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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R의 미래, ‘기술’보다 ‘사람’에 달렸다

[미디어리포트] 방송과 접점 찾기 고심 이혜승 기자l승인2016.04.07 14:23: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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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VR 콘텐츠를 보기 위해 필요한 HMD(Head mounted Display) ⓒ뉴스1

3D를 넘어 가상현실(VR : Virtual Reality) 시대가 열렸다. 업계 종사자들은 2016년이 VR원년이 될 거라고 말한다. 하지만 아무리 뉴스를 통해 VR이란 용어를 들어도, 여기저기서 ‘VR시대’가 열렸다고 말해도 대다수 사람들에게 VR은 여전히 멀게만 느껴진다. 그러나 스마트폰이 그러했듯이 VR은 어느새 우리의 일상 속으로 뛰어들 준비를 끝마쳤다.

VR 세계로 들어가기 위해서는 두 가지가 필요하다. VR ‘기기’와 우리 눈앞에 실제로 펼쳐질 VR '콘텐츠'다. 기기는 삼성, 구글, 오큘러스 등을 통해 사진으로 접한 안경처럼 쓰는 HMD(Head mounted Display)가 바로 그것이다.

이제 궁금한 건, 그 불편한 큰 안경을 쓰고 도대체 ‘뭘 보느냐’이다. 많은 사람들이 가장 먼저 3D 안경을 쓰고 봤던 ‘영화’나 ‘게임’을 떠올릴 것이다. 실제로 영화‧게임 산업을 중심으로 VR콘텐츠가 고속성장하고 있다. 하지만 주목할 점은, 우리가 더 일상적으로 접하는 스마트폰을 통한 ‘모바일 환경’을 중심으로 VR 콘텐츠가 발전하고 있다는 것이다.

VR콘텐츠는 과연 어디까지 진화한 것일까. 어떤 콘텐츠를 어디서, 얼마나, 어떻게 접할 수 있는 걸까. 2D 스크린이라는 한계가 있어 보였던 TV, 방송 분야에서도 VR영상을 시도하기 시작한 지금, 과연 어떤 한계가 있고 앞으로 어떻게 극복해 나갈 수 있을지 VR영상 콘텐츠의 현재와 미래를 알아봤다.

#1. VR영상, 어디까지 왔나

현재 VR영상은 사실상 360도 영상과 통용되고 있다. 360도 영상은 360도 카메라로 촬영하여 인터넷에서 마우스로 화면 여기저기를 돌려보거나, 스마트폰 기기를 움직여 모바일 화면을 돌려 볼 수 있는 영상이다. VR기기가 없어도 즐길 수 있다. 본격적인 VR로 넘어가기 위한 과도기인 셈이다.

VR‧360도 영상 콘텐츠는 크게 영화와 모바일 업계에서 구현되고 있다. 영화 업계에서는 HMD 기기를 통해 감상하는 정통 VR 작품이 주로 만들어지고 있다. 올해 국제 독립영화제인 ‘선댄스 영화제’의 '뉴 프론티어' 섹션에서는 출품작 14개 중 11개가 VR영화였다. VR을 활용한 영상 콘텐츠가 얼마나 활발하게 제작되기 시작했는지를 보여주는 대목이다. 오큘러스의 경우 픽사의 제작진을 스카우트하여 ‘오큘러스 스토리 스튜디오’를 차리고 애니메이션을 제작하고 있다. 처음 출시한 VR 애니메이션 <헨리(Henry)>와 <로스트(Lost)>를 두고 오큘러스 창업자 팔머 러키는 “가상현실 스토리텔링 가능성에 대한 사례를 만들었다”고 평했다.

모바일 시장은 360도 영상을 중심으로 움직이고 있다. 이미 동영상사이트 ‘유튜브(You tube)’에는 세계 각국에서 제작한 1-3분 분량의 짧은 VR영상에서부터 15분 이상의 중장편 VR영상이 올라오고 있다. 아직까지는 대부분 스토리가 있는 영상물보다 ‘VR코스터’로 불리는 놀이기구 간접체험 영상이나 공연, 관광, ‘홈비디오’와 같은 일상생활 영상이 주를 이룬다.

국내에서는 네이버 tv캐스트 홈페이지에 ‘360도 동영상’ 채널이 마련돼 유튜브와 비슷한 장르의 영상들이 올라오고 있다. 특이점은 아이돌 가수 뮤직비디오와 운동 강좌 콘텐츠가 주를 이루고 있다는 점이다. 뮤직비디오의 경우, 기존에는 시청자가 화면에 나오는 한 명의 멤버만 볼 수 있었다면, 360도 영상에서는 원하는 멤버 쪽으로 화면을 돌려 볼 수 있다. 운동 강좌는 한 가지 자세를 여러 방향에서 돌려가며 볼 수 있다는 점이 VR영상으로서 메리트를 가진다. 네이버는 연내 ‘VR 실시간 생중계’도 기획중이라고 밝혔다.

