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편과 정치, 경계 무너진 자유 출입지대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위클리포커스] ③공생하는 언론과 정치, 불가근불가원(不可近不可遠)은 옛말

불가근불가원(不可近不可遠). 언론과 정치의 관계를 말할 때 흔히 사용하는 표현이다. 너무 멀어서도, 그렇다고 지나치게 가까워서도 안 되는, 결국 서로를 견제해야만 하는 위치에 있어야만 한다는 의미다. 하지만 2011년 12월 1일 종합편성채널(이하 종편) 4사 출범 이후 언론과 정치는 더 이상 불가근불가원의 관계를 형성하지 않고 있다.

차기를 꿈꾸는 전직 국회의원들과 정치판의 신인으로 등장하고 싶은 이들은 종편에서 우후죽순 편성한 시사‧토크프로그램에 번갈아 출연하면서 종편 앞에 보수‧친(親)여권 성향의 시청자들이 결집하도록 종편의 성격을 만들었다. 종편은 이들에게 한국 사회를 관통하는 모든 정치‧사회‧외교‧안보, 심지어 연예계 소식까지 질문했다. 이렇듯 채널과 프로그램을 옮겨 다니며 종편의 스피커로 역할을 하던 이들은 20대 총선을 앞두고 대거 정치에 도전했다.

물론 총선까지 2주를 앞둔 지금, 이들이 받아든 공천 성적표는 저마다 다르다. 하지만 이들이 총선 과정 속 언론의 주목을 받으며 영입되고, 또 일부는 본선(총선) 무대까지 데뷔하는 모습은 ‘언젠가’를 꿈꾸는 정치 희망자들과 4‧13 총선 이후 발생할 많은 ‘전직’ 국회의원들로 하여금 와신상담(臥薪嘗膽)의 시간들을 종편과 함께 조금은 덜 쓰게 견딜 수 있지 않을까 기대할 수 있도록 만들고 있다.

▲ 종합편성채널 출연자로 활동한 새누리당 후보들. (사진 왼쪽부터) 전희경 전 자유경제원 사무총장(비례대표 9번), 변환봉 변호사(경기 성남수정구), 이상휘 전 청와대 춘추관장(서울 동작갑), 이준석 전 새누리당 비상대책위원(서울 노원병) ⓒTV조선, 채널A, JTBC 화면캡처

뉴스 앵커 등 영입에서 종편 출연자 영입으로

방송에서 인지도를 쌓은 이들이 선거를 통해 정치에 진출하는 모습은 사실 새롭지 않다. 소설가이기도 한 김한길 국민의당 의원의 경우 정치 입문 전 MBC <김한길과 사람들>, BBC <아침저널> 등을 진행했고, 20대 총선에서 새누리당 후보로 서울 종로에 출마한 오세훈 전 서울시장도 MBC <오변호사 배변호사>로 얼굴을 알렸다. 16‧17대 국회의원을 지낸 유시민 전 보건복지부 장관 역시 정치 입문 이전 시사평론가로 활동하며 MBC <100분토론>을 진행했다.

하지만 종편 출범 이전 정치권에서 주로 러브콜을 보내는 대상은 언론인이었다. 새누리당 심재철 의원(경기 안양동안을‧MBC 기자)와 한선교 의원(경기 용인병‧전 SBS 아나운서), 박창식 의원(경기 구리‧SBS PD), 더불어민주당의 박영선 의원(서울 구로을‧MBC 기자), 노웅래 전 의원(서울 마포갑‧MBC 기자), 신경민 의원(서울 영등포을‧MBC 기자), 박광온 의원(경기 수원정‧MBC 기자), 그리고 제17대 대선 당시 대통합민주신당(현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를 지냈던 정동영 국민의당 후보(전북 전주병‧MBC 기자) 등이 대표 사례다.

