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요한 건 지상파 중간광고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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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 원칙도 선후도 없는 방송광고 정책, 방통위는 틀렸다

“시청자들은 수준 높은 양질의 방송 콘텐츠를 원하고, 훌륭한 콘텐츠를 제작하기 위해선 재원이 필요하다. 그러니 시청자들이 어느 정도 타협을 해야 한다. 우리는 광고 작은 것 하나 하나도 규제를 완화하려 한다.”

최성준 방송통신위원회(이하 방통위) 위원장은 취임 2년을 맞아 지난 7일 진행한 기자간담회에서 방송광고 규제 완화 방침을 재차 확인했다. 양질의 콘텐츠를 원한다면 광고로 인한 불편 정도는 시청자들이 감수해야 한다는 말이었다. 최 위원장은 그러나 방송광고 규제 완화의 ‘뜨거운 감자’인 지상파 중간광고 허용에 대해선 “파급력이 큰 부분이고 (지난해) 광고 총량제 등 일부 제도를 개선한 만큼, 올해는 그 효과를 살펴볼 예정”이라며 “구체적인 계획을 갖고 있진 않다”고 말했다.

하지만 최근 방통위가 정보통신정책연구원(KISDI)와의 비공개 워크숍에서 수신료 징수대상 단말 범위 확대부터 방송사에 대한 대기업 소유규제 완화, 지상파 중간광고의 점진적 허용까지 방송사와 기업들의 이해를 반영한 대규모의 규제완화 방안을 논의한 사실(▷링크 3월 31일, <미디어스>)을 감안할 때, 결국 빗장은 순서와 시기의 문제일 뿐 열릴 전망이다.

지상파도 강하게 드라이브를 걸고 있다. 현재 지상파들이 처한 시장의 현실을 보자. 방송은 2012년 이후 광고매출 1위를 자리를 온라인에 빼앗긴 상황이다. 특히 지상파는 방송 산업 위기론의 중심에 있는데, 지난해 말 방통위에서 발표한 방송시장 경쟁상황 평가를 보면 IPTV와 종편이 방송매출과 광고‧협찬매출의 성장을 이끌고 있는 반면 지상파의 광고매출 시장점유율은 줄었다.

지상파 광고판매를 대행하는 한국방송광고공사와 미디어크리에이트 집계 결과 지난 1~2월 지상파 3사의 광고매출(TV+라디오)은 지난해 같은 기간과 비교할 때 24% 감소했다. 지상파가 “1999년 1월 IMF 경제위기 이후 최악의 상황”이라고 위기감을 표시하는 이유다. 지상파를 회원사로 두고 있는 한국방송협회도 지난 1일 정기총회에서 “올해 중 중간광고 도입이 필요하다”고 촉구했다.

▲ KBS <태양의 후예> 13회에선 대영(진구)과 명주(김지원)가 자동주행모드를 이용해 달리는 차안에서 키스를 하는 장면이 나왔다. ⓒKBS 화면캡처

그러나 지상파 중간광고는 논란이 많은 사안이다. 광고 수익을 놓고 경쟁해야 하는 방송사업자들(지상파와 유료방송)은 물론, 학자들, 언론‧시청자단체들 사이에서도 지상파 중간광고에 대해 저마다 다른 의견을 내놓고 있다. 하지만 현 정부의 전반적인 규제 완화 기조 속 최근 방송시장 안에서의 지상파의 현실과 종합편성채널(이하 종편)과의 비대칭규제 논란 등을 감안할 때 지상파 중간광고 허용은 시기의 문제일 뿐 피할 수 없을 거란 전망이 많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방통위는 지상파 중간광고 허용 카드를 만지작대면서도 종편 등의 반발을 의식하며 모든 이해당사자를 달랠 수 있는 방안을 찾고 있는 모습이다. 앞서도 방통위는 지난해 지상파에 광고 총량제를 허용하면서 가상‧간접광고 관련 규제를 더 완화하는, 다른 방송사들을 달래는 모습을 보였고, 중장기 방송정책 마련을 위해 최근 KISDI와 진행한 비공개 워크숍에서도 지상파 중간광고 허용 등의 방송광고 규제부터 소유‧겸영구조에 이르기까지 각각의 방송사업자들의 오랫동안 요구한 갖가지 규제 완화책을 논의하고 나섰다.

문제는 방통위가 달래고자 하는 모든 이해당사자 안에 정작 시청자는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다. 그동안 방통위는 지상파 중간광고를 남기고 모든 광고 관련 규제를 하나씩 풀어오는 과정에 있었다. 양질의 콘텐츠 제작을 이유로 내세웠지만 청사진 없이 여기저기의 눈치를 보며 풀어온 광고 규제로 인해 간접광고와 협찬의 경계는 모호해진지 오래다. 게다가 신유형 광고라 이름 붙은 변형 광고들도 속속 등장 중이다. 그 결과 현재 시청자들은 방송인지 광고인지 모를 영상물을 보고 있다.

드라마의 처지는 특히 심각한데 작가와 연출자는 캐릭터와 스토리를 구축하기 위해 개연성 있게 등장시켜야 할 소품을 광고‧협찬주의 요구에 따라 무리하게 넣을 수밖에 없는 상황에 놓여 있다. 집에 찾아온 딸의 경찰 동료에게 매장에서 그대로 쟁반째 들고 온 듯한 샌드위치 세트를 대접하거나(tvN <시그널>) 연인 관계의 캐릭터들이 굳이 달리는 자동차 안에서 자동주행모드를 이용해 키스를 하는(KBS <태양의 후예>) 모습 등은 시청자들의 실소를 자아내고 제작진을 부끄럽게 만들고 있다.

사실상 광고와 다를 바 없음에도 법의 사각지대에서 팔리고 있는 협찬의 양성화(미디어렙 위탁 판매)를 위한 대책 마련이나 매달 시청료와 VOD 이용료까지 내고 있음에도 모든 종류의 광고시청까지 강제당하고 있는 유료방송 가입자들의 이중, 삼중 부담 관련 문제해결 등을 방기하고 있는 상황에서 방통위가 규제 완화의 불가피함만을 강조하며 이용자인 시청자에게 끊임없이 “타협”을 강요할 때 방송 생태계는 어떤 모습으로 존재할 수 있을까. 

모든 이해관계자를 만족시킬 수 있는 방송정책은 사실 존재할 수 없다. 그렇기 때문에 방통위가 할 일은 방송사업자들의 눈치를 보며 찔끔찔끔 방송광고 규제를 완화하다 종국엔 모든 걸 푸는 게 아니라, 방송의 공공성과 공익성, 독립성 등의 가치를 중심에 둔 방송정책을 마련한 후 이에 맞춘 방송광고 정책을 마련하는 것이다. 포기해선 안 될 가치를 먼저 정립한 후 그에 따라 규제도, 완화도 결정할 일이다. 종편 등 다른 사업자들의 눈치를 보며 지상파 중간광고 허용을 마지막까지 손에 쥐고 있다가 모든 규제 완화의 끝에 이르러서야 어쩔 수 없다는 듯 주먹을 펴는 수순은 아니라는 얘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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