모바일 OTT 시장에서도 VR 전쟁이 시작됐다. KT, LG유플러스, SKT 등은 이제 얼마나 많은 사람들을 자사의 VR콘텐츠로 끌어들이느냐에 따라 앞으로의 미래가 결정될 것이라고 말한다. 우선 각사의 모바일 OTT에 ‘360도 영상 전용관’이 생겼다. LG유플러스는 ‘LTE 비디오포털 채널’에 ‘360영상 무료체험관’을 만들었다. 대표적으로 JTBC <냉장고를 부탁해>가 360도 영상으로 제공된다. 예를 들어 TV본방송에서는 한 명의 셰프가 요리하는 모습만을 볼 수 있었다면, 360도 영상 안에서는 동시간대에 다른 셰프가 어떤 행동을 하고 있는지, 다른 출연자들은 어떤 표정을 짓고 있는지 돌려볼 수 있다. KT는 ‘올레 tv 모바일’에서 ‘360 VR 동영상 서비스‘를 통해 360 VR 단편영화, 리얼리티 쇼, 자체 제작 콘텐츠를 선보이고 있다. 이번 프로야구 시즌에는 일부 경기를 VR로 생중계할 것이라고 밝혔다. SKT는 이달 안에 ’VR전용관‘을 만들고 VR 드라마를 상영할 계획이다.

#2. 지상파 방송도 VR을?

방송 분야에서도 VR은 더 이상 남의 이야기가 아니다. 아직까지 TV화면으로 VR을 접할 수 있는 기회는 거의 없지만, 방송계도 모바일을 중심으로 VR시대를 준비하고 있다.

MBC는 지난해 액션드라마 <빛나거나 미치거나>의 일부를 360 VR 영상으로 제작하기 시작해 아쿠아리움, 동굴 체험 등을 360 VR 영상으로 만들었다. 방송사 중 유일하게 유튜브에 ‘MBC VR’ 전용채널을 마련하고 어플리케이션도 개발했다. VR 여행 시리즈 기획물 제1편 ‘VR여행-블루월드’는 세계 최초로 아쿠아리움을 소재로 한 실사 360 VR 콘텐츠다. 아직 유튜브 채널 구독 수가 200을 채 넘지 못하고 있지만, 지상파에서 VR 영상 콘텐츠를 시도해보기 시작했다는 데에 의의가 있다.

SBS 역시 VR 시장에 뛰어들었다. 드라마 <육룡이 나르샤> 제작 현장을 360도 카메라로 찍어 유튜브에 공개하고, 청룡영화제 시상식 현장을 360도로 담아내기도 했다. 지난 설 특집방송 <먹스타 총출동> 촬영 당시에는 최초로 360도 맞춤 세트를 제작했다. 라디오에도 접목시켜 <박선영의 씨네타운> ‘보이는 라디오’를 360도 영상으로 촬영했다. 한국영상제작학회 주최로 열린 ‘VR 생태계 혁명 2016’ 워크샵에서 김도식 SBS 스마트미디어사업 팀장은 “누구나 참여할 수 있는, 그리고 당장 수익이 날 수 있는 VR콘텐츠 유통 플랫폼을 개발할 것”이라고 선언했다.

KBS는 MBC‧SBS와 비교했을 때 다소 부진한 모습이다. 하지만 고찬수 KBS 플랫폼개발사업부 팀장은 “컨트롤타워가 아직 마련되지 않았을 뿐, 개별 부서에서 VR 콘텐츠를 준비 중이다”라고 밝혔다. 실제로 설 특집 <머슬퀸 프로젝트> 앞부분에서 360도 영상을 잠깐 보여줬으며, 유튜브 ‘my love KBS’ 채널에서 아이돌 가수 인터뷰, 시상식 현장을 360도 영상으로 보여주고 있다. 또 유튜브 ‘KBS 뷰’ 채널에서는 ‘VR저널리즘’을 선보이고 있다.

▲ '2016 선댄스 영화제'의 '뉴 프런티어' 섹션에서 공개된 2분짜리 가상 현실 비행 시뮬레이터 '버들리(Birdly)'이다. 오큘러스 리프트 가상현실 헤드셋을 착용한 후 버들리에 올라타면 새가 된 기분을 느낄 수 있다. ⓒ화면캡쳐

#3. VR에 주어진 과제 : ‘신기함’ 그 이상

그러나 그뿐이다. 처음 접했을 때 ‘우와 신기하다’ 그 이상을 넘지 못하고 있다. 시청자는 ‘VR 아쿠아리움’을 30초 이상 보고 있을 필요성을 느끼지 못한다. 지상파에서 VR콘텐츠를 본격적으로 시작한지 2년이 채 되지 않았기에 아직은 카메라의 기술력을 시도하는 정도에 머무르고 있다. 대부분 기존 콘텐츠의 ‘보조 콘텐츠’인 셈이다. TV에서 드라마가 나간 후 특정 하이라이트 영상만을 360도로 담아 인터넷‧모바일에서 다시 확인할 수 있게 한다든지, 드라마 제작 현장을 궁금해 하는 사람들에게 메이킹필름을 360도 영상으로 전해주는 거다.