물론 20대 총선에서도 KBS 메인뉴스 <뉴스9>의 앵커를 지낸 민경욱 전 청와대 대변인(새누리당‧인천 연수을)과 최명길 전 MBC 부국장(더불어민주당‧서울 송파을), MBC <뉴스데스크> 앵커를 지낸 김성수 더불어민주당 대변인(비례대표 10번) 등이 본격 정치 입문에 나섰다. 그러나 종편 등장 이후 언론인 출신이 아닌 방송 출연자들, 특히 시사·토크 프로그램의 단골 출연자였던 이들의 정치 진출이 부쩍 눈에 띄기 시작했다.

총선을 석 달 앞둔 시점이었던 지난 1월 10일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가 ‘새누리당과 함께할 젊은 전문가 그룹’이란 이름으로 6인의 인물을 영입한 건 종편과 예비 정치인들이 공생하고 있음을 증명한 대표 사례로 손꼽힌다. 6인 중 3인이 종편의 고정 출연자였고 2인도 종편에 자주 얼굴을 비치는 출연자였다. 이들은 당시 기자회견에서 “현재까진 총선에서 특정 지역이나 비례대표로 출마할 계획이 없다”고 말했지만, 이후 모두 출마를 했다. 이 가운데 서울변호사회 사무총장 자격으로 여러 종편에 출연했던 변환봉 변호사(경기 성남수정구)와 전희경 전 자유경제원 사무총장(비례대표 9번)이 본선 티켓을 거머쥐거나 비례대표 후보로 당선 안정권에 안착했다.

이들만이 아니다. 총선을 앞두고 지난 1월 JTBC <썰전>에서 하차한 이준석 전 새누리당 비상대책위원(서울 노원병)과 박성중 전 서초구청장(서울 서초을‧TV조선 <시사선데이 가는 주 오는 주>), 이상휘 전 청와대 춘추관장(서울 동작갑‧TV조선 <이봉규의 정치옥타곤>, <시사선데이 가는 주 오는 주>, <장성민의 시사탱크>), 채널A <쾌도난마>), 이양수 전 청와대 행정관(강원 속초고성양양‧TV조선 <이하원의 시사Q>) 등 종편의 시사‧토크 프로그램에서 활약하던 이들이 새누리당의 공천을 받는 데 성공했다.

야당에서도 강훈식 동국대 겸임교수(충남 아산을‧채널A <직언직설>, <뉴스특보>), 박용진 더불어민주당 정책위 부의장(서울 강북을‧TV조선 <이하원의 시사Q>, <시사선데이 가는 주 오는 주>, 채널A <신문이야기 돌직구쇼>), 최진 대통령리더십연구원 원장(광주 동남갑‧TV조선 <이하원의 시사Q>), 이철희 전 두문정치전략연구소장(비례대표 8번‧JTBC <썰전>/이상 더불어민주당), 김철근 동국대 겸임교수(서울 구로갑‧TV조선 <시사선데이 가는 주 오는 주>, <이봉규의 정치옥타곤>), 김경진 변호사(광주 북구갑‧TV조선 <이봉규의 정치옥타곤>/이상 국민의당) 등의 종편 출연자들이 본선 티켓을 거머쥐었다. 오래 전부터 프로파일러로 명성을 쌓아왔던 표창원 전 경찰대 교수(더불어민주당, 용인정)의 경우 JTBC의 교양프로그램인 <시사 돌직구> 진행자로 활동하기도 했다.

▲ 종합편성채널에서 활동한 야당 후보들.(사진 왼쪽부터) 표창원 전 경찰대 교수(더불어민주당 용인정), 이철희 전 두문정치전략연구소장(더불어민주당 비례대표 8번), 김경진 변호사(국민의당 광주 북구갑), 김철근 동국대 겸임교수(서울 구로갑) ⓒJTBC, TV조선 화면캡처

방송(언론)과 정치 오가는 폴리널리스트 ‘난립’

적절한 모습인가에 대한 논란은 있지만 방송을 하다가 정치를 하는 모습이 낯선 풍경은 아닌 상황에서 종편 등장 이후 언론(방송)과 정치는 또 다른 방식으로 새로운 관계를 맺기 시작했다. 중앙 정치 무대로의 진입에 실패하거나 탈락한 이들이 종편 출연자‧진행자로 훗날을 도모하는 모습이다.

