 의한 성희롱 문제를 스토리 전개를 위한 주요 지점에서 차용하면서도 지나치게 가볍게 다루는 모습을 보인다.

강모연이 맡게 된 남성 VIP들이 강모연을 앞에 두고 젊은 여자와 불륜을 한 이야기를 대놓고 하고, 돈 버는 것이 여자를 꼬시기 위함이라는 것을 자랑하는 모습은 성희롱에 가깝다. 하지만 드라마는 이 모습을 가벼운 코미디 소재로 이용할 뿐이다. 게다가 강모연은 그런 이야기를 들으면서도 같이 웃어주고 넘어간다.

현재 한국 사회에서 높은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남성이 유머를 빙자하여 건네는 농담 안에 들어있는 불쾌한 성적 코드는 ‘을’의 입장에 선 여성 직원에 대한 성희롱이다. 분명히 고쳐져야 하는 문제임에도, 오랜 기간 동안 ‘문제’라고 여겨지지도 않았기에 사람들의 인식 변화가 중요하다. 그렇기에 더 민감해야 할 문제를, 방송이 현실과 마찬가지로 가볍게 다루고 지나간다면 오히려 이런 현실을 당연하게 치부해버리는 것과 같다.

문제의식이 배제된 드라마의 시각은 강모연이 권력을 이용한 성접대를 요구받고, 이를 거부하자 분쟁 지역에 보내지는 설정에서 정점을 찍는다. 강모연은 성접대를 거부한 것만으로도 강인한 여자 캐릭터로 그려질 뿐 어떠한 대응도 하지 않는다. 여성의 입장에서 성희롱에 해당하는 상황은 코믹스러운 배경음악과 함께 ‘코미디’의 연속으로 처리된다. 이 모습은 드라마가 이 문제를 엄연한 ‘성범죄’로 인식하고 있는 것인지 의문이 든다.

이런 과정을 통해 강모연이 ‘신념을 가진 의사’에서 ‘현실과 타협한 의사’로 변화했다는 것을 보여주려는 의도를 느낄 순 있지만, 같은 소재를 어떻게 다루느냐는 작가와 드라마의 몫이다. 문제가 있는 현실을 풍자하려는 의도가 있었다면, 이를 다루는 방식에 있어서 더 신중했어야 한다. 스토리 전개를 위해, ‘코미디’의 극적 강화를 위해, 민감해야 할 문제를 너무 쉽게 차용한 것은 아닌지 돌이켜볼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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