하지만 ‘보조 콘텐츠’만으로는 사람들의 관심을 사로잡을 수 없다. 단순히 360도 카메라로 찍는 것을 넘어, 그 안에 스토리가 담긴 ‘작품’이 만들어질 때 VR영상의 대중화가 이뤄질 것이다. VR업계는 “이제는 스토리텔링”이라고 말한다. 한국방송카메라감독연합회 주최로 열린 ‘VR콘텐츠 스토리텔링과 영상문법’ 워크샵에서 ‘스튜디오 클리프’ 박민 대표는 “‘아바타’가 3D 영화여서 본 사람은 없다. 재밌어서 본 거다”라며 “단순히 풍경을 찍어 보여주는 건 의미가 없다. ‘돈 주고사서 보고 싶은’ 영상을 만들어야 한다. 그러려면 일단 재미가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360 VR 영상이 획기적인 이유는 그동안 카메라의 시선, 즉 ‘1인칭 전지적 연출자 시점’으로만 바라봐야 했던 것이 ‘보는 이의 시점’으로 변화한다는 점 때문이다. 이때 영상의 스토리는 무궁무진하게 달라질 수 있다. 한국영상제작학회 주최로 열린 ‘VR 생태계 혁명 2016’ 워크샵에서 김도식 SBS 스마트미디어사업 팀장은 “새로운 촬영도구가 나오면 스토리가 달라진다. 지미집을 쓴 것과 안 쓴 것, 드론을 활용하고 안 한 건 차이가 많이 난다”며 “‘꽃보다 시리즈’는 ‘셀카’를 활용하기 시작한 예다. 출연자가 카메라를 들고 뛰어다니는 건데, 그건 스토리가 달라지는 것을 의미한다”고 말했다.

▲ 5일 수원 케이티위즈파크에서 열린 '2016 타이어뱅크 KBO리그' kt위즈와 삼성 라이온즈의 경기를 찾은 관중들이 VR 생중계 체험을 하고 있다. KT는 2016년 정규시즌 홈 개막 시리즈(3일)에서 스마트폰을 이용한 VR 야구 생중계를 선보인다. ⓒ뉴스1

모두가 영상문법이 획기적으로 변화할 것에는 동의하지만, 현재 시점에서는 스토리 구현에 대한 구체적인 묘안이 없는 상태다. 특히 방송업계에서는 TV 2D 스크린에 어떤 스토리로 가상현실을 구현할 것인지, 모바일 콘텐츠가 독창적이기 위해서는 어떤 발상의 전환이 필요한지에 대해 뚜렷한 답이 나오지 않고 있다. 고찬수 KBS 플랫폼개발사업부 팀장은 “VR영상은 시선을 따라 움직이는 것인데 TV는 센서가 없어 한계가 있다”며 “현재로서는 TV에서 VR을 구현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일부에서는 영상에 대한 기존의 사고를 완전히 뒤바꿔야 한다고 말한다. 김영호 MBC 뉴미디어포맷개발센터 부장은 “담기는 그릇이 아예 다른 것”이라며 “현재의 지상파에서 VR을 논하는 건, 마치 라디오를 제작해오던 사람에게 TV를 묻는 것과 마찬가지”라고 밝혔다. 김 부장은 “VR의 미래는 각 산업의 의사결정자들이 VR에 대한 이해도를 얼마만큼 가지고 투자하느냐에 달렸다”고 덧붙였다.

VR영상의 답을 찾아 나가기 위해 SBS는 ‘양질전환’을 꾀하고 있다. VR공모전을 개최해 영상기획안을 제출한 사람들 중 100명을 뽑아 360도 카메라와 HMD 등의 VR 기기를 무상으로 제공했다. 북한산을 가든, 아이의 눈높이에서 바라본 세상을 찍든 상관없다. 대신 한 사람당 최소 5개의 작품을 제출하도록 했다. 한편으로는 SBS PD와 작가에게도 VR기기를 지급하여 영상을 공급받기로 했다. 김도식 SBS 스마트미디어사업 팀장은 “아직 VR에 적합한 콘텐츠가 뭔지 모르겠다. 하지만 이렇게 약 1000개의 영상을 모으고, 유통 플랫폼을 만든다면 길이 보일 것”이라고 말했다.

1895년 뤼미에르 형제가 '공장을 나서는 노동자'의 모습을 담은 46초의 영상은 최초의 영화로 기록됐다. 그리고 약 30년 후 유성영화가 제작되면서 비로소 영화의 대중화가 시작됐다. 처음부터 모든 이들을 만족시킬만한 콘텐츠가 만들어지기는 어렵다. 하지만 VR영상 역시 지금의 작은 시도들이 모인다면 머지않은 미래에 상상 그 이상의 현실을 가져오게 될지도 모른다. 김영호 MBC 뉴미디어포맷개발센터 부장은 “2016년이 VR원년이 될지, 2026년이 될지는 아무도 모른다. 하지만 언제가 되더라도 VR은 영상 생태계를 바꿀 뿐만 아니라, 우리의 세계관 자체를 변화시킬 것”이라고 말했다.


이혜승 기자  coa331@pdjourna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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