대표 인물이 최근 새누리당 복당에 실패한 강용석 변호사다. 강 변호사는 18대 국회의원 중도 사퇴 이후 19대 국회 진입을 시도했지만 낙선하자 JTBC <썰전>, TV조선 <강적들>, <황금펀치> 등 다양한 프로그램에서 방송인으로 활동하면서도 정치로 재기하겠다는 뜻을 공공연히 드러냈다.

KBS 기자 출신의 안형환 전 새누리당 의원(18대 국회의원)도 19대 총선 낙선 이후 채널A <신문이야기 돌직구쇼> 등 종편에 출연하며 정치평론가로 변신했으나 20대 총선 출마를 앞두고 하차했다. <조선일보> 기자 출신의 진성호 전 새누리당 의원(18대 국회의원)도 19대 총선 낙선 이후 TV조선 <이봉규의 정치옥타곤>, <돌아온 저격수다>, <황금펀치> 등 종편에서 활약하다 방송을 접고 20대 총선에 출마했으나 공천을 받지 못했다. <동아일보> 논설위원 출신의 이동관 전 청와대 홍보수석 역시 채널A <이동관의 노크>를 진행하다 20대 총선에 새누리당 후보로 출마했지만 공천에서 탈락했다.

심지어 KBS 앵커 출신으로 국회 부의장까지 지낸 이윤성 전 새누리당 의원은 19대 총선에서 낙선한 후 2012년부터 지난해 1월 초까지 주말 MBN <뉴스8>의 앵커를 맡았다. 이 전 의원은 20대 총선에서 인천 남동갑에 출마했으나 새누리당 공천관리위원회가 문대성 의원을 단수추천하면서 컷오프 됐다.

중립의 자세를 버리고 정‧관계에 진출한 언론인들, 즉 ‘폴리널리스트’(정치(Politics)와 언론인(Journalist)의 합성어)들은 개인으로서 새로운 직업을 선택했다고 주장할 수 있다. 하지만 그들의 선택은 남은 언론인들에게 고스란히 부담으로 남는다. 반나절 사이에도 정치인으로 변신할 수 있는 언론인이 과연 권력으로부터 독립해 저널리즘을 구현할 수 있는지, 신뢰성에 의문이 뒤따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하물며 폴리널리스트로서의 정체성을 이미 드러냈던 이가 정치 무대에서 내려올 수밖에 없는 상황에 직면한 후 언론계 안팎의 비판도 아랑곳 않고 언론인(방송인)으로 재변신하고, 선거 때 또 다시 정치인의 옷을 입는다면 언론의 독립성, 신뢰성에 대한 바닥의 기대조차 흔들 수밖에 없다.

또한 종편과 돈독한 관계를 맺어왔던 이들이 국회 진출에 성공해 방송에 대한 규제를 담당하는 기관들의 인사권과 방송‧언론 관련 법‧제도를 주무르는 권한을 손에 쥐었을 때 방송(언론) 생태계의 모습에 대한 우려도 존재한다. 국회에 추천 권한이 있는 규제기관(방송통신위원회·방송통신심의위원회)과 공영방송에 대한 관리·감독을 맡은 이사회 등을 구성할 때마다 등장하는 ‘비대칭’의 ‘나눠먹기’ 논란과 ‘낙점설’이 이런 우려를 부채질한다.

‘불가근불가원’의 원칙이 무너지고 언론과 정치의 경계 대신 서로가 서로를 선전도구처럼 활용하며 공생하는 시대, 위험한 건 저널리즘만이 아니다.

저작권자 © PD저널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
모바